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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옥 - 노비가 된 성삼문의 딸
전군표 지음 / 난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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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옥

전군표 (지음) | 난다 (펴냄)

실존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한 역사소설은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가볍지 않다. 간혹 역사 소설이라 하면서도 등장 인물만을 차용해왔을뿐 내용은 허구로만 채워져 제대로 된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효옥>은 뒷편에 실린 작가 후기에 밝힌 부분만을 제외한 나머지 많은 부분이 사실에 근거해 나아간다. 같은 이유로 왕위 찬탈과 권력 구도 내의 다툼과 모략은 역사와 직결되는 부분이어서 그런지 조심스럽게 다루어지는 느낌도 받았다. 역사를 왜곡하지 않으려는 신중함이라고나 할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다)

대부분 실록에 기록된 정사는 왕가의 여인들을 제외하고는 여자들의 얘기가 자세히 기록되지 않는다. 그래서 효옥에 관한 이야기들은 많은 부분이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그녀가 살았음직한 이야기로 펼쳐졌을 것이다. 역모라는 무거운 죄 앞에 남자였다면 참형을 면치 못했을테지만 여자이기에 목숨만은 부지한채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치욕을 맛보며 노비로의 신분 추락을 경험한다.

정치는 남정네들이 하고 감당하는 것은 혈육이라는 이름으로 아내와 자식들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했다. 내놓아야하는 것이 목숨이라 하더라도.

여자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시대, 노비는 사람이 아니었던 시대. 그때에 여자이면서 노비로서도 살아야했던 효옥의 삶은 (누구라도 그러했듯이) 자신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주어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이 주어진 이름처럼 다시 살아갈 의지를 보였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여기에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그 문장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성씨 가문의 은혜를 입은 순심과 바우가 효옥을 끝까지 지키는 모습에서 '의'를 뿌린 자리에 '의'가 나고,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아끼던 큰 아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도 편한 죽음을 맞지 못한 것 또한 자신이 뿌린 것을 거둔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그리고 사랑...결국 효옥이 처음 마음에 담았던 사람에게 마지막에 안기는 것으로 엔딩을 맞았을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숨어서 해야하는 사랑이 안타까웠다기 보다는, 하필이면 원수의 아들이었느냐기 보다는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키다 마음 한번 꺼내보이지 못한 바우가 애처롭고 애처로웠다.

책의 제목이 <효옥>이어서였을까? 예상했던 것보다 수양의 왕위 찬탈 과정과 생육신과 사육신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는 않아 살짝 아쉬웠다.

권력을 향한 야욕은 그 시대의 이야기이기만 할까? 인신공격과 감언이설로 편을 가르고 여론몰이 마녀사냥에 가족들의 개인정보마저 탈탈 털리는 지금이 그때와 다른것이 무얼까. 신분의 하락과 사회적 매장, 당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것이 낫다고 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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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 황홀경과 광기를 동반한 드라큘라의 키스
브램 스토커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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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지음) |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펴냄)

매년 여름이면 더위를 잊게 해 줄 공포물이 인기다. 나라마다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괴담과 전설, 죽은 존재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중에서도 <드라큘라>는 이제 별 거부감이나 이질감 없이 영화와 소설, 드라마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소재다. 오히려 너무 많은 외전과 외전의 외전 그리고 원작의 재해석과 새로운 스토리로 원작을 알기 어려웠다. 원작의 내용을 알고 읽을 때는 복선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지만 결말을 모르고 읽는 소설은 (특히나 스릴러나 공포 소설인 경우) 긴장을 내려 놓을 수 없는 조마조마함의 묘미가 있다. 원작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 드라큘라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궁금증과 주인공들에 대한 응원이 가득했다.

