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평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중국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중국에는 역사적으로 이름난  학자들이 많다. 고금의 공자, 맹자, 그리고 수많은 제가백가부터 현대의 루쉰까지. 우리나라는 어떤가?'  '물론, 많다! 우리나라에는 음…'  그땐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물론'에 힘을 빡 주고 바로 줄줄 말할려고 했는데, 막히고 말았다. 바로 답을 하지 못한 변명을 대자면, 조선시대를 빼고 고금의 우리나라 학자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좀 있은 후 생각났지만, 이미 상대의 관심은 사라진 후였다. 나의 무지와 민첩하지 못한 반응이 아쉬워선지 이때 기억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앞의 일이 있은 후 언젠가 또 이런 질문을 받으면 꼭 명단에 넣어야 할 학자로 생각해 둔 사람이 있다. 바로 '정약용'이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약용에 대한 정보는 희박하다.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의 저자, 정조대왕의 충실한 신하, 그리고 과거 신문에서 봤던 정약용 강진 유배시절 아내의 색바랜 치마로 서첩을 만든 일 등. 재미로 덧붙이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왔던 이미지 정도로, 막연하게 나는 정약용에 대한 나만의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또한 정약용의 시 묶음집,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학술적이지만 어렵지 않은 정약용 평전에 대한 갈망이 생기기도 했다. 특히 유홍준의 <완당평전(2002)>을 접한 후에는 왜 정약용에 대한 이런 평전은 없나 싶은 질투와 아쉬움이 크기도 했었다. 그런데 드디어 정약용 평전이 세상에 나왔다!

 

 '평전'에 대해서 좋았던 기억은 별로 가지고 있지 않다. 안중근 평전은 글보다 그림이 많았던 기억이, 베토벤 평전은 균형을 잃었던 것 같고, 완당 평전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어려웠었다. 하지만 그래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머리 숙이고 들어가야지 어쩌겠는가? 평전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으나, 그래도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다산 정약용 평전>은 장장 600쪽이 넘는 종이에 정약용의 인생과 평가를 담았다. 그 시작은 정약용의 암행어사로 직무를 수행할 때이고, 학문을 익히던 시절, 든든한 후원자 정조대왕과 함께 한 관료생활,  18년 간의 유배, 그리고 그 끝은 그의 죽음과 후세들의 평가로 맺어진다. 저자는 슬픔과 기쁨을 별개로 나누지 않으며, 다산의 삶도 마찬가지였음을 강조한다. 저자가 4개로 나눈 다산의 삶에서 내내 억울함과 시기심이 느껴진다. 전자는 다산의 입장이요, 후자는 다산 정적의 입장이다. 절대권력자의 무한한 애정을 받았던 다산은 천주교도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장기를 거쳐 강진으로 유배를 떠났다. 저자는 많은 부분을 할애하면서 다산이 천주교도가 아니었음을 강하게 변호해주고 있다. 다산이 정조대왕에게 지어 올렸다는 자기변호 상소는 정조대왕과 당대사람들에게 그 내용이 합리적이며 문장이 수려하다는 칭찬까지 받았다. 저자는 마치 다산이 된것처럼 여러번 다산이 천주교도가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여기서 그 일로 18년간 유배생활을 한 다산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기때문에 객관성과 균형을 잃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책은 관리로서 다산, 학자로서 다산,  개인으로서의 다산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의 시 또한 많이 싣고있다. 다산은 시성 두보를 연상케하는 애민의 시를 다수 지었다. 다산은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을 안타깝게 여기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자신의 시관을 확고히 했으며,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경세학자로서 그것을 실천해 보이는 삶을 살았다. <다산정약용평전>의 다산 시들은 민생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천하고 힘없는 백성들이지만, 산처럼 높고 무거운 것 또한 백성들이다."같은 다산의 민본중심사상을 강조한다. 이또한 현재 경시되고 있는 국민주권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기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리일까. 600쪽이 넘는 분량을 읽으면서 가장 흠뻑 빠졌던 다산의 매력이다. 백성들(국민들)을 높고 무겁게 여길 줄 알았던 다산이 많은 저서를 남긴, 문장을 잘 쓸 줄 알았던 다산보다 더욱 높아 보인다.

 

최근 종영한 KBS대하드라마 <정도전>의 마지막회에서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임금의 역할에 대해서 말했다.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다. 임금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이다." 그리고 몇달 전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은 말했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이들과 때를 같이 해서인가 다산의 민본사상에 더욱 애착이 가며, 18년간의 유배생활 대신 정치가로서 다산이 자신의 능력을 펼쳤다면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힘내라 브론토 사우루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브론토사우루스'라…… 생소한 단어이지만, 단어 '사우루스'와 공룡 두 마리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책 표지 위를 걷고 있는 모습으로 '공룡'에 관한 글인가 싶다. 또 책의 실물을 보자마자 드는 무게감은 이 책 만만치 않겠구나 싶은 생각에 소심한 겁까지 먹고 만다. 이럴 때 쉽게 가는 방법은 옮긴이의 글을 살짝 엿보는 방법! 옮긴이의 후기에 의하면 스티븐 제이 굴드는 과학자이지만 그의 글은 '경계짓기'와 '성찰하기'로 요약할 수 있겠단다. 여기서 한번 용기를 얻고, 시작해 본다.

