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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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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적인 지리학자이자 사회이론가 데이비드 하비는 반자본주의를 위해 투쟁할 때 도시권 투쟁의 필요함을 주장한다. 우리는 현대사회가 신자유주의 파도에 휩쓸려 이미 너덜너덜해졌음을 매체를 통해서 심지어 경험으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불과 2년 전 우리는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을 통해 불평등한 사회에서 99% 사람들의 축적된 불만들이 어떻게 1%를 향해 발사되었는지 지켜보았다. 월스트리트의 소수 부자계급에 의해 도시가 사유화되자, 그들에게 부를 착취당한 다수는 금융권력이 민중을 다스리려하는 것을 더이상 볼 수 없어 도시의 공원과 광장과 거리를 점거하기 시작했다. 하비는 다수가 월스트리트 점령을 위해 소외된 사람, 모든 불평과 불만을 품을 사람들과 연대해야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한, 기업의 특권 축소를 위한, 공공재의 공적 공급과 자유로운 이용을 위한, 지식과 문화의 사유화 금지를 위한, 타자 약탈 자유의 박탈을 위한 기본원리를 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하비는 월스트리트점령운동이 일어난 것은 월스트리트가 부자계급에 의해 사유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불만과 불평에 가득찬 부자계급의 반대에 있는 다수들이 도시 공유화하는 운동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럼 하비는 부자계급에 의한 월스트리트 사유화에 대한  주장 근거와 사유화된 도시를 되찾는 방법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하비는 서문 르페브르의 구상에서 시작해 네 장에 걸쳐 도시의 원래 성격과 도시가 자본주의 사회를 통과하면서 어떻게 변모해왔는지와 도시의 사유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또 분명하게 도시가 공유재이며 개인에 치우친 공유재가 아님을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며 설명한다.

자본주의의 목적은 잉여생산에 있으며 잉여생산물을 흡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도시공간의 확보이다.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시장 변경, 해외시장 개척, 자본 수출 등으로 이윤 발생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잉여확대를 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해왔고, 도시화는 전지구적으로 이루어졌다. 도시형성과정은 지구 어느곳에서든 찾을 수 있다. 더불어 도시화로 인해 농지를 잃고 가난해진 사람들도 어디에서든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바람이 일면서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사적소유권과 이윤원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그 어떤 권리개념보다 위에게 놓이게 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자본가들의 최대 이윤을 위해 재편화된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들, 비특권자들, 정치권력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최전방에서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때가 바로 "다양한 사회운동이 도시권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며, 도시권을 "도시를 우리의 마음 속 바람에 가깝게 바꿔나가고 재창조할 권리이다. 더불어 도시권은 개인적 권리가 아닌 집단적 권리이다."로 정의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에 그치지 않고 공유재 성격의 도시를 바탕으로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권의 투쟁을 주장한다. 도시의 공기가 인간의 삶을 향기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도시권박탈로 인해 파리 코뮌 사태같은 반란과 자본주의적 개발업자와 국가에 반대되는 도시생활을 모색하는 운동이 일어난 것처럼, 과거보다 더 끔찍한 불균형 상태에 반란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거보다 복잡해진 지금에 반란이 일어난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반란의 조짐은 항상 있으나 대항적 사회운동은 긴밀한 협력관계가 없다. 만약 대항적 사회운동이 뭉친다면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도 생각해 보아야한다.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를 조직화할 필요가 있지만 진지한 고민이 없었고, 성공적인 역사적 사실이 없었기 때문에 정답이란 없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전통적 노동조합노선에 따라 조직하는 것, 지역 단체의 연합체를 결성하는 것, 도시와 농촌의 관계를 정치화하는 것, 문화와 집단적 기억의 힘을 동원하는 것, 이 모든 과제는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를 되찾으려할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데 유용한 모델이 된다."

하비의 주장대로 여전히 신자유적사고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도시권의 부활로 자본주의와의 투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래도 한발 내딛는 것이 멈춰있는 것보다 두발 앞서는 일이 되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갖게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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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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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시작하기 전에 제목을 통해 내용을 미리 짐작해 보았다. 나의 상식으로 제목 '투명사회'에 대한 섣부른 짐작과 기대는 '바람직한'이란 사전적 의미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몇 장을 읽으면서 이내 '작가의 언어'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고, 새롭게 정의된 의미들을 곱씹어 가며 읽어야했기 때문에 꽤나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먼저 나와 같은 사람들 즉, '투명'을 긍정, 바람직함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을 일깨운다. 간단하게 '투명'은 결코 '옳음'이 아니라고 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 즉, 형체를 가지고 있든,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든, 이 모든 것들이 투명해진다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고 여기고 실제로 믿게 된다. 그리고 바로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이 공개되어 투명해지길 바라고, 공개된 것들을 공유하는데 있어 누구에게 뒤처지지 않길 원하며, 가능한한 선두에 서고 싶은 욕망과 경쟁심이 생기는 지경에 이른다.

