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테이블 - 프랑스 시골에서 만난 음식과 사람 이야기
제인 웹스터 지음, 차유진 옮김 / 북노마드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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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모임에서 만난 친구 중 한 명이 올 여름 프랑스 근교로 몇 달 동안 여행을 간단다. 그곳에서 학교 다녔고, 프랑스에서 생활을 해 본 친구들은 죄다 프랑스를 그리워하는 터라 그 친구 역시 그저 다니러 가는가 보다 했는데, 서너 달 스튜디오를 빌려 프랑스에서 살아보기 같은 것을 해볼 작정이란다. '그곳에서 살아보기', 내가 허구한 날 꿈꾸는 여행이 그런 것인데 아직까지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데다 언제쯤에나 그 꿈을 이루어볼까, 한숨만 쉬던 차에 친구의 그런 소식을 들으니 부럽기도 하고 따라가고 싶다는 쓸데없는 생각도 하다가 결국 책을 들었다. 언제나 늘 그렇듯이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난 여행 책을 읽었으니까. 한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우연찮게도 프랑스에 관한 책이었다. 그것도 그곳을 잊지 못해 아예 살기 위해 떠난 한 가족 이야기.

<프렌치 테이블>의 저자 제인 웹스터는 호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오랜 세월 동안 프랑스 문화와 요리에 관심을 가졌었단다. 프랑스 요리를 배우고 다니던 학교마저 그만두고 카페를 열 정도로 프랑스를 사랑하던 그녀, 결국엔 파리에서 50분 거리에 있는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 보스구에의 성을 하나 사서 가족을 이끌고 호주를 떠나온다. 그녀의 꿈은 그 성에서 "프렌치 테이블 투어"를 시작하는 것. 와우!!

제인은 보스구에의 오래된 성을 사서 손수 쓸고 닦으며 성을 가꾸고 마을 사람들과 교류를 한다. 호주 멜버른의 도시생활에 익숙했던 제인과 가족들, 처음엔 적응을 할 수 있을까 염려도 했겠지만 호주의 집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나게(!) 큰 집에서, 마을의 공원 안에 성이 있는 덕분에 가진 넓은 정원(!)과 큰 나무들을 보며 사는 일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을 것이다. 하긴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면 회색빛의 건물들이 보이는 게 아니라 들판이 보이고 꽃이 피어 있는 사과나무와 길게 뻗은 울타리가 보이는 곳이라면 누구라도 꿈이 아닐까, 볼을 꼬집어보기도 하겠다.

<프렌치 테이블>은 제인 가족이 프랑스에 거주하며 보낸 일 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일 년은 제인이 기획한 "프렌치 테이블 투어"를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이다. 투어의 시작을 위해 노르망디 시골마을 보스구에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며 생활한 이야기들이 가득이다. 아름다운 노르망디의 풍경 외에도 프랑스 요리에 심취한 제인답게 제인이 선보이는 계절별 요리들은 입맛을 돋우고도 남는다. 그런 까닭에 여행만큼이나 요리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 책을 보며 어떻게 나도 한번 만들어봐? 실천하지도 못할 상상만 해댔다.

안 그래도 주변에 프랑스를 못 잊는 사람들이 많아, 도대체 그곳이 얼마나 좋았기에 다들 이 난리인가, 했는데 <프렌치 테이블>을 보니 보스구에의 성엔 한번 가보고 싶기도 하다. 파리에서 겨우 50분 거리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는. 프랑스가 좋아 프랑스에 살러 간 사람들이 모두 제인처럼 성공하고 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를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런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책을 처음 읽으면서 <프렌치 테이블>과 비슷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책 역시 북노마드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고, 내 기억으론 역시 호주에 사는 한 가족이 프랑스로 살러 온 이야기였던 것 같았다. 혹시 이 책은 그 책의 개정판인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것 외엔 일치되는 것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책을 찾아봤다. <마이 프렌치 라이프>, 이 책의 가족들은 프로방스로 떠났다. 제인이 파리 근교의 성을 사서 들어간 반면 호주 시드니에서 잘 살고 있던 비키 아처는 프로방스 생 레미의 농장을 사서 들어갔다. 비키 역시 생 레미의 오래된 농장을(17세기에 지은) 사서 수리하고 청소하여 들어갔다고 한다. 2천 그루가 넘는 농장의 사과나무와 배나무, 올리브나무까지 돌봐야 하는 처지였지만 비키는 운명이고 축복이었다고 하니, 제인도 비키도 어쩌면 전생에 프랑스 인이었는지도 몰라.

