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진달래 - 제13회 전태일문학상 특별상 수상작
노회찬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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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2월 15일. 창당 보름 만에 1인 2표제 도입이 끝내 무산되자 권영길 대표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하였다. 2월 16일 김대중 대통령은 법안을 공표하였다. 민주노동당은 즉각 위헌소송을 제기하였다. 헌법재판소는 결국 위헌판정을 내렸고 1인 2표제는 쟁취되었다.- 168쪽

 

1인 2표제? 아마 정치 문외한인 사람 중에는 나처럼 오해 하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즉, 나는 이 바람직한 제도는 당연히 김대중 정부가 제안하고 제도화 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숨은 공로자는 민주노동당이었다.

 
그리고 '정치후원금 세액공제' 즉, 10만 원을 정치인에게 후원하면 연말정산에서 10만원 그대로 환불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 또한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관철된 것이었다. 한 지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에게 10만원을 후원하고서 적금 든 기분이라며 좋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연말연시 돈 쓸 일도 많은데 잊었던 10만원이 통장에 찍혀 들어오니 그 아니 기쁠 소냐.

 

이렇듯, 민주노동당의 출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바람직한 정책으로 국민들 마음에 서서히 뿌리내리고 있다. 때문에 지난 총선에서는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노회찬'의원의 낙마를 애석해 했다. 그것도 단 3%포인트 차이로 급조된 새파란 정치신인에게 졌으니 그 자신은 물론 그를 찍은 40%의 지역구민들은 얼마나 통절했을까.

 

그쪽과는 한참 거리가 먼 남쪽의 나도 '노회찬'이 떨어졌다는 소식에 짠하기 그지없었다. 구리 빛 얼굴의 지친 그가 그래도 웃으며 희망을 얘기하니 안도와 함께 미안한 마음이 며칠이 지나도 가시지 않았다.

 






  
<힘내라 진달래>
ⓒ 사회평론
노회찬

해서 빚진 기분으로 그의 책 <힘내라 진달래>(사회평론)를 펴들었다. 지난 총선을 기점으로 그는 더 이상 민주노동당이 아닌 진보신당 사람이 되었지만 당 간판이 달라져도 노회찬은 노회찬 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진보신당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해도 민주노동당시절의 노회찬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노회찬의 '옛사랑'의 흔적을 훔쳐보는 느낌이다. 이토록 자부심과 애정을 갖던 당을 떠날 때의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구경꾼인 나도 그의 떠남이, '민주노동당'이라는 간판이 참으로 아까운데 그는 오죽 했을까.

 

아무튼, 추억으로 돌아가서 이 책은 2004년 1월부터 3월 말까지 석 달 동안의, 2004년 17대 총선에 임하는 민주노동당 중앙선거 대책본부의 상황기록이다. 결과적으로 이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정당 투표에서 예상외의 표를 얻어 10석으로 원내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 기록의 처음부분이 쓰여 질 때만 해도 민주노동당원이 아닌 일반사람들은 노회찬의 '노'자도 몰랐지만 이 기록의 말미에 가서는 '노회찬 어록'을 저마다 한 구절쯤은 회자하게 되었다. 노회찬 어록이 자주 회자되는 만큼 민주노동당의 인지도가 커져갔음은 물론이고.

 

당시 나는 민주노동당을 찍은 것은 아니었지만 민주노동당의 선전이 기뻤고 2008년에는 민주노동당이 그 의석에서 못해도 2배는 불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우째 거꾸로 돌아서 2배 아닌 반 토막을 내주어 망연자실.

 

다른 나라를 둘러보니, 영국은 노동당이 1900년에 만들어졌고 뉴질랜드는 1916년에, 스웨덴 사민당(사회민주노동자당)은 1889년, 독일의 사민당은 1875년, 네덜란드 사민당은 1894년 등 다들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은 노동자당에서 대통령을 내었고, 볼리비아에서는 억압받던 원주민 출신이 대통령(에보 모랄레스)이 되었는가 하면 지난 총선 호주에서는 노동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이렇듯 세계 선진 여러 나라들은 다들 노동자당이 '떵떵'거리는데 우리는 왜 '보수'도 못 되는 '수구'들이 창궐하는지... 물론 그렇기 때문이야말로 진보정당은 우리에게 더더욱 소중하고 2008년 총선이 준 이 부끄러움은 다음 총선에서 충분한 '거름'이 될 것이다.

