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원군, 현종과 대각국사 의천의 공통점은?
헌정왕후는 귀양 가는 왕욱을 집 앞에서 전송한 직후 문 앞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고 대량원군을 출산했다. 그리고 출산 직후 헌정왕후는 사망한다. 성종은 사생아가 된 대량원군을 품에 안아 기른다.
이런 불행한 성장 과정에 있던 외조카였지만 천추태후에게는 걸림돌일 뿐이었다. 천추태후는 대량원군을 절로 보내 승려가 되게 했다. 고려시대에 왕자들이 승려가 되는 것은 잉여 권력을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대량원군은 왕씨 성을 가진 유일한 왕자였다. 이미 유교적 정치 이념을 신봉하는 관료 세력은 대량원군을 다음 왕위 계승자로 옹립하고자 움직였다. -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 최용범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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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으로 가는 험한 길을 택했던 승려는 문종의 넷째 아들이자 당시 왕위에 있던 선종의 동생인
의천義天(1055~1101)이다. -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 최용범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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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응) 왕자로서 승려가 된 소군 홍기, 홍추, 홍규 등 6명을 궐내에 있으면 정사에 간여한다고 왕에게 아뢰어 사찰로 돌아가게 했다. 또한 왕이 총애하는 승려 운미와 존도를 내쫓았다. 이들은 대부분이 조정 관료와 백성의 원성을 듣는 자들이었으므로 이전의 정적 제거와는 달리 정치적 명분도 있었다. -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 최용범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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