아무튼, 프랑스로 떠나는 친구의 부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택한 책으로 말미암아 머무는 여행, 그곳에서 살아보기에 대한 욕망만 잔뜩 더 쌓이고 말았다는 슬픈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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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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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예고편을 보면서 궁금하던 차에 만났던 소설이다. 책을 잡자마자 놓을 수 없는 것이 스릴러 추리 소설인 셈인데 이 책 역시 그랬다. 도대체 이 남자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궁금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뒤로 갈수록 뭔가 해결점이 보여야 하는데 이 책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그래서일까,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스포일러는 절대로 안 된다고 광고를 한다. 책을 덮고 나니 그렇다. 스포일러가 알려지면 이 책은...

식물학자인 주인공은 교통사고가 난 뒤 의식불명인 채 몇 주를 보내고 마침내 정신이 돌아와 집으로 돌아가지만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같이 살면서 주인공을 미친 놈 취급을 한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것. 도플갱어도 아니고 어찌하여 나와 똑같은 기억과 추억을 공유한 인간이 있단 말인가, 음모라고 생각하고 아내의 배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데...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코마였다. 코마 상태에 있다가 깨어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책을 다 읽고 나니 아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더 이상 얘기하면 재미가 없으므로 검색어로 "언노운의 결말"따윈 치지 말고 부디 읽어보길 바란다. 영화보단 역시 책이 훨씬 흥미롭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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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2-2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만 봤어요.^^
원작소설이 훨씬 재미있을 거 같아요.
대개 그렇듯이요.
코마에서 깨어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 기억의 가변성, 존재증명의 방법..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군요. 책으론 더 상세하고 밀도있을 것 같아요.

readersu 2011-02-22 21:51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영화보단 소설이 좋겠죠? 그래도 시각적으론..영화가!!
코마가 좀 더 개입(?)을 했더라면..아쉬운 생각이 들었어요^^
 
심야식당 6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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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6>이 나온 걸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야 알았다. 그동안 비슷한 모양을 한 다른 책들이 많았던지라 아마도 그러려니, 잊고 있었나보다. 지난 달에나 책이 새로 나온 걸 알고 어찌나 기뻤는지. 내친 김에 일본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다는 드라마 판 [심야식당]까지 같이 봐버렸다. 드라마를 먼저 본 친구들이 만화만큼 재미있다고 해주었기 때문. 만화로 보는 것과 드라마에서 직접 요리를 보여주는 것과 또 다른 맛이 날 것 같았기에. 역시 드라마로 보니 훨씬 시각적이긴 했다. 또 어쩜, 만화 속 마스터와 그리도 비슷한 배우를 골랐는지. 포스 강한 마스터의 이미지가 매우 맘에 들었다. 더구나 꽤나 일본스러운 드라마는 그래서 더 좋았다고나 할까.
 
다른 만화도 많은데 유독 <심야식당>을 좋아라 하는 나만의 이유는 뭘까, 혼자 곰곰 생각해봤다.  다른 요리 관련 만화들처럼 요리 레시피(뭐, 요리라고 할 것도 없지만)를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들이 단단하게 뭉쳐져 펼쳐지는 것도 아니고 딱 만화처럼 이야기도 요리도 나오는데 왜 끌리는 걸까(이건 오로지 내 느낌이 그렇다는;;)? 한참을 생각하지 않아도 그 이유는 <심야식당>의 요리들이, 아니 음식이라고나 할까, 그것들이 추억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요리라고 하기엔 남세스러운 음식들이다. 버터 라이스니 후리가케, 비엔나 소시지나 만두, 심지어는 통조림을 사용하는 것들을 '요리'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니. 한데 그 요리들이 눈을 끈다.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고 즐거움을 준다. 그 요리들로 인해 추억하는 많은 이야기들은 누구나 한번쯤 오래 전에 먹었던 어떤 음식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심야식당>은 그걸 알려주는 것 같다. 그 아무리 비싸고 좋은 요리라고 해도 추억을 가진 음식만큼 좋은 요리는 없다는 것을. 

