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연애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8
마키 사쓰지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로맨스와 미스터리가 섞인 추리 소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포스가 장난 아니었다. 미리 읽은 친구에게 들은 반전, 역시 궁금하긴 마찬가지. 하지만 시작은 좀 지루했다. 현시점이 아니라 오래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갔으니까. 완전연애,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완전범죄와 같은 뜻이다.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모르도록 아무런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는 뜻처럼 연애에 있어서도 상대방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부모님과 여동생을 잃은 혼조 기와무는 온천이 있는 큰 아버지 집으로 와 살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스승이 될 화가 고보도케의 딸 도모네에게 마음이 빼앗기고 평생을 내색하지 않고 그녀를 맘에 두고 산다. 첫 번째 사건은 도모네가 얽힌 미군의 죽음이다. 도모네를 사모하는 기와무의 행동은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랑이니까. 그렇지만 그 일로 도모네와 기와무가 잘 되는 것은 아니었다. 도모네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더구나 화가 아버지 고보도케의 무능력함이 도모네를 팔아넘기듯 시집을 보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상처로 인해 기와무는 평생을 혼자 살게 된다. 

순애보 같은 이야기는 평생 혼자 산 기와무의 인생을 보면서 완전연애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평생을 살아야했던 한 남자의 기구한 운명. 뒤이어 일어나는 몇 건의 사건들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운명, 운명, 운명. 하지만 앞서 말했던 마지막의 놀라운 반전은 그게 아니었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아무 생각없이(다 끝났다고.. 이젠. 모든 것이 밝혀졌고, 완전연애의 의미를 아, 그래서 그랬구나, 나름 수긍하면서) 읽으며 책을 덮으려고 하는 순간, 나타나는 이야기!! 

아니, 뭐 이런 사랑이 다 있어? 말도 안 돼! 

물론 책이 두껍고 이야기가 많다. 어쩌면 눈치를 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교묘하게 독자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든다. 어쩌면 의심을 했으면서도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들에 빠져 잊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닌데 잊어버리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진짜로 책을 덮고 깨달은 바, 그래, 완전연애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것. 하지만 그 연애가 행복한 것일까, 아님 나름의 복수인 것일까. 내가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남자도 여자도 둘다 나는 가엾다는 말밖에 할 말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 베할라 - 누가 이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앤디 멀리건 지음, 하정임 옮김 / 다른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에 난지도라 불리는 곳을 지나갈 때마다 악취가 코를 찌르던 것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또 어느 영화에서였을까,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더미에서 돈이 될 만한 것을 찾던 장면도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 책 『안녕, 베할라』를 읽기 시작하면서 떠오른 기억들이다. 

미국도서관협회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는 이 책은 필리핀에 있는 진짜, 쓰레기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가 직접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고, 소설 속의 아이들은 허구이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활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만 머릿속에 떠올리면 왠지 학대받거나 인권과 관련된 기사들이 머리에 떠오를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부터 조금 우울할지도 모르겠다. 한데, 읽어보면 그건 아니다. 책소개에서 말하듯 이 소설은 모험과 스릴이 포함되어 있다. 쫓고 쫓기는 긴장감도 준다. 한마디로 우울하거나 궁상맞은 이야기는 아니라는 거다.  

이야기는 이렇다. 매일매일 쓰레가 줍는 것이 일인 이곳의 아이들은 운이 좋아 하얀색 플라스틱이라도 줍게되길 바라며 쓰레기를 헤치고 다닌다. 하지만 그런 운은 잘 오지 않는데 어느 날 라파엘에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그 운이 오고 말았다. 자그마치 1,100페소나 들어 있는 지갑을 주운 것이다. 그리고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사진과 암호 같은 숫자와 열쇠..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 지갑을 차지함으로써 라파엘과 함께 한 친구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들처럼 지나간다. 스릴과 긴장이 넘친다.  과연, 이 아이들이 무사할까, 마음 조리게 된다. 

