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4 - 세종.문종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4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태종과 세종.
정치 스타일이 너무너무 달랐다.

태종은 왕권을 충녕대군(세종)에게 물려준듯 싶었지만, 외척의 세력을 철저히 죽여놓는 일을 했으며, 새 임금을 길들이기도 했고, 일본에 대해서도 대마도 정벌을 통해 강력한 국가이미지를 굳혔다. 많은 피를 흘리면서 왕권을 굳혔다. 세종의 아내였던 소헌왕후 심씨 가족에 대해서도 경계의 끈을 놓치 않고 있다가 당시 영의정이었던 심온이 중국을 다녀온 사이에 꼬투리를 잡아서 그를 처단한다. 병조판서 강상인 사건을 빌미로 그에게 사약을 내리고 왕비의 어머니와 자매들은 관노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반면 세종(1397~1450)은 집현전과 황희정승의 쌍두마차를 몰며, 대신들과 토론하면서 상의하고 최선안을 찾아가는 스타일이었다. 집터와 기둥을 세운 것에 벽을 쌓고 지붕을 올려 문과 창을 내어 완성하는 일을 했다. 무엇보다 정권을 인수받으면서 이전의 정적과 같은 사람들도 껴앉고 갔다. 정치보복이 아닌 양보와 희생으로 화합을 이끌어내는 군주였다. 유교경전을 열심히 공부했으나 실용을 위한 궁구를 꾀했다.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계속 맡기는 스타일이다. 자연히 세종의 시대에 학문이 융성하였고, 과학기술을 비롯한 음악에 있어서 엄청난 진보가 있었다. 조선의 문예부흥 시대라고나 할까. 이천, 장영실, 정초, 이순지, 정인지를 통하여 천문관측기구와 시계 제작기술을 발전시켰다. 규표, 혼천의, 앙부일기, 자격루 등. 무기분야에서도 화포기술이 개량되었고, 음악에서는 박연을 통하여 아악을 발전시켰다. 세종 자신도 많은 곡들을 작곡했다고 한다. 북방의 4군 6진을 개척하고 야인들을 물리치게 하며, 남쪽의 백성들을 북쪽으로 이주시킨 사민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이로 인하여 백성들의 원망과 분노가 가득해졌다고 한다. 저화와 동전의 사용을 강제함에 따라 현물을 가지고 물물교환하는 것에 익숙했던 백성들은 불평하였다. 또 '수령고소금지법'이란 게 있어서 수령들에겐 날개를 달아주고, 백성들은 보호막을 없애버려 이또한 불만 사항이었다. 세종 시대라고 백성들이 그저 흥겨워한 시대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다소 놀라웠다. 오히려 이 시대를 좋아한 것은 지식인층이였다고 할 수 있겠다.

 

훈민정문이 반포되었을 때 최만리의 상소가 올라오자, 세종은 핵심주제를 비껴가고, 지위로 위압하고, 약점을 잡으면서 공론화 의사가 없음을 드러낸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직접, 비밀리에 창제 작업을 하여서, 집현전 학자들도 몰랐던 것도 의외의 사실. 둘째딸 정온공주가 도왔다 하는데, 사극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를 차용하여 소이라는 가상의 여인을 끌여들인 게 아닐까 싶다.

 

황희정승에 대한 기사도 흥미롭다. 24년간 정승으로 있었고, 19년간 영의정으로 있으면서 세종을 보필한 그였는데, 청렴하고 온화했다고 여기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도 사위의 일로 빽쓰고 돈써서 합의를 보게 만들었으며, 땅 차지에도 열을 올렸다고 하니, 청백리로의 이미지가 다소 사라지는 듯 싶다.

한편, 장영실, 최윤덕, 이징옥, 김종서 등을 보면 능력이 우선시 되는 사회였다는 걸 보게 된다. 신분을 극복케 했고, 무인이라도 정승으로 임명도 했으며,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인사권에 있어서 탁월한 임금이었음을 본다.