 

스티븐 제이 굴드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서문의 "자연은 진기한 진화적 발명품으로 태어난 늦둥이 포유류의 뒤늦은 지혜를 별반 괘념치 않을 만큼 방대한 시간적 · 공간적 범위에 걸친 장엄한 실체다."라는 문구를 만났을 때, 이 책이 고행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 한마디에 굴드가 꽤 위트있는 작가이자 과학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처음에 먹었던 겁은 날려버려야겠다. 일반인들을 배려(?)한 그의 소재 선택과 글쓰기 작업은 과학에서 시작해서 사회·역사·문화로 귀결되고, 그 역도 가능케 하는 신묘함을 선보인다. 어떤 글에서는 굴드가 과학자가 되지 않았다면, 시트콤 작가가 되었어도 성공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웃음이 나기도 했었다. 굴드는 플라밍고에 대한 세이어의 이론을 반박하는 글에서 "나는 종종 세이어가 자연 속에 있는 보호색의 배타성에 집착하듯, 터무니없는 통일성이나 잘못된 단순화에 지나치게 전념하는 과학자들에 대한 글을 썼다."라고 고백했다.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굴드의 글은 시트콤같은 혹은 체홉의 단편에서 느낄 수 있는 유쾌함과 통쾌함을 느끼곤 했다.

 

또 굴드의 글을 읽다 보면 일반인들이 쉽게 느꼈을 궁금증(과학자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혹은 그냥 생물에 붙여진 명칭만 읽었을 뿐인데 말인지 뭔지 헷갈리는 경우, 일반인들이 봤을 때 불필요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침착하면서도 논리있게 설명해 줌으로써 일반인들을 이해를 돕는다. "(명명에 대해서) 이런 논쟁은 비전문가들에게는 다소 우스꽝스럽게 비칠 것이다. 아마도 분류학이 과학이라기보다 말장난처럼 느껴질 것이다. …… 이 논쟁의 목적은 쓸데없는 말들을 헤쳐 나가 안정되고 실제적인 결정에 도달하고, 계속해서 실체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과학자로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들을 긁어주는 모습에서 과학을 다른 분야와 구분짓지 않으려는 굴드의 노력이 엿보이기도 한다.

 

'공룡광풍'에서는 지금은 제대로 발음하기도 어려운 공룡의 이름들을 어린 시절에는 어떻게 줄줄이 외웠는지 궁금한 지경이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함께 공감해준다. "공룡에 대한 관심은 유년시절 잠깐씩 거쳐가는 짧은 삽화적 사건들 중 하나가 되고 있다." 하지만 굴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년시절의 호기심과 관심을 지속시켜 줄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도 잊지 않는 꼼꼼함을 발휘한다. 단순히 관심유도용 글쓰기에 머물지 않고 개선 방향도 함께 제시해 준다. 여기서 옮긴이가 정의한 '경계짓기, 성찰하기'라는 굴드의 글쓰기 요약을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어렵다, 전문적이다.'라는 부담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굴드의 글들을 읽다보면 이 과학과 비과학으로 구분지었던 현상들에 대한 경계가 점차 허물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굴드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자연에 비하면 인간들이 하는 짓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이겠는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란의 도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세계적인 지리학자이자 사회이론가 데이비드 하비는 반자본주의를 위해 투쟁할 때 도시권 투쟁의 필요함을 주장한다. 우리는 현대사회가 신자유주의 파도에 휩쓸려 이미 너덜너덜해졌음을 매체를 통해서 심지어 경험으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불과 2년 전 우리는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을 통해 불평등한 사회에서 99% 사람들의 축적된 불만들이 어떻게 1%를 향해 발사되었는지 지켜보았다. 월스트리트의 소수 부자계급에 의해 도시가 사유화되자, 그들에게 부를 착취당한 다수는 금융권력이 민중을 다스리려하는 것을 더이상 볼 수 없어 도시의 공원과 광장과 거리를 점거하기 시작했다. 하비는 다수가 월스트리트 점령을 위해 소외된 사람, 모든 불평과 불만을 품을 사람들과 연대해야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한, 기업의 특권 축소를 위한, 공공재의 공적 공급과 자유로운 이용을 위한, 지식과 문화의 사유화 금지를 위한, 타자 약탈 자유의 박탈을 위한 기본원리를 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하비는 월스트리트점령운동이 일어난 것은 월스트리트가 부자계급에 의해 사유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불만과 불평에 가득찬 부자계급의 반대에 있는 다수들이 도시 공유화하는 운동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럼 하비는 부자계급에 의한 월스트리트 사유화에 대한  주장 근거와 사유화된 도시를 되찾는 방법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하비는 서문 르페브르의 구상에서 시작해 네 장에 걸쳐 도시의 원래 성격과 도시가 자본주의 사회를 통과하면서 어떻게 변모해왔는지와 도시의 사유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또 분명하게 도시가 공유재이며 개인에 치우친 공유재가 아님을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며 설명한다.

