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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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이 부르기엔 특이하다. "줌파 라히리".

아줌마할 때의 '줌마'와 비슷한 발음.

상당한 미모를 가진 인도 여작가.

책 제목은 상당히 호감을 준다. '축복받은 집'은 어떤 집일까라는 호기심을 던져주면서.

총 9편으로 이루어진 이 단편소설집의 원래 제목은 3번째 단편소설인 [질병 통역사](Interpreter of Maladies)이다. [축복받은 집]은 7번째 소설이고...

작가 자신이 영국 런던 태생이지만, 부모님이 인도 벵골 출신이라서 인도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것 같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미국에 거주하는 인도인들의 이야기가 다수를 차지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맘에 여운을 주면서도 구성적인 측면에서 뛰어난 소설은 마지막의 단편인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이라고 생각한다. 103세의 할머니의 하숙집에 6주간 살게된 한 인도계 젊은이의 일화. 그가 결혼한 인도의 아내가 오기전까지 할머니와 보내면서, 달나라 착륙이 굉장한 사건임을 공감해주고,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주었던 이야기들. 또 할머니에게 아내를 소개시켜주면서부터 어색했던 아내와의 관계가 호전되고, 미국에 정착하는데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이 남자에게 있어서 미국은 인도, 영국을 거쳐 마지막 대륙이 되었다.

 

[일시적인 문제]에서 정전 사태가 부부의 대화단절을 극복하는 수단이 되고, 비록 매일 한시간이지만, 촛불켜고 서로의 비밀을 얘기해주면서 소통을 이어가지만, 이 아내는 남편과 헤어지고 새로운 삶을 꾸려가려고 집을 알아보고 있었다는 얘기는 한편 씁쓸한 맘을 갖게 한다.

“그동안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하나 찾았어.”

아내의 얘기를 들은 남편은 자신이 6개월전 사산한 아이를 품에 안아보았던 것을 고백한다.

“아이는 사내아이였어. 피부는 갈색보다는 붉은 색에 더 가까웠어. 머리털은 검정색이었지. 몸무게는 2.3킬로그램 정도였고, 손가락은 꼭 오므리고 있었어. 당신이 잠들었을 때처럼 말이야.”

그리고 둘은 다시 불을 끄고 나란히 앉아 운다.

한집에 살지만, 소통이 되지 않는 부부는 '님'이라고 하기보단 '남'이다. 이 남이 님이 되는 시점은 소통에 있다.

 

영어 표제 제목의 단편 소설인 [질병 통역사]도 재미있었다. 관광 안내원이자 평일에는 질병 통역사인 중년의 남자는 부인과의 불통을 겪고 있다. 여행온 부부를 가이드하면서 그 부인에게 맘이 있었다. 그 부인도 이 가이드에게 자신의 숨은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둘은 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결국은 찍은 사진을 받으려고 써준 주소가 적힌 종이는 날아가 버리고 만다.

 

[섹시]란 소설도 재미났다. 유부남을 사귀는 한 여인이, 직장 동료언니가 상담하는 친척의 바람피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그 유부남과의 밀애를 즐기고, 그 남자가 던진 '섹시하다'란 말에 꽂혀 예쁜 나이트가운을 샀지만,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나중에 동료의 친척 아들을 맡게 되었고, 그 아들의 얘기 속에서, 어쩌면 자신이 그런 불행을 만들 소지가 있단 걸 깨닫게 되는 과정을 다룬다. 한 순간의 쾌락을 따르면서 서로가 좋으면 좋은 게 아니냐는 현대세태를 꼬집는 멋진 단편이다.

 

[축복받은 집]은 결혼한 지 얼마 안되는 힌두교를 믿는 부부가 이사한 집에서 발견되는 기독교 용품을 두고서 벌이는 신경전을 그린다. 그리고 집들이때 둘의 다툼은 피크를 이룬다. 부부간의 소통은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이 소설집이 재미나게 읽히는 이유는 또 있다.  인도의 음식, 옷, 용모 등 가보지 못한 이국의 문화에 대해 작가가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인도인들 속에 들어가 지내보듯이 말이다. 9편의 단편을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빨려들어가듯 읽었던 시간이다.  줌파 라히리가 쓴 또 다른 단편집인 '그저 좋은 사람',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저지대'도 읽어보고 싶다.

 

  

사실 아내와 결혼한 이후, 소통으로 인해 부부싸움을 하곤 했었다. 나는 아내가 얘기해도 대꾸하거나 반응하지 않는 남편이었다. 아내가 싫어서도 그녀의 말이 틀려서도 아니었다. 들어주는 공감 능력이 바닥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결혼 20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때론 작은 트러블이 있기도 하지만, 소통 문제를 겪고 있진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아들들과 아내가 소통 문제를 겪을 때가 많다.

오늘날 소통의 문제는 사회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통(通)하지 않으면 통(痛)한다는 말도 있다. 통해야 건강하단 말이다.

여러 다민족 속에서 살면서 작가 자신이 가진 인도인이라는 정체성. 그리고 그 속에서 겪은 소통을 재미난 스토리로 풀어낸 이 단편 소설집이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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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8-03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줌파 라히리가 입에 착 붙지를 않아요...
자꾸만 줌마 리하리....리히리... ㅜㅜ

푸르미원주 2015-08-03 13:3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름이 어렵지요? 영명으로는 더 더욱... ^ ^;
인도인들의 이름이 대개 어려운가봐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