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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군대의 장군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유정희 옮김 / 문학세계사 / 1994년 10월
평점 :
품절


책의 표지가 맘에 들었다. 책 표지엔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를 단적을 극찬하고 있는 뉴스메이커의 글이 소개되어 있다.

'전세계 40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충격과 감동을 던진 <죽은 군대의 장군>의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 지난해 로이터 통신은 알바니아의 공산 통치를 종식시키는데 앞장선 소설가 이스마일 카다레를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보고, 발표 전날 그의 고향 타라나발의 인터뷰 기사까지 전세계로 타전했다. 지금까지 연 3년간 프랑스가 공식적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밀었던 작가가 탈락되자 프랑스 언론은 일제히 노벨상 심사위원을 비난하였다.'

이 글에서 물론 자존심에 금이 간 문화 선진국 프랑스인들의 억지스러움은 있으나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맘으로 책장을 쭉 넘기니 글의 분량이 장난이 아니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장군'을 만나보기로 한다.

제목처럼 이탈리아의 한 장군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다른 장군처럼 젊은 군인들 앞에서 명령을 내리는 장군이 아니다. 그의 부하는 이미 2차대전 때 알바니아 전쟁터에서 죽은 유골들이다. 장군의 신성한 임무는 무덤을 발굴하여 유골들을 그들의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것이다. 장군은 알바니아를 침략했던 적국의 장군임에도 너무도 당당하게 알바니아 산천을 휘집고 다니며 여기저기 땅을 파내 자신의 죽은 부하들을 집결시킨다.

이상한 점은 알바니아인들이다. 알바니아는 지리적인 조건때문데 무수히 많은 적의 침략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한 침략, 격퇴를 반복하면서 알바니아인들에겐 관대함만 늘었단말인가? 자신들의 아들, 딸, 고향이 적국한테 그렇게 짓밟히고 그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적국이었던 나라의 장군에게 전국의 땅을 파헤칠 권리를 준다. 비록 소설이지만 원망이 앞선다.

장군은 알바니아인들의 도발을 걱정하지만 절대 도발은 일어나지 않는다. 읽는 동안 우리나라와 일본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비록 일본이 우리나라에 장군의 나라같은 요구는 한 적은 없으나 만약 일본이 그런 요구를 하고 양국의 외교와 평화를 위해서 우리나라가 허락한다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장군이 무덤 발굴을 하는 내내 날씨는 항상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잔뜩 찌푸린 흐린 날이거나 눈이 내려 항상 질퍽질퍽한 진흙탕을 만들어낸다. 그 진흙탕에 장군은 그의 군화를 담그고 그 우울하고 신성한 작업에서 빨리 도망치길 원한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 일을 끝내지 않으면 결코 그 진흙탕에서 군화를 빼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인간의 추악하고 속도 제어가 되지 않는 욕심으로 인해 자신들의 아들, 딸을 그 더러운 진흙탕 속, 전쟁터로 내몰았던 죄를 아들, 딸들의 유골을 고국으로 돌려보낸다고 해서 그 아픔들이 씻기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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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나막신 우리문고 1
권정생 지음 / 우리교육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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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강아지 똥>..... 작가 권정생님을 알게 된 계기다. '권정생'이란 이름이 박혀 있어 읽고자 했다. 읽기 전엔 단순히 힘든 세월을 살았던 아이들의 성장기 정도일꺼라고 짧은 짐작을 했다. 예상대로 나의 짐작은 어김없이 빗나간다.

때는 일제강점기. 장소는 가난의 도쿄 혼마찌. 조선 아이들 준이, 분이, 용이.. 그리고 일본 아이들 하나꼬, 에이꼬, 이쯔꼬가 같이 산다. 저녁에 일본아이들이 조선아이들을 조선인이라고 놀려도 그 다음날 아침엔 모두 한덩어리가 되어 노는 그들은 전쟁에서 일본이 이겨야하는지 반대로 일본이 져아하는지엔 관심이 없다. 모두 각자에겐 넉넉치 못하고 그 작은 가슴 한 켯에 가난, 배고픔, 학대, 상실, 이별 등의 상처를 지닌 채 남을 때려눕히고 나 혼자만 잘 살자는 어른들의 비뚤어진 마음의 공중 폭격을 한 몸으로 받아낸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준이와 하나꼬는 움에서 마주 앉아 까까중 인형을 만들어 노래를 부른다. '까까머리 도련님 까까머리 도련님 내일은 해가 반짝 나게 하셔요. 파랗게 개었던 어느 날처럼 맑아지면 내 은방울을 드리겠어요....... 우리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면 맛나는 사탕물을 드리겠어요'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처럼 폭탄이 내린 그후. 아이들은 비가 멈추고 폭탄이 멈추고 제발 내일은 해가 반짝, 희망이 반짝, 평화가 반짝 나길 바라며 기꺼이 '내 은방울'을 '맛나는 사탕물'을 드리겠다고 노래한다.