 

이 책의 끝부분에서 저자는 '민주노동당은 마중물'이라 하였다. '마른 펌프에 부어넣는 한 바가지 마중물처럼 저 지하에서 도도히 흐르는 수맥을 끌어올려 만물을 푸르게 할 것이다'라고. 아무렴 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은 머지않은 미래에 5천만의 가슴속에서도 푸르게 흐를 것이다. 아, 그러면, 우리나라도 노동자당이 집권 한 번 해 보겠지요?

 

뱀 꼬리: 김밥 할매들, 내 말 좀 들어 보소

 

가끔씩 미담사례로 뉴스를 장식하는 사연들에서 김밥 할매들은 빠지지 않는 주인공들이다, 김밥, 떡볶이 팔아 평생 모은 돈 1억여 원을 유명 사립대학에 기부했다는 뉴스를 볼 때면 그 선의는 충분히 공감이 가나 내 마음 한쪽은 씁쓸하였다. 

 

"아, 할매요. 이제 '그 대학' 다니는 학생들 중에는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 별로 없어요. 이 왕 좋은 일에 할 거면 확실하게 본전 뽑는 곳에다 투자하세요. 최고 경영자나 장관출신 총장들이 기업들 돌아다니며 강연 한 번 하면 후원금이 수십억씩 쏟아지는 그런 대학에서는, 할매 돈 별로 빛 안 납니다. 차라리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일 많이 하는 할머니와 출신 성분이 같은 민주노동당 의원들에게 기부하세요"라고 말하고픈 마음 굴뚝같다.

 

아마 길을 내지 않아서 그렇지 이 땅의 똑 소리 나는 김밥할머니 한 분 당 진보정당의원 한사람씩만 책임지면 가난한 진보정당 의원들은 힘이 펄펄 날 것이다. 나는 김밥할매가 아니라서 1억은 꿈도 못 꾸고 책 한권으로 때우지만 책 한권으로 때우는 사람 10만 명이면 김밥 할매 한 분과 당당히 맞설 수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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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인 큰 애가 보건 수업에서 '포경수술'에 대해 배웠다면서 들은 바를 전해주었다.

"포경수술을 해야 하는 이유는, 고추에 때가 끼기 때문에 해주지 않으면 이 다음에 결혼해서 아기 낳을 때 건강하지 못한 아기를 낳는대. 그래서 꼭 해야 하는데 초6이나 중1에 하는 것이 좋대. 우씨, 나는 엄마가 포경수술비 15만원 들이는 게 아까워 내 포경수술을 안 해주어 이 다음에 내 자손은 멸종하고 말거야."

아이의 투정을 듣고 놀랐다. 지난 해인가 성교육 강사 구성애씨가 우리 도시의 모 할인점에서 성교육 강의를 할 때 남자아이들 포경수술 할 필요 없음을 조목조목 설명하기에 안도했다. '이제 드디어 우리나라의 남자 아이들도 포경수술로부터는 확실히 해방되는구나' 생각했는데 일선학교에서는 아직도 포경수술에 대한 이해를 달리하나 보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직은 '포경수술 안 해도 된다'는 정보보다 비뇨기과 의사들에 의해 '하면 깨끗하고 좋다'는 정보가 더 많은 것 같다. 때문에 나는 비뇨기과 의사들에게 불만이 많다. 비뇨기과 의사들은 누구보다 확실히 알 것이다. 포경수술 할 필요가 없음을 말이다. 

언젠가 TV에서도 유명한 비뇨기과 의사가 나왔는데 아나운서가 포경수술에 대해 물으니, "아, 그건, 선택 사항입니다. 하고 싶은 사람은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됩니다"라고 한다. 나는 그 대답을 들으면서 심히 안타까웠다. 다른 의사도 아니고 비뇨기과 의사라면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 좋은 질문입니다. 아직도 포경수술을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은데 그건 '왜곡된 정보'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98%)은 포경수술 안 해도 됩니다. 할 필요 없습니다. 의학적으로 꼭 해야 될 '진성포경'인 경우만 하면 됩니다."(진성포경: 포피가 뒤집어지지 않아 귀두를 노출할 수 없는 상태, 벗겨지지 않는 포피)

라고 했어야 정답 아닌가 말이다.

여담이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그의 자서전에서 포경수술(할례의식)을 찬성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 정도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게 참을 수 있어야 된다고 하면서 찬성하였다. 요즘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정은 어떤지 몰라도 만델라 대통령의 어린 시절엔 성인식을 치르면서 포경수술을 하였다고 한다. 마취도 없이…. 