미나의 이름은 동명의 영화에서 드라큘라가 동반자로 삼고 싶어히는 여인으로 본적이 있다. 브램 스토커의 원작에서도 미나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려고 하지만 동반자의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미나의 친구 루시에 대한 부분이 의외로 많아 소설의 중반부를 훌쩍 넘긴다. 루시와 정신병원의 렌필드를 통해 드라큘라의 능력과 한계를 보여주고, 반 헬싱 박사와 루시를 사랑했던 세 남자 존 수어드와 아서와 모리스 그리고 조나단과 미나 부부를 한 팀으로 만드는 자연스러운 전개를 보인다. 부끄럽지만 원작에서도 반 헬싱이 등장한다는 것은 몰랐다.

죽지 않는 존재가 된 루시의 영혼을 평화롭게 잠재우기 위해 육신을 다시 한 번 죽여야 하는 잔인하고도 고통스러운 의식은 약혼자인 아서가 맡았다. 사랑하는 이의 손에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거나 영원한 안식을 얻는다는 설정은 뻔하지만 수긍할 수 밖에 없다. 요즘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하지 않는가? "당신 손에 죽는다면 행복하겠어요"라고.

드라큘라를 없애기 위해 모인 다섯 남자를 지지하고 큰 도움을 주던 미나 마저 드라큘라에게 물리자 이들의 결속력은 더욱 커지고 복수심과 정의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단해진다. 이런 와중에 보이는 미나의 모습이 당차다. 보통 고전에서 보이는 여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사랑밖에 난 몰라'가 주류임에 반해 드라큘라의 미나는 여성의 섬세함으로 다섯 남자가 생각하지 못하는 디테일을 챙기며 드라큘라의 추적에 일조한다. 더구나 본인이 드라큘라에게 물려 의식이 제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대단해 보인다. 비탄에 빠져 절망감에 젖어 있는 대신 끝까지 싸우려는 의지가 인간이 가진 희망이 아닌가 싶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공포물임에도 고전은 고전이다. 죽음과 피가 주 소재이면서도 피비린내의 잔인함보다는 점잖게 공포 분위기를 유도한다. 드라큘라의 잔인함보다 미나의 강인함과 남자들의 우정과 사랑, 정의감이 돋보였다. 드라큘라를 쫒는 마지막 추격에서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미나를 데리고 드라큘라의 본거지인 성으로 가는 반 헬싱의 선택은 가장 큰 어른이 보여주는 희생이지 않았을까. 세상은 모르는 어둠의 전쟁을 치루며 결국 모리스의 죽음이라는 아픔은 남았지만 그의 이름을 딴 하커 부부의 아이를 통해 계속되는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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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특별판 박스 세트 - 전2권 -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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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펴냄)

"20세기를 대표하는 기호학자이자 미학자, 그리고 세계적 인기를 누린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의 이름 앞에 수식어처럼 따라다니는 설명이다.

수도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장미의 이름>, 프리메이슨의 기원인 성전 기사단의 비밀을 둘러싼 <푸코의 진자>와 비교해 본다면 같은 작가가 쓴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다.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가 무거운 주제로 시종일관 무겁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 반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익살과 유머로 독자를 이끈다.

4개의 큰 단원 "실용 처세법,성조기, 카코페디아 발췌 항목, 내 고향 알렉산드리아"로 나누어 수록된 각기 다른 소주제들은 제목만 보아도 그 엉뚱함에 웃음이 난다.

초반부에서는 비교적 가볍게 시작한다. 발상의 전환이라고나 할까? (불편을 인지하지도 못한채)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불편함에 대해 어쩜 저렇게 "맞아 맞아"하고 동의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지, 움베르토 에코의 예리한 관찰력과 다면적인 생각에 감탄을 하게 된다. 일상을 남다른 시각으로 보는 능력이 그를 지금의 움베르토 에코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과학의 발전으로 신기하고 편리한 상품들의 광고를 보고 있노라면 꼭 필요하겠다 내지는 있으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데 움베르토 에코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아차, 내가 속았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예를 들면 조깅 중 심장에 무리가 오면 경보음이 울리는 심장 박동기. 에코는 말한다. 뛰다가 숨차면 그냥 멈추라고! 명쾌하다.

