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을 견디는 기회가 있어야 능력이 쌓인다

30년 경력 임상심리학자인 대니엘 아인슈타인 박사는 소셜미디어 규제 법안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전문가 중 한사람이다 (24~26쪽 인터뷰 기사 참조).
2024년 호주 상원에서 열린 법안 공청회에 전문가 자격으로 출석해 견해를 발표했다. 핵심 논지는 이렇다. ‘소셜미디어의문제는 불건전한 콘텐츠만이 아니다. 끝없는 알림(notifications)을 통한 ‘피드백‘
이야말로 위협이다.‘
아인슈타인 박사의 논지는 ‘불확실성‘
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앞날을 알 수 없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은 최대한 피하려는 게 인간 본능이다. 그런데 모순되게도회피할수록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더욱 커진다. 연습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표적 ‘회피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게 바로 소셜미디어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예시를 들었다. "14살 아이가새 학기 또래 친구들을 처음 만났다. 옆자리 아이에게 말을 걸까 고민하던 아이는이내 친구가 퉁명스럽게 대하거나 말을무시할까 봐 두려워진다. 그래서 대화 대신 스마트폰 보는 걸 택한다. 말을 건다면깨달았을, ‘아, 인사해도 괜찮네? 친구도 - P21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했구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된다."
불안은 부정적 감정이지만 학습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심리학자들은 불편함을 견디고 나아가야 ‘두려워한 일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운다고 말한다. 설령 두려워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더라도 "그래도 나는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주체적 자아상이 이런 과정을통해 확립된다. 이 사회적 감각을 집중적으로 익히는 때가 아동·청소년기다.
아인슈타인 박사는 소셜미디어가 대면 소통의 기회만 앗아가는 걸 넘어 ‘나쁜학습‘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불안감이 증폭되는 이유다. "소셜미디어 계정에 글을올리면 흥분과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사람들의 반응에서 거리 두는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청소년은 이 피드백에 자존감이 좌우된다." 현실의 반응과달리 온라인 피드백은 즉각적으로, 하루

24시간 지속된다. "현실 세계를 사는 성인은 그 불확실성을 감수하면서도 자기주관에 따라 살아간다. 매 순간 ‘너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들어야 학교에 갈 수있는 아이는 필요한 능력을 발달시키지못한다." 불안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아니라 불안해도 견디는 능력이야말로 건강이라고 아인슈타인 박사는 말했다. 소셜미디어식 피드백은 사람을 외부 자극에만 휘둘리게 만든다.
이것은 아인슈타인 박사 혼자만의 견해가 아니다. 2024년 미국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가 출간한 <불안 세대>는 이 문제를 직격해 세계적 공명을 일으켰다. 하이트는 2010년대 이후 전 세계 청소년의우울증과 자살률이 동시에 증가한 것 역시 소셜미디어의 보급과 무관치 않다고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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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다!

COVER STORY IN


"스마트폰은 우리 주위를 빼앗도록 설계되었다 한 번 열면 닫아 버리니 무척 어렵다 우리 살면서 벌어지는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하게 하는 정책이 휴대전화금지다."
남호주 교육장관인 루시 후드는 휴대전화 금지의 주된 효과를 수업 분위기나학습성과 개선에서만 찾지 않았다. 그가가장 공들여 묘사한 대목은 달라진 휴식시간의 광경이었다. "예전에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각자 휴대전화만 들여다봐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겠다‘ 싶을 정도였다. 스마트기기 규제이후에는 각종 동아리가 생겨났다. 아이들 스스로 뜨개질, 미술, 공예 모임을 짜고 탁구와 배구, 축구를 한다. 실제 대화를 나누고 ‘진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루시 후드 장관은 주정부가 금지 외에 ‘장려책‘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주 90분 이상 신체 활동을 의무화하고등교 전이나 방과후, 대안적 활동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는 방안이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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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와 논객의 차이
- 혐오선동을 멈춰 세우는 것은 논리적인 반박이 아니라 이처럼 정동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아닐까?

 교실은 링이 되었다. 로프에 몰린 상대를 압박하다 종이울렸고, 그 학생을 따로 불러 다독이려던자리에서 앞서 말한 문제의 발언이 나오고야 말았다. 그날 나는 거의 잠을 이루지못했다.