여러 명의 화자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한 책은 그 아이들이 그 지갑을 가지고 어떻게 주인을 찾고 어떤 방법으로 이야기를 끝내는지 들려준다. 그 모든 일의 시초가 된 부패한 정치인이나 부조리한 경찰, 그리고 아이라고 얕본 비열한 어른까지. 그들과 맞서서 이 아이들이 어떻게 문제 해결을 하는지 보여준다. 또 작가는 암호를 풀어야 하는 추리기법까지 넣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그래서 이 책은 쓰레기 하치장에 살고 있는 불쌍하고 가엾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느 곳에나 다 있는 용감한 아이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그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뛰쳐나간 문 밖의 삶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나아가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 속에 희망이 보이고 자신감과 더불어 이 사회의 민감한 문제까지 끄집어내면서도 너희도 이렇게 훌륭해야 한다는 따위의 훈계를 하지 않는다. 

조만간 영화화 된다는 『안녕, 베할라』, 우리 아이들도 용감한 이 아이들의 모험 속으로 같이 떠나보는 것은 어떨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헬프 2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 전 외국에 있는 친구의 언니 집에서 보름 정도 머문 적이 있었다. 한국보다 물가가 싼 덕분에 가족 수에 비해 집이 큰 편이었고 더운 나라인지라 방마다 욕실이 하나씩 딸려 있었다. 한국하고는 다른 구조의 집을 구경하며 마치 호텔에라도 묵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면에는 집 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던 가정부 덕분이었다. 그러니까 이 가정부는 근처 다른 나라에서 온 어린 여자였다. 마치 오래 전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식모'의 개념인 셈이다.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려고 온 소녀 가장. 그녀가 하는 일은 <헬프>에 나오는 미니의 일과 비슷하다. 나름대로 스케쥴을 짜서 월요일엔 집 안 모든 창문을 닦고, 화요일에는 침대 시트를 세탁하고 풀을 먹인다. 또 '매일 아침 씻기는 하지만 욕조를 반들반들 닦'기도 한다.  

호텔에라도 투숙 했더라면 그런 모든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한국의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살며 내가 밥차려 먹고 설겆이하면서 살다가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가정부의 대접을 받으니 솔직히 좌불안석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언니는 도와주지 말라는 말을 했다. 그건 가정부의 일이라는 거다. 나름대로 규칙인 셈이다. 캐스린 스토킷의 <헬프>는 그런 가정부의 이야기다. 내가 가정부를 보는 입장이 아니라 가정부의 입장에서 겪은 이야기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가정부하고는 좀 다르다.  

<헬프>에는 미국의 고질적인 인종 차별이라는 주제가 들어 있다. 놀란 것은 1960년대의 미국에서 그토록 심한 인종차별이 있었다는 거다. 내가 생각한 인종차별은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잡아와 짐슴만도 못한 취급을 하며 일을 시킨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근데 불과 몇 십 년 전에,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법(남부 짐 크로 법)이 존재했다는 사실. 1965년이 되어서야 사라졌다는, 이 놀라운! 아니, 어쩌면 나만 몰랐을까? 어느 나라에나 인종차별만한 계급 사회도 있었는데 그런 법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었을까? 그렇더라도 미개한 나라도 아니고 미국이라는 곳에서?! 

<헬프>는 그때의 이야기다. 남부 미시시피 주, 세계가 비틀즈에게 빠져 있을 때, 케네디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지내던 그 무렵. 머릿속으론 그런 시대적 상황과 도무지 매치가 안 되는 일들이 미시시피 주, 잭슨이라는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를 갈라놓은 법이 얼마나 많은지 아연해져서 나는 총 스물다섯 쪽 중 네 쪽을 내리 읽는다. 흑인과 백인은 분수도, 영화관도, 공중 화장실도, 야구장도, 전화박스도, 서커스도 공유할 수 없다. 흑인은 나와 같은 약국에 가지 못하고 같은 창구에서 우표를 사지 못한다. 예전에 우리 가족이 콘스탄틴을 데리고 멤피스트로 놀러 가는 길에 고속도로가 거의 빗물에 잠겼는데도 호텔에서 콘스탄틴을 들이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우리는 쉬지 않고 곧장 차를 몰아야 했다. 아무도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우리 모두 이런 법의 존재를 알면서 이곳에서 살아가지만, 이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것을 활자로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미시시피 주 어느 곳이나 그랬겠지만 잭슨도 인종차별이 심했다. 아니, 인종차별을 했다기보다는 그들 백인은 당연한 일상이었다.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관습이었을테니. 선을 그어놓고 이곳은 백인, 저곳은 흑인. 이 선을 넘으면 절대로 안 돼!  