만화를 보면서 우리가 일본과 얼마나 가까운 나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일본의 잔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비슷한 문화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그들이 먹는 음식들 중에 어째 지금도 내가 먹는 것이 있고, 나도 어릴 때 먹었던 음식들이 있는 건지.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문화적 지배(?)라는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뭐 암튼, 그건 그렇고 <심야식당>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입맛 당기는 요리들은 당장 만들어먹을 수 있었다는 것. 계란말이라든가 포테이토 샐러드, 문어 모양의 비엔나 소시지. 심지어는 라면까지! 너무나 간단하여 냉장고 열어 대충 뚝딱이면 만들 수 있는 요리들^^ 그래서 드라마와 만화를 한 편씩 보자마자 재료들이 있는지 냉장고를 열어보고 만들어 먹어본 것은 당연. 특히 드라마에선 대충(정말 대충) 마지막 엔딩 크레딧 올라가기 전에 나름 레시피와 요리법을 가르쳐주는데 별 것 없지만 꼭 해보고 싶은 욕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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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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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듣고 있었다. 문학소녀도, 시를 '억수로' 좋아하는 소녀도 아니었기에, 늦게 아주 늦게 이름을 들었다. 그것도 시를 통해서라기보다는 지인을 통해서 듣고, 유명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시인들이 더 많은 동석 자리에서 들었고, 신경숙 쌤과 만난 자리에서도 들었다. 그럴 때도 그냥 그랬다. 아, 독일에 있나 보다. 아, 시인인가 보다. 아, 나처럼 눈이 작은 사람인가 보다. 근데 도대체 누구인가, 그녀 허수경. 

지난 여름 시에 살짝 홀릭을 하고 말았다. 줄기차게 소설만 읽어대던 내가 시를 읽었다. 뭘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내 맘을 흔들기에 받아들였다. 친구들에게 추천을 받아 내 맘을 흔들어대는 시집들을 사고, 그 시집을 들고 다니며 읽고 또 읽고 그러면서도 허수경 시인의 시집을 만나지는 못했다. 시집을 추천해주는 친구가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 속 같'다는 그 사내 이야길 올려줘도, 킥킥거리며 당신을 불러대는 시를 들려줘도 시큰둥하던 차에 이 책, 『길모퉁이 중국식당』을 만났다. 난 시인의 산문집을 좋아한다. 어쩌면 시인들의 무한한 감정의 표현을 부러워하는 지도 모르겠다. 난 그렇게 못하니까, 사람은 자기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니까.    

그녀가 고고학을 공부하러 독일로 갔다는 것은 책을 펼치고서야 알았다. 시인과 고고학이라닛, 어쩜 이리도 안 어울리는 조합일까 싶었는데 글을 읽는 내내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고학은 내가 생각하듯, 아니 우리가 영화에서나 보았듯이 멋진 일은 아니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시골 마을로 가서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하며 하루종일 땡볕에 앉아 흙을 파고 고대의 유물을 발굴하며 발굴장에서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기도 하는 노동, 그래, 바로 노동이었다. 그런 노동이 있어야만 시인은 몸속 가득 시를 뿜어낼 것이다.  그녀는 그걸 배우고 싶었던 걸까? 허수경 시인이 배우는 공부는 '근동 고고학'이며 그것은 '소멸해버린 과거의 이야기'라서 시작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엔 독일에서 보낸 시간들과 현재의 삶 사이사이 짧지만 애틋한 과거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었다.  

대학 때 자주 갔던 막걸리 집의 꽃잎에 대해, 키가 작은 그녀의 운동화를 보고 공개방송 없다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치던 방송국 수위 아저씨들과의 에피소드에 대해, 굶는 아이를 위해 밥을 비벼먹자며 커다란 양동이에 도시락 다섯 개를 넣어 쓱쓱 비벼주던 처녀 선생님에 대해, 그녀가 자라고 태어났던 곳의 비단집 거리에 대해, 슬픈 연붉은 빛을 띠고 있는 영영 잊히지 않는 산딸기술의 추억에 대해, 날 웃게 만들었던 '목장우유'의 단상에 대해, 그녀가 자란 진주, 그곳 강변에서 매년 열리는 유등놀이에 대해, 동백꽃만 보면 떠오르던 서해의 섬에 대해, 아버지의 임종을 혼자 보았던 하나 밖에 없는 동생에 대해, 남해의 한 섬에서 태어나 뭍으로 시집오는 영광을 누렸던 외할머니의 아픔에 대해, 그리고 홍대 근처 길모퉁이 중국 식당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에 대해. 

