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기원 - 아기를 통해 보는 인간 본성의 진실
폴 블룸 지음, 최재천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덕감각과 도덕감정


나는 우리가 도덕감각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주장을 반복할 예정이다. 그런데 도덕성에는 어떤 식별 능력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이 포함된다. 여기에는 어려움에 처한 타인을 돕고 싶은 욕구,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잔인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 자신의 수치스러운 행동에 대한 죄책감과 착한 행동에 대한 자부심 등과 같은 감정과 동기도 포함된다.- <선악의 기원>, 폴 블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46e26450a604419

우리의 사이코패스는 길 잃은 아이를 구해주는 것이 ‘옳은 일’이고 의식을 잃은 여성을 성폭행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걸 잘 안다. 다만, 이와 연관된 도덕적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가 옳고 그름을 인식하는 건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풀은 ‘초록색’이고 하늘은 ‘파란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기는 하지만, 대개 이 지식과 함께하는 경험은 빠져 있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346e26450a6044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선악의 기원 - 아기를 통해 보는 인간 본성의 진실
폴 블룸 지음, 최재천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친족-내집단-이방인, 유전-상호이익-????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이 이론을 확장 발전시켜, 우리에게는 6대 도덕 기반317—돌봄/위해, 공정/부정, 충성/배신, 권위/전복, 성스러움/타락, 자유/억압—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이트는 정치적 진보주의자들은 돌봄/위해와 공정/부정을 강조하되 나머지 기반들은 경시하는 반면,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은 모든 기반을 고르게 중시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보다 국기를 존중하고(충성),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권위), 순결을 지키는 것을(성스러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yPUE2nJ5PbdPxZtcA

내가 그려본 우리의 도덕적 삶의 지도는 이들과는 다르다. 이 지도에서는 우리의 도덕적 판단과 도덕적 정서가 적용되는 사람들의 유형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nVBi1moi3fQXrBiW7

첫 번째 유형은 ‘친족’이다. 우리는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아끼고 그들을 해치려 드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친족에 대한 온정은 도덕성의 원형이며 직접적으로 자연선택을 통해 생긴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MCXAiKBSujjv68Vy8


물론, 많은 어른이 우리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이방인에 대한 무관심을 초월한다. 지금은 우리가 0을 숫자로 인정하듯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그렇게 양육되었기 때문이며 우리가 소속된 사회가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tnXpUkdmdqLhBCC19

두 번째 범주에는 우리 공동체나 부족의 일원이 되는 사람들이 포함된다. 이것을 ‘내집단’이라고 부르자. 친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위해와 도움, 돌봄과 의무와 관련된 도덕 개념들이 적용된다. 우리가 내집단 구성원들에게 느끼는 정서는 집단생활에 적응하도록 진화했다. 이런 정서가 존재하는 이유는 같은 집단 사람들이 서로 협력할 때 생기는 상호이익 때문이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6dMnvXR5pcbJ2HuD9

세 번째 범주는 ‘이방인’들이다. 우리와 꾸준히 상호작용하지 않고 우리 집단의 일원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다. 친족에 대한 도덕성을 진화시키는 동력은 유전적 공통성이고, 내집단에 대한 도덕성을 구동시키는 동력은 상호이익의 논리라고 한다면, 이방인에 대한 도덕성을 밀고 나가는 동력은… 없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의 행동을 선하거나 악하다고 판단할 수는 있지만, 그들에 대한 이타심도 타고나지 않았고 그들에게 친절하고 싶은 선천적인 욕구도 없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PsjmuJrZ9va5B97F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선악의 기원 - 아기를 통해 보는 인간 본성의 진실
폴 블룸 지음, 최재천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트롤리 딜레마


흔히 도덕 철학자들은 먼저 복잡하고 부자연스러운 도덕적 딜레마를 생각해낸 다음,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직관력을 발휘하여 그들의 이론을 다듬는다. 이것은 일부 심리학자들이 작업하는 모습과 유사하지만, 분명 차이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는지에 관심이 있는 반면, 철학자들은 무엇이 ‘정말로’ 옳고 그른 것인지에 관심이 있다. 도덕적 직관력은 때때로 모순적이다. 가령, X와 Y가 똑같은 시나리오를 다른 식으로 서술한 것일 뿐이더라도, 우리는 X가 도덕적으로 좋고 Y가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심리학자라면 이런 모순을 인간의 마음에 대한 흥미로운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이고 거기서 멈춘다. 하지만 철학자는 그러지 못한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BHnL8PhcwfsXz5Dx5