이야기의 시작은 유색인 가정부 아이빌린의 목소리다. 아이빌린이 일하는 미스 리폴트의 집에서 매달 넷째 수요일 브리지 게임이 있다. 모이는 사람은 초등학교부터 친했던 힐리(그녀의 엄마와), 엘리자베스, 스키터. 그날 손님 욕실을 사용하게 된 힐리가 유색인들이 쓰는 화장실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가정부 위생 발의안'이라나 뭐라나. 즉, 유색인들에게 질병이 옮으면 큰일난다는 취지다. 물론 타운의 대부분의 백인 집엔 화장실이 따로 있단다. 하지만 집 밖에 화장실을 만들어 그곳만 사용하게 한다는 발상이라니. 그렇게 결정해버린 힐리의 말에 엘리자베스는 화장실을 짓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갈 무렵 다른 두 친구와 다르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스키터가 아이빌린에게 예전에 스키터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던 콘스탄틴에 대해 물으면서 슬쩍 말한다.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 해본적 있어요?"

그리고 발단은 스키터가 '하퍼 & 로'출판사의 편집자인 일레인이 아이디어를 써서 보내면 원고를 검토해보겠다고 하자 자신감을 가진 스키터가 '잭슨저널'의 한 칼럼을 맡게 되고 그 일에 아이빌린의 도움을 받으면서부터다. 일레인에게 뭔가 멋진 아이디어를 내야겠다고 마음먹은 스키터는 경계를 넘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 일레인에게 편지를 보낸다. 백인 가정에서 일하는 유색인 가정부의 경험담을 써서 보내겠다고. 관심을 보이는 일레인. 스키터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일을 저질러고 만다. 그리고 그녀를 도와줄 유색인 가정부를 찾게 된다. 바로 아이빌린. 

<헬프>의 화자는 세 명의 여자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목표로 고향에 오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열망을 가진 백인 미스 스키터,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후 가정부를 천직으로 살고 있는 아이빌린, 그리고 입바른 소릴 잘하고 욱하는 성격을 지닌 미니. 두 여자는 유색인 가정부이고 미스 스키터는 백인 가정의 잘 자란 여자다. 자신의 열망 때문에 원고를 써보겠다고 말은 했지만 어느 유색인이 남부에서, 그것도 인종차별이 제일 심하다는 미시시피 주 잭슨에서 자기가 일하고 있는 백인 가정에 대해 왈가왈부 할 것인가. 그랬을 때 일어나는 일은 교도소에 가지 않으면 죽음 뿐이었다. 한데 처음엔 거절했던 아이빌린과 미니는 결국 승낙하고야 만다. 그건 하나의 작은 복수에서 시작한 셈이다. 힐리라는 철저한 인종차별주의자를 향한. 

작가의 말에 캐스린 스토킷은 퓰리처상을 받은 하웰 레인스의 기사를 인용한다.

남부 출신의 작가에게 불평등과 차별의 세상에서 사는 흑인과 백인 사이의 애정보다 더 아슬아슬한 주체는 없다. 정직이 기반이 아닌 사회에서는 모든 감정이 의심스럽고,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이 정직한 것인지, 동정인지, 실용주의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기사가 어쩌면 미시시피 주 잭슨에 관한, 이 책 <헬프>에 관한 그녀의 생각이기도 하다. 인종차별이 심한 곳이든 어쨌든 그녀가 태어난 곳은 남부이고 그곳에서의 일상은 하웰 레인스의 기사처럼 정직인지, 동정인지 그것도 아니면 실용주의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캐스린은 확신한 것은, 1960년대에 특히 그곳 미시시피에서, 흑인 여자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감히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흑인 여자에게 급료를 주는 백인 여자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해하려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이것이 책의 핵심이 아니었나? 여자들이 우리는 그저 두 사람이야, 우리를 가르는 건 그렇게 많지 않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어, 하고 깨닫는 것.

