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름만 듣고 있었다. 문학소녀도, 시를 '억수로' 좋아하는 소녀도 아니었기에, 늦게 아주 늦게 이름을 들었다. 그것도 시를 통해서라기보다는 지인을 통해서 듣고, 유명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시인들이 더 많은 동석 자리에서 들었고, 신경숙 쌤과 만난 자리에서도 들었다. 그럴 때도 그냥 그랬다. 아, 독일에 있나 보다. 아, 시인인가 보다. 아, 나처럼 눈이 작은 사람인가 보다. 근데 도대체 누구인가, 그녀 허수경. 

지난 여름 시에 살짝 홀릭을 하고 말았다. 줄기차게 소설만 읽어대던 내가 시를 읽었다. 뭘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내 맘을 흔들기에 받아들였다. 친구들에게 추천을 받아 내 맘을 흔들어대는 시집들을 사고, 그 시집을 들고 다니며 읽고 또 읽고 그러면서도 허수경 시인의 시집을 만나지는 못했다. 시집을 추천해주는 친구가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 속 같'다는 그 사내 이야길 올려줘도, 킥킥거리며 당신을 불러대는 시를 들려줘도 시큰둥하던 차에 이 책, 『길모퉁이 중국식당』을 만났다. 난 시인의 산문집을 좋아한다. 어쩌면 시인들의 무한한 감정의 표현을 부러워하는 지도 모르겠다. 난 그렇게 못하니까, 사람은 자기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니까.    

그녀가 고고학을 공부하러 독일로 갔다는 것은 책을 펼치고서야 알았다. 시인과 고고학이라닛, 어쩜 이리도 안 어울리는 조합일까 싶었는데 글을 읽는 내내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고학은 내가 생각하듯, 아니 우리가 영화에서나 보았듯이 멋진 일은 아니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시골 마을로 가서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하며 하루종일 땡볕에 앉아 흙을 파고 고대의 유물을 발굴하며 발굴장에서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기도 하는 노동, 그래, 바로 노동이었다. 그런 노동이 있어야만 시인은 몸속 가득 시를 뿜어낼 것이다.  그녀는 그걸 배우고 싶었던 걸까? 허수경 시인이 배우는 공부는 '근동 고고학'이며 그것은 '소멸해버린 과거의 이야기'라서 시작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엔 독일에서 보낸 시간들과 현재의 삶 사이사이 짧지만 애틋한 과거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었다.  

대학 때 자주 갔던 막걸리 집의 꽃잎에 대해, 키가 작은 그녀의 운동화를 보고 공개방송 없다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치던 방송국 수위 아저씨들과의 에피소드에 대해, 굶는 아이를 위해 밥을 비벼먹자며 커다란 양동이에 도시락 다섯 개를 넣어 쓱쓱 비벼주던 처녀 선생님에 대해, 그녀가 자라고 태어났던 곳의 비단집 거리에 대해, 슬픈 연붉은 빛을 띠고 있는 영영 잊히지 않는 산딸기술의 추억에 대해, 날 웃게 만들었던 '목장우유'의 단상에 대해, 그녀가 자란 진주, 그곳 강변에서 매년 열리는 유등놀이에 대해, 동백꽃만 보면 떠오르던 서해의 섬에 대해, 아버지의 임종을 혼자 보았던 하나 밖에 없는 동생에 대해, 남해의 한 섬에서 태어나 뭍으로 시집오는 영광을 누렸던 외할머니의 아픔에 대해, 그리고 홍대 근처 길모퉁이 중국 식당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에 대해. 

누군들 홀홀단신 외국으로 나가 있으면 고향이 그립지 않을 것이며 과거의 기억들은 또 얼마나 그녀의 마음을 울렸겠는가.  '말의 공포'가 무서워서, 상스러운 말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 떠난 나라. '먼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아이처럼 서툰 말로 겨우 빵을 사고 뉴스나 책을 남의 언어로 남의 일처럼 읽는 동안'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줄었겠지만 봄이 오면 어김 없이 풍겨오는 강 냄새, 바다 냄새만은 버릴 수가 없었다고 하니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소멸해버린 과거의 이야기'들을 다시 꺼집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은 그런 책이다. 현재를 살아가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이야기. 허수경 시인에게도 어쩌면 내게도 남아 있을 지나간(혹은 소멸해버린) 과거의 이야기들이어서 읽는 내내 그녀의 이야기가 내 것인양 공감하고 밑줄 그으며 읽을 수밖에 없었다. 허수경 시인에게 빙의하듯 이야기 속에 빠져든 후, 그제야(그렇게 책을 덮은 후에야) 나는 그녀의 시집을 읽을 수 있었고, 친구가 들려주던 시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말을 하는 근원을" 그녀 "스스로가 알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날, 그리고 그 새로운 언어가" 그녀를 "이끌고 살 수 있는 날" 그녀의 "코끝으로 스치던 냄새들을 새로운 말로 적을 수 있"게 되어 마침내 "돌아가는 비행기표"(다시 독일로 갈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끊게 되어 한국을 찾은 허수경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언어로 가득찬 그녀의 새로운 시집을 들고. 처음 만났지만 이십 년지기처럼 반갑고, 설레었다. 여기저기에서 그녀의 이름을 들었던 탓도 있겠지만 괜히 좋았다.  

이제, 그녀 문학의 시작이 되었던, "우울했던 소녀" 허수경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소설을 읽을 차례다. 내 과거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것만큼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녀는 어떻게 성인이 되었을까, 이제 진짜, 그녀의 '소멸해버린 과거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봐야겠다.   

사춘기 시절, 나는 뚱뚱하고 우울한 소녀였다. 뚱뚱하다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싫어서 자주 구석진 곳에 숨어 있었다. 숨어 있다고 한들 뚱뚱한 나를 다 숨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숨길 수가 없어서 어디에 갔다가 누가 뚱보라고 놀리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면 그렇게 싫었다. 세상이 나를 부르는 소리는 내 뚱뚱한 실존을 드러내라고 채근질을 하는 소리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놀림을 받아 마음이 쓰라릴 때면 나는 또 구석에 앉아서 단팥이 들어간 빵을 집어먹었다. 더 뚱뚱해질까봐 겁이 나는데도 먹었다. 빈속에 단맛이 들어가면 슬프고 외로웠다. 나는 그때마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그 천장을 올려다보던 마음이 내가 문학으로 가는 모퉁이였다. 나는 혼자였고 외롭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놀림을 당하는 실존을 가졌다.

그것이 내 문학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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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1-2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정말. 시와 고고학이라닛!
그러고보니 리더수님 대학 때 전공이 뭔지 궁금하네요.^^

readersu 2011-01-26 17:48   좋아요 0 | URL
스텔라 님, 넘 많은 것을 알려고 하면 다쳐요 ㅋㅋㅋ
넘 엉뚱한 것이라 말하기 쑥쓰럽습니다. 문학하곤 전혀 상관없는 이과 쪽이었습니다^^

stella.K 2011-01-26 18:43   좋아요 0 | URL
ㅎㅎ 내참, 제가 리더수님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다고?
하나도 모르는뎅. 너무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