두 상황에서 결과는 모두 똑같다—스위치를 누르거나 남자를 밀면 다섯 명은 살고 한 명은 죽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두 경우가 다르다고 직관적으로 느낀다.292 스위치를 누르는 것은 옳지만 남자를 미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고난 결과론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행위의 도덕성에는 행위의 결과가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sFY3gYpsQ5dGpkLdA

흔히 이중 효과 원칙은 가톨릭 철학자이자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가 처음 제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원칙에서는 공익을 발생시키는 과정에서 생기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써 누군가를 죽이거나 해치는 것(이것은 도덕적으로 허용된다)과 공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망이나 피해를 야기하는 것(이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사이에는 결정적인 도덕적 차이가 있다고 상정한다.
가령, 이중 효과 원칙에 따르면, 적군 기지를 폭격했을 때 그곳에서 일하는 몇몇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폭격을 감행하는 것은 허용될 수도 있다. 기지를 파괴해서 전쟁을 빨리 끝내고 수많은 생명을 구한다는 목표를 두고 그렇게 할 수 있다. 무고한 사람들은 스위치 사례 속 남자처럼 ‘부차적인 피해’에 해당한다. 반면, 폭격의 목적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서 항복을 받아내려는 것이라면(이번에도 그 결과로 전쟁을 빨리 끝내서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 목표다), 이중 효과 원칙 아래에서는 이것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EiXbk3q7QZwwrE3L8

2001년 신경과학자 조슈아 그린Joshua Greene 연구팀이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뇌 영상 촬영법을 이용해서296 사람들이 전차 상황이나 이와 유사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추론하는지를 탐구한 논문이었다. 그린의 논문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어, 심리학과 신경과학, 인류학 분야에서 전차 딜레마 연구가 물밀듯이 쏟아져나왔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tL7AWZdemx5ToT2k6

그린 연구팀302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리 위의 남자를 밀쳐 떨어뜨리는 대신 스위치를 눌러 바닥의 문을 열어 그를 선로에 떨어뜨릴 수 있다면, 더욱 기꺼이 그 남자를 폭주 열차를 멈출 도구로 사용한다. 이중 효과 원칙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두 경우 모두 남자를 죽이는 것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차이가 생긴다. 그린은 그 이유가 그 남자를 건드리고 그에게 손을 대서 ‘밀친다’는 생각이 그저 스위치를 누른다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람들 대부분이 이 행동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 <선악의 기원>, 폴 블룸 지음 / 최재천, 김수진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pWjrJLrxFEa9DDgR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조슈아 그린의 미국 보수주의자에 대한 통렬한 비판
- 6가지 다양한 도덕 요소를 갖추고 있으나 모두 부족적이다
- 공유지의 비극에는 잘 대처하지만 상식적 도덕의 비극에는 서툴다
- 하이트가 권하듯 리버럴은 그들과 타협할 것이 아니라 덜 부족적으로 변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미국의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은 대부분 특정한 한 부족에 속한다. 즉 그들은 대부분 유럽계 미국인이고 백인이며 기독교를 믿는 여전히 애처로울 정도로 부족적인 부족이다. 이 부족은 과학이 부족의 가르침과 갈등을 일으킬 때 과학에서 얻은 지식들을 무시한다. 게다가 이 부족은 자신의 성원들을 노골적으로는 아니어도 암묵적으로 ‘진정한‘ 미국인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부족적 신념에 도전하는 미국인들을 외국에서 온 침략자처럼 여긴다. 

하이트에 따르면 미국의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은 권위의 존경에 큰 가치를 부여하는데, 이것은 어떤 면에서만 그렇다. 그들은 장난으로라도 자기 아버지의 뺨을 때리는 행동 등등에 대해 꺼림칙하게 생각하지만 더 일반적인 의미에서 권위를 존중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기독교의 신, 여러 종교적 또는 정치적 지도자들, 자신의 부모처럼 부족이 인정하는 권위에 대해서만 커다란 존경심을보인다.

미국의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은 특히 버락 오바마에게 존경심을 표하지 않는데, 그들은 오바마가 미국 토박이가 아닐지 모르며 따라서 적법한 대통령이 아닐 수도 있다고 고집스럽게 문제를 제기해왔다. 

이런 음모론들은 흔히 우익 비주류의 짓으로 치부되지만, CBS 방송사와 <뉴욕타임스>의 2011년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원의 45퍼센트는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혈통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고 믿고 있다. 