오래 전에 공지영 작가의 <봉순이 언니>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이 느낌표에 선정되기 전이니까, 아마도 책이 출간되자마자 읽었을 것이다. 스토리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내게도 짱아처럼 어릴 때 일을 도와주던 언니가 있었기에 짱아의 시선으로 책을 읽으며 매우 공감을 했었던 것 같다. 공지영 작가는 <봉순이 언니> 개정판을 내면서 처음으로 짱아가 아닌 봉순이 언니의 시선으로 책을 읽었는데 부끄럽지만 큰 슬픔으로 목이 메었다고 했다. 

<헬프>의 캐스린 스토킷 역시 작가의 말에서 어릴 때 그녀를 돌보아주던 가정부 디메트리에 관한 추억을 이야기하며 미시시피에서 흑인으로 살면서 백인 가정을 위해 일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물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웠고, 그 아쉬움이 <헬프>를 쓰게 한 이유였다고 토로한다. 그건 아마도 인종을 떠나 '차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공지영 작가가 '봉순이 언니'의 시선으로 글을 읽은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 자라고 보니 그들에게 가정부라는 존재는 핏줄도 친구도 그 무엇도 아니지만 자신을 사랑해주고 돌봐준 사람으로 기억되며, 이유없이 부끄러워지고 감사하게 되니 말이다. 

자칫, 고루한 1960년대의 미국 남부, 그것도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에 책을 들었다 놓을 지도 모르겠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흑인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마당에 웬 인종차별. 하지만 이 책은 그 너머가 있다. 저 무지개 너머 마음으로 꿈꾸면 정말로 이루어지는 곳이 있듯이. 인종차별의 벽을 너머 이제 막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아이빌린과 스키터, 그리고 미니, 그들이 이루어낸 놀라운 이야기. 그걸 놓친다면 분명 후회하고 말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정우, 느낌 있다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을 모르지만 그림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하정우가 그림을 그렸댄다. 티비도 잘 안 보고 연예가십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는 지라 하정우가 그림을 그렸다는 얘긴 처음 들었다. 그가 나온 영화나 드라마는 보았지만도. 그래도 연예인이 쓴 책이니 그렇고 그러려니 했는데, 책을 펼치면서 그 맘이 쏙 들어가버렸다. 어쩌면 그림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진솔한 이야기들과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돈이나 명예는 꿈이 아니라 수단일 것이다. 꿈을 향해 걸어갈 때 덜 고통스럽도록 도와주는 조건. 남의 시선에 현혹되어 이것을 꿈이라고 착각할 때 사람들은 추락한다. 진짜 꿈을 꾸는 법을 잊고 헤매기 시작한다. 나는 이것이 정말 두렵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꿈을 꾸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내 꿈은 바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는 것. 

세상에 꿈을 이루며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아니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이루었대도 그가 말하듯이 돈이나 명예 앞에서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릴 테니 또 다른 꿈을 꾸어야겠지. 하지만 그는 꿈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며 자신의 일까지도 열정적으로 해내는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다니. 연예인이라는 걸 떠나서 한 인간으로서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원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해낸다고 하긴 하더라마는 잘 하는 것 하나도 없는 평범한 나는 마냥 우러러보게 된다는. 한데 이젠 책까지 냈으니. 이 남자 진짜 느낌이 있네. 뭐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 

《하정우, 느낌 있다》는 일반적인 연예인의 책들과는 좀 다르다. 그가 그림이라는 매개를 통해 글을 쓰고 자신의 이야길 풀어 놓아 그 기획부터 차이가 나 버렸지만 그가 말하는 그림 이야기나 자신의 직업에 관한 생각들 친구와 가족에 대한 애정 혹은 자신의 생각들을 나열한 글들을 읽으면서 사실은 무척 공감이 갔다. 밑줄이 많았다. 그건 나도 그런 마음이라는 것을 뜻한다. 

책 속에 들어 있는 다양한 그의 작품들, 그가 욕심 많은 화가였다면 작품을 이런 식으로 선뜻 넣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책을 한 권 구입함으로써 어쩌면 훗날 유명 화가가 될지도 모를 하정우의 작품을 누구나 볼 수 있고 감상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호감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정말 꿈을 좇는 사람이니까. 

