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
데브라 딘 지음, 송정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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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에게 전쟁의 고통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개인이 겪게 된 크나큰 상처와 고통의 무게는 얼마나 크고 깊은지 짐작만 할뿐이다.

데브라 딘의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에서는 지옥같은 전쟁 속에서 가족들의 해체와 죽음을 경험하게 되고 전쟁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일어난다.

그러한 와중에도 자신의 존엄성을 잃지않으려는 노력들이 보이고 그래서 또다른 희망을 갖게 되는 모습들을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마리나는 나치 치하의 전쟁 소용돌이 속에서 900일동안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지켜낸 여성이다.

전쟁이 본격화되기 전에 미술관의 미술품들을 나무상자 담아 포장을 하는 일을 하면서 점점 텅비어가는 미술관의 예술작품들을 잊지않고 기억하고자 기억의 왕국순례를 시작하게 되고 그러한 일들을 자신의 소명으로 인지하게 된다.

전쟁의 안겨 준 굶주림의 고통과 점점 삭막해져가는 정신과 육체를 다잡기 위해서라도 마리나는 예술품을 최대한 많이 정확히 기억하고자 노력한다.

그녀는 텅빈 미술관을 다니면서 기억 속의 예술작품들과 대화를 나누며 하루하루를 버티어 나가게 된다.

그러한 장면들은 이 소설의 전체적인 모습에 끈을 이어놓은 듯한 모습으로 연결되어 보여지는데,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고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텅빈 액자를 바라보며 기억 속의 예술작품을 기억해내어 마리나는 설명을 하고 듣는 사람들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마리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만 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말하는 이, 듣는 이에게 경이로운 세계로 초대를 하는 것이기에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반복적으로 드나들면서 마리나의 심경을 보여준다.

현재의 마리나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82세의 할머니가 되어 자꾸만 기억의 공간들이 비어만가고 평생을 함께 하다시피한 남편 드미트리에게 마음의 짐을 주게 되는 것을 슬퍼하는 모습으로, 과거의 모습에서 마리나는 전쟁 중에 미술관을 지키며 뱃속에 새생명을 잉태하고 견디어 내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엄마 마리나에 대해서 새로이 알게 되고 이해해가는 과정을 겪게 되는 딸 헬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헬렌은 죽음을 앞둔 엄마에게서 낡은 사진 속에서 아련한 모습으로 있던 열정의 눈빛을 지닌 소녀 마리나를 만나게 되고 마음 속 화해를 하게 된다.

전쟁은 무수한 사람들의 생명과 존엄성을 앗아갔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버티어낸 많은 사람들의 집념과 생명력으로 세상은 다시금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마리나와 수많은 드미트리의 모습으로 전쟁을 이겨낸 그들에게 따뜻한 햇살과 말없는 미소를 안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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