마찬가지로 공화당원들은 민주당원이나 무당파와 달리 UN의 권위를 거의존중하지 않으며 다수의 공화당원들은 미국 정부에서 권위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슬림 미국인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이 권위에 대해 보이는 존경심은 지극히 부족적이며, 이것은 신성에 대한 그들의 관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만약 예언자 마호메트가 당신에게 신성한 존재라면, 당신은 권력의 자리에 오르면 안 된다. 

끝으로, 그리고 가장 명백하게 미국의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이 지닌 충성심도 역시 부족적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예컨대 이란인들이 그들의 정부에 항의하는 것도 장려해야 할 행동으로 간주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미국의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은 권위, 신성, 충성 등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들의 권위, 자신들의 종교,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부족적 충신들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이 그들을 사악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을 지역주의적이고 부족적으로 만든다. 이 점에서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Taliban부터 유럽의 국수주의자들까지,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전 세계의 다른 부족들과 유사하다.  - P508



하이트는 자유주의자들이 사회적 보수주의자들과 타협하기 위해 더 개방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타협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우리의 전력은 부족적 도덕론자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덜 부족주의적으로 변하도록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어야 한다 - P509

이것은 사회적 보수주의자들로부터 배울 점이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이트도 지적하듯이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은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데 매우 뛰어나다. 그들은 좋은 이웃이며 일반적인 자유주의자들보다 지역사회에 시간이나 돈을 투자하는 데 더 적극적이다. 그들은 사회적 자본을 구축할 줄 알며, 신뢰에 기초한 사회적 네트워크와 제도를 창출함으로써 집단행동을 가능케 하는 법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은 공유지의 비극을 피하는 데 매우 뛰어나다. 

그러나 그들은 현대의 비극인 상식적 도덕의 비극을 피하는 데 매우 서툴다.  - P5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권리 논변으로 도망가지 말라, 함몰되지 마라.
- 공리적 논변으로 정면 대결하라
- 미국의 정책 토론이 권리 논변으로 얼룩진 것에 대한 비판.






이런 모든 이유들 때문에 현대 사회의 도덕적 논쟁에서 권리와 의무는 우리가 느끼는 것을 타협 불가능한 사실로 제시할 수 있게 해주는 무기가 된다. 논쟁을 하려면 우리가 원하는 바를 실제적이고 결론을 전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당화해야 하는데, 권리에 호소하면 이 힘든일이 면제된다. 우리가 권리의 카드를 사용할 때 증거는 부차적인 것이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앞면이 나오면 내가 이기고 뒷면이 나오면 네가지는" 게임이 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내가 권리에 대해 너무 강경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나는 권리에 호소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근거 없는 주장에 반대하고 있을 뿐인가? 분명히 우리는 권리에 호소함으로써 우리의 직감적 반응을 합리화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공리적 합리화를 시도할 수 있다. 우리의 가슴이 무엇을 원하든 우리는 더 큰 행복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더 큰 행복을 촉진할지 또는 촉진하지 않을지에 관한 주장은 권리에 관한 주장과 달리 궁극적으로 증거에 근거해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어떤 정책이 행복을 증가시킬지 아니면 감소시킬지 하는 문제는 궁극적으로 경험적 문제이다. 국민건강보험이 국민의 건강관리를 향상시킬 것이라고 또는 파괴할 것이라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이것을 자신 있게 말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건강보험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이런 물음들은 궁극적으로 증거에 근거해 답변될 수 있다. - P456

누구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를 미리 결론을 전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밝혀낼 방법은 현재로선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훗날에 철학자들이 명백히 참인 권리 이론을 제시할 수 있다면, 내가 지금 말하는 모든 것은 쓸모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권리에 관한 주장은 막다른길과 다름없다. 권리에 호소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권리에 호소한다면, 그것은 마치 당신과 당신의 부족 사람들만이 접근 가능한 어떤 추상적 영역에서 문제가 이미 해결된 것처럼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 P457

만약 상대를 진심으로 이성적으로 설득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권리의 언어를 되도록 피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미리 결론을 전제하지 않은 채, 어떤 권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또 어떤 권리가 다른 권리보다 우선하는지를 비공리적인 방식으로 밝혀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증을 전개할 가치도 없는 상황이라면, 즉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거나 또는 합리적으로 설득할 만한 상대가 아니라면, 그것은 논증을 멈추고 군대를 소집할 때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지루한 확률적 추정치 대신에 영혼을 울리는 단어로 우리의 도덕적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할 때이다. - P462

전개할 가치도 없는 상황이라면, 즉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거나 또는 합리적으로 설득할 만한 상대가 아니라면, 그것은 논증을 멈추고 군대를소집할 때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지루한 확률적 추정치 대신에 영혼을울리는 단어로 우리의 도덕적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할 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