페이지를 넘기며 뒤로 갈수록 일상에서 조금씩 무거운 주제로 옮겨간다. 행정절차, 교수형의 찬반, 섹스, 전자기기의 무분별한 사용, 정치, 작가의 사생활 등 평소 움베르토 에코가 가져온 생각들과 만나며 위트있게 꼬집고 비튼다. 그러나 이런 비틈이 불편하지 않고, 그가 저속하다거나 얄밉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의 상술에 놀아나고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진짜 바쁘고 능력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늘 회의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거나 대신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라니. 신기술의 혜택이 "누구에게나" 제공되기 시작하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대목도 납득이 간다. 자동차가 보편화된 지금 우리는 그 자동차로 빨리 가는 대신 체증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같지만 정작 움베르토 에코는 화내지 않는 거 같다. 발상의 전환을 하라고,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자극하는 것 같다. 책을 시작하는 것은 작가이지만 완성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 만큼 다양한 완성작이 나오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유머가 가득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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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생거 수도원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지음, 최인자 옮김 / 시공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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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생거 수도원

제인 오스틴 (지음) | 최인자 (옮김) | 시공사 (펴냄)

제인 오스틴 사후 200주년을 기념한 국내 최초의 전집. 초판이 나오고 몇 년이 지났지만 이 분홍빛의 금장 꽃그림 시리즈는 여전히 소장욕구를 자극하는 베스트셀러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라면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오만과 편견'만을 여러번 읽었을 뿐이다.

로맨스 소설의 고전은 현대판 멜로와 얼만큼 다를까? 시대가 변해오며 여성의 지위와 신분이 달라져 온 만큼 사랑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져왔다. 선택의 권리는 없고 오직 거절의 권리만 가졌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남성보다 더 적극적인 구애도 흠이 되지 않는 시대다.

감성 풍부한 십대 때 읽었었다면 분명 열일곱 살 캐서린의 우정과 사랑에만 집중해서 읽었을 테지만 인생 중반을 살아가는 지금 <노생거 수도원>을 읽으니 캐서린의 주변 인물들에게도 눈이 간다.

여자들은 작은 마을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던 시대. 캐서린은 요양 차 바스로 떠나는 앨런 부부를 따라 풀러튼을 떠난다. 바스에서 새로 사귄 친구 이사벨라와 단짝처럼 붙어다니지만 초반부터 그녀의 행동거지가 이상하다. 남자들의 눈을 과도하게 의식한다고나 할까? 눈에 띄는 외모로 인기가 많은 이사벨라지만 겉과 속이 늘 같을 수는 없다는 진리를 일깨우는 캐릭터다. 캐서린이 틸니 양과 가까워지자 자신과 먼저 친해지지 않았냐며 캐서린을 비난하고 데이트에 들러리로 동행하기를 강요하는 등 자기밖에 모르는 행동을 보인다. 이사벨라의 오빠 존 소프도 고구마 백만 개의 캐릭터이기는 마찬가지다.(누가 남매아니랄까봐, 이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가?)

소설을 대하는 태도에서 부터 존 소프와 헨리 틸니의 차이가 보인다. 소설 따위는 읽지 않는다며 오로지 말과 마차로 과시욕 뿐인 존 소프는 상대의 얘기를 자기가 듣고 싶은대로만 듣는 신기한 재주도 가졌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기는 남매가 똑닮은 모습이다.

신분 상승과 부를 거머쥘 기회로 결혼을 생각하는 이사벨라는 제임스에서 프레더릭 틸니 대위로의 환승에 실패하고 다시 제임스에게 돌아가려는 뻔뻔함을 보였다. 요샛말로 '취집'이라고 하던데. 제임스의 입장에서는 예쁜 얼굴만 보고 빠진 사랑에 비싼 수업료를 낸 셈이지만 오히려 결혼까지 가지 않았음을 훗날 가슴 쓸어내리며 다행이라 여기지 않을까.

