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뜬금없이 고추장을 만들고 싶었다.
하루종일 비는 우중충 내리고 .... 투표는 했으되 희망은 안 보이는 듯하고  에라, 고추장이나
한번 만들어 볼까.

실은, 몇년 째 묵힌, 호박을 고아서 엿처럼 만든 것이 있었다. 그것을 이봄에는
기필코 처리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얼마전 부터 했었는데 오늘이 그날이 된 것이었다.

해서, 호박엿을 붓고 역시 몇년전에 담가서 두고두고 먹고있는 매실액을 넣고
푹 저어가며 끓였다. 8부 능선쯤으로 서서히 끓어오를때 아이들이 뭔가를 부탁해서
얼른 민원해결하고 와보니 글쎄 그새 넘어서 가스렌지 밑을 다 적시고 가스 구멍을 막아서
불도 제대로 안 켜지고....

하여, 이것은 가스렌지 청소 한번 화끈하게 하라는 주문인갑다 생각하고 열심히 닦았다.
그리고, 빨래널고 빨래개고 하다가  졸려서 한숨자고 나니
끓인물이 다 식어있었다.

미리 빻아두었던 고운 고춧가루를 붓고 큰애에게 저으라고 하였다.
고추장 만드는 방법이 이렇게 간단하다는 것을 알려주며 니도 나중에 담아먹어라 해가면서...

고춧가루가 썩이자 너무 뻑뻑해서 역시 먹어줄일이 막연하던 매실주를
두통이나 들이 부었다. 그러자 저을 만했다. 간을 위하여 굵은 소금을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몇줌인지 헤아리지도 않고 그냥 뿌려댔다.

그냥 뿌려대도 간이 맞는 걸 보면 나도 이제 주부생활 10년에 어느 정도 득도를 한것인가.ㅋㅋㅋ

조청이며 메주가루, 찹쌀가루등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싱숭생숭한 고추장 이었지만
고추장에는 고춧가루가 주인이니  달콤하기만 하면 그 무엇을 넣어도 맛에는 별 상관이 없으렸다.^^

물론 맛이 이전 고추장과는 조금 다르긴 해도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 신선하기도 하였기에
별 문제는 없었다.

그나저나, 고추장하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예전, 일본에서,  월급을 타면 커다란 고추장 한통을 샀다.
크다고 해도 3킬로그램이 아닐까 싶은데...이나라가 물가가 비싸다보니 아마 우리돈으로 치면 3만원은
주었던것 같다.

'아이고오, 고추장 한통에 3만원 씩이나 하다니 간이 떨려서 원~ '하면서도 너무 맛있었기에
다른 날은 못 사먹어도 월급날은 꼭 사서 먹었다.

어떻게 먹었냐하면 밥에 비려서 그냥 먹었다.
밥솥에서 금방 푼 따끈따끈 김이 모락모락나는 밥에다 고추장 한숟가락을 넣고 비벼먹으면
꿀맛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다른것은 아무것도 필요없었다.
아침도 저녁도 고추장 통의 바닥이 보일때까지 며칠을 그렇게 비벼 먹었다.

최종적으로 고추장 통에다 밥을 한숟가락 넣어 싹 비벼먹고 나면
'흐미, 내일부터는 또 무슨 낙으로 살꼬? 다음 월급날은 도대체 언제여? '하며 청승을 떨었다.

3만원 씩이나 하는 고추장이었기에,
한번은 통크게 사먹어도 두번은 사먹을수 없었던 것이었던 것이었기에.

아무튼 그때 느낀 내 소감은 한국사람은 고추장과 쌀만 있으면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학창시절에 한국사람은 김치와 쌀만 있으면 죽지 않는다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

......

하여간 고추장은 맛있었고, 맛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맛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봄에 고추장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을 살짝 알려주자면,
그것은 뭐니뭐니 해도 돈나물에 비비는 것이 제일 맛있다.

비빔그릇에 밥을 조금 담고, 돈나물을 밥보다 더 많이 그 위에 얹고,
돈나물 위에 고추장을 크게 한숟가락 떠 얹어서 비벼 먹으면?
봄날의 행복은 그속에 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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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8-04-09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너무 재미있어서 늘 그냥 읽고만 가다가 오늘은 인사 남깁니다.
저는 주부 생활 19년차라도 아직 고추장을 친정과 시댁에서 얻어 먹는데 정말 대단하네요.
늘 읽으면서 미소가 머금어지는 글, 참 좋아요.
님의 글을 읽으니 나도 고추장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기네요.
글 잘 읽고 미소까지 얻어갑니다.^^

폭설 2008-04-10 18:24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번 담가 보세요.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조상들의 슬기 이런것들도 생각나구요.

된장, 간장도 담고 보면 아주 쉬워요.^^
요샌 인터넷이 선생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