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계속 날씨가 덥다. 그러나 '찜통더위'라는 말을 하기에는 좀 이른 것도 같다. 아이들은 이사오면서 바로 창고에 넣어둔 에어컨을 가리키며 '엄마, 당장 에어컨 설치하자'며 땀을 바작바작 흘렸다. 나는 사막의 열기를 미리 경험해 보는 셈치고 올해는 그냥 넘어가자며 외면했는데 과연 냉풍기 없이 올 여름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집에 있는 나도 이런데 넥타이를 매는 남자들은 어떨까?

 

넥타이 안 매기, 한철 행사로는 해결 안 돼

 

따지고 보면 이 '넥타이 안 매기 운동'은 항상 반복되었던 것 같다. 해마다 여름만 되면 전력소비를 줄이자며 넥타이를 풀자는 뉴스가 어김 없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한여름 더위만큼이나 반짝 나왔다가 시원한 바람이 불면 어느덧 스르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 다음 여름이 되면 또 '매지 말자' 호들갑을 떨었다.

 

우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남자들이 넥타이를 왜 매는지 이해가 안 간다. 텔레비전을 보면 여자들은 한겨울에도 민소매를 입고 나오는데 남자들은 한겨울은 물론 한여름에도 양복에 넥타이를 꽉 조이게 매고 나온다.

 

그런 상반된 차림을 한 사람들이 함께 진행을 하면 그 때 방송국 온도가 살짝 궁금해진다. 몇 도일까? 민소매 여성은 추운데도 참고 있는 것일까. 반대로 더운데도 넥타이 정장 남성은 사나이 기백으로 역시 참고 있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진중권씨의 경우 넥타이를 안 매서 무척 보기 좋다. 진씨의 경우 토론프로에서 사회자와 다른 토론자들이 다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나와도 꿋꿋하게 홀로 줄무늬 반팔 상의만 입고 나오는 것을 보게 되는 데 속이 다 시원하다.

 

어쨌든 이렇게 더운 날, 넥타이로 목을 꽉 죄는 것은 '열 고문'을 받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평균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대체로 열이 많다고 하니 오죽이나 더 답답할까. 현대의 넥타이는 좀 과하게 말해 과거 중국 여성들의 전족과 별로 다르지 않다.  

 

넥타이를 확실히 푸는 법, 흰색 와이셔츠를 퇴출하자

 

넥타이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흰색이나 여타의 단색, 혹은 줄무늬 와이셔츠가 있기에 넥타이도 존재한다. 이 둘은 환상의 공생 관계이자 와이셔츠는 넥타이의 '숙주'다. 숙주가 없으면 넥타이도 존재할 수 없다. 고로 와이셔츠를 퇴출하자.

 

그러면 뭘 입냐고? 와이셔츠 아닌 그냥 반팔 상의를 입자. 진중권씨처럼 여름에는 양복과 넥타이 빼고 그냥 반팔 상의만 입자. 양복 회사에서 아무리 시원한 감으로 양복을 만든다 해도 양복은 덥다. 이 더운 여름에 양복입 고 넥타이 매고 땀 흘리는 남자를 보면 멋은 고사하고 불쌍하기 그지없다. 왜 그런 생고생을 해야 하느냐 말이다(일종의 남녀 차별이다. 남자들은 왜 반기를 들지 않는지).

 

또, 이 와이셔츠라는 물건은 주부들에게도 골치다. 정장차림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남편을 둔 아내의 경우 여름날 와이셔츠 다림질은 보통 일이 아니다. 특유의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해 와이셔츠만 한꺼번에 모아서 세탁하고 다림질 한다는 한 지인. 일주일분 와이셔츠를 다림질 하고 나면 얼굴에는 땀이 송송, 손목은 욱신욱신,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것을 30년 한다고 생각해보자. 보통 노동이 아니다.

 

반대로 와이셔츠 아닌 그냥 이런저런 반팔 상의의 경우 툭 털어서 널고 마르면 바로 입으면 된다. 얼마나 간편한가. 즉, 깨끗한 와이셔츠에다 눈에 뛰는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의 남성 뒤에는 그 '옆지기'의 욱신거리는 노동이 숨어있다.

 

계급장 높은 사람부터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벗자

 

여름철 전력 낭비에 대한 해결책으로 넥타이를 풀자는 뉴스를 내 보내면서 정작으로 뉴스 진행자 자신은 넥타이로 목을 꽉 조이고 있는데 설득력이 없다. 진정 여름철 과잉 전력소모를 걱정한다면 뉴스 진행자부터 넥타이를 풀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6월부터 8월 말까지 3개월간 청와대는 물론 정부청사 공무원들이 이른바 '노자켓·노타이'의 간소복 차림으로 근무하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하니 이런 문화가 여름 뿐 아니라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다.

 

여름 한철만 풀고 다른 계절엔 다시 매게 되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매해 여름 또다시 풀자는 운동을 반복해야 되니 이참에 아예 공식적 업무에서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동반 퇴출시키면 어떨지.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네 복식사도 시대에 따라 시대에 맞게 변천에 변천을 거듭하지 않았나.

