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로스 킹 지음, 신영화 옮김 / 은나팔(현암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재'는 르네상스시대를 배경으로 바티칸 성당 안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벽화를 의뢰받은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와 폭군 교황으로 알려져 있는 율리우스 2세, 놀라운 재능뿐만아니라 외모와 성품마저 뛰어났던 라파엘로를 중심으로 화려했던 르네상스시대를 소개시켜준다.

1508년에 다혈질적이고 괴팍하기 이를데없는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건축가 브라만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각가인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벽화를 무조건적으로 맡기게 된다. 이에 스스로 조각가라고 칭해오던 미켈란젤로는 심한 거부감을 느끼며 브란만테가 자신을 궁지에 몰려고 이런 일을 벌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적대감을 갖게 된다. 그들은 뛰어난 재능과 야심가라는 점만 빼면 극과 극인 사람들이었기에 서로를 조롱하며 적대시하였다.

브라만테가 사교적이며 유쾌한 호남형이었다면 미켈란젤로는 못생긴 외모에 괴팍한 성격, 위생결핍증까지 가진 인물이었다고 한다. 작품 속의 근육질의 남자들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으며 자신의 외모를 비관하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미켈란젤로는 천재 조각가로 십대시절부터 알려져 있었기에 조각가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힘들고 고된 시스티나 천장 벽화가 맡겨졌으니, 불평불만이 얼마나 심했는지 이 모든 일이 브란만테의 음모라고까지 의심을 했었다고 한다. 더구나 그는 조가가이기에 프레스코화에 대한 전무하다시피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프레스코화 기법을 처음부터 새로이 익히면서 배워 나가면서 시스티나 천장벽화를 1508년부터 1512년까지 4년4개월간의 수천장의 소묘를 만들고 프레스코화를 완성시켜 나가 최고의 걸작을 탄생시키게 된다.

매사에 성마른 성격을 가지고 상대방을 의심부터 하는 미켈란젤로는 당대의 꽃미남이자 뛰어난 실력으로 선배들을 제친 라파엘로와의 만남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는 아주 대조적인 성격과 외모, 작품 스타일을 갖고 있어서 서로를 적대시하고 시기하는 불편한 관계였다고 한다. 거의 혼자 다니다시피하고 사람들과의 교류를 꺼려했던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라파엘로는 사교적이고 여성들과 끊임없는 스캔들을 만들어내고 제자들이 많이 따랐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바티칸 성당 한쪽 끝과 다른 한쪽 끝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가끔 부딪치게 되면 서로의 재능에 시기하고 조롱했다고 한다.

후에 미켈란젤로의 천장벽화의 전반부가 공개되었을 때 라파엘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보고는 충격을 받아 이미 완성한 작신의 벽화를 떼어내고 존경의 의미로 미켈란젤로를 모델로한 투박한 인물상을 새로 그려 넣었다고 한다.

이렇게 전혀 다른 두 천재 화가를 한 장소에 머물게 하고 작품활동을 하게 한 인물은 다분히 폭군기질을 타고난 전사교황 율리우스 2세이다. 비종교적인 성향을 가진 그는 끊임없는 전쟁을 일으키고 참전하는 등 특히한 인물이다. 괴팍하기는 미켈란젤로 못지않아 그를 억압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시스트나 예배당 천장벽화를 완성하게끔 한 인물이다. 어찌보면 그 둘은 너무 닮은 꼴이라 서로에게 애증을 느꼈던 같다.

전혀 다른 작품 스타일을 소유했던 두 천재 화가의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에 웃음도 나오고 그 오랜시간을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한 작품에만 매달리다시피해야 했던 화가들의 고충이 느껴지기도 한다. 미켈란젤로경우에는 천장벽화였기에 고충은 라파엘보다 훨씬 심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반면에 미켈란젤로의 천장벽화는 교황이나 다른 이들이 세밀하게 볼 수 없지만 라파엘의 작품은 실물크기의 그림을 실제 사람들이 코앞에서 세세하게 볼 수 있었기에 더 심혈을 기울여만 했었다고 한다.

르네상스를 풍미했던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선의의 경쟁어린 작품 활동과 그 둘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던 카리스마 넘치던 폭군교황 율리우스 2세와의 길고 긴 르네상스 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실제 시스티나 천장벽화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직접 본 분들에 의하면 놀랍기 그지 없다고 한다. 책만으로도 그들의 노력과 열정, 시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데 실제로 본다면 얼마나 대단할까 싶기도 하면서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기분이다. 아마도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벽화를 4년에 걸쳐 끝내고 자신이 좋아하는 조각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이러한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89세의 사망할 때까지 율리우스 2세의 영묘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80년부터 프레스코화 천장벽화의 복원이 시작이 되어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본래의 색을 찾고 있다고 한다. 복원에 대한 찬반이 갈리기도 하지만 현대적인 기술력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프레스코화 기법등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파란만장했던 미켈란젤로의 삶과 르네상스 시대를 볼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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