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는 여러 겹의 세계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김언수 작가의 '설계자들'을 읽으면서 들었다. 여러 겹의 세계를 하나씩, 하나씩 걷어 내다보면 모든 것이 낯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우리들이 현재 같은 시공간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시다발적인 사건들은 어딘지 모르게 일그러져 있는 것 같고 진실로 믿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런 느낌을 '설계자들'을 읽으면서 또 한 번 느끼게 되는데, 더 섬뜩한 것은 그 일그러진 세계가 익히 알고 있는 세계와 흡사하다는 인식이다.

여기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있다. 그곳은 책을 빌리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거의 없이 수 만권의 책이 서가에 빽빽이 들어 선 곳이다. 그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과 수상한 일들이 거래가 되는 미지의 세계이다. 또한 도서관 주인인 너구리 영감과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이에서 도서관 암살자로 자라 너구리 영감의 손과 발이 되고 있는 래생이 있고, 시선을 종잡을 수 없는 만큼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팔뜨기 사서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너구리 영감이 설계자들에게 암살 의뢰를 받으면 돈을 받고 누군가의 죽음을 설계자가 설계한대로 깔끔하게 처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설계자, 암살자, 희생자들 간의 관계는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아무 의식 없이 치르던 암살에 대한, 설계자들에 대한, 희생자에 대한 생각들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래생을 중심으로 일그러지고 해체되었다가 또 다시 일그러진 형태를 만든다. 하지만 한 번 금이 가기 시작한 그들의 세계는, 래생의 세계는 지옥에서 지옥인 줄 모르고 살았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소설 '설계자들'은 암살자 래생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중심으로 그의 세계를 허물기 시작한다. 그는 그저 설계자들이 시키는 대로 암살했을 뿐이었던 시기에서 자신의 세계에서 틈새가 벌어진 그 시점에서 세상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시기부터 그는 변화기 시작하고 세상도 변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비록 추한 몰골로 드러날지라도 그래서 더 이상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래생의 오랜 전매특허처럼 허공을 향해 피식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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