문제는 사람들의 정의감과 경쟁심, 그리고 기술의 발달일지도 모르겠다. 앞서겠다는 욕망과 정의롭든 혹은 그 반대든 '알리고자'하는 그리고 '알고싶은' 각각의 마음들이 발달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만나 수많은 정보를 생산한다. 하지만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가 생산되었고, 결국 '정보'는 사람들에게 선택되기 위해 강한 이미지로 무장하게 되었으며,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들 역시 '정보'의 의미보다는 '외양'을 중시하게 되었다. 투명해지길 바랬던 기대들이 모여 '전시'에 이르게 한 것이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사회에서 정보의 공급자와 수요자의 구분은 모호해졌다. 각 분야의 '대표'가 무색해질 만큼 누구나 '대표'가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정보들을 공개할 의지를 보이고, 때로는 의지와 상관없이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어 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게 우리는 파놉티콘의 구성원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파놉티콘에서는 수감자와 감시자의 나눔조차도 없다. 모든 구성원들이 이 두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 가린 것 없이 모두 보이는 '투명'에 대한 인식때문에 신뢰가 쌓일 수 있다는 오해는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가려진 것에 대한 미학'을 생각하게 된다. 숨김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전환의 필요와 작가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부정성' 즉 '다름'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전파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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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T.S 엘리어트는 시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분명 사월은 모든 것들을 깨우고 숨을 불어넣어주는 찬란한 계절이건만,

오늘 사월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잔임함으로밖에 기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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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넘겨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읽고 싶은 책.

 

나를 돌아본다면

태어나 거의 100년 가까운 생을 유지한 후에 나를 돌아본다고 할 때 내 인생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자신있게 '내 인생은 이랬다. 혹은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버트런드 러셀은 스스로 '열정적'이었다고,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추구, 인간에 대한 연민' 세가지 열정이 자신의 인생을 지배했다고 말했단다.

지금까지 어떤 대상에게 열정이라고 말할 정도로 뜨거웠던 적이 없었던 인생이었기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러셀의 삶을 엿보고 싶다. 특히 그의 필체로 말이다.

 

 

 

 

 

자유인가, 죄악인가

자신에게 칼끝을 겨눈 표지의 여성이 궁금하다. 예전에 동물과 인간을 비교하면서 인간이 동물과 달리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다면, 생명유지에 대한 선택을 스스로 할 수 것이다라는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이 주장에 대해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자살의 역사>는 중세시대로 돌아간다. 중세의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단순히 과거 사람들의 죽은 생각인지, 아니면 현재에도 유효한지 궁금하다.

 

 

 

 

 

 

요즘 세상에

사실 무슨무슨 '주의'에 대해서 깊이있게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물며 공부라는 것을 했겠는가? 하지만 항상 철학, 클래식, 고전 등등. 뭐 이러한 것들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열망이 있는 것처럼 '사회주의'도 그런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섣불리 다가갈 수 없는 아우라같은 것이 존재해, 지금까지 이러고 있다. 그래도 리스트에 넣어본다.

 

 

 

 

 

 

 

그냥 끌리는데...

표지의 2008년~2013년 92개 판결에 확 동했다. 사회 전반의 일들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위의 기간에는 개인적으로 관심뿐만 아니라 참여도 서슴지 않았던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너, 좀 궁금하다 

일때문에 중국역사에 대해서 본의아니게 공부를 좀 했다. 전공자가 아니었기에 중국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고,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알아가야 했기 때문에 중국은 좀 지긋지긋한 면이 없지 않다. 반면 중국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 무관심했던 것을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다. 지금 느끼는 중국은 무서운 나라, 대단한 나라, 어마무시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이다. 그런데 여전히 중국을 깔보는 듯한 우리나라를 보면 이러다 큰 코 다칠 날이 올텐데라는 어쭙잖은 애국심이 들기도 한다. 절대 애국심은 아니고 그저 중국이란 괴물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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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MB
변상욱 지음 / 한언출판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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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면의 추천사처럼 MB를 추억하기란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MB 실정에 대한 비판이 신랄하면서도, 젠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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