만델라 대통령은 그 과정이 굉장히 아팠지만 참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거뜬히 참아냈고, 당당하게 '사나이'가 되었다며 자부심이 강했다. 역으로 말하자면 포경수술은 만델라 대통령의 어린 시절처럼, 자연환경의 지배를 많이 받으며 어렵게 살던 시절에 자연으로부터 강인하게 살아남기 위한 (종교적) 심신수련의 일환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즉, 아파트에서 포시랍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현재 우리네 아이들에게 시킬 것이 아닌 것이다. 아니, 아님을 넘어 가혹하고 생생한 '폭력'이고 '인권 유린'이다.

나는 주변에 남자 아이를 둔 부모를 보면 한번쯤은 포경수술 할 필요 없는 이유에 대해 성교육 책에서 본 대로 설명하는데 다들 반응이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아마 몇 번의 내 기사를 본 분들도 어쩌면 그러지 않으셨을까. 해서 오늘은 확실한 증명서 한 장을 붙인다.(웃음)

 

 

 

[필독] 엄마가 알아야 하는 잘 못된 포경수술 상식 3가지
(출처: 구성애의 푸른 아우성)


첫째, 포경수술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렇지 않다. 세계 절대 다수의 남성들은 포경수술을 하지 않는다. 세계 포경수술의 대부분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종교적 이유로 행하여지며 이슬람교를 제외한 세계 포경수술 비율은 약 5%, 이슬람교를 포함하더라도 약 20% 정도이다. 

둘째, 포경수술은 선진국에서 많이 행해진다?

지금까지 대대적인 의학적 포경수술은 대부분 미국에서 행해진다고 알려졌으나 미국에서도 포경수술이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때 미국의 영향으로 포경수술이 유행했던 캐나다, 영국, 호주 등의 영어문화권에서도 최근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포경수술이 성행인 나라는 필리핀과 우리나라다. 

셋째, 포경수술은 12살 전후에 해주는 것이 좋다?

이것은 몇몇 비뇨기과 의사들의 의견으로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어 왔던 것. 즉, 세계적인 추세나 미국의 경우에도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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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 2009-12-2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구성애 포경수술 절대로 하지 마라 뉴버전 동영상 4분짜리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9039946&q=%C6%F7%B0%E6%BC%F6%BC%FA ;[새창에서 열기]



시사매거진 2580 남성수술의 실체 동영상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214&aid=0000058874& ;[새창에서 열기]


클릭하세요
 

한국방송 드라마 <미우나 고우나>가 종영을 며칠 앞두고 있다. 며칠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길게(?) 중독될 일 없기에 요즘 계속 보고 있다. 무엇보다 열심히 챙겨보는 이유는 다름 아닌 수아 할머니 최여사(김영옥분)가 언제 며느리(김해숙분)에게 ‘사과’하나 궁금해서이다.

내가 며느리라서, 가재는 게 편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이 드라마에 나오는 시어머니는 정말 보는 내 가슴마저 답답하게 한다. 시어머니를 대하는 오동지(김해숙분)를 보면 항상 참고 쩔쩔 매는 것이 눈에 보인다. 시어머니 앞에서는 할 말도 못하고 그저 예예하다가 정도가 심하면 한마디 대거리를 해보지만 본전 찾기는 언감생심이다.

어제는 보니, 온가족이 소파에 모여 앉아 얘기를 하는 장면인데 동지는 그냥 서 있었다. 동지가 그렇게 서 있는데도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불편하지 않은지 유쾌하게 담소를 나누었다. 바퀴의자(휠체어)에 앉은 남편을 보좌한다는 명분 때문이라면 아들 백호가 해도 충분 할 것이다. 그렇거늘, 그냥 서있는 동지를 보니 딱했고 그 집에서 그녀의 위치가 그러함을 각인시켜 주는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이드라마를 보면서 이 드라마 작가가 참 궁금했다.  작가는 왜 저런 시 어머니상을 그려주는 것일까.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아직도 며느리를 저런 식으로 대하는 시어머니들이 많기에 그냥 현실을 반영해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수아 할머니가 보여주는 며느리에 대한 인식이 타당하다 생각하기에 그렇게 그리는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는 다 잘하면서 유독 며느리만 마주치면 그 ‘파리한’ 표정이라니. 당신 아들이 좋아서 난리인데 시어머니인 자신이 왜 그리 미워하는지. 아들에게 못한다면 모를까. 보아하니 아들에게도 지극정성인데 매순간 꼬투리 못 잡아 안달인 표정이었다.