누군들 홀홀단신 외국으로 나가 있으면 고향이 그립지 않을 것이며 과거의 기억들은 또 얼마나 그녀의 마음을 울렸겠는가.  '말의 공포'가 무서워서, 상스러운 말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 떠난 나라. '먼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아이처럼 서툰 말로 겨우 빵을 사고 뉴스나 책을 남의 언어로 남의 일처럼 읽는 동안'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줄었겠지만 봄이 오면 어김 없이 풍겨오는 강 냄새, 바다 냄새만은 버릴 수가 없었다고 하니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소멸해버린 과거의 이야기'들을 다시 꺼집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은 그런 책이다. 현재를 살아가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이야기. 허수경 시인에게도 어쩌면 내게도 남아 있을 지나간(혹은 소멸해버린) 과거의 이야기들이어서 읽는 내내 그녀의 이야기가 내 것인양 공감하고 밑줄 그으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허수경 시인에게 빙의하듯 이야기 속에 빠져든 후, 그제야(그렇게 책을 덮은 후에야) 나는 그녀의 시집을 읽을 수 있었고, 친구가 들려주던 시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말을 하는 근원을" 그녀 "스스로가 알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날, 그리고 그 새로운 언어가" 그녀를 "이끌고 살 수 있는 날" 그녀의 "코끝으로 스치던 냄새들을 새로운 말로 적을 수 있"게 되어 마침내 "돌아가는 비행기표"(다시 독일로 갈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끊게 되어 한국을 찾은 허수경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언어로 가득찬 그녀의 새로운 시집을 들고. 처음 만났지만 이십 년지기처럼 반갑고, 설레었다. 여기저기에서 그녀의 이름을 들었던 탓도 있겠지만 괜히 좋았다.  

이제, 그녀 문학의 시작이 되었던, "우울했던 소녀" 허수경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소설을 읽을 차례다. 내 과거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것만큼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녀는 어떻게 성인이 되었을까, 이제 진짜, 그녀의 '소멸해버린 과거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봐야겠다.   

사춘기 시절, 나는 뚱뚱하고 우울한 소녀였다. 뚱뚱하다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싫어서 자주 구석진 곳에 숨어 있었다. 숨어 있다고 한들 뚱뚱한 나를 다 숨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숨길 수가 없어서 어디에 갔다가 누가 뚱보라고 놀리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면 그렇게 싫었다. 세상이 나를 부르는 소리는 내 뚱뚱한 실존을 드러내라고 채근질을 하는 소리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놀림을 받아 마음이 쓰라릴 때면 나는 또 구석에 앉아서 단팥이 들어간 빵을 집어먹었다. 더 뚱뚱해질까봐 겁이 나는데도 먹었다. 빈속에 단맛이 들어가면 슬프고 외로웠다. 나는 그때마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그 천장을 올려다보던 마음이 내가 문학으로 가는 모퉁이였다. 나는 혼자였고 외롭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놀림을 당하는 실존을 가졌다.

그것이 내 문학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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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1-2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정말. 시와 고고학이라닛!
그러고보니 리더수님 대학 때 전공이 뭔지 궁금하네요.^^

readersu 2011-01-26 17:48   좋아요 0 | URL
스텔라 님, 넘 많은 것을 알려고 하면 다쳐요 ㅋㅋㅋ
넘 엉뚱한 것이라 말하기 쑥쓰럽습니다. 문학하곤 전혀 상관없는 이과 쪽이었습니다^^

stella.K 2011-01-26 18:43   좋아요 0 | URL
ㅎㅎ 내참, 제가 리더수님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다고?
하나도 모르는뎅. 너무해요.ㅠㅠ
 
인간과 뇌에 관한 과학적인 보고서 - 인간은 왜 지금의 인간인가
에두아르도 푼셋 지음, 유혜경 옮김 / 새터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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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지금의 인간인가?'

부제로 적힌 글을 보며 그거야 뭐 인간으로서 살아왔으니 인간이겠지, 라는 조금 무식한 소릴 해대며 이 책을 펼쳤다. 제목에서부터 인문학적 지식을 팍팍 풍기며 쉬운 것 좋아하는 날 압박하는  '인간', '뇌', '과학', '보고서'와 같은 단어는 과연 내가 이 책을 이해, 아니 이해는커녕 읽어낼 수나 있을까, 의심스럽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책을 잡은지 요며칠 읽다가 말다가를 반복하며 이해할 것만 이해하고 책을 덮었는데 그럼, 이제 너의 의견을 말해 봐! 하면 어버버버버~ 거리며 횡설수설할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주목해야 할 책임에는 틀림없으므로 어버버버거리더라도 열심히 한번 써본다.
 