 

한편 마지막 5장에서 다룬 준비된 임금, 문종의 이야기는 가슴아프다. 8살에 세자에 책봉되어 늦게 왕에 올라 단지 이년여간 통치하다가 등에 난 종기가 심해져 세상을 달리하였던 것이다. 오랫동안 왕이 되기전 세자 수업을 받았던 그였으나, 실제 통치는 너무 짧았다. 문종은 또한 아내복도 없어서 첫째부인, 둘째부인 모두 소박맞아 내쫒김을 당하고, 세째부인마저 어린 단종을 낳고 먼저 죽었다고 한다. 이는 문종의 동생 수양대군이 세자 단종의 위를 탐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요순시대와 같이 태평한 시대를 가져온 세종대왕. 그가 남긴 한글을 잘 쓰고 있어서 늘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광화문 앞의 세종로에 있는 세종대왕. 이제는 행정복합도시의 이름인 '세종'시로 남아 두고두고 후손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 그분의 인간적인 면모도 이 만화를 통해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세종대왕>

 

<뿌리깊은 나무 : 세종 역의 한석규씨>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영령릉.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가 합장되어 묻혀계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 - 태종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3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정치 10단인 이방원은 왕자의 난 1차, 2차를 거치면서 왕위를 거머쥐게 되고, 이에 대한 노여움으로 가득한 아버지 이성계와 대립하게 된다.

제1장 `전설이 된 태상왕`에서 이 아버지와 아들의 전쟁 이야기를 다룬다. 성경의 다윗과 압살롬의 전쟁이 오버랩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아들의 승리. 조사의가 태상왕 이성계와 손잡고 난을 일으키는데, 쉽게 와해된다.

제2장 `사냥이 끝난 후`에서는 공신들 중 이거이, 이저 부자를 시범케이스로 페서인하고 지방으로 안치하면서 왕권 강화를 위해 신하들의 힘을 누른다. 또한 원경왕후 민씨와의 거리를 멀리하고 후궁들을 맞아들이며 외척 세력을 견제한다.

제3장 `공신의 운명`에서 구체적으로 처남들인 민무구, 민무질, 장인 민제를 비롯한 민씨 일가를 몰락의 길로 몰아가고, 이숙번도 지방으로 유배보낸다. 반면 하륜은 불충을 때로 보이고도 목숨을 보전한 것은 그가 태종에게 유용하였기 때문이다. 정치 세계가 참으로 비정하다. 목숨바쳐 사냥한 개는 토끼를 잡은 이후엔 개고기 신세라니.

제4장 `현실주의자 태종의 개혁`에서는 그 심사를 쉽게 알기힘들었던 태종의 두 얼굴을 소개하며, 강력한 개혁으로 이뤄낸 성과도 소개한다. 과거제도의 개혁, 관료제도 개편, 전국 8도체제, 사대교린 외교노선, 군사정비, 무과제도 정착, 불교 개혁 등이다.

제5장 `양녕과 충녕`에서는 어린나이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여색을 빍히며 탈선의 길을 멀리간 양녕대군 제는 세자에서 폐위되고, 비범함을 보이며 아버지와 신하들에게 총애를 받은 충녕이 보좌를 잇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양녕은 가이(어리)와의 애정에 눈멀어 아버지의 책망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자에게도 쓴소리를 해대었던 충녕의 도발적 언행이 잦았는데, 이는 왕위를 노린 그의 정치적 수였다고 저자는 평한다. 그에게도 아버지 이방원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충녕은 세자교육도 없이 책봉이후 두어달만에 왕위에 얼라 조선에서 다시없을 성군이 된다.

강력한 카리스마의 왕, 이방원.
그는 공신도 강력히 견제했다. 왕의 마음까지 헤아리지 못하면 언제 벌을 받을지 모르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살벌 정국이었다. 그만큼 신권을 누른 왕. 아버지 이성계도 누른 아들이었으니...
한편 이성계의 능인 구리시 동구릉에 위치한 건원릉은 억새로 덮인 능이다. 이는 태조의 함흥 땅에 묻아달란 유언과 자신의 곁에 두어 제사지내려한 의도라고 한다. 언젠가 태조의 건원릉을 가보아야겠다.

태종은 한양천도에서 개경으로 도읍을 옮겨 갔다가 조사의의 난과 2차 왕자의 난을 겪고나서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경복궁을 싫어하여 새로 궁을 지어 입주했다는데, 그것이 창덕궁이다. 이곳에서 아내와 결혼시 야외촬영했었던 기억이 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 - 태조.정종실록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라가 뒤바뀌는 상황에서는 불가피하게 관련자들은 승자와 패자로 구분되어, 한쪽은 출세로, 한족은 유배나 죽음의 결과를 맞는다.