책을 읽으며 고현정이 알려주었다는 한 화가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을 많이 찾아보긴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화가가 많은데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맘에 들어 버렸다. 바로 엘리자베스 페이턴, 다른 그림도 꼭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하정우의 작품 중에 유독 맘에 든 작품. dream과 love, 광대의 그림들.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언젠가는 하정우가 그 만의 독특한 그림 세계를 이뤄낼 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이 남자, 진짜 느낌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세대를 이끌어갈 젊은 작가, 그녀를 모른다면 한국 소설을 모른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동안 나온 소설집을 모두 읽었고 최근에 젊은작가상을 받은 단편도 읽었다. 한데 내 맘에 들어오진 않았다. 김애란의 소설들을 읽을 때마다 난 좀 우울했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소설 속에 내보이는 쓸쓸함에 공감을 했을테고 왜 그녀의 책을 읽을 때마다, (그 아무리 희망와 이상을 은근슬쩍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왜, 우리나라 이십대들은 다들 이렇게 비루하고 우울한 거야. 세상 다 산 사람들 같잖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그러니 관심은 있으나 관심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런 내게 김애란은 이번에 제대로 뒤통수를 쳐주면서 이제 좀 관심을 가져보시지? 했다.  

책도 나오기 전에 가제본을 받았다. 작가의 첫 장편이라고 하니 궁금하기도 했거니와(단편만 쓰던 작가들의 첫 장편은 누구든 궁금하기 마련), 제목에서 뭔가 두근거림이 있었다고나 할까, 책소개를 봐서는 어쩐지 내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난 눈물나게 하는 내용들 싫어 한다. 그러면서도 읽어대는 내가 더 싫지만) 내용이 담겼을 것 같았는데 그냥 끌렸다. 읽어봐야할 것 같았다. 그냥 그랬다. 가제본을 받은 날, 배가 고파 퇴근을 하자마자 가장 빨리 되는 저녁으로 라면을 먹을려고 물을 올려두고 프롤로그를 읽고(그것만으로도 콕콕) 본문을 읽기 시작했다. 근데 어랏,  

"바람이 불면, 내 속 낱말카드가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해풍에 오래 마른 생선처럼, 제 몸의 부피를 줄여가며 바깥의 둘레를 넓힌 말들이다. 어릴 적 처음으로 발음한 사물의 이름을 그려본다이것은 눈(雪), 저것은 밤(夜), 저쪽엔 나무, 발밑엔 땅, 당신은 당신…… 소리로 먼저 익히고 철자로 자꾸 베껴쓴 내 주위의 모든 것. 지금도 가끔, 내가 그런 것들의 이름을 안다는 게 놀랍다. "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문장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때부터였다. 저녁을 먹을려고 올려놓은 물을 내려놓았고, 사다 둔 떡을 입에 문 채 정신 없이 읽기 시작했다.  

아이의 독백과도 같은 이야기. 아이의 부모가 어떤 사람이었으며 제 부모가 어찌하여 자신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팔삭둥이로 태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마치 그 아이가 옆에서 조곤조곤 말하듯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뭐랄까, 마치 두번 다시 말하지 못할 것처럼 그렇게. 

하지만 그런 아이의 독백과는 다르게 은근 유쾌하기까지 한 스토리를 읽으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쿵, 쿵, 쿵. 이것, 너무 두근거리잖아. 왜 이래. 하는 생각?!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소설들은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거야. 아마도 내 맘 한구석을 콕콕 쑤실 그런 것.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있잖아, 자꾸 슬픈 노래가 좋아진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슬픈 노래는 술 먹고 듣는 노래야. 그러니까 너도 어른이 되면 발라드는 무조건 술 마시고 들어라, 알았지?" 
"네, 아빠."
나는 얼마 안 남은 이를 드러내며 상긋 웃었다.
"아빠."
"엉?"
"지금 슬퍼요?"
"응."
"나 때문에 그래요?"
"응."
"제가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아버지가 멀뚱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뭔가 고민하다 차분하게 답했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
"아빠?"
"응?"
"전 이미 아이인걸요."
"그래, 그렇지……"   

