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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가네시로 카즈키의 소설, 참 오랜만이다. 어찌나 반갑던지. '스피드'의 여고생 이야기 후로 그의 속도감 있는 글을 빨리 다시 만나보고 싶었으나, 어디 글이란 것이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는대로 나오는 것도 아니니. 그 아쉬움을 그의 작품을 다시 읽는 것으로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가 일본에서 드라마 SP대본을 쓰고 내가 좋아라하는 츠츠미 신이치와 오카다 준이치가 연기를 해서 꽤 좋은 반응을 얻었음은 알고 있었으며, 드라마도 재미있게 보았다. 하지만 영상은 영상이고, 글은 글! '영화처럼'의 작가 소개란의 몇권째 항상 같던 작가 소개에 한 줄 덧붙여진 이력마저 반가울 정도로 가네시로와의 재회는 나를 한껏 기대하게 만들었다.
'영화처럼'의 소제목을 이루고 있는 영화들 <태양은 가득히> <정무문> <프랭키와 자니><로마의 휴일>들은 사정은 다르나 모두 주인공들의 인생에 영향을 주었던 영화들이다. 인물들은 이 영화들에서 어린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용기와 힘을 얻기도 하며, 자아를 찾기도 한다. 한마디로 인물들의 '인생영화'인 것이다. 그래서 나도 생각해 보았다. '내인생의 영화'를 말이다. 한참을 생각하니 참 많은 영화를 보았으며 감동받은 영화도 꽤 많아 쉽게 '내인생의 영화'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내인생의 영화 1위'라는 영광스런(?) 자리를 차지할 만한 영화를 선정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엎치락 뒤치락 생각 끝에. '내인생의 영화'는 쿠보즈카 요스케 주연의 <GO>다. 뽑고 나니 공교롭게도 영화의 원작자가 가네시로 카즈키다. 여기서 밝혀두어야 할 점은 내가 가네시로의 팬이긴 하나 가네시로와 관계가 있는 것을 무턱대고 좋아하거나 죽고 못 사는 광팬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 <GO>가 1위를 차지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같이 본 사람'때문이다. 동창생이었던 '그'와 '그의 친구' 이렇게 셋이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사실 영화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에겐. 오직 나의 관심은 '그'에게 있었다. 동창생이자 짝사랑이자, 첫사랑이었던 '그'와 영화를 본다는 것에 나의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 <GO>를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주인공 쿠보즈카 요스케가 얼마나 멋있고, 스타일리쉬하고, 그의 눈빛이 여심을 흔들어 놓는다는 것을. 나는 금새 영화 속에 빠져들었고, '그'는 상영 내내 안절부절했었다. 영화에 심취한 나는 '그'의 태도가 못마땅하여 이럴거면 왜 영화를 보자고했는지하는 서운함마저도 들었었다. 하지만 '그'가 선약이 있어 영화를 볼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미안해 말하는 타이밍을 놓쳤을 뿐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가끔 책장에 꽂혀있는 <GO> DVD나 케이블 영화채널의 <GO>, 쿠보즈카의 새영화, 새드라마 소식을 접할 때면 '그'가 생각난다. 이제 '그'와 딱 한번 봤던 영화를 추억할 때면 영화의 선명한 화질과는 달리 그 때의 기억들이 안개 속의 있는 것처럼 흐릿할 뿐이지만.
가네시로 카즈키는 뛰어난 작가이다. 누구에게나 명작이든, 대작이든, 영화관에서 봤든, TV 영화채널에서 봤든 영화에 대한 추억 하나는 다 있음을 알고 독자들에게 이런 추억을 되새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가네시로는 영화의 힘을 알고 있다. 그리고 글의 힘도. 처음 <태양은 가득히>를 읽고 다음,다음, 다음편을 읽고 마지막 <사랑의 샘>을 읽을 때까지 그의 예전 이야기들과 분위기가 달라 당황스럽기도 했다. 유쾌발랄한 좀비스의 활약에 너무 푹 빠져있었던 탓인지 왠지 가네시로가 변한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가네시로는 가네시로이다. <사랑의 샘>은 딱 가네시로쉬하다. 가볍게 느껴지면서도 어느새 감동으로 몰아넣는 그의 능수능란함에 또 한번 감탄이 난다. 어찌됐든 다음에도 분발하여 좋은 글을 내놓는 가네시로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