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존 르 카레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007 영화를 비롯해 할리우드 스파이 영화를 집중적으로 보고 자란 나에게 세상은 선과 악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세상으로 비춰졌다. 영화 속에서 항상 승리하는 편이 당연히 선의 자리였고, 선의 자리를 넘보는 모든 세력들은 악이었다.  하지만 자라면서 세상은 선과 악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과 내가 굳건히 믿었던 선의 세력들의 모습은 한 단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되었고 그러한 구분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를 깨닫게 된다.  

냉전시대 세상을 선과 악, 이분법으로 묘사했던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와 달리 존 르카레가 들려주는 냉전시대는 온통 회색지대이다. 선과 악의 구분이 깨지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만이 남는다. 조직과 개인의 만큼 허술하지만 잘 표장된 관계 속에서 조직 속 개인일수 밖에 없는 스파이들의 고뇌와 허무를 담고 있다.  

주인공 조지 스마일리는 작고 통통한 볼품없는 중년의 남자이다.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스파이 소설의 남자 주인공 이미지와는 천지 차이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외모와는 달리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갖고 뛰어난 분석력을 자라하는 스파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공산주의 가담협의로 자신과 면담을 했던 외무부 직원이 의문의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스마일리는 그 사건을 추적하고자 하나, 상부에서는 조용히 덮기를 바란다. 하지만 스마일리는 그 사건을 덮을 수 없었고 사건을 추적하면서 배후의 인물이 예전에 자신과 함께 했던 한 인물임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갈등과 내면의 고통이 시작된다. 

동서 냉전시기에는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만 하는 사람들과 함께 쉴틈없이 사상을 의심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시기였다. 그러한 시기에 개인들은, 결국 개인들일 수밖에 없는 스파이들은 어느 것이 선이고 악인지에 대한 혼란과 갈등을 겪게 되고 겉 모습에 가려진 진실 찾기에 도전하게 된다. 

동. 서 냉전시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작가 존 르카레는 어느 세상도 어느 조직, 개인도 선과 악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세상이 아님을 소설을 통해서 알려준다. 선이라고 생각했던 모습에서 악이 또아리를 틀고 우리를 노려보듯이, 악이라고 생각해왔던 모습에서 선한 개인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동. 서 냉전시기가 끝난 지 오래된 시점이지만 존 르카레가 들려주는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 현재에도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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