젠장, 이럴 줄 알았다. 시작부터 왠지 가슴이 아려온다, 했다. 하나도 슬프지 않은 척 위장하고 있었지만 읽는 문장마다 촉촉함이 배어있다. 결국 눈물 뚝뚝 흘려주었는데 이 씩씩한 소년, 오히려 날 위로해준다. 이 만한 일로 무슨 눈물을. 그리고 찾아온 소년의 사랑.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그게 뭔지 잘 모르지만, 뭔가 시작되려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도망치려 했던 '시작'이 다시 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설렘과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지켜야겠다는 마음도 강하게 들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하느님께서 갑자기 이렇게 잘해주시는 이유는 내게서 뭔가 빼앗아 가실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선물인지 시험인지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일단 내 쪽에서 한전 더 신호를 보내야 했다. 며칠 뒤, 나는 결국 그애에게 두번째 답신을 보냈다. 편지 한 통쯤 더 쓴다고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을 뿐더러, 나 역시도 끄덕하지 않으리란 자신을 갖고서였다.  

아빠가 아빠가 되었던 그 나이가 된 소년은 열일곱, 사랑이 찾아올 만했다. 두근거리며 시작된 사랑. 내 마음도 덩달아 두근거렸다. 주고받는 메일,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진심이 통하는 '소통'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안 생겼을 것을, 말 그대로 내가 뭔가 '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것도 손이나 발이 아니라 '마음'을 사용해서 한 일…… 그게 또 '마음'이라, 처방할 약으로는 상대의 '마음'만한 것이 없는……" 그런 사랑.  

어느새 밤이 깊어버렸다. 다 읽지 않고서는 잠을 잘 수가 없을 것 같았지만 깜빡 졸다가 새벽에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읽었다. 새벽부터 눈물 뚝뚝 흘리고, 출근길 버스 안에서 고인 눈물 어찌하지 못하여 차창만 바라보고. 우씨,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 욕을 해대며 읽었다. 결국, 끝까지.  

왜 이렇게 이 책에 홀릭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취향이거나 내 감정이 이 책과 잘 맞았다면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모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어리지만 가장 늙은 자식이 된 씩씩한 소년(아프면 어른스러워진다더니 마치, 그런 것처럼)과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바로 늙어버린(!) 가장 어린 부모, 엄마와 아빠, 나이가 들었으나 아이 같은 장씨 할아버지와 어쩌면 소년에게 행복을 주었을지도 모를 빌어먹을(!) 소녀까지 날 웃기고 울렸기 때문. 그리고 마지막 부록으로 실린 <두근두근 그 여름>을 읽으면서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맘 먹었다.  

열일곱, 한창 들뜨고 행복할 나이,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었)을 상처 혹은 사랑이 찾아올 나이, 세상 모든 것에 '두근두근'거릴 그 아름다운 나이의 소년을 만난 것은, 내게도 두근거릴 하나의 추억이었다.《두근두근 내 인생》, 멋지다!   

약하고 희미했지만 분명 거기 있는 소리였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파동 안에 머물렀다. 그 자장 끝, 맨 나중에 그려지는 동심원이 토성 주위의 고리처럼 우릴 오목하게 감싸주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말한 방법이란 누군가를 힘껏 안아 서로의 박동을 느낄 만큼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거였다. 순간 나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아버지를 두 팔로 감싸안았다.
"누구하고라도요?"
"그럼, 누구라고라도."
그런 뒤 마치 아픈 아이를 다독이듯 아버지의 등을 두드리며, 아버지의 말을 똑같이 따라했다.
"이렇게, 이렇게."
그러자 아버지는, 누군가의 메아리를 들려주기 위해 처음부터 거기에 있던 산(山)인 양, 내 앞을 커다랗게 가로막은 채, 내 앞을 든든하게 둘러싼 채, 조금 전, 당신이 하고, 내가 한 말을, 나지막이 중얼댔다.
"이렇게." 

그리하여 한 번 더, 그리하여 여전히, 먼 곳에서 ----
바람이 불어왔다. 나무에게로. 아버지에게로. 어머니에게로. 나는 그 바람이 좋아, 얼굴 위에 주름을 한껏 드러낸 채 작게 웃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