 

제1장 '개국과 역성의 세월'에서는 고려를 수호하고자 했던 이들, 절개를 지킨 이들과 공을 세운 이들을 열거하고,그들이 받아야 했던 결과를 다룬다. 또한 고려의 왕씨들이 죽어나가고, 살기위해 성을 전씨, 옥씨 등으로 바꾸는 계기가 된 모습을 보여준다. 

태조 이성계의 두번째 아내였던 신덕왕후 강씨의 베갯머리 송사로 인하여 그녀가 낳은 두 아들 중 방번이 세자로 책봉이 된다. 이는 왕자의 난을 가져오는 화근이 되었고, 개국공신인 동시에 철저한 정치적 수완과 군사적 능력을 갖춘 정안대군인 이방원이 행동케 한 동기였다.

 

제2장 '새 술은 새 부대에'에서는 태조가 역성혁명으로 피를 많이 묻힌 개성에서 한양으로 이전하는 과정을 다룬다. 풍수에 전문이었던 하륜이 등장하고, 도읍선정에 있어서 하륜보다는 정도전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짐에 따라, 하륜은 이방원에 가서 붙어 나중에 그를 보위에 앉히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삼봉 정도전은 온갖 책임있는 자리를 꿰차고 자신이 꿈꾸는 나라를 만들고자 애쓴다. 그가 꿈꾸는 조선은 유교사회로서, 백성이 대접받는 세상이었다.

 

제3장 '제3의 변수, 홍무제'에서는 명나라 홍무제가 이방원과 그의 측근을 두둔하고 나서고, 태조와 정도전은 명이 조선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에 대해서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내부적 군사력을 키워서 다시 요동을 치고자 계획한다. 명은 이러한 봉화백(정도전)을 넘겨달라고 계속 독촉하나, 태조와 정도전의 끈끈한 우정은 이러한 난관을 헤쳐나가게 한다.

 

제4장 '왕자의 난'에서는 정도전에 의해 군사력을 빼앗기고, 제거될 위기에 몰리게 되는 이방원의 이야기를 다룬다. 세자로 있던 방번과 그의 형 방석을 죽이고, 중심세력인 정도전을 살해한다. 이 쿠데타의 주역들인 이숙번, 이거이 부자, 조영무, 민무구, 민무질 형제 등이 있다. 작가는 태조실록을 기록한 하륜과 태종 이방원에 의해 왜곡되었을 만한 정도전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정립한다. 또한 남은, 조준, 남재 등 정도전의 측근이었던 사람들의 결말도 다룬다.

 

제5장 '임시군주 정종'에서는 태조가 물러남과 함께 이방원이 둘째 형님인 방과를 정종으로 옹립케 하고, 자신이 후대를 맡을 생각을 하고 있다가, 공신등급에 불만을 품었던 박포가 방간 쪽에 붙어서 군사를 일으키자, 이에 대응하면서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는 과정을 다룬다. 길고긴 과정 속에서 이방원이 드디어 왕위(재위기간 1400~1418)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많은 피를 흘렸다.

 

저자는 이방원이란 사람에 대해서 평하길, 김대중의 두뇌와 지식, 김영삼의 감각과 결단력, 김종필의 수완을 두루 갖춘 정치 10단의 인물이라고 한다. 태조가 이 아들을 바로 보지 못하여, 도끼에 발을 찍히듯 하였고, 자신의 아끼는 벗이자 신하인 정도전을 비롯한 자식들을 잃고, 용의 눈물을 삼켜야만 했던 것을 보여준다.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이런 갈등을 극적으로 잘 다루었었다.

 

재미난 것은 태종 이방원 역을 했던 유동근씨가 최근의 정도전 드라마에서는 자신이 대저한 태조 이성계역을 해냈다는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였을 터이다.

정도전에서 이성계역을 한 유동근씨

 

http://media.daum.net/entertain/drama/newsview?newsid=201406041800067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 - 개국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전체 20권을 다 보고 싶도록 욕심나는 만화책이다.
박시백 화백의 야심만만한 대하역사 만화책.
일단 캐릭터들도 잘 그렸고 내용도 충실하다.

첫권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 창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장 북방의 호랑이]에서는 이성계의 화려한 등장을 다루고 있다.

[2장 혁명을 꿈꾸는 자]에서는 공민왕의 죽음이후 이인임이 어린 왕인 우왕의 후견인 노릇을 하면서, 부패하여가자, 신진 사대부인 정도전이 혁명을 꿈꾼다.

