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 2005 페미나상 상 수상작
레지스 조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푸른숲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스물아홉, 그가 나를 떠났다' 제목에서 떠올리던 모든 이미지들이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지젤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6년간 함께 살고있는 다미앙이 회사에 출근하는 것을 배웅을 하고 들어와 침대에 눕는다. 그녀는 18개월전부터 실직상태이다.

잠시 후, 수도꼭지를 고쳐주겠다고 나타난 다미앙의 아버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지젤의 진을 빼놓더니, 다미앙의 결별을 전하러 온 것이고 짐을 옮겨가겠다고 한다.

지젤은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그의 아버지는 그동안 잘 얹혀살았으면 되었으니, 이제 다미앙곁에서 사라지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다미앙의 짐과 가구를 옮기는 것을 도우라고 재촉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사태 파악이 안되고 있는 지젤, 아버지를 시켜 무례하게 결별을 통고하는 애인 다미앙, 아들의 애인에게 결별을 통고하고 짐을 옮기도록 강요하는 아버지...

세상에...여기서 끝이 아니다.

곧이어 아들의 여자였던 지젤에게 온갖 모욕과 독설을 내뱉는, 어쩌면 이러한 상황을 즐기는 듯한 그의 어머니가 등장을 하면서 이야기는 알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께끔 한다.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떠들기 시작하는 네사람의 독백으로 채워지면서 결코 멈춰지질 않을 것만 같은 공포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니, 그들의 독백이 너무나 버거워 귀를 막고 싶어지기도 했다.

사랑한다고 믿으며 다미앙에게 안주하고 싶었던 지젤,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버린 그녀, 곧 자신의 어머니와 닮아질 그녀를 떼어내고 싶은 다미앙, 볼품없고 무능력하고 무신경한 그의 아버지, 소유욕과 집착에 가득찬 위선적인 그의 어머니이가 내뱉는 독설은 더이상 '사랑'이라는 이름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들의 독백은 의사소통이 아닌 배설에 가깝고 그래서 텅비어 버리는 존재가 되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읽는 동안 그들의 위선적인 말과 행동에 지치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더이상 희망은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감마저 들었다.

작가는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꽁꽁 감추어진 추한 진실을 보여주기로 작정한 것일까...

그들에게 끊임없이 휘둘리면서도 아무 댓구도 없이 그림자처럼 서 있는 그녀에게 화가 치밀즈음 그녀는 또다시 이기심과 소유욕에 가득찬 그들의 부모에게 속이 시원해질 말을 마지막에 하면서 또 다른 희망의 한줄기 빛을 내어준다.

"난 그를 사랑하지 않아요."

<나는 소파에 누웠다.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한줄기 햇살이 계단을 타고 올라와, 문 아래로 스며들더니 이제는 가을 오후 끝 무렵의 온화한 빛으로 거실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행복한 마음으로 미래를 기다렸다. 마치 멋진 기억을 되새기듯.>

작가는 평범해진 주제가 되어버린 '남녀의 결별'을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새로운 쟝르라고 느껴질만큼 특별하고 기이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 같다.

놓고 싶지만 결코 책을 놓을 수없게끔 만드는 매력이 있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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