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교,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팥죽 먹는 동지

마니교 신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자기가 심취했고 공부해 왔던 마니교의 교리를 가지고 기독교 교리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정립하게 된다. 천국과 지옥, 이생과 전생, 천사와 사탄, 최고신에 대항하는 악신 등 조로아스터 신앙의 이원론적인 변증법이 기독교 교리 완성에 작동했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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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교는 선하고 영적인 빛의 세계와 악하고 물질적인 어둠의 세계 간 투쟁을 우주 질서의 기본으로 하면서 치열한 투쟁의 과정을 통해 빛 또는 선한 영성이 악성과 물욕을 극복하게 됨으로써 인간의 본성인 빛의 세계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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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이 동지인데, 동지는 어둠이 가장 길 때고 최악의 절망 상태이다. 그리고 동지 이후 2~3일 지나면 인간은 낮이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절망의 끝인 어둠을 깨고 밝음이 조금씩 길어진다는 것을 확신하며, 새로운 희망과 구원의 빛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을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보았던 것이다.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가 된 배경이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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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 파르티아 - 로마

동서 실크로드의 길목을 장악한 파르티아는 유라시아 대상의 중간 기착지이자 거래소의 역할을 했으며 로마 제국으로 향하는 고가의 비단에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여 수익을 올렸다. 파르티아는 중국으로부터 비단과 진주를 들여오고, 인도로부터는 철을 들여왔다. 그런 다음 중국과 인도에서 들여온 비단과 진주, 철 등을 로마로 수출하고, 중국에는 향신료, 향수, 과일, 질 좋은 피혁 등을 보내면서 동서 간 교역의 중간자로서 번영을 만끽했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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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 카데시

히타이트의 정복활동은 기원전 1300년경 남으로 이집트 국경까지 뻗쳤고 기원전 1274년에 결국 오늘날 시리아의 카데시(Kadesh)에서 이집트와 충돌했다. 이를 ‘카데시 전투(Battle of Kadesh)’라고 하는데, 이후 하투실리 3세(HattuŞili III, 재위 기원전 1267~기원전 1237)의 딸과 이집트의 람세스 2세가 결혼을 하면서 두 나라는 공식적으로 전쟁 대신 평화를 택했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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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대 이집트

파라오가 태양신의 아들로서 자신을 신과 동일시하던 이집트 문명과는 달리, 메소포타미아의 왕은 철저히 신의 대리를 자처했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8iQZ5tmMqC9mHwY69

개방된 지리적 특성상 빈번한 정치체제의 교체와 상시적으로 노출된 생존의 위협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 사람들은 임기응변적인 태도와 실리적 성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파라오를 중심으로 영생과 내세의 삶을 강조하던 이집트와 달리 현세를 중시하는 종교관이 발달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18dPRy5fWnQUKpy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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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부카드네자르 와 키루스2세

신바빌로니아는 나보폴라사르의 아들 네부카드네자르 2세(Nebuchadnezzar II, 재위 기원전 605~기원전 562) 때 전성기를 맞이했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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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기원전 587년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던 유다 왕국(Kingdom of Judah, 기원전 930~기원전 587)의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와 노역시킨 왕으로 유명하다.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잡혀있던 이 시기(기원전 587~기원전 538)를 ‘바빌론 유수(Babylonian captivity)’라고 한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 때 수도 바빌론은 옛 명성을 되찾았고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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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폭압과 차별을 앞세운 신바빌로니아의 운명은 오래가지 못했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사망하고 단 20여 년 만인 기원전 539년에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키루스 2세에 의해 정복되고 말았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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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 2세의 바빌론 함락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치하에 들어갔고, 마르두크 신전이나 공중정원 같은 신바빌로니아 문명의 정수들도 파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만 키루스 2세는 50여 년 전에 바빌론으로 끌려와 노역하던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용함으로써 성경이나 유럽 역사서에 성인으로 기록되는 영광을 얻었다 - <인류 본사>, 이희수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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