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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에세이를 읽은 지가 한참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서 하게 된다. 한동안은 그의 소설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투를 흉내내기도 했고 그가 말하는 어법이 단백하게 느껴져 참 좋아했었다. 물론 지금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고 그의 작품은 몇년마다 읽어보곤한다. 더구나 20대시절의 모든 열망과 좌절감을 한 방울의 레몬즙처럼 희석시켜주고 재미나게 해주었던 작가였기에 그의 이야기는 항상 관심이 간다.
'승리보다 소중한 것' 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시드니 올림픽을 관전하면서 기자입장에서 바라본 올림픽에 대한 생각과 그 속에서 느끼게 되는 승리보다 소중한 그 무엇을 찾는 이야기이다. 얼마 전 끝나고 그 열기가 채 가시지 않고 금메달을 딴 선수들이 방송에 출현하여 당시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는 시점에서 이 책은 새삼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는 여전히 4년마다 돌아오는 올림픽을 기다리고 올림픽의 승자를 열광한다. 더욱이 그 승자가 미녀이거나 미남일 경우는 배로 열광하며 하나의 신드롬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루아침에 무명의 선수였던 사람을 국민여동생내지 국민남동생으로 만들어버리는 방송의 힘이 크다는 것을 반은 그 물결에 휩쓸리고 반은 덤덤하게 바라보게 되는 게 요즘에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이런 말, 저런 말이 오가도 승자는 역시 멋있다. 그들이 흘렀을 땀방울보다는 단상 맨 위에 올라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손을 번쩍 위로 올린 모습을 더 사랑하는 게 현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멋있다. 4년을 기다린 올림픽이고 고된 훈련과 좌절을 이겨내고 타낸 승리이기 때문이다. 승자는 작가의 말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승리를 위해 박차를 가하게 된다. 아무리 아깝게 몇 초 차이로 졌다고 해도 그들은 메달리스트가 아니면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이가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러나 올림픽에는 메달을 목에 거는 선수들보다 4년을 기다리면서 땀을 흘리고 좌절을 겪고 이겨냈지만 그날의 컨디션과 더 뛰어난 선수들에 의해 또 다시 좌절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선수들이 더 많고 그들은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다음 대회를 위해서 준비하고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승리'보다 소중한 것을 발견하기 위해 길고 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이다. 우리들 역시 자신만의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것이 인생일 것이다. 매번 작은 장애물에 멈추고 주저하게 되는 그 레이스 말이다. 승리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책은 시드니 올림픽 관전을 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현장에서 본 올림픽 이야기와 호주 사람들, 호주만이 보유하고 있는 코알라, 상어 등의 이야기를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작은 에피소드를 가벼운 웃음처럼 이야기를 해서 공감하고 같이 웃게 만든다. 특히 올림픽 현장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경기를 보면서 선수들의 긴장과 열정을 생생하게 느꼈던 작가의 느낌과 잘 편집된 화면을 보는 전 세계 시청자들의 느낌이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느껴보려 한다. 승자들의 승리의 깃발을 들고 경기장을 도는 모습에만 익숙해있던 나에게 말이다. 사실 그 현장에는 또 다시 좌절한 선수들이 더 많고 그들의 느끼는 슬픔이 더 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올림픽이 점점 더 대기업화되고 광고의 홍수 속에 빠져드는 것은 역시나 슬픈 일이다. 또 나를 비롯하여 금메달을 딴 몇몇 종목에 열광하지만 비인기 종목이라는 이유로 곧바로 외면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선수들에게 더한 배신감을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점은 우리 모두 생각해볼 문제이다.
'승리보다 소중한 것' 이 무엇인지 가벼운 어투로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어쩌면 우리는, 나는 승리보다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있어야만 진정 미소를 지으며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