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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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

처럼 안개가 무진을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있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 놓은 입김과 같았다.

- 중략-

'무진기행'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사실 다시 읽기 전까지, 안개 가득한 무진을 다시 접하기까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흐릿해져버린 나의 기억이 맞는지, 어디선가 듣은 기억으로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겹겹히 감싸오는 무진의 안개 속으로 들어가서야 새삼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기억이란 기억하고 싶은 장면만 입력시키는지, 짙은 안개와 주인공이 기억했던 한 여름날의 개구리 소리만 단편적으로 기억을 해서는 '무진기행'을 다시 읽게 되면 여름에 읽어야지 했었다.

주인공 윤희중에게 '무진'은 떨쳐버리고 싶지만 결코 떨쳐버릴 수 없는 마음의 그림자같은 곳이다. 

치욕스러웠던 젊은 시절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곳이며, 또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며 일탈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습관처럼 몸에 둘러 붙은 일상사를 벗어나기는 쉽지가 않고 그 틀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그는 도망치듯 무진을 떠나게 되고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팻말을 보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나역시 부끄러웠다.

속세로 돌아갈 수밖에 없던 주인공의 부끄러움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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