캐서린은 틸니 가족과 돈독해지며 노생거 수도원으로 초대되어 간다. 호의를 보이며 친절하게 대해주던 틸니 장군은 돌변하며 그녀를 쫒아내다시피 돌려보낸다. 그 이유의 시작과 끝에 존 소프가 있긴 했지만 한 집안의 최고 어른으로서 캐서린의 사람됨 보다는 집안의 재산에 따라 그녀를 평가하고 대한 것은 존 소프와 별차이 없는 속물로 보일 뿐이다. 캐서린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도(사실은 그렇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청혼하는 헨리 틸니가 사실은 가난한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다시 친절해진 틸니 장군의 아들이라는게 신기할 지경이다.

가부장적인 틸니 장군, 캐서린 가족의 따뜻하고 포용적인 분위기, 규율없이 선 넘는 관용의 소프 부인의 양육 등이 그 자녀들의 성격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앨런 부부를 따라나선 바스에서 만난 새로운 인연들이 캐서린의 식견과 관계에 대한 시야를 넓혀 주었을 것이다.

고인물은 썩게 마련이듯 관계도 장소도 때로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으며 넓히는게 좋지 않을까? 혹시 알아? 캐서린처럼 그 곳에서 운명의 반쪽을 만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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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감는 새 연대기 1 - 도둑 까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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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 새 연대기. 도둑 까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김난주 (옮김) | 민음사 (펴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의식 있는 작가, 깨어 있는 작가라 불리지만 자국인 일본에서는 손가락질 당하는 그다. 난징 대학살을 대하는 일본의 태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기사단장 죽이기'도 책장에 꽂아두고 여직 읽지 못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하기에 펼친 <태엽감는 새 연대기>다.

집 나간 고양이를 찾아나선 도오루에게 나타난 이웃집 소녀와 도둑 까치의 마지막 페이지가 끝나도록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전화 속 여자, 그리고 가노 자매 등 소설의 초반부는 미스터리하게 흐른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 대신 살림을 하며 지내던 그에게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고양이를 찾는 일이 주축일까 싶었지만 이웃집 소녀와 가발 회사의 아르바이트를 가기도 하고 의문의 여성에게서 음란한 전화를 받기도 한다. 고양이를 찾는 일에 가노 자매를 소개 받지만 이 자매 역시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주인공인가 싶은 도오루의 얘기보다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연관성 없이 나열되어 무슨 얘기를 하려나 싶은 순간 노몬한 사건이 언급되며 스치듯 등장했던 혼다와 혼다의 유언을 실행하기 위해 방문한 마미야의 얘기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인간은 원래 평등하지 않다는 가치관의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와타야 노보루의 국회의원 출마, 통증을 없애고 싶어 삶을 마감하려 했지만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가노 크레타, 신분을 위장하고 임무중에 살해당한 야마모토,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그냥 알 수 있는 혼다, 일생을 침묵하던 진실을 털어놓기 시작한 마미야 도쿠타로.

전혀 상관 없어 보이던 이야기들은 고양이를 찾기 위해 나선 길에 이웃집 소녀 가사하라 메이를 만났던 빈집의 사연을 시작으로 번져나간다.

혼다 씨의 생전에 들었던 '노몬한 전투'로 이야기가 흐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3권의 시리즈로 출판된 <태엽감는 새 연대기> 중 첫번째 <도둑 까치>만을 완독한 지금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고 싶은 얘기는 아직 안개 속처럼 윤곽만 보인다. 하지만 혼다 씨의 유품을 전하러 온 마미야 씨의 얘기 속에서 무라카미가 하루키가 하고 싶은 말을 본 듯하다.

295. 우리는 도적 떼 사냥, 패잔병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죄 없는 무수한 사람을 죽였고, 식량을 약탈했습니다. (중략) 이건 잘못된 일이에요. 난징에서도 몹쓸 짓을 참 많이 했습니다.

"사죄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고 얘기해 일본 내 극우주의자들의 공격과 테러 위협을 받아온 무라카미 하루키. 사죄 이전에 죄를 인정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아는 몇 안되는 지식인이다. 머리에 든 것 많고 유려한 말과 글솜씨 만이 교육과 지식의 척도가 아님을 보고 배운다. 이어질 <예언하는 새>와 <새 잡이 사내>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지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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