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8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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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지음) | 손영미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사랑에 빠진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만큼 절절하고 안타까운 사랑이 있을까?

티비 드라마나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재연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도 사랑, 그 중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와 삼각 관계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결혼이라는 형식과 사회적 인정이 함께 하게 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집안의 기대와 가문의 결합,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대의 성실성과 안정감에 대한 만족 등 결혼의 기준과 시기는 개인마다 다르다. 결혼은 감정도 중요하지만 거미줄처럼 얽히게 되는 관계도 중요하다.

여러 여자와 연애를 하고 유부녀와의 불장난도 서슴치 않았던 아처는 조신하고 순수한 메이에게 청혼을 한다. 학창시절 놀아본 친구들이 결혼도 잘한다는 말처럼 놀아본 아처는 자신의 아내감으로 모두가 탐낼만한 메이를 점찍는다. 구설에 오른 올렌스카 부인을 보호하기 위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듯 서둘러 약혼을 발표하고 예비 처갓집의 체면과 격식을 위해 메이의 사촌 언니 엘런 올렌스카 부인과 여러차례 만남을 갖게 되었다. 자유를 위해 이혼을 원했던 그녀였지만 가문의 체면이 먼저였던 친척들의 만류로 그녀는 그 뜻을 접는다.(친척들의 만류여서기 보다는 그 총대를 맨 사람이 아처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메이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던 그녀는 역시나 가문과 친척들을 움직여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야 만다. 자신이 메이를 선택했다고 생각했지만 선택을 당한 것은 아처 자신이었으며 화려한 송별회로 엘런을 멀리 떠나보내는 일을 성공시키는 걸 보면 메이는 순수보다는 영악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남편을 버리고 떠난 여자, 남편의 비서와 달아난 여자, 사촌 여동생의 남편과 연인인 여자라는 오명에도 엘런은 변명 한 마디가 없다. 많은 재산의 유혹에도 남편 곁으로 돌아가길 거부하고, 자신을 길러준 무일푼의 메도라 고모를 끝까지 책임진다. 그리고 메이를 위해 그들의 인생에서 사라지기를 결심한다.

이십 육년 후 아처는 엘런과 재회의 기회를 갖지만 돌아서고 만다. 젊은 날의 엘런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 현재의 엘런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자신할 수 없는 것이 그를 돌아서게 만들었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결함없는 사랑이었다면 그토록 아리고 그리운 대상이었을까?

하지말라면 더 하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라 뜯어말리면 더 불이 붙는게 젊은 날의 사랑 아니던가.

모든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끌었던 메이와 뒷일의 감당은 생각지 않고 자기 감정에만 충실하려했던 아처보다는 주위 사람들의 감정과 벌어질 상황들의 뒷감당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엘런이 자신의 감정을 접어가며 보여주었던 모습에서 셋 중 가장 순수했던 것 같다.

세상물정 모른다고 순수한게 아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오히려 순수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보퍼트 가의 사생아와 약혼을 한 아들 댈러스의 편견없는 의식이 과연 지금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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