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스
페터 슈탐 지음, 박민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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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페이지 분량을 다 읽은 후의 느낌은 서늘하고 춥다이다. 길지 않은 분량을 순식간에 다 읽었는데, 마음은 인적이 드문 거리를 쓸쓸하게 내리는 눈을 맞으며 걷고 있는 기분이 줄곧 들었다. 진심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는 할 말은 너무나 많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데, 상대방 얼굴을 마주하고서는 결코 '말'이 되어 나올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둘의 만남이 깊어질수록 서로에게 조금씩 빗겨감을 느끼게 되면서 그녀는 말한다. "나에 대한 소설을 써.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수 있게."     

'아그네스'는 중년의 스위스인 저술가인 ‘나’와 이십대의 시카고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논문을 쓰는 아그네스의 만남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 변화가 미묘하게 변화되고 파국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일체의 감정도 개입도 하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문체는 두 사람의 만남, 사랑, 이별, 파국을 건조하게 만들면서도 지나치리만큼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아그네스의 부탁에 마지못해 시작한 소설은 '나'를 순식간에 사로잡기 시작했고 '나'는 아그네스를 사랑스런 연인의 모습이 아닌 소설 속 주인공으로 관찰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감정도 변하기 시작한다. 아그네스는 '나'의 변화를 인식하지만 모른 척하며 그의 곁에 남는다. 더 이상 둘의 대화는 대화가 아닌 각자의 독백처럼 들리기 시작하고 현실의 아그네스와 '나'는 소설 속 '아그네스와 '나'의 관계도 현실의 부딪힘에 점점 더 소설 속 가상세계에 집착하고 탐닉하게 된다. 아그네스와 함께 시작했던 소설 쓰기는 점차 아그네스에게 숨기게 되고 아그네스와 함께 만들어갔던 결말과 다른 또 다른 충격적인 결말을 쓴다. 

소설 '아그네스'는 외롭다. 사랑하는 사람과 진정으로 소통되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도 담담하게 그려져 오히려 그 사무치는 외로움과 먼지처럼 떠도는 겉도는 '말'들이 투명하게 보인다. 읽는 동안 외롭고 쓸쓸했지만 깊은 여운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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