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반쪽
브릿 베넷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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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반쪽

브릿 베넷 (지음) |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열살이 채 되기도 전, 주말이면 밤늦게 방송되던 "주말의 명화"와 "토요명화"를 즐겨보곤 했다. 지금처럼 채널이 다양하지도 않았고 오로지 공중파 3사가 전부이던 시절, 성우의 더빙으로 방영되는 외화는 성우의 목소리가 아니면 외국 배우들을 구별해내기 힘들었다. 피부색으로만 구별할 수 있을 뿐 같은 인종의 같은 성별을 가진 그들은 어린 내 눈엔 모두 똑같아 보였다. 외국인을 쉽게 접하는 요즘 아이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외국인을 티비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 때는 내 친구들도 다 그랬었노라 말한다. 밝은 피부색을 가진 스텔라가 자신의 정체성을 위장한채 백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낼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인종이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그 맹점을 이용했던 것이 컸으리라. 백인으로 살고 싶었던 이유가 자유롭고 싶어서였다고 말하는 스텔라. 그러나 그녀는 그 거짓된 인생에서 얼만큼 자유로울 수 있었나?

밝은 피부색의 니그로들이 모여사는 맬러드에서조차도 유난히 밝은 피부색을 가졌던 스텔라는 맬러드 밖에서는 선택의 기회를 가져보지 못하는 유색인종일 뿐이었다. 맬러드에서는 너무 하얘서, 밖에서는 유색인종이어서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었던 외로움과 차별 그리고 자유롭고 싶다는 갈망이 더해져 촛농으로 붙인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거짓말로 이어붙인 새 인생을 시작했다. 남들과 다르다는 자각은 스스로를 향한 열등감도 만들어낸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데지라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남편 샘은 피부색에 대한 열등의식을 상대적으로 하얀 데지라를 소유하고 폭행하며 쏟아부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터리스였던 리스, 격주 토요일마다 여장을 하고 춤을 추는 배리. 이들에게도 남모를 비밀은 있었지만 자기자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며 끝없는 거짓말과 허무함에 아예 자신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스텔라. 그러나 그녀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고 싶지도 않다.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했던 워커 부부도 결국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당해야하는 차별에서 자유롭진 못했으니까. 그런 일들을 지켜보고 겪으며 스텔라는 더욱 더 견고하게 거짓말로 무장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백인이 되고 나서야 그녀가 선택하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의 폭이 넓어졌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리스를 사랑하는 주디, 데지라를 사랑하는 얼리 존슨를 보며 울컥 감동받기도 했다.

<사라진 반쪽>. 제목을 가만 들여다보며 생각해본다. 사라진 반쪽은 헤어져 살았던 쌍둥이를 얘기하는 아니라 스텔라의 정체성이 아닐까. 거짓된 반쪽을 살아내기 위해 진실된 반쪽이 사라진.

왜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인지 알겠다. 어후~! 이 감동 어쩔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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