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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 출신의 정지용 시인.

그가 지은 향수란 시는 1927년작이다.

이동원, 박인수의 노래에 앉혀져

우리 귀에 익어진 그 노랫말을 부르지 않고 읽어도 좋기만 하다.

 

그는 12살에 결혼하였고,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서울생활을 하고,

일본 교토의 한 대학에서 영문학을 한 후,

이화여대 교편을 잡고 교직에 몸담았었다.

그러나 해방과 동족상잔의 격동기에

북한으로 끌려간 이후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못 지, 용 룡.

즉 개천에서 용난다는 의미인가보다.

요절한 형님이 그보다 더 뛰어난 시인이었는데,

형을 따라다니면서 시선이 되었다고.

 

나의 할아버지 세대의 분이지만,

그의 시를 읽으면

아직 우리 곁에 숨쉬고 있는 듯만 싶다.

 

[향수]

 

정지용 지음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http://tvpot.daum.net/v/v5cb9GWGtWGGTutY6GTTt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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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 십삼도 영하 이십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입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오도 영상 십삼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

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페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모두 어딘가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려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이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가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희생, 나를 위한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 뿐

 

------------------

늙어가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 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시인, 교수

출생 1952년 1월 25일 (전라남도 해남)

소속 한국예술종합학교(교수)

학력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 석사

데뷔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연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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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 시인이 쓴 시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에 실린 시

 

■ 나무

잎새는 뿌리의 어둠을 벗어나려 하고

뿌리는 잎새의 태양을 벗어나려 한다.

나무는 나무를 벗어나려 함으로

비로소 한 그루

아름드리 나무가 된다.

 

------

 

■ 그 빈자리

 

미루나무 앙상한 가지 끝

방울새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갑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바로 그 자리

방울새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갑니다.

문득 방울새 앉았던 빈자리가

우주의 전부를 밝힐 듯

눈부시게 환합니다.

 

실은, 지극한 떨림으로 누군가를 기다려온

미루나무 가지의 마음과

단 한 번 내려앉을 그 지극함의 자리를 찾아

전 생애의 숲을 날아온 방울새의 마음이

한데 포개쳐

저물지 않는 한낮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도 미세한 떨림을 가진

미루나무 가지 하나 있어

어느 흐린 날, 그대 홀연히 앉았다 날아갔습니다.

그대 앉았던 빈 자리

이제 기다림도 슬픔도 없습니다.

다만 명상처럼 환하고 환할 뿐입니다.

먼 훗날 내 몸 사라진 뒤에도

그 빈 자리, 그대 앉았던 환한 기억으로

저 홀로 세상의 한 장을 이루겠지요.

 

-------

 

■ 노래

 

오늘도 베짱이는 허기진 노래를 불러요.

 

개미를 한입에 먹어치우고 싶다고.

 

-----

 

■ 내 육체의 피뢰침이 운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들판의 느티나무, 뇌우 속에서 

낮은 소리로 혼자 울고 있다.

 

그 느티나무 아래 서 있는 나 

비를 긋기 위해서가 아니다.

 

온 머리채를 흔들며 

낙뢰를 부르는 느티나무 

나는 지금 벼락을 맞고 싶은 것이다.

 

온 머리채를 흔들며 

낙뢰를 부르는 느티나무 

수십만 볼트의 전류가 언제 

내 몸을 뚫고 갔는지 모른다.

 

시의 유배지여, 기억하는가.

난 벼락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

 

찰나의 낙뢰 속에서 

내 몸과 대기와 대지의 주인이 되는 

나여,그 섬광의 희열 밖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비바람이 불고, 느티나무 아래 

내 육체의 피뢰침이 운다.

내 전생애가 운다. 벼락이여 오라.

 

한 순간 그대가 보여주는 섬광의 길을 따라 

나 또 한번 내몸과 대기와 대지의 주인이 되리라.

 

------

 

■ 나도 네 이름을 간절히 부른 적이 있다

 

간교한 여우도 

피를 빠는 흡혈박쥐도 

치명적인 독을 가진 뱀도 

자기의 애틋함을 전하려 애쓰는 

누군가가 있다.

 

그들이 누군가에게 애틋함을 갖는 순간 

간교함은 더욱 간교해지고 

피는 더욱 진한 피냄새를 풍기며 

독은 더욱 독한 독기를 품는다.

 

나도 네 이름을 간절히 부른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결국 

내가 내게 깊이 취했던 시간이었다.

 

------

 

■ 새의 선물

 

어느날, 하얀 깃털과 붉은 부리를 가진 새가

나의 창가를 방문했다.

그 새는 며칠을 창가에 드리워진 전깃줄에 앉아

내 방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을 저어 쫒아도 날아가지 않았다.

 

깊은 밤, 내 외로움이 그 작은 새의 깊은 눈과 마주쳤을 때

난 그에게 예쁜 새장을 하나 마련해주리라 생각했다.

