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 ‘신이 죽은’ 시대의 내로남불
허경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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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허경 (지음) | 세창출판사 (펴냄)

내로남불. 언뜻보면 사자성어 같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같은 행위에 대해서도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주관적, 편파적 관점을 꼬집는 말이다.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 것에 대해서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구구절절 핑계를 늘어놓으면서,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도덕적 잣대와 법률적 기준으로 객관적인 비판을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티끌만한 오점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확대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 기준이라는게 참 웃긴다.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절대 권력자가? 혹은 절대 다수가?

과거 봉건제 시대나 신분제 사회에서는 신분이 높은 소수의 강자들에 의해 기준이 정해지고 나머지 다수는 이유불문하고 따라야만 했다. 합리성보다는 소수 지배권력자의 편리와 이익에 부합되면 그것이 곧 법이고 도덕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며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합의가 기준이 되는 일이 많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꼭 합리적이고 옳은 것도 아니다. 어느쪽으로 기준이 서더라도 불만인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이제는 강자만이 힘을 갖는 시대도 아니다. 오죽하면 '을질'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약자라는 위치를 오히려 무기 삼아 벌어지는 불합리와 역차별은 시대 유행처럼 번지며 정당한 공권력에도 공권력 남용을 외치고 근거없는 미투로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쳐박는 일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본인은 정의구현이라는 자기합리화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주 뻔뻔하거나.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비겁함과는 다르게 강자에게 강하게 나가면 그것이 곧 정의라 믿는 어리석음도 경계해야 한다. 강자가 항상 나쁜 것도 아니고 약자가 항상 옳고 억울함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책 본문 3장의 "니체에 이르는 길"에서 여러 철학자의 주장을 거론하고 비교함으로써 이런 것들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로남불은 시대가 낳은 신조어지만 내로남불의 행위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랜시간 함께였다.

내로남불의 영역이 개인간의 문제일 때는 도덕성에 관한 것이 주로 쟁점이 되지만 다수와 집단으로 범위가 넓어지면 권력과 정치가 결부되기 쉽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승자의 관점이 옳은 것으로 인식되면 그 외의 것은 틀린 것이 되어버리는 현상은 슬플정도로 익숙한 일들이 되어버렸다. 매번 선거때마다 펼쳐지는 내로남불은 청문회에서는 그 빛을 더욱 발한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을 넘어서서 내편이라면 팔을 밖으로도 굽히는 기상천외의 융통성마저 보인다. 그러나 편이 다르면 다름을 다름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틀림으로 규정하고 비판을 넘어서는 공격까지 서슴지 않으며 관점과 이익에 따라 정의와 진리는 교묘히 모습을 바꾼다.

정치적 현상은 존재하지 않고 현상에 대한 정치적 해석만이 있다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내로남불, 정치판만큼 잘 어울리는 곳도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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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반쪽
브릿 베넷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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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반쪽

브릿 베넷 (지음) |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열살이 채 되기도 전, 주말이면 밤늦게 방송되던 "주말의 명화"와 "토요명화"를 즐겨보곤 했다. 지금처럼 채널이 다양하지도 않았고 오로지 공중파 3사가 전부이던 시절, 성우의 더빙으로 방영되는 외화는 성우의 목소리가 아니면 외국 배우들을 구별해내기 힘들었다. 피부색으로만 구별할 수 있을 뿐 같은 인종의 같은 성별을 가진 그들은 어린 내 눈엔 모두 똑같아 보였다. 외국인을 쉽게 접하는 요즘 아이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외국인을 티비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 때는 내 친구들도 다 그랬었노라 말한다. 밝은 피부색을 가진 스텔라가 자신의 정체성을 위장한채 백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낼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인종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그 맹점을 이용했던 것이 컸으리라. 백인으로 살고 싶었던 이유가 자유롭고 싶어서였다고 말하는 스텔라. 그러나 그녀는 그 거짓된 인생에서 얼만큼 자유로울 수 있었나?

밝은 피부색의 니그로들이 모여사는 맬러드에서조차도 유난히 밝은 피부색을 가졌던 스텔라는 맬러드 밖에서는 선택의 기회를 가져보지 못하는 유색인종일 뿐이었다. 맬러드에서는 너무 하얘서, 밖에서는 유색인종이어서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었던 외로움과 차별 그리고 자유롭고 싶다는 갈망이 더해져 촛농으로 붙인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거짓말로 이어붙인 새 인생을 시작했다. 남들과 다르다는 자각은 스스로를 향한 열등감도 만들어낸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데지라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남편 샘은 피부색에 대한 열등의식을 상대적으로 하얀 데지라를 소유하고 폭행하며 쏟아부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터리스였던 리스, 격주 토요일마다 여장을 하고 춤을 추는 배리. 이들에게도 남모를 비밀은 있었지만 자기자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며 끝없는 거짓말과 허무함에 아예 자신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스텔라. 그러나 그녀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고 싶지도 않다.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했던 워커 부부도 결국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당해야하는 차별에서 자유롭진 못했으니까. 그런 일들을 지켜보고 겪으며 스텔라는 더욱 더 견고하게 거짓말로 무장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백인이 되고 나서야 그녀가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의 폭이 넓어졌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리스를 사랑하는 주디, 데지라를 사랑하는 얼리 존슨를 보며 울컥 감동받기도 했다.