이 책은 과학, 진화, 뇌, 인간, 심지어는 우주와 박테리아, 생식 등등 무한히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길 한다. 별의 기원이랄까, 우리의 기원이랄 수 있는 과학적 업적을 바탕으로 빅뱅에서 시작한 우주의 탄생부터 지구의 탄생, 인간의 탄생 그리고 인간의 뇌와 관련한 인간 본질까지 광범위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 중 나를 가장 많이 자극한 부분은 '뇌'였다. 뇌의 인식과 뇌의 결정, 뇌의 감성과 뇌의 화학적 반응, 뇌의 경험과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저자인 에두아르도 푼셋은 인간의 뇌는 복잡한 소우주라고 했다. 뇌가 인간의 생존을 위해 활약하는 부분은 의외로 많아서 우리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다르게 지구에서 번성하고 문명을 이룬 것은 뇌의 진화가 탁월했기 때문이란다. 인간의 뇌가 다른 생명체보다 크다고는 해도 코끼리에 비하면 쨉도 안 되고, 다른 덩치 큰 동물들의 뇌에 비하면 훨씬 작은 존재임에도 몸무게보다 커다란 뇌를 지니며 표면의 회백질을 받달시키고 의사소통을 위해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지구 번성에 기여를 했다는 거다. 그 뇌가 우리를 생존하게 하는데 결정을 어떻게 내리는지 매우 흥미로웠다. 물론 뇌와 관련한 책들을 많이 접해본 분들은 넌 아직도 그걸 몰랐냐? 되물으시겠지만 네, 몰랐던지라 매우 흥미로웠다고 말하고 싶었다나.

우리는 뇌의 결정을 인식하지 못한단다. 뇌의 인식은 과거형이므로 우리가 뇌의 결정을 인식한다면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잡한 소우주인 뇌가 그 소우주를 온전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 소우주의 작용에 대해 책에서 보여준 '결혼을 할까 말까' 부분과 '감성 마케팅' 부분은 뇌의 작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한 부분은 재미있었다. 

"무의식적인 기호들이 서로 경쟁을 하며 쉴 새 없이 오가는 동안 경쟁에서 이긴 사안만이 의식의 문턱을 넘어 우리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 순간 뇌는 결정을 한다. 이 사안을 그냥 넘길까, 표현을 할까, 아니면 취소할까." 로모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받는 교육이나 훈련과 관계가 있다. 그 이유는 일상적인 행동에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의식적인 모든 행위를 거부하기 위해서 뇌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이가 들면 뇌의 기능은 퇴화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좋아지는 것이 있으니 적응력과 유연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가 희어지는 걸 보면서도 '음, 그다지 흉해보이지 않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뇌는 이런 종류의 변화에 적응해 나간다. 

이 책에서 또 흥미로웠던 부분은 주말에 본 영화 탓이었을까? 14장에 나온 마녀이야기였다. 언어의 기원에서 시작한 이야기에서 여성을 억압하고 여성의 중요성을 간과한 인류 과학자의 무지와 오류가 바로 마녀였다고 한다. 마녀와 관련한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흥미로운 것은 내가 여자이고 아까 말했듯이 마녀 영화를 본 탓인 것 같다. 암튼 이상한 약을 만들고 악마와 거래를 하는 마녀의 모습은 선사시대에 남자들이 사냥이나 바깥 일을 기울일 때 여자들은 동굴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쌓았기 때문이란다. 그 비법은 여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와 중세까지 오면서 치명적인 병에 대한 민간 지식을 쌓았던 여자들이 그 지식으로 병을 치유하자 마녀로 몰았던 것. 이런 이야길 들으면 같은 여자로서 쫌 슬프다.-.-;;

또한 15와 16장에서 보여준 기억과 감정에 관한 이야기들은 몸과 뇌가 담고 있는 세상, 뇌의 경험은 무의식적으로 흔적을 남기며 이는 유전자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는데 앞의 과학적인 이야기들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으며 흥미로웠다.  

어쨌든 과학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일까? 무쟈게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결코 그렇지는 않다. 매번 인문학적인 책을 접할 때마다 지식이 팍팍 쌓이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런 책은 잘 안 읽으려 하는지 내 '뇌'는 뭔가를 좀 알고 있지 않을까? 과거의 기억과 경험과 화학적 반응까지 알아내면 알 수 있을려나? 왜 그러는지^^;; 

암튼, 진화와 인간, 그리고 뇌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 인간과 뇌가 말하는 '우리'에 대해 한번 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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