이 세상의 거친 바람소리보다 완벽한 자기만의 방,

그 충만한 적요를 사랑하는 자의 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새장 문을 활짝 열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사뿐히 날아와 새장 안으로 들어왔다.

가끔 문을 열어두어도 그는 날아가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새 파는 집에 들러 

그를 위해 꼬리가 앙증맞은 암놈 한 마리를 샀다.

그러나 웬일일까 둘은 만난 그날부터

서로를 쪼아대며 쉼없이 다투는 것이었다.

짝이 맘에 들지 않는 게 아닐까요.

새집 주인은 새로운 새를 권했다.

이번엔 모든 게 잘돼가는 것 같았다.

둘은 서로를 고요하게 응시하며 사이좋게 먹이를 나누어 먹었다.

그리고 평온한 나날들이 흘러갔다.

 

어느 햇볕 좋은 날, 난 여느 때처럼 청소를 위해

새장 문을 열었다.

순간 그 붉은 부리의 새는

갑자기 조롱을 빠져나와 푸르르 창밖으로 날아가버리는 것이었다.

새는 전깃줄에 앉아 깊은 눈으로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

훌쩍 빌딩 숲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그것이 내가 본 붉은 부리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남아 있는 암컷 새를 다시 새 파는 집에 돌려주었다.

지금도 난 가끔 창가의 전깃줄에 앉아있던

그의 첫 모습을 떠올린다.

나는 진정 새 파는 집에 그의 사랑이 있다고 믿었던 걸까.

 

날 바라보던 그 붉은 부리새의 마지막 두 눈처럼

생은 때론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

 

■ 침묵의 소리  

 

개들은 처음 짖던 대로 짖고

새들은 처음 울던 대로 운다

우리는 처음 사랑의 말을 나누었으나

오늘은 굳은 입술로 침묵한다

 

------

※유하

 

각본가, 교수, 시인

 

유하는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영화 감독이다. 본명은 김영준이다. 2004년부터 동국대학교 영상정보통신대학원 영화영상제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1988년 문예중앙을 통해 시단에 등단했으며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 시집 대표작 

「천일마화」,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2004), <좀비처럼 걸어봐> (2003), <몰락 취미를 꿈꾸다> (2002)- 단편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2001),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1993), <시인 구보씨의 하루> (1990)-단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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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죽음 

/ 함성호

 

 

나는 내 발걸음에 취했다 

내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바다──,

그러나 내가 두고 온 그 백사장에서는

빈 구덩이만이 무성하여 

내 귀는 지하를 듣고 있다 

누군가 나를 낮은 포복으로 건너고 있다 

이 물소리, 

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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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유수 

 

/ 함성호

 

네가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

우리의 옛 맹세를 저버리지만

그때는 진실했으니,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거지

 

꽃이 피는 날엔 목련꽃 담밑에서 서성이고, 

꽃이 질 땐 붉은 꽃나무 우거진 그늘로 옮겨가지

거기에서 나는 너의 애절을 통한할 뿐 

 

나는 새로운 사랑의 가지에서 잠시 머물 뿐이니

이 잔인에 대해서 나는 아무 죄 없으니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걸

배 고파서 먹었으니 어쩔 수 없었으니 

 

남아일언이라도 나는 말과 행동이 다르니 단지, 변치 말자던 약속에는 절절했으니 

나는 새로운 욕망에 사로잡힌 거지

 

운명이라고 해도 잡놈이라고 해도 

나는, 지금, 순간 속에 있네

그대의 장구한 약속도 벌써 나는 잊었다네 

 

그러나 모든 꽃들이 시든다고 해도

모든 진리가 인생의 덧없음을 속삭인다 해도 

나는 말하고 싶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절없이, 어찌할 수 없이 

 

- 시집 『너무 아름다운 병』 , 2001, 문학과지성사

 

:: 함성호

<POEMER&NO=>1963년 강원도 속초 출생. 1990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56억 7천만 년의 고독> <聖 타즈마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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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는 물

 - 도 종 환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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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어떤 사본에는, 의원들에게 그 가산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에게도〕

예수의 뒤로 와서 그 옷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누가복음 8:43-44)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3:12)

 

세상사 속에서 첫마음 그 순수했던 다짐으로 출발하지만, 익숙함을 핑계로 점차 타협하고 거짓과 속임과 기만의 유혹 앞에 재물과 권세와 미색에 무릎꿇곤 하는 여느 정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 슬프게 하는데. 역시 나도 이와 다르다 할 수 없는데, 도도히 맑게 흐르는 물에 묻혀 같이 흘러가고 싶은 맘이다. 예수께서 거룩케 하심이 소망이다. 그 가신 길 따라 살아가는 삶. 그 거룩케 하심으로 초심 첫마음 첫사랑 유지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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