<사라진 반쪽>. 제목을 가만 들여다보며 생각해본다. 사라진 반쪽은 헤어져 살았던 쌍둥이를 얘기하는 아니라 스텔라의 정체성이 아닐까. 거짓된 반쪽을 살아내기 위해 진실된 반쪽이 사라진.

왜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인지 알겠다. 어후~! 이 감동 어쩔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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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9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지음, 이혜수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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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이야기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지음) | 이혜수 (옮김) | 문학동네 (펴냄)

티비를 켜면 공중파는 물론이고 여러 종편 채널과 케이블 채널까지 인기 강사가 다수의 프로그램에 자주 모습을 보인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이제는 티비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는 설민석 님이 그러했고 먹방에 관련해서는 백종원 님이 그러하다. 그리고 요즘은 한창 핫하게 예능과 광고까지 섭렵하며 활동 중인 오은영 선생님이 계시다. 어린 자녀들의 양육과 교육은 물론이고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많은 '어른이'들의 상담 멘토로서 열혈 활동 중이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교육과 양육은 매일매일 고민되는 숙제다. 어느 날은 순풍에 돛단듯이 잔잔하게 흐르는 듯 하다가도 어느 날은 비바람 거센 태풍을 만난 것처럼 마음이 어지럽다.

엄격함과 정서적 학대의 차이는 받아들이는 이의 입장에서 종이 한 장의 차이일 수도,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일 수도 있다는 점이 매번 결정의 순간을 신중하게 만든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네는 충고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구속과 잔소리로 느껴지기 쉽다. 중년이 된 지금은 충고라며 주로 잔소리를 하는 입장이지만 한때는 잔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십대를 보냈기에 한 번씩 잔소리하는 내 입을 침묵과 한숨으로 틀어막는다.

밀너 양을 걱정하는 도리포스 신부의 마음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사제의 신분으로 누군가를 양육해 본 겅험이 없는 그가 느닷없이 맡게 된 후견인이라는 책임은 절제와 강요하는 복종을 통한 구속으로 나타났다. 밀너 양은 어떤 때는 생각이 짧은 경솔함으로 주변의 속을 새까맣게 태우고, 어떤 때는 세상 다시없는 따스한 정을 드러낸다. 계산되지 않았던 러시부룩을 향한 순수한 사랑과 선행이 훗날 그녀의 하나뿐인 바램에 응답이 되었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은 선행과 악행 둘 모두를 이르는 말이라는 것을 확인하기라도 하듯이 사랑을 배신한 결과 또한 받아들여야 했다. 종잡을 수 없는 자유분방함과 약간의 오만함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했다.

어머니 밀너의 허물은 어렸던 머틸다에게도 시련이 되었다. 밀너의 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딸이기도 한 머틸다에게 드러내는 적의와 냉정함은 엘름우드 경의 상처와 배신감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하게 하지만 한때 사제였던 사람이 이다지도 포용력과 자애로움이 없는가 싶었다. 밀너 양에게 강요되었던 절제와 복종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부당한 복종이 머틸다에게 강요되지만 머틸다는 순순히 받아들이고 아버지에 대한 애정도 접지 않았다. 조신하지 못하고 방종한 여인에게는 대가가 따른다는 교훈을 주고 싶었나? "안나 카레니나", "마담 보바리"를 통해서도 주었던 경고가 <단순한 이야기>에서는 엄마와 딸이라는 두 여성을 동일한 사람으로부터의 강압에서 대조적으로 그려낸다. 남성의 가부장적 강압에 복종하는 여성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기라도 했던걸까...

두 모녀의 차이가 있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대하는 태도랄까? 그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재어보려하고 시험하려 했던 어머니 밀너와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믿었던 머틸다.

진리는 정말 단순하다.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욕심, 오만, 경솔함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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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8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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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지음) | 손영미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사랑에 빠진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만큼 절절하고 안타까운 사랑이 있을까?

티비 드라마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재연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도 사랑, 그 중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와 삼각 관계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결혼이라는 형식과 사회적 인정이 함께 하게 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집안의 기대와 가문의 결합,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대의 성실성과 안정감에 대한 만족 등 결혼의 기준과 시기는 개인마다 다르다. 결혼은 감정도 중요하지만 거미줄처럼 얽히게 되는 관계도 중요하다.

