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부카드네자르 와 키루스2세

신바빌로니아는 나보폴라사르의 아들 네부카드네자르 2세(Nebuchadnezzar II, 재위 기원전 605~기원전 562) 때 전성기를 맞이했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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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기원전 587년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던 유다 왕국(Kingdom of Judah, 기원전 930~기원전 587)의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와 노역시킨 왕으로 유명하다.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잡혀있던 이 시기(기원전 587~기원전 538)를 ‘바빌론 유수(Babylonian captivity)’라고 한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 때 수도 바빌론은 옛 명성을 되찾았고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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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폭압과 차별을 앞세운 신바빌로니아의 운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사망하고 단 20여 년 만인 기원전 539년에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키루스 2세에 의해 정복되고 말았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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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 2세의 바빌론 함락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치하에 들어갔고, 마르두크 신전이나 공중정원 같은 신바빌로니아 문명의 정수들도 파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만 키루스 2세는 50여 년 전에 바빌론으로 끌려와 노역하던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용함으로써 성경이나 유럽 역사서에 성인으로 기록되는 영광을 얻었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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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는 중국이 아니다. 1949년 이후 중국 공산당이 강제 점령하여 중국 땅에 편입시킨 뒤 지금껏 지배하고 있다. 중국은 위구르 지역을 새롭게 빼앗은 땅이라 해서 신장(新彊)이라 부른다. 그러나 위구르 사람들은 자신의 땅을 투르키스탄으로 부른다. ‘튀르크 인들의 땅’이라는 의미다. -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이희수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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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구르 인들 대부분은 새로운 세상을 찾아 서쪽으로 이동하여 후일 셀주크 터키와 오스만 터키 제국을 건설한다. 중앙아시아 서쪽 옛 땅에 뿌리를 내린 위구르 사람들이 지금의 동투르키스탄(신장)에 살고 있는 위구르 인들이다. 동투르키스탄의 위구르 인들은 20세기까지도 엄연한 독립 국가를 이루었다.
1759년부터 동투르키스탄 일대를 장악한 청나라와 전쟁을 벌여 승리한 야쿱 베이는 1864년에 카슈가르 국가를 건국했다. 카슈가르 국가는 오스만 제국은 물론, 러시아와 영국을 상대로 화려한 외교를 펼치면서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카슈가르의 운명은 얼마 가지 못했다. 러시아의 남하 위협에 영국이 청나라 편을 들어주면서 카슈가르는 다시 중국의 땅이 되었다. 1844년 중국은 이 지역을 ‘튀르크 인들의 땅’인 투르키스탄이 아니라 ‘새로운 강역’인 신장(新彊)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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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한 저항을 계속한 위구르 인들은 1933년과 1944년 두 차례에 걸쳐 독립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1933~1934년 사이에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1944~1949년 사이에는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이 각각 건설되었다. 그렇지만 거대한 중국의 집요한 공격에 결국 위구르 인들의 저항은 한계에 부닥쳤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개입된 것으로 보이는 비행기 폭파 테러로 대통령을 포함한 동투르키스탄 정부 지도자들이 한꺼번에 희생되면서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은 중국에 귀속되고 말았다.


동시에 투르키스탄 서쪽은 일찌감치 러시아의 영토가 되면서 수천 년간 그 땅의 주인으로 살아온 튀르크 민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강대국의 분열과 동화 정책 속에 암흑의 시기를 살아야 했다.


1990년 구소련이 붕괴되자 1991년을 기점으로 서투르키스탄의 튀르크 족들은 각각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독립을 쟁취했지만,

중국 치하의 위구르 인들만은 55개 소수 민족의 하나로 아직도 고통 속에 살고 있다. -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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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미르 문제는 내부의 이슬람-힌두 간 종교적 갈등, 인도-파키스탄 양국의 국내 정치, 파키스탄을 지지하는 미국과 인도를 지원하는 러시아, 카슈미르 영토 일부를 점령하고 있는 이웃 중국 등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물려 오늘까지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해 왔다. -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이희수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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캅카스

캅카스 지역은 그야말로 인종·언어·종교의 전시장이라고 불릴 만하다. 우리나라 강원도보다도 작은 15,500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한 이 지역에는 50여 개의 민족이 40여 개의 언어를 구사하며 이슬람, 그리스도교(개신교, 아르메니아 정교, 그리스 정교), 유대교 및 토속 종교를 믿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으로도 흑해와 카스피 해 사이에 위치해 있고, 유라시아와 중동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어서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이희수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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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인종청소의 수습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1994년 보스니아가 크로아티아와 군사 동맹을 맺고 이란이 미국의 암묵적 용인 아래 보스니아 무슬림들에게 무기를 지원하면서 전세는 역전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1995년 3월 보스니아 사태 해결을 위해 새로운 제안을 하였다. 세르비아계를 암묵적으로 지원하고 있던 러시아는 세르비아 공화국이 보스니아 이슬람 정부와 크로아티아 정부를 승인하는 대가로 세르비아에 대한 유엔의 제재를 해제하자는 것이었다.
강 -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이희수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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