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철학자들 죽음을 요리하다 1881 함께 읽는 교양 6
토머스 캐스카트 지음, 윤인숙 옮김 / 함께읽는책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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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 유쾌하다. 그들이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도 즐겁고 어떻게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지,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쇼펜하우어, 니체, 카뮈, 그리고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들이 삶의 의미에 대해 고심하였던 많은 죽음에 관한 철학적 이견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렵고 심각하고 진중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죽음'이라는 주제를 신나는 수다와 같은 촌철살인의 농담으로 두 저자는 재미난 그림과 함께 철학, 종교, 심리학을 넘나들며 이야기하기 때문에 기꺼이 그들의 수다에 동반하게 된다. 

'죽음'을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인간만이 자신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최대한으로 미루고 싶은 것 또한 '죽음'일 것이다. '난 언젠가 죽을 거야'라고 내가 이야기했다면 아마도 그것은 죽는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믿고 싶지는 않다는 것일 테고,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아. 모든 생물들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순환되어야만 해라고 했다면 그 속뜻은 남들보다 좀 더 젊음을 유지하다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면서 충분히 살았다고 느낄 때 죽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되는 일인가 말이다. 죽음을 친구처럼, 삶의 동반자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은 엄청난 내공을 쌓기 전에는 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저자의 신나는 '죽음'에 대한 여러 이견들과 철학, 종교, 심리학을 두루두루 섭렵하고 유머가 가득한 짧은 이야기들과 뉴욕을 대표하는 다양한 삽화가들의 그림을 보며 웃다보면, 죽음, 사후세계, 불멸에 대한 여러 심각한 이야기들이 즐거워지기까지 한다. 

예전에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던 동화 '트리갭의 샘물'이 떠오른다. 우연히 한 가족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샘물을 발견하고 가족들이 마시게 되고 바로, 그 순간 멈추게 되는 것이다. 중년의 부부와 십대의 아들은 그 상태 그대로 영원히 살게 된다. 드디어 불멸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부부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빠는 반복되는 삶이 지겨워 죽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지만 죽지 못하고, 엄마는 이러한 지루한 삶을, 친한 친구, 가족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만 하는 삶을 그냥 무기력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아들은 기꺼이 영원불멸의 삶을 받아들인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봐야하고 한 곳에 오래 정착할 수 없다해도 말이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되었고 어린 소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의 순리를 따르기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과연 영원히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고 주위에 물어보곤 했었다. 대부분의 대답은 '죽고 싶다'였다. 언젠가는....... 사람들은 불멸을 꿈꾸지만 영원한 삶을 꿈꾸지만 결코 지루하게 반복되는 삶에는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었다. 나 역시 오래 건강하게 살다가 한 번에 편안하게 가는 죽음을 원하지만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죽음'을 삶의 한 일부분으로 유쾌하게 저자들처럼 받아들인다면 '죽음'이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없고 심각할 것도 없을 것 같다. 잘 산다는 것은 잘 마무리한다는 뜻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많은 예술가들, 종교가들, 철학자들이 상상했던 '천국'은 죽음 뒤에 혹여 없을지라도 '죽음'만은 확실히 올 거라는 사실이다. 그 죽음을 두 유쾌한 저자들처럼 시종일관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만으로도 '시끌벅적한 철학자들 죽음을 요리하다'는 나에게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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