[3장 위화도 회군]에서는 명나라 홍무제가 철령 이북 땅을 차지하자, 이에 분노한 최영이 요동을 치려고 전군을 소집하여 나아갈 때, 4불가론을 내세우며 이 전쟁의 부당함을 고했던 바 있는  이성계에게 이 모든 군사를 맡겼다가, 결국 최영과 우왕이 뒤통수 받는 이야기를 다룬다.

[4장 고려를 지켜라]에서는 이성계가 우왕을 몰아내고, 공양왕을 세우고 개혁을 시도하는데, 고려를 버리고 새판을 짜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정몽주의 반격 이야기를 다룬다. 정도전은 5년 선배인 정몽주와 행보를 같이 했었으나, 둘은 링위의 결투를 벌이게 되고, 정몽주의 한방에 유배된다.

[5장 역성혁명]에서는 위기에 몰린 이성계를 보고 있는 그의 아들 방원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인다. 비록 이로 인해 이성계의 인기는 떨어졌으나, 판세는 뒤집을 수 있었다. 꼭두각시 왕은 이성계에게 왕위를 내어주게 되고, 9년간의 왕씨에서 이씨로의 역성혁명은 성공한다.


정권을 개혁한다는 것. 혁명, 개혁은 부패한 시대에 항상 나오는 이야기이다.

맹자는 군주가 부패할 때의 쿠데타는 정당하다고 했단다.

내부에서의 일부변화로 만족한지, 아니면 완전히 뒤집어야하는지의 견해 차이를 가진 것이 아마도 정몽주 대 정도전의 대립이었던 듯 싶다. 유학자 정도전은 이인임의 권세아래서 전라도로 유배갔을 때, 백성들의 삶을 보았고, 백성을 위한 덕치정치, 군자의 나라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포부를 갖는다. 삼봉학원도 만들어서 유생들을 가르치는 와중에도 어려움을 많이 겪으면서 나이 40줄이 된다. 스스로를 유방 아래 장자방과 같은 자라고 하면서 빌린 칼 역할의 이성계를 도왔고, 그의 꿈이 반은 이루어진 것이다.

이 꿈의 성취는 고상한 방법이 아니라, 피흘림의 과정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성계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최영의 피를 보았고, 그의 아들 이방원은 선죽교에서 정치적 반대세력의 당수를 죽였다. 고려의 부패와 함께 개혁은 피를 보면서 이루어졌다.

 

ps.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은 최영장군이 한 말이 아니고, 그에게 아버지가 한 말이라는 것을 이 만화책 보면서 새롭게 알았다.

ㅇ 등장인물

- 이성계, 정도전 (이성계가 정도전보다 7살 위)

- 고려의 왕 : 공민왕, 우왕, 공양왕

- 고려의 신하 : 신돈, 이인임, 최영, 정몽주, 이색, 반야부인(공민왕의 생모)

- 이성계의 조상 : 이안사, 이자춘

- 이성계의 부하 : 조민수, 조준, 이방원, 퉁두란, 조영규, 남은

- 명나라 홍무제 주원장

 

<조선창업 시대를 배경으로 했던 2014년 KBS 드라마 '정도전'>

 

<정도전 역을 맡았던 조재현>

<정도전, 이성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의 이름이 부르기엔 특이하다. "줌파 라히리".

아줌마할 때의 '줌마'와 비슷한 발음.

상당한 미모를 가진 인도 여작가.

책 제목은 상당히 호감을 준다. '축복받은 집'은 어떤 집일까라는 호기심을 던져주면서.

총 9편으로 이루어진 이 단편소설집의 원래 제목은 3번째 단편소설인 [질병 통역사](Interpreter of Maladies)이다. [축복받은 집]은 7번째 소설이고...

작가 자신이 영국 런던 태생이지만, 부모님이 인도 벵골 출신이라서 인도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것 같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미국에 거주하는 인도인들의 이야기가 다수를 차지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맘에 여운을 주면서도 구성적인 측면에서 뛰어난 소설은 마지막의 단편인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이라고 생각한다. 103세의 할머니의 하숙집에 6주간 살게된 한 인도계 젊은이의 일화. 그가 결혼한 인도의 아내가 오기전까지 할머니와 보내면서, 달나라 착륙이 굉장한 사건임을 공감해주고,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주었던 이야기들. 또 할머니에게 아내를 소개시켜주면서부터 어색했던 아내와의 관계가 호전되고, 미국에 정착하는데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이 남자에게 있어서 미국은 인도, 영국을 거쳐 마지막 대륙이 되었다.