여러 여자와 연애를 하고 유부녀와의 불장난도 서슴치 않았던 아처는 조신하고 순수한 메이에게 청혼을 한다. 학창시절 놀아본 친구들이 결혼도 잘한다는 말처럼 놀아본 아처는 자신의 아내감으로 모두가 탐낼만한 메이를 점찍는다. 구설에 오른 올렌스카 부인을 보호하기 위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듯 서둘러 약혼을 발표하고 예비 처갓집의 체면과 격식을 위해 메이의 사촌 언니 엘런 올렌스카 부인과 여러차례 만남을 갖게 되었다. 자유를 위해 이혼을 원했던 그녀였지만 가문의 체면이 먼저였던 친척들의 만류로 그녀는 그 뜻을 접는다.(친척들의 만류여서기 보다는 그 총대를 맨 사람이 아처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메이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던 그녀는 역시나 가문과 친척들을 움직여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야 만다. 자신이 메이를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선택을 당한 것은 아처 자신이었으며 화려한 송별회로 엘런을 멀리 떠나보내는 일을 성공시키는 걸 보면 메이는 순수보다는 영악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남편을 버리고 떠난 여자, 남편의 비서와 달아난 여자, 사촌 여동생의 남편과 연인인 여자라는 오명에도 엘런은 변명 한 마디가 없다. 많은 재산의 유혹에도 남편 곁으로 돌아가길 거부하고, 자신을 길러준 무일푼의 메도라 고모를 끝까지 책임진다. 그리고 메이를 위해 그들의 인생에서 사라지기를 결심한다.

이십 육년 후 아처는 엘런과 재회의 기회를 갖지만 돌아서고 만다. 젊은 날의 엘런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 현재의 엘런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자신할 수 없는 것이 그를 돌아서게 만들었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결함없는 사랑이었다면 그토록 아리고 그리운 대상이었을까?

하지말라면 더 하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라 뜯어말리면 더 불이 붙는게 젊은 날의 사랑 아니던가.

모든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끌었던 메이와 뒷일의 감당은 생각지 않고 자기 감정에만 충실하려했던 아처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감정과 벌어질 상황들의 뒷감당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엘런이 자신의 감정을 접어가며 보여주었던 모습에서 셋 중 가장 순수했던 것 같다.

세상물정 모른다고 순수한게 아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오히려 순수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보퍼트 가의 사생아와 약혼을 한 아들 댈러스의 편견없는 의식이 과연 지금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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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초상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31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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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초상 (하)

헨리 제임스 (지음) | 정상준 (옮김) | 열린책들 (펴냄)

흔히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한때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 했던 결혼이라면 결혼에 대한 이런 표현은 아이러니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사랑때문이든 다른 이유때문이든 어쨌거나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무덤이라는 어두운 비유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불합리한 부분과 잘못된 상대를 골랐다는 후회에서 비롯된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일지라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상의 고비에서 순간순간의 찰나적인 후회조차 하지 않는 부부는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 속담에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려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잘못된 선택을 하려는 이사벨의 행동이 주위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불구덩이로 들어가려는 무모함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내가 내 새장을 좋아한다면, 사촌 오빠가 괴로워할 필요가 없겠죠.

-여인의 초상 하. 본문 591페이지

이사벨은 길버트 오즈먼드에게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믿고 싶은 대로 믿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가 딸린 홀아비에 대한 연민을 사랑으로 착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결핍을 채워주고, 유산으로 받은 재산으로 보다 나은 삶을 줄 수 있다는 순진한 마음도 어쩌면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함이 깃들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결국 모든 진실과 그의 사람 됨됨이를 저 바닥까지 알게 된 후에도 그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내를 동반자가 아닌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수집품 정도로 여겼던 오즈먼드는 이사벨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차갑게 돌변하고, 물질적인 것에 초연한 것처럼 말해왔던 것과는 달리 딸의 결혼도 비지니스로 만들려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뒤틀린 가부장적의 오즈먼드, 남의 평판이 중요한 마담 멀, 바른 말은 하지만 너무나 직설적인 헨리에타 스택폴, 아버지에게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 당해 거역을 할 수 없는 팬지, 배려보다는 자기 중심적 사랑을 직진하는 굿우드와 로지에. 등장인물들 하나하나가 인간과 심리에 대해 깊고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이사벨이 굿우드와 워버턴 경의 청혼을 거절하고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 결혼을 선택했을 때 누구보다 마음 아팠을 랠프. 사촌 동생이 원했던 자유에 날개를 달아주려 했던 자신의 의도는 오히려 덫이 되고 말았으니, 의도가 좋았다고 해서 결과가 반드시 좋으리란 법은 없다.

랠프의 장례식 이후 굿우드가 다시 내민 손길을 뿌리치고 이사벨이 오즈먼드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남편의 제지를 뿌리치고 왔던 길이었던 만큼, 되돌아간 후의 이사벨의 행보가 지난날과는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더이상은 오즈먼드의 장식품이 아닌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사는 여성으로서 살아가기를. 자유를 부르짖던 이사벨이 결혼이라는 제도로 구속되어버린 것을 시대와 사회 탓만 할 수는 없다. 이모인 터치트 부인과 친구인 헨리에타 스택폴, 그리고 오즈먼드의 여동생마저도 이사벨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니 말이다. 자신의 취향대로 배우자를 고치려 들것이 아니라 스택폴과 벤틀링의 결혼처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이 조화로운 결혼생활이 될 것이다.

중년에 접어들어 인생과 결혼에 대해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는 책을 만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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