만약 현실에서도 아직 그런 시어머니가 있다면 정말 그런 시어머니를 둔 부부의 앞날이 걱정된다. 드라마는 드라마이니 결국은 갈등이 해소되고 행복한 결말을 맺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할머니 최여사가 동지에게 하는 행동은 며느리를 대하는 게 아니라 옛날 종을 부리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가만 보면 며느리 동지에겐 인격권이라는 게 전혀 없다. 그럼에도 식구들 누구도 항의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좀 유난하지만 다들 할머니니까 이해하는 분위기다. 

동지의 아들 백호마저도 남자라서 그런지 엄마가 당하는 심정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것 같다. 아마 며느리 동지의 마음은 ‘며느리’ 시청자들만 이해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이야 말로 드라마는 끝나도 문제는 남는다. 

드라마가 현실을 선도해야 될 의무는 없지만 가능하다면 바람직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도 드라마가 가진 존재의미가 아닐까. 드라마 다 끝나서 고부간 갈등 해소하지 말고 진작에 바람직한 고부관계를 좀 보여주고 끝나게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인다.

드라마야 끝나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쟁쟁한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이니 만큼 이 드라마가 준 정서적 느낌은 시청자들의 무의식 속에 오래 각인돼 있을 것이다. 좋은 의미들이야 문제가 없지만 이드라마의 고부관계는 시대에 맞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기에 뒤끝이 개운하지 않다. 

하여간, 이제 와서 뭐라 한들 어쩔 수 없지만, 그저 한편의 드라마일 뿐이지만, 그래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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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면 꼭 찾아먹는 것 중의 하나가 쑥떡이다. 

재래시장을 한 바퀴 휘돌다 보면 쑥떡 파는 아주머니를 만날 수가 있는데 봄엔 유독 그 쑥떡이 당겨 사먹게 된다. "제철음식이 제일"이라는 말에 견주지 않더라도 봄에는 왠지 쑥떡을 먹고 봄을 지내야 내 몸 어딘가에 다가올 여름을 대비할 면역이 생기는 듯 하다. 

 

그런데 이 쑥떡을 충청도에서는 쑥떡에다 '개'자를 넣어 '쑥개떡'이라 부르고, 모양도 직사각형이 아닌 호떡 모양으로 둥글게 빚는 것을 보았다. 몇년 전 친정인 충청도로 나들이를 다녀온 친구의 집엘 놀러갔다가 이 쑥개떡을 먹게 되었다. 

처음엔 쑥개떡을 준대도 그 중간의 글자 때문에 지래 맛없겠거니 생각하고 관심 없어했는데 자꾸 권하는 바람에 먹었다가 '띠잉, 이기 뭐꼬?' 한 입에 반했다. 쑥떡은 뭐니뭐니 해도 고소한 콩고물을 진하게 묻혀먹는 것이 제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콩고물 없이 참기름만 살짝 발라먹어도 맛있음을 그 충청도 '쑥개떡'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되었다.

해서 '쑥개떡'을 안 그 이후부터는 봄에 그 친구를 만나게 되면 친구 어머니의 안부보다 올해는 쑥개떡을 하셨는지 어쨌는지를 더 궁금해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올해는 쑥개떡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아무튼 한 봉지씩 사먹던 쑥떡을 올해는 직접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어머니께서 쑥을 보내주었는데 쑥국을 끓여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라 쑥국 두어번 끓여먹고 남는 것은 삶아서 쌀 한 되와 함께 방앗간에 가져다주니 양이 너무 적어서 못해주겠다고 하였다.

 

"다른 집 거랑 합해서 해주면 안돼요?"

"그건 안 돼요. 그러지 말고 오늘 가져온 것만큼 만 더 뜯어 와요.  쌀도 한 되 더 가져오고. 요새 쑥 천지잖아요."

 

'쑥 천지?'

아닌 게 아니라, 인근 밭둑길에 나가보니 사방이 쑥이었다. 햇볕에 노출된 쑥은 이미 훌쩍 자라 시어보였으나 그늘이나 마른잡초 덤불 속에서 자라고 있는 쑥들은 연했다. 손으로 몇 줌 뜯어보니 손에 쑥물이 배여 안 되겠기에 집에 와서 칼과 봉지를 들고 다시 나가 확실하게 뜯었다.   

