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동안중요한 재분배 개혁을 이룬 큰 개발도상국은 룰라 대통령(2003~2011년 재임) 시기의 브라질입니다. 당시 브라질은 국제적으로 호평을 받는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라는 빈곤층에 대한 직접현금 이전 프로그램을 실시했습니다. 그 제도는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선출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정부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일단 이 제도가 자리잡고 인기를 끌자 2019년 브라질 대통령이된 보우소나루조차 이를 폐기할 수 없었습니다. 브라질의 정치 과정과 비교해보면, 중국의 당-국가 엘리트들은 국유기업이나 정치적으로 연결 고리를 가진 민간 기업과 더 유착되어 있기에 대출-투자의확장 모델에 중독되어서 진정한 재분배 개혁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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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무역 시스템에 참여하는 것이 자동으로 정치적 자유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념은 아마도 현대 정치 담론에서 가장 솔직하지 못한 거짓말일 것입니다. 전후 역사를 통틀어 너무나 많은 독재 정권이 세계 무역에 참여하면서 번창했습니다. 피노체트의 칠레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르기까지 시장자본주의는 결코 권위주의체제를 침식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그 체제가 유지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시장자본주의는 권위주의에 유리하지는 않을지라도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포용이 중국의 정치적 자유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관념은 1993~1994년에 클린턴 행정부가 중국 정책을 180도 전환시킨 것을 변명하기 위한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 P187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우리가 이런 종류의 ‘건설적 관여‘ 주장을그 전에 본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남북전쟁 시기입니다. 영국의 많은 자유무역 옹호자와 큰 기업들은 저항하고 있던 남부를 지지했고 남부의 노예 노동을 통해 값싼 변화를 계속 얻고자 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와 다수의 자유주의 사상가를 비롯해 당시 영국의 대표적 지식인들은 영국이 남부를 지원하고 에이브러햄 링컨과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영국이 그렇게 해야만 남부연합이 노예제도를 점진적이고 평화롭게 폐지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많은 사람이 링컨을 반자유무역 독재 괴물로 묘사하기도 했지요. 돌이켜보면, 지금은 모두가 그 주장이 노예 노동에서 나오는 값싼 제품을 원하는 영국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에 대한 위선적 은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건설적 관여론의 19세기 버전이지요.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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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터키 정부가 그리스에 불안정을 초래하려는 의도로 시간과 장소를 정해 이주민들과 난민이 통과할 수 있도록 국경을 열고 있다고 믿고 있다. 터키 정부는 이 말에 펄쩍 뛰었지만, 실제로 현지 당국이 도시에서 이민자들을 국경지대까지 호송해와 그들이 국경을 넘을 때 폭력적인 상황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증거가 있긴 하다. 이것이 터키 정부의 공식 정책이라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대체로 터키 당국이 이주민과 난민의 이동을 EU 국가들에 영향을 주는 지렛대로 삼으려 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리스 정부는 육로와 해상 경계 - < 지리의 힘 2, 팀 마샬 / 김미선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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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비슷한 그리스 내전

1946년 선거에서 왕당파가 다수당이 되자 선거에 불참했던 공산주의자들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전면적인 내전이 발발했다. 만약 이 싸움에 지엽적이면서 세계적인 사건들이 합쳐지지만 않았더라도 공산주의자들이 가볍게 이겼을 것이다. 하지만 서방 국가들은 이 상황을 무엇보다 소비에트 세력이 발칸 반도 북쪽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경종으로 받아들였다.
1947년 영국은 더 이상 그리스를 방어하는 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면서 미국에게 이 역할을 넘겨주기로 했다. 그러자 미국은 그리스 군대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힘이 세진 그리스군은 공산주의자들의 본거지인 산악지대를 소탕했다. 지난 세기들처럼 외부 세력이 상황을 주도했고, 이전 세기처럼 지중해 유역에서 현재는 러시아가 된 소련을 저지한다는 것이 주요 명분이었다.
소비에트 연방과 단절한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그리스 반군에 대한 지원을 끊었고 1949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쪽 국경마저 닫아버리는 등 공산주의자 반군에게 연달아 타격을 입혔다. 그러자 그해 10월 결국 그리스 반군 대다수가 알바니아로 퇴각하면서 내전은 종식됐다. 이 전쟁으로 5만여 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약 50만 명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것이 총인구가 8백만 명도 되지 않은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다. - < 지리의 힘 2, 팀 마샬 / 김미선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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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파키스탄과 유사한 민족 대이동

터키에 남겨진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미래를 정치인들이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민간인 학살과 마을 파괴가 횡행하면서 로잔조약(1923년 터키와 제1차 세계대전 연합국이 맺은 조약)이 맺어지기 몇 달 전에 이미 적어도 백만 명이 삶의 터전을 떠났다. 소수계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그리스와 터키 양측의 발언이 나온 후로 로잔조약은 강제로 주민들을 교환하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총 150만 명의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이 터키를 떠났고 줄잡아 40만 명의 무슬림들이 다른 쪽을 향해 출발했다. 20세기 초반 20여 년 동안 양국 간에 벌어진 이 비극적인 사태는 역사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반목의 틀을 오늘날까지도 계속해서 쥐어짜게 하고 있다. - < 지리의 힘 2, 팀 마샬 / 김미선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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