자본주의의 목적은 잉여생산에 있으며 잉여생산물을 흡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도시공간의 확보이다. 따라서 자본가는 노동시장 변경, 해외시장 개척, 자본 수출 등으로 이윤 발생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잉여확대를 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해왔고, 도시화는 전지구적으로 이루어졌다. 도시형성과정은 지구 어느곳에서든 찾을 수 있다. 더불어 도시화로 인해 농지를 잃고 가난해진 사람들도 어디에서든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바람이 일면서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사적소유권과 이윤원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그 어떤 권리개념보다 위에게 놓이게 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자본가들의 최대 이윤을 위해 재편화된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들, 비특권자들, 정치권력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최전방에서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때가 바로 "다양한 사회운동이 도시권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며, 도시권을 "도시를 우리의 마음 속 바람에 가깝게 바꿔나가고 재창조할 권리이다. 더불어 도시권은 개인적 권리가 아닌 집단적 권리이다."로 정의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에 그치지 않고 공유재 성격의 도시를 바탕으로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권의 투쟁을 주장한다. 도시의 공기가 인간의 삶을 향기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도시권박탈로 인해 파리 코뮌 사태같은 반란과 자본주의적 개발업자와 국가에 반대되는 도시생활을 모색하는 운동이 일어난 것처럼, 과거보다 더 끔찍한 불균형 상태에 반란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거보다 복잡해진 지금에 반란이 일어난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반란의 조짐은 항상 있으나 대항적 사회운동은 긴밀한 협력관계가 없다. 만약 대항적 사회운동이 뭉친다면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도 생각해 보아야한다.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를 조직화할 필요가 있지만 진지한 고민이 없었고, 성공적인 역사적 사실이 없었기 때문에 정답이란 없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를 전통적 노동조합노선에 따라 조직하는 것, 지역 단체의 연합체를 결성하는 것, 도시와 농촌의 관계를 정치화하는 것, 문화와 집단적 기억의 힘을 동원하는 것, 이 모든 과제는 반자본주의 투쟁을 위해 도시를 되찾으려할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데 유용한 모델이 된다."

하비의 주장대로 여전히 신자유적사고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도시권의 부활로 자본주의와의 투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래도 한발 내딛는 것이 멈춰있는 것보다 두발 앞서는 일이 되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갖게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투명사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 장을 시작하기 전에 제목을 통해 내용을 미리 짐작해 보았다. 나의 상식으로 제목 '투명사회'에 대한 섣부른 짐작과 기대는 '바람직한'이란 사전적 의미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몇 장을 읽으면서 이내 '작가의 언어'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고, 새롭게 정의된 의미들을 곱씹어 가며 읽어야했기 때문에 꽤나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먼저 나와 같은 사람들 즉, '투명'을 긍정, 바람직함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을 일깨운다. 간단하게 '투명'은 결코 '옳음'이 아니라고 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 즉, 형체를 가지고 있든,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든, 이 모든 것들이 투명해진다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고 여기고 실제로 믿게 된다. 그리고 바로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이 공개되어 투명해지길 바라고, 공개된 것들을 공유하는데 있어 누구에게 뒤처지지 않길 원하며, 가능한한 선두에 서고 싶은 욕망과 경쟁심이 생기는 지경에 이른다.

문제는 사람들의 정의감과 경쟁심, 그리고 기술의 발달일지도 모르겠다. 앞서겠다는 욕망과 정의롭든 혹은 그 반대든 '알리고자'하는 그리고 '알고싶은' 각각의 마음들이 발달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만나 수많은 정보를 생산한다. 하지만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가 생산되었고, 결국 '정보'는 사람들에게 선택되기 위해 강한 이미지로 무장하게 되었으며, 정보를 생산하는 사람들 역시 '정보'의 의미보다는 '외양'을 중시하게 되었다. 투명해지길 바랬던 기대들이 모여 '전시'에 이르게 한 것이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사회에서 정보의 공급자와 수요자의 구분은 모호해졌다. 각 분야의 '대표'가 무색해질 만큼 누구나 '대표'가 될 수 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정보들을 공개할 의지를 보이고, 때로는 의지와 상관없이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어 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게 우리는 파놉티콘의 구성원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파놉티콘에서는 수감자와 감시자의 나눔조차도 없다. 모든 구성원들이 이 두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 가린 것 없이 모두 보이는 '투명'에 대한 인식때문에 신뢰가 쌓일 수 있다는 오해는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가려진 것에 대한 미학'을 생각하게 된다. 숨김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전환의 필요와 작가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부정성' 즉 '다름'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전파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MB
변상욱 지음 / 한언출판사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노종면의 추천사처럼 MB를 추억하기란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MB 실정에 대한 비판이 신랄하면서도, 젠틀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