아주 '최대한 많이 뜯었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뜯다가 왔는데 삶으니 '홀쪽'했다. 그래도 방앗간 아저씨가 필요하단 양 만큼은 될 것 같았다. 해서 이젠 쑥떡 해먹을 일만 남았다. 삶은 쑥은 일단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내가 가고 싶은 날 방앗간에 가져가면 된다.

'냉동실' 하니까 생각나는 데 이렇게 봄에 쑥을 뜯어서 삶아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낙엽 지는 가을에 또 한 차례 해먹으면 그게 또 그렇게 별미일 수가 없다나. 아무튼, 이 봄이 가기 전에 이번에 뜯은 쑥으로 쑥떡을 해서, 늘 먹던 식으로 콩고물을 묻혀서도 먹고, 그냥 고물 없이 '쑥개떡' 식으로도 먹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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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4-28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군침 돌아요.
얼마전 문우가 쑥설기를 해와서 나눠먹었는데 참 맛나더군요.
제가 백설기를 좋아하니까 더 그랬던지 몰라도요..
색도 향도 좋지요. 쑥개떡 다 되면 사진 보여주세요^^

폭설 2008-04-29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되면 보여 드릴께요.^^ 우좌간 이봄에 쑥떡 많이 사드셔요.^^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유채꽃 하면 제주도고, 유채꽃을 풍성하게 원 없이 보려면 제주도를 가야 하지 않았나 싶은데. 요샌 전국 어디서나 유채꽃을 볼 수 있다. 그나마 이제 제주도가 우위를 지키고 있는 것은 시간적으로 좀 일찍 유채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뿐 아닐까 싶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언제부터인가 봄이면 유채꽃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그전의 유채꽃은 동네 공터 채전 밭이나, 길가에서 조금씩 보이곤 하던 수많은 봄 꽃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해마다 봄이면 우리 동네에서도 유채꽃은 꽃 중의 꽃으로 한차례 떠들썩하니 물결친다.

 

 


  
유채꽃 밭
 
유채

한 대학(영남대)은 지역민들을 위하여 학교 주변의 아주 넓은 빈 땅에 유채꽃밭을 만들었는데 얼마나 넓은지 해마다 장관을 이룬다. 때문에 인근 지역민인 우리들은 그 밭에서 유채꽃물결이 출렁이면 다들 한 번씩 들러 사진 찍고, 꽃 사이로 난 길을 가로지른 후에라야 제대로 된 상춘을 한 기분에 빠져든다.

지난 주말 우리가족도 예외 없이 그 유채 꽃밭을 찾았다. 바람이 좀 불어서인지 벌들이 왱왱거리지 않아 아주 편안하게 유채꽃밭을 거닐었다. 자세히 보니 이미 진 꽃자리마다 가는 유채씨앗 주머니가 생겨나 있었고 아직 열매는 극히 작아 보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주머니에서 유채씨앗은 점점 커지고 단단해지나 보았다. 제주도에서는 이 유채 씨로 기름을 짜먹는다고 하던데 나는 유채기름을 한 번도 본적이 없어 그 맛이 어떤지 궁금하다. 

 

 


  
사진으로 보기보다 훨씬 넓어...
 
유채꽃

인터넷에서 보니 유채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 기름을 짜먹을 수 있는 것과 냄새가 나고 맛이 없어 식용기름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하니 더더욱 그 냄새들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이 유채는 꽃만 명물이 아니라 가축사료나 유기농비료, 화장품, 그리고 자동차 기름으로도 사용된다고 하니 놀랍다. 

그렇다면 내가 본 우리 동네 유채꽃밭 유채의 종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가만 생각하니, 항상 유채꽃이 만장같이 출렁일 때, 가서 사진 찍고 한차례 놀다온 다음부터는 유채꽃밭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사람들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때 유채꽃은 어떤 기분일까.

 

 


  
청일점으로 서있는 것도 해 볼만...
 
유채꽃

우리 동네 유채꽃도 사람들이 눈요기를 다한 다음 또 다른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사료도, 화장품도, 자동차 기름도 못되고 그냥 그대로 갈아엎어(?)져 버리는 것일까. 갑자기 그게 궁금해졌다. 그래서 올해는 꽃이 지고 난 다음의 유채를 보러 필히 한번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의 저 가득 찬 충만으로 볼 때는 언제까지 노랗게 ‘젊음’을 유지할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조금 있으면 저 꽃이 다 지고 초록의 씨앗주머니만 남게 되겠지. 상상이 안 간다. 그러나 질 날은 반드시 오겠고 올해는 그 지는 자리를 한번 보고 싶다. 꼭 보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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