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러스트
필립 마이어 지음, 최용준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메리칸 러스트'는 진한 감동이 잔잔하게 전해지는 소설이다. 때론 가슴이 아릿하게 아파오는데, 그 슬픔이 생각보다 깊어서 눈물은 오히려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들이 처한 상황과 그 상황을 헤쳐나오는 과정이 고행의 길과 비슷해서 힘겹게 느껴졌지만, 내내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들이 다른 이들이 하기 힘든 결정을 선택하게 되고 책임을 지려는 모습에서, 자신들이 만든 틀에서 드디어 벗어나 마음껏 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순간을 기다리게 된다. 어쩌면 내가 놓친 선택일지도 몰라서, 더 애틋하게 바라보게 된다.  

쇠락한 철강 마을을 무대로 오랜 친구인 아이작과 포는 서로 전혀 다른 기질을 지니고 있지만 둘은 친구가 되었고 서로를 가장 신뢰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작은 천재로 불리며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가 더 이상 기댈 것이 없는 마을을 떠날 것이라 기대를 모았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자살을 겪은 후,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돌보며, 언젠가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누나처럼 마을을 떠나 자신의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감수성 예민한 청년이다. 그에 반해 빌리 포는 마을 사람들의 희망이었던 유망한 고교 미식축구 선수였고 탄탄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포는 사람들의 기대에 스스로 질식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엄마에게 기대어 트레일러에 살면서 무의미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드디어 떠나기로 결심한 아이작은 포에게 떠나는 마지막 길을 동행하기를 원하게 되고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들른 곳에서 우연히 살인 사건에 휩싸이게 된다. 그후 살인 혐의자와 살인자가 되어 험하고 긴 시간들을 걷게 된다. 

미국의 산업 붕괴에 그에 따른 폭풍 같은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친 후,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기댈 곳도 없고 희망을 갖는다는 자체가 사치가 되어 버린 곳에서, 그래도 포와 빌리는 일어서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여섯 명의 주요 인물들의 시점에서 살인 사건에 휩싸인 포와 아이작을 바라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애끊는 어머니의 시선, 그 어머니를 사랑하는 남자의 시선, 포와 아이작 둘 모두를 사랑하는 누나의 시선, 진심을 전하지 못한 채 아이작에게 짐이 되었다고 뒤늦은 후회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아버지의 시선을 안타깝게 보여준다. 또한 졸지에 살인자가 되어버린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작의 시선, 친구대신 살인죄를 뒤집어 쓴 포의 시선이 교차되면서 다층적인 내면의 불안함과 연약함, 외면하고 싶은 마음, 회피하고 싶은 심정,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심리들을 두 명의 주인공들과 교차하면서 섬세하게 잘 표현해주고 있다. 

주인공 외에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포의 어머니 그레이스를 사랑하는 남자 경찰 서장 해리스이다. 그가 그녀를 위해 선택하는 모든 일들은 위험천만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중대한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일에 대해 아무런 미련 없이 결과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충분히 예상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두 청년을 위해,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선택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매순간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선택이 때론 걷잡을 수 없이 평온했던 삶을 나락으로 끌고 내려가기도 한다. 바로 그때, 우리는 더 큰 선택을 해야만 한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서 힘든 결정을 내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이작과 포는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고 자신들을 돌아볼 시간들을 고통스럽게 겪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최선의 선택을 결정하게 되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아가게 된다.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아이작과 포에게 진한 애정이 솟는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것도 사람이고 또한 그 반대로 가장 기대고 믿고 희망을 걸 수 있는 것도 사람이라는 것을 '아메리칸 러스트'는 때론 가슴 먹먹하게 또 때론 쓸쓸하고 서글프게 들려준다. 하지만 포와 아이작이 모든 시련을 겪으며 시행착오를 겪은 후, 모든 것을 이겨내고 미래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그들의 희망을 떠올리면 모든 것이 보상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작가는 몰락해버린 마을의 가난과 절망 속에서 두 청년의 겪게 되는 사건을 통해 적나라한 미국의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며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무기력해지는지, 포기하고 살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며 암울하게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두 청년의 시선으로 서글픈 희망을 품는 모습을 대비시켜 이야기의 깊이를 더 해 주는 멋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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