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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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의 무료함을 온 몸으로 느끼던 공대리는 13호 캐비닛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고, 자물쇠로잠겨진 번호를 0000부터 시작해서 7863번으로 맞추어질 때까지 시간과 공을 들여(단순히 무료함이 지겨워서)드디어 열게 된다.

어찌보면 13호 캐비닛을 연 순간부터 공대리의 운명은 남다르게 변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할일없이 회사에 나와 매달 월급을 타면서 느끼는 죄책감과 지루함이 더 이상 그를 가만놔두지 않을 것인지도 모르고...

아무튼 낡고 방치된 듯 놓여있던 13호 캐비닛에 들어 있는 온갖 기이한 이야기들은 그를 사로잡게 되고 캐비닛의 책임자인 권박사의 권유와 계략으로 캐비닛 속 파일들을 정리하고 상담을 받아주며 그들의 특별한 삶 속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캐비닛 속에 들어 있는 기이하고 상상밖의 이야기들은 미국의 미니시리즈 X 파일을 연상시키게 되고 화자는 멀더와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지만 영 그건 아닌 것 같다.

공대리는 멀더처럼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사람이 절대로 아닌 그냥 무료함을 달래려고 시작한 것이고 권박사의 반 협박에 자의반 타의반 캐비닛을 지키는 사람일 뿐이다.

특별히 잘난 것도 없고 빽도 없는 삼십대의 남자이며, 상식적인 일외에는 따로 생각해볼 가치를 느끼지 못하던 인간 공대리에게 캐비닛 속 심토머로 불리우는 새로운 변이 종들은 도대체 이해하기에도 너무나 벅찬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여인이 인간에게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대신 고양이에게만은 애정을 느끼는 것을 안타까워해서 자신이 고양이 변신하기를 끔찍히도 원하는 거구의 남자, 키메라라고 구분되어지는 혓바닥에서 도마뱀이 자라는 여자, 왼쪽 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나는 남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긴 잠을 자게 되는 토포러 등 셀 수 없이 많은 기이한 변종들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는 상식적인 인간답게 그 모든 이야기들을 믿지 않고 우스운 일로 치부해버리고 싶어하지만 그들의 애절한 상담이야기들을 듣게 되면서 점차 그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흘러간다.

 

제 12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인 김언수의 장편소설을 처음 접하게 된것은 친구들의 권유도 있고 새로운 국내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라고 해서 읽게 된 책이었다.

국내소설에 편견아닌 편견을 오래 갖고 있다보니, 별로 접할 기회도 없고 나름의 이유를 들어가며 멀리했었기에 우리 나라 젊은 작가들의 변화된 모습을 잘 모르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런면에서 김언수의 '캐비닛'은 나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고,  작가의 재담이 느껴지는 작품이며 쉽게 읽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한번쯤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변이된 종을 보게 되면 상상되는 모든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들이 평범한 인간들 틈에서 고통받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새삼 평범한 인간들인 우리가 더 변이된 종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더 잔인하고 몰상식적이며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듯한 모습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회사사람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직장 상사에게 모욕을 당하고 그 고통을 먹는 것으로 풀어내고자 한없이 초밥을 먹고 토하는 송정은의 모습에서 별다른 의욕도 사명감도 없이 그저 이끌어지는 대로 살아왔던 공대리의 모습에서도 또 다른  심토머들임을 알수 있게 된다.

캐비닛을 이끌어가던 재담도 중반부부터는 애잔함이 함께하여 그냥 웃고 넘어갈 소설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랜만에 재미있고 동시에 씁쓸해지는 소설을 만나게 된 것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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