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의 초상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231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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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초상 (하)

헨리 제임스 (지음) | 정상준 (옮김) | 열린책들 (펴냄)

흔히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한때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 했던 결혼이라면 결혼에 대한 이런 표현은 아이러니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사랑때문이든 다른 이유때문이든 어쨌거나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무덤이라는 어두운 비유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불합리한 부분과 잘못된 상대를 골랐다는 후회에서 비롯된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일지라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상의 고비에서 순간순간의 찰나적인 후회조차 하지 않는 부부는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 속담에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려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잘못된 선택을 하려는 이사벨의 행동이 주위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불구덩이로 들어가려는 무모함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내가 내 새장을 좋아한다면, 사촌 오빠가 괴로워할 필요가 없겠죠.

-여인의 초상 하. 본문 591페이지

이사벨은 길버트 오즈먼드에게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믿고 싶은 대로 믿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가 딸린 홀아비에 대한 연민을 사랑으로 착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결핍을 채워주고, 유산으로 받은 재산으로 보다 나은 삶을 줄 수 있다는 순진한 마음도 어쩌면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함이 깃들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결국 모든 진실과 그의 사람 됨됨이를 저 바닥까지 알게 된 후에도 그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내를 동반자가 아닌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수집품 정도로 여겼던 오즈먼드는 이사벨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차갑게 돌변하고, 물질적인 것에 초연한 것처럼 말해왔던 것과는 달리 딸의 결혼도 비지니스로 만들려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뒤틀린 가부장적의 오즈먼드, 남의 평판이 중요한 마담 멀, 바른 말은 하지만 너무나 직설적인 헨리에타 스택폴, 아버지에게 오랜 시간 가스라이팅 당해 거역을 할 수 없는 팬지, 배려보다는 자기 중심적 사랑을 직진하는 굿우드와 로지에. 등장인물들 하나하나가 인간과 심리에 대해 깊고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이사벨이 굿우드와 워버턴 경의 청혼을 거절하고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 결혼을 선택했을 때 누구보다 마음 아팠을 랠프. 사촌 동생이 원했던 자유에 날개를 달아주려 했던 자신의 의도는 오히려 덫이 되고 말았으니, 의도가 좋았다고 해서 결과가 반드시 좋으리란 법은 없다.

랠프의 장례식 이후 굿우드가 다시 내민 손길을 뿌리치고 이사벨이 오즈먼드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남편의 제지를 뿌리치고 왔던 길이었던 만큼, 되돌아간 후의 이사벨의 행보가 지난날과는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더이상은 오즈먼드의 장식품이 아닌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사는 여성으로서 살아가기를. 자유를 부르짖던 이사벨이 결혼이라는 제도로 구속되어버린 것을 시대와 사회 탓만 할 수는 없다. 이모인 터치트 부인과 친구인 헨리에타 스택폴, 그리고 오즈먼드의 여동생마저도 이사벨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으니 말이다. 자신의 취향대로 배우자를 고치려 들것이 아니라 스택폴과 벤틀링의 결혼처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이 조화로운 결혼생활이 될 것이다.

중년에 접어들어 인생과 결혼에 대해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는 책을 만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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