한없이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비록 그 시절 아이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던 어른은 아니지만 지금 현재 '어른'으로 커가는 나는 남을 도우며 서로 잘 살자며 올바른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이인자 선생님께서 보시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기에 괜찮게 쓴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착각이었습니다. 지금 다시 책을 내기 위해 읽어보니 얼굴이 활활 달아오를 만큼 부끄러웠습니다. 왜 이렇게밖에 못 썼나, 너무 예쁘게만 쓰려다 보니 주인공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나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중략) 이렇게 서툰 글도 있었구나 하고 그걸 감안하셔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작가의 말 中

이런 좋은 글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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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한 이치
코니 팔멘 지음, 이계숙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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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데뷔작이다. 데뷔작품으로 30만 네덜란드 독자를 사로잡았으며 그해 '올해의 유럽소설'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찬사와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 작품은 과연 어떨까. 기대와 의구심을 동시에 갖고 첫 장을 넘긴다.

여대생 마리. 점성술사-밀 반 에이스던, 간질병 환자-다니엘 달마이어, 철학자-귀도 더 베터링크, 신부-클레멘스 브란트, 물리학자-후고 모어란트, 예술가-루카스 아스베이크, 정신과의사- 간질병 환자 아버지 를 만나 그들에게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며 운명, 신체, 지식, 성, 사랑, 예술을 배운다. 7명의 남자를 만나면서 마리는 철학적, 문학적, 감성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 자신의 정체성에 도달한다.

책 전체에서 '철학'을 만날 수 있다. 주인공의 전공이 철학이기에 작가의 전공이 철학이기에 독자도 철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마리의 대사에서 혹은 7명의 남자들 대사에서, 그들의 머리에 흐르는 생각 속에서 너무 쉽게 접할 수 있고 또 너무 그것들이 많다.

철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이 책을 읽고 재미를 느낄 수 있겠으나 거의 300 페이지 가깝게 여기저기 널려있는 방대한 글자들이 쏟아내는 보이지 않은 무언가에 대한 추적에 기가 눌리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마리는 7명의 남자를 만나서 점차적으로 발견해 내고 깨달아 가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첫번재 남자에게서 즉, 일곱번째 남자까지 만나지 않고서도 마리가 깨달은 자기 정체성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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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토비아스.
'내 인생에 대해 말하자면 몇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린이 왔다가 다시 떠났다고.'

토비아스 이자 곧 상도르
창녀와 초등학교 선생님의 아들.
그리고 아버지와 엄마가 한 몸처럼 포개져 있을 때 칼 끝이 엄마 내장을 비집고 들어가길 바라며 아버지 등에 칼을 꽂고 망명자의 길을 걷는다. 이복 여동생 카롤린을 사랑의 여인 '린'이라고 명칭하고 린이 찾아오길 꿈꾸며 살아간다. 상도르는 '린'이 있어, '꿈'을 꿀 수 있어 살아갈 수 있다.

린이 그의 눈 앞에 나타났을 때 상도르는 그녀의 사랑은 물론 가장 이상적인 형제간의 결합 '결혼'도 할 수 있을 거라 꿈꾼 다. 하지만 린은 상도르를 사랑하면서도 그녀의 남편을 따라 떠나려하고 상도르는 또 한번 살인을 시도하지만 그것마저도 실패로 끝난다.

결국 살인조차도 할 수 없는 한 없이 무기력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 상도르는 마지막 선택으로 자살을 택한다. 즉, '꿈'의 포기. '현실' 도착이 그것이다.

처음부터 외롭고 소외당하는 존재로 태어나 자신이 세상에 태어났고 숨쉬며 살아가고 있음을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알려하는 사람이 없다고 느꼈을 때 그 사람이 살아가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비록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한가지 방법은 '꿈'이 아닐까? 사람들이 소원하는 꿈을 내가 이루어낸다면 그땐 사람들이 날 알고 알아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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