교실이 민감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달라진 것은 양상이다. 불법적인 12·3 비상계엄 이후, 인권과 평화와 민주주의 등보편적 가치로 합의된 것들이 일부 학생에게는 특정 정파의 논리로 받아들이는듯한 징후가 확인된다. 12.3 비상계엄과대통령 탄핵을 헌정 질서의 문제가 아닌특정 정당 지지나 정치인의 유불리 문제로 보는 학생을 오늘날 교실에선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얼마 뒤 나는 반성문을 썼다. 교사 공동체인 ‘전국역사교사모임 회보에 그날학생과의 대화를 돌아보는 글을 썼다. 교사로서 학생에게 패배를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학생이 스스로의 발언을 돌이켜볼 안전한 환경을 제공했는지 되짚어보았다. <유네스코 교육의 미래 보고서-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2021)>에서는
"모든 교육 환경은 안전한 장소, 나아가피난처가 되어야 하며.....교육자는 학생이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판단당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학습환경을 마련하도록 애써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마치 나와 학생의 대화를 지켜본 누군가가 이를 질책하며 적은 구절처람 읽혔다. - P26

점점 대화가 어려워지는 교실 안에서교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2.3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학생과 여러 달 대화를 이어간 역사 교사 맹수용은 <계엄, 내란 그리고 민주주의> (역사비평사)에서 대안을 모색한다. 학생의 주장을 섣불리 논파하지 않고 끝까지 들으며 대화를 이어갔고, 서로의 신뢰를 유지하면서 깊은 대화를 나눴다. 교실이 학습자가 판단당할 두려움 없이 자기 생각을 꺼낼 수 있는 공간이 될 때 비로소 학생의 성찰도 시작된다는 가르침을 준다. 이 자체가 곧 민주주의를 배우는 과정이 아닐까.

오늘날 교실의 실태에 개탄만 할 수없는 노릇이다. ‘극우 학생일지라도 교사는 그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그들을 지지, 응원하며 성장을 도와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민주시민 교육과 역사 교육을얼마나 더 많이 해야 할까‘보다 ‘어떻게이들과 대화해야 할까‘를 더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많은 교사들이 쉽지 않은 환경에서 학교를 교육적 공간으로 보듬어나가려 애쓰고 있다. 우리 사회가 학생과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교사의 모색과● 노력에 신뢰를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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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정권은 주로 ‘도덕과 계몽’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에 따라 상대측을 견제하는 논리는 ‘수치’와 ‘분노’가 된다. 가진 자들의 이기심과 탐욕을 부각시키고, 약자를 차별하는 행위는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며 수치심을 자극한다. 비슷한 비리를 저질러도 진보 진영 인사들에게 민심이 더 엄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도덕과 분노가 원래 좌파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신이 주장하는 가치를 자신이 지키지 못하는 위선은 좌파 정치인에게 가장 붙이기 좋은 꼬리표가 된다. 무능은 증명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명확한 책임 규명이 어려운 반면, 비리와 부도덕은 구체적인 인물과 사건을 통해 즉각적으로 드러난다. 효율을 내세우는 정권의 무능은 공격하기 모호하지만, 도덕을 앞세우는 정권의 비리는 정황만 있어도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권력은 본질적으로 부패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도덕과 계몽을 권력 유지의 무기로 삼는 일은 애당초 난항에 부딪힐 숙명이다. - <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 권성민 - 밀리의서재
https://millie.page.link/94CkTkaqdGXqaL5i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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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 ‘가해의 가능성’은 누군가에게 내재된 악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여성도 모든 남성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크고 작은 성범죄가 일상적으로 범람하는 가운데, 어떤 남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고 어떤 남자는 그렇지 않은지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마치 대형화물차 옆을 달리는 소형차처럼, 운 나쁘게 위험한 남성을 만나면 여성은 신체적 차이 때문에 대처할 방법이 거의 없다. 무엇보다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이러한 차이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 <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 권성민 - 밀리의서재
https://millie.page.link/QUA2xoaQFJykYmCeA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는 세계를 기반으로 정치적 태도를 형성한다. ‘이퀄리즘’이 경험하는 세계와 페미니즘이 경험하는 세계는 이토록 서로 다르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을 마주했을 때도 그 주장 너머에 이런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엇을 무시하고 무엇을 관철시킬 수 있을지 조금은 더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을까? - <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 권성민 - 밀리의서재
https://millie.page.link/e1tZgqv4QiFqLwq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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