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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누군가는 항상 말했다. 아버지가 아팠었다고. 하지만 난, 기억하지 못한다. 어릴 적 아버지는 돼지김치찌개을 기가 막히게 끓여주었고. 학교에 간 언니들을 마냥 기다리며 심심해 하는 어린 딸의 소꿉친구가 되었주었다. 나의 등을 힘껏 밀어줘 나의 썰매가 저만치 미끄러져가게 해주었으며, 언제나 그 거친 손으로 나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래서 난 모든 아비는, 세상의 모든 아비는 다 그런 줄만 알았다. 아비는 항상 내곁에 있어주었기에 아비는 존재하지만 곁에 없는 아비는 생각치 못했다. 여기엔 존재하나 곁에 없는 아비가 많다. 여자에게도, 소년에게도, 여고생에게도, 그에게도. 그들의 아비는 세상의 어디에 존재하는가. 아비 없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 아비가 있어 세상에 '나'가 생겼음에도 현재의 '나'에겐 그때의 아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비단 현재의 '나'에게 '아비'만 존재하지 않는가. 결코 그렇지도 않는 것 같다. 세상에 존재하지만 있는 것 같지 않고, '나'가 세상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가끔 그 존재감이 너무 뚜렷하고 그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져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으니 말이다. 이 아이러니를 현대의 우리는 제정신으로 이고 살 수나 있을런지. 반쯤 미치지 않고서야 존재의 유무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이겨내지 못할 것 같다. 반쯤 미친 세상에 반쯤 미친 상태로 살아가고, 확신하는 존재에 대해 의심하며, 나의 존재에 대해 가끔 머리를 갸우뚱해 보는 것이 어쩌면 현명한 살이의 대처가 아닐런지. 어릴 적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나의 아비는 진짜였던가. 자, 의문과 불확실한 삶의 시작이 바로 이것이다. 혼란스럽다면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