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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촌 형 ㅣ 그림이 있는 책방 3
이현주 지음, 박철민 그림 / 보림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양짓담’과 ‘음실’로 불리는 마을이 서로 앙숙처럼 지내게 된 모습을 담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떠오른 것은 신도시 등에서 도로 하나를 차이에 두고 한 동네 사람들이 생활, 교육수준의 차이를 들어 마치 별개의 세상에 사는 것 마냥 서로를 경원시하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조차도 어른들의 생각에 영향을 받아 한 학교, 한 반이면서 집이 도로 오른쪽에 있냐, 왼쪽에 있냐에 따라 편이 갈려 따로 논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난다.
이 책의 화자인 성태와 술주정뱅이를 둔 근태는 육촌이라는 촌수를 가진 친척이지만 새로 이사 온 한상 목장집과 벽돌 공장집 아들들에 의해 편을 갈리는 상황에 직면한다. 여기에서 부잣집 아이, 한산 목장집 아이인 유세아는 목장 관리인 아들인 홍탱크(철식)의 비호 속에 아이들의 지배하는데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곧 힘을 지배할 수 있는 또 다른 힘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의 논리 앞에서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는 어른들도 쉽게 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마을 아이들이 지배자로 군림하던 세 아이를 뒤로 한 모습은 더 이상 외세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남북이 통일되는 날을 꿈꾸는 작가의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리라.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반영하여 다시 읽어 보니 6.25전쟁을 통해 한 가족이면서도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탓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우리의 분단 상황을 담아내고 있는 내용이다. 또한 부와 힘을 통해 이루어지는 아이들 사이의 권력관계도 우리네 아이들의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 깊이 생각해 볼거리이다. 마지막으로 그림에 대한 언급을 하자면, 먹과 펜을 이용하여 동양화 기법으로 그린 박철민의 그림은 내용과 잘 어우러지지만 전반적으로 어둡다는 느낌을 준다. 먹을 써서 그렇다기 보다는 내용 자체가 어둡다보니 그림 역시 그런 것이리라. 특히 ‘오토바이’ 라는 별명을 지닌 아이의 날카로운 눈매가 유독 인상에 남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어 미움과 증오 등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