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역사와 신화
쟈크 브로스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도로 양 옆으로 심어진 가로수나 밥상에 오르는 채소를 비롯하여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 있으면 고개를 내미는 풀 등,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 식물이다 보니 가끔은 식물의 중요성을 간과할 때가 있다. 산소가 있어야만 생명 유지가 가능한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식물이다. 이 책은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 지구 최초의 생명체인 식물 덕분에 동물이 생겨나기까지의 생물 발달 과정과 상호간의 관계 등을 조명하고 있다. 식물 상태에서 동물로 이행하는 것을 진보가 아닌 퇴행으로 보는 관점이나, 동물의 등장이 식물의 먹어치움으로서 그들의 번식을 제어할 존재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은 내가 지닌 허접한  생물에 관한 기초상식으로는 생각지도 못할, 처음 접해보는 이론들이다. 

 "이 발전은 너무도 갑작스럽고 획기적이라서 더 이상의 발전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마도 그랬다면 더 이상 이 책도, 저자도, 독자도 생겨날 필요가 없었을 테지만... 진화는, 아니 생명은 결코 한 자리에 머무는 법이 없다. 생명은 항상 앞으로 나아가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의 성취를 모두 무화화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겉씨식물이 승승장구하던 시기에 막강한 경쟁자인 속씨식물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급기야 속씨식물은 겉씨식물의 왕좌를 탈취하기에 이른다.-p 31 

 식물들도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진화해 왔는데 식물의 생존이 불가능한 지역에서조차 적응과정을 거쳐 생존하는 식물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선인장은 살인적인 더위와 몇 달 동안 비라곤 구경하기 힘든 극심한 가뭄이 반복되는 극한의 환경인 사막지역에서 살아가는 식물이다. 불굴의 생명력을 지닌 이 선인장 덕분에 많은 동물들이 사막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평화로워 보이는 식물의 세계에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투쟁과 경쟁이 존재함을 일깨워주고 있는데 '마녀의 원'이라 일컬어지는 현상이나 호두나무 밑에 아무 것도 키울 수 없는 등의 예에서 '조용한 침묵의 대혈전'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이와 반대로 개체간에 유기적이고 협조적인 관계를 지닌 식물들도 있는데 이를 잘 파악하는 것이 좋은 농사법이라 하겠다. 

 <동물을 이용하는 식물>에서는 식물이 동물을 자신들의 종족을 번식시키기는 동반자로 이용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로 다양한 꽃의 색이나 모양, 냄새등을 통해 곤충을 불러들이는 예를 들어 설명해 주고 있다. 식물과 곤충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약품 살충작업이 결국 식물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분별한 살충제의 살포는 결국 식물을 먹는 우리 인간들에게도 커다란 재앙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슬 식물>편에는 다양한 식물에 대한 효능과 그 식물과 관련된 역사적인 사실들을 접할 수 있 식물이 지닌 자체적인 효능과 함께 처방이 주는 심리적인 효능인 위약 효과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때로는 식물학을 연구하는 전문가보다 아프리카 오지의 부족들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이 더욱 방대하고 정확하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고 서양 의학만 내세우거나 원주민 문명 말살정책으로 의술마저 파괴된 것은 너무나 애석한 일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식물은 40가지로 환각증세를 일으킬 수 있는 식물(광대버섯, 양귀비, 페요테선인장 등), 치료 효능이 있는 식물(인삼, 키나나무, 샐비어, 쑥 등), 기호식품으로 이용되는 식물(오렌지, 카카오, 커피, 포도 등), 향신료로 이용되는 식물(사탕수수, 계피, 생강, 후주 등), 음식으로 먹는 식물(옥수수, 밀, 벼, 호박 등) 등과 같이 고대부터 그 효능을 파악하여 사용하였던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데, 이 책을 처음부터 읽어나가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이 뒷부분부터 읽어보아도 좋지 않을까 싶다. ^^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졸음이 쏟아지게 만드는 딱딱한 이론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예를 들어 가며 설명해 주는 열정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강의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든다. 자크 브로스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관찰자는 그저 경이로움을 느낄 뿐'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과장이 아닌 진정 공감이 가는 소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식물의 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을 엿보았을 뿐인데도 그 경이로움이 이토록 컸으니 진정한 관찰자가 얻을 수 있는 경이로움은 얼마나 크겠는가! 이 외에도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식물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하는 부분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을터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식물과 관련된 삽화들이 실려 있는데 식물의 실제 사진이 실려 있지 않은 점이 아쉽게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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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진주 2005-09-1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쉼없는 리뷰를 올리시는 아영엄마님의 저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mong 2005-10-24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살까하고 뒤져보다가
반가운 이름의 리뷰가 있어서 잘 읽고 추천하고갑니다 ^^

hanny98 2006-06-06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