 

[일시적인 문제]에서 정전 사태가 부부의 대화단절을 극복하는 수단이 되고, 비록 매일 한시간이지만, 촛불켜고 서로의 비밀을 얘기해주면서 소통을 이어가지만, 이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고 새로운 삶을 꾸려가려고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는 얘기는 한편 씁쓸한 맘을 갖게 한다.

“그동안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하나 찾았어.”

아내의 얘기를 들은 남편은 자신이 6개월전 사산한 아이를 품에 안아보았던 것을 고백한다.

“아이는 사내아이였어. 피부는 갈색보다는 붉은 색에 더 가까웠어. 머리털은 검정색이었지. 몸무게는 2.3킬로그램 정도였고, 손가락은 꼭 오므리고 있었어. 당신이 잠들었을 때처럼 말이야.”

그리고 둘은 다시 불을 끄고 나란히 앉아 운다.

한집에 살지만, 소통이 되지 않는 부부는 '님'이라고 하기보단 '남'이다. 이 남이 님이 되는 시점은 소통에 있다.

 

영어 표제 제목의 단편 소설인 [질병 통역사]도 재미있었다. 관광 안내원이자 평일에는 질병 통역사인 중년의 남자는 부인과의 불통을 겪고 있다. 여행온 부부를 가이드하면서 그 부인에게 맘이 있었다. 그 부인도 이 가이드에게 자신의 숨은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둘은 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결국은 찍은 사진을 받으려고 써준 주소가 적힌 종이는 날아가 버리고 만다.

 

[섹시]란 소설도 재미났다. 유부남을 사귀는 한 여인이, 직장 동료언니가 상담하는 친척의 바람피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 유부남과의 밀애를 즐기고, 그 남자가 던진 '섹시하다'란 말에 꽂혀 예쁜 나이트가운을 샀지만,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나중에 동료의 친척 아들을 맡게 되었고, 그 아들의 얘기 속에서, 어쩌면 자신이 그런 불행을 만들 소지가 있단 걸 깨닫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한 순간의 쾌락을 따르면서 서로가 좋으면 좋은 게 아니냐는 현대세태를 꼬집는 멋진 단편이다.

 

[축복받은 집]은 결혼한 지 얼마 안되는 힌두교를 믿는 부부가 이사한 집에서 발견되는 기독교 용품을 두고서 벌이는 신경전을 그린다. 그리고 집들이때 둘의 다툼은 피크를 이룬다. 부부간의 소통은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이 소설집이 재미나게 읽히는 이유는 또 있다.  인도의 음식, 옷, 용모 등 가보지 못한 이국의 문화에 대해 작가가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인도인들 속에 들어가 지내보듯이 말이다. 9편의 단편을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빨려들어가듯 읽었던 시간이다.  줌파 라히리가 쓴 또 다른 단편집인 '그저 좋은 사람',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저지대'도 읽어보고 싶다.

 

  

사실 아내와 결혼한 이후, 소통으로 인해 부부싸움을 하곤 했었다. 나는 아내가 얘기해도 대꾸하거나 반응하지 않는 남편이었다. 아내가 싫어서도 그녀의 말이 틀려서도 아니었다. 들어주는 공감 능력이 바닥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결혼 20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때론 작은 트러블이 있기도 하지만, 소통 문제를 겪고 있진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아들들과 아내가 소통 문제를 겪을 때가 많다.

오늘날 소통의 문제는 사회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통(通)하지 않으면 통(痛)한다는 말도 있다. 통해야 건강하단 말이다.

여러 다민족 속에서 살면서 작가 자신이 가진 인도인이라는 정체성. 그리고 그 속에서 겪은 소통을 재미난 스토리로 풀어낸 이 단편 소설집이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돼지 2015-08-03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줌파 라히리가 입에 착 붙지를 않아요...
자꾸만 줌마 리하리....리히리... ㅜㅜ

푸르미원주 2015-08-03 13:3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름이 어렵지요? 영명으로는 더 더욱... ^ ^;
인도인들의 이름이 대개 어려운가봐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