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노의 일


중앙 맨스에 부속되어 코트에 사는 농노예가 땅을 경작하지만, 그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영지에 사는 다른 땅의 소작농들이 해 주어야 한다.
영주의 맨스 옆에는 다수의 소규모 하급 맨스들이 있다. 이 맨스들은 서로 다른 신분의 남녀들이 소작하는데, 반드시 영주 맨스에서 부역을 해야만 한다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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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사람은 콜로니(coloni : colonus의 복수형)로서, 법률상 자유인이지만 토지에 매여 있는 신분이다. 그래서 소작하는 땅을 떠나지 못하며 땅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면 함께 팔려갔다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ugiTNRjncBbAmdhH9

농부들은 이런 시설과 땅을 제공받는 대신, 일주일에 약 세 번 정도 영주의 맨스에 가서 일을 해야 한다.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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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들판에 나가서 하는 노동이었다. 농노는 해마다 영주의 땅에 가서 일정한 양의 농사일을 해야 했다. 다른 하나는 강제 노동이다. 이는 할당량이 정해지지 않은 노동으로, 관리인은 매주 노동이 필요할 때마다 농노에게 요구할 수 있다.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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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소작료도 내야 했다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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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관할의 숲에서 땔나무를 주워올 때는 대가로 영주관에 장작 한 짐을, 농가의 돼지들을 숲에 방목하는 대가로 여러 호그스헤드(약 50갤런)의 와인을, 들판에 양들을 방목하는 대가로 3년마다 양 한 마리를 바쳐야 했다. 그리고 1인당 4펜스의 인두세를 내야 했다.
이런 특별 세금 외에 해마다 닭 세 마리, 달걀 15개, 집 수리에 들어가는 다수의 널빤지를 내놓아야 했다. 때때로 돼지 두 마리를 바치거나, 와인, 꿀, 왁스, 비누, 기름 등을 내놓아야 했다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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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하면서도 자상한 교회 덕분에 보도는 일주일에 한 번씩 휴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교회는 신앙심이 깊은 황제를 설득하여 일요일과 성인 축일에는 농노의 일이나 기타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포고를 반포하게 했다. 827년 샤를마뉴의 아들은 이 포고를 다시 내렸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짐은 교회의 율법에 따라 또 예전에 포고를 내린 선제의 명령에 따라, 일요일에는 농노의 일을 하지 말도록 포고하노라.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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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십대들이 수행하는 ‘학력의 위계화된 질서‘에 관한 집착은 과거의 학력주의보다 훨씬 더 정교해졌고 자기내면화의 강도도 훨씬 높다. 이들에게 학력에 근거한 비교와 차별은 당연한 것이되었고, 이를 의문시 할 이유를 굳이 찾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그 결과, 티끌만큼의 의문도 없는 ‘학력위계주의가 이십대들에게 내면화되고 있었다.
"결과를 책임져라"는 자기계발을 권하는 사회의 시대정신을 발판삼아서 말이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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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도 휴일의 개념이 있었을까? 농경사회의 일이란 자연의 리듬에 따른 것으로 주기적인 휴일이 필연적이었다. 인위적인 휴일 지정이 필요치 않았다.

중세 유럽의 경우 산업사회가 아니더라도 농노는 각종 부역에 동원되었으니 휴일이 필요했겠다. 카톨릭은 종교적 목적과 자비심으로 농노에게 휴일을 부여하는데 기여했다.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교회 덕분에 보도는 일주일에 한 번씩 휴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교회는 신앙심이 깊은 황제를 설득하여 일요일과 성인 축일에는 농노의 일이나 기타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포고를 반포하게 했다.....˝짐은 교회의 율법에 따라 또 예전에 포고를 내린 선제의 명령에 따라, 일요일에는 농노의 일을 하지 말도록 포고하노라. 온갖 농사일을 하지 말 것이며, 포도밭을 돌보지도 말 것이며, 밭을 갈지도 말 것이고, 곡식을 거두거나 건초를 만들어서도 안 된다. 울타리를 세우거나 땔 나무를 해오는 것, 나무를 베는 것, 채석장에서 일하거나 집을 짓는 것, 정원에서 일하는 것, 법정에 나오는 것, 짐승을 쫓아다니는 것 등을 해서는 안 된다.....이런 일들을 하지 말아야 주님의 날을 제대로 지키는 것이다.˝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3Kp95vn41TY2mYmE6˝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https://millie.page.link/J5Dkchr9VNP9UZ3J8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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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사람은 콜로니(coloni : colonus의 복수형)로서, 법률상 자유인이지만 토지에 매여 있는 신분이다. 그래서 소작하는 땅을 떠나지 못하며 땅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면 함께 팔려갔다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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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은 이런 시설과 땅을 제공받는 대신, 일주일에 약 세 번 정도 영주의 맨스에 가서 일을 해야 한다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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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노들이 수도원 땅에서 해야 하는 강제 노동은 핸드워크(handwork)라고 불렀는데 건물 보수, 나무 베어오기, 과일 따기, 맥주 만들기, 짐 나르기 등 다양했고 사실상 관리인이 시키는 모든 일을 가리켰다. 바로 이런 노동을 통하여 수도자들은 영주의 농장을 경작할 수 있었다. 핸드워크가 없는 주중의 나머지 날들에는 농노들이 자유롭게 그들의 자그마한 농지를 경작했다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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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귀족이나 중국 의 귀족이나 문학을 즐기는
대화는 여전히 문학에 관한 것이었다. 귀족과 서민,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별하는 기준은 보편적인가?

좀 머리가 있는 야만인 귀족들은 가능한 한 이 세련되고 호화로운 생활을 흉내 내려고 했다. - <중세의 사람들>, 아일린파워 지음, 이종인 옮김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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