 

지금은 고유가, 지구 온난화, 원자력의 환경 파괴 등 도무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인한 수난시대인 만큼 이쯤에서 남자들의 의복양식을 한번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넥타이 맨다고 다 루이14세 후손이 되는 것도 아닐 텐데. 아니, '넥타이의 원조' 하늘의 루이 14세도 현대인들이 아직껏 넥타이를 멋의 정점으로 여기고 거기다 목숨 거는 것을 보면 갑갑해도 한참 갑갑하지 싶다.

 

'아니 쟤네들은 언제적 유행인데 아직도 넥타이를 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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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3월초), 동네를 한 바퀴 돌아 걷다가 우연히 버려진 화초를 발견하였다. 녀석은 ‘인도고무나무’였다. 전체 20센티 정도 되었는데 뿌리는 떨어져 나가고 없고 뿌리 쪽 줄기 대부분 또한 썩었고 윗부분만 간신히 살아있었다. 화초에 따라 뿌리부터 썩는 게 있는가 하면 잎이나 줄기부터 마르는 것이 있는데 보아하니 인도고무나무는 뿌리부터 병이 드나 보았다.

 

아무튼, 누군가가 ‘도저히 가망 없다, 니는 이제 죽은 목숨. 어쩌겠니’하며 버렸나 본데 내 눈에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모르면 그냥 지나 쳤을 것인데 한때 화초에 미친 전력이 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안 봤다면 몰라도 내 눈에 띈 이상 분명 살릴 수도 있는 것을 그대로 죽게 할 수가 없었다.

해서 줄기 중 썩은 부분을 손으로 잘라내고 집으로 가져왔다. 집에 와서는 다시 가위로 썩은 부위를 확실하게 잘라냈다. 그런 다음 컵에 물을 담고 녀석을 꽂았다. 이유는? 그렇게 물에 담가두고 두어 달 있으면 줄기에서 뿌리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화초들 중에는 줄기를 뚝딱 잘라 흙에 묻거나 물에 담그면 그 줄기에서 뿌리가 나는 것이 많다. 이 인도고무나무의 경우, 몇 년 전에 분양을 시도할 때는 줄기를 잘라서 바로 흙에 묻었다가 뿌리가 썩어버리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난날의 과오를 발판삼아 치료법을 달리하여 물에 담그게 된 것이다.

 

언제 형님 고무나무처럼 크지?

 

컵에 담가둔 초창기에는 이제나 저제나 뿌리가 나왔나 수시로 살폈다. 그러나 조급증을 낸다고 빨리 나올 리도 없고 해서 제풀에 지친 나는 가끔 물이나 더 부어주면서 녀석에게 시큰둥해졌다.

 

그러다 지난 5월 말쯤 투명 컵 안쪽에 무언가 하얀 것이 보이는 듯했다. ‘옳거니,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나.’ 갑자기 달뜬 기분이 되어 녀석을 물에서 빼내어 보니 줄기에서 뽀얀 뿌리가 여러 개 나있었다. 당장 흙에 심어도 될 만큼 뿌리도 오동통했다.

 







  
하얀 껍질속에서 새잎이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인도고무나무 잎은 도르르 말려 있다가 겉 껍질이 떨어지면 스스르 점점 풀리면서 펴진다.
 
인도고무나무

 

해서 놀고 있는 빈 화분에다 녀석을 옮겨 심었다. 그리고 며칠을 살폈다. 혹 잎이 시들지 않나, 여차하면 다시 물속으로 보내 뿌리를 좀더 키워서 심어야지 생각했다. 그랬는데 한 일주일이 지나도 별 이상 증상이 없는 것 같아서 다시 안도와 함께 무덤덤한 평상심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무심함 속에서 세월은 흘러 계절은 어느새 7월, 게다가 오늘 아침엔 안개가 자욱하니 아침부터 후덥지근했고 안 봐도 비디오로 오늘 낮 기온이 어떨지 눈에 선했다. 마침 화초들을 둘러보니 화초들 또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호수로 시원하게 물을 뿌리는데 얼마 전 독립한 녀석과 기존의 큰 인도고무나무를 비교하자니 녀석은 전봇대 앞의 이쑤시개만큼이나 작아 보였다.

 







  
형님 고무나무.
 
고무나무

 

‘워매, 형님 너무 부러워요. 고개가 아파 제대로 처다 볼 수가 없어요.’

 

나는 오늘에야 녀석의 그런 낌새를 느꼈지만 어쩌면 녀석은 매순간 형님 고무나무의 키를 부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걱정마라. 국방부 시계도 돌아간다는데, 우리 집 베란다 시계쯤이야. 우리집 베란다 시계는 그보다 두 배는 빠르게 돌 것이야. 무럭무럭 자라렴.

 

이로써 내 버려진 고무나무 수술(?)은 완벽하게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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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딸들인 30대의 조카들을 만나면 누나일 뿐임에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부모인양 늦둥이 남동생(고1)을 걱정한다.

 

그리고 얼마나 예뻐하는지…. 내가 볼 땐 웃자란 키에다 깡마르니 뭔가 엉성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없는 데다 얼굴에는 청춘의 다이아몬드가 초롱초롱해서 징그럽기 그지없건만 그녀들은 유치원생 예뻐하듯이 토닥인다.

 

"그렇게 실속 없이 예뻐만 하지 말고 진정으로 저 애를 위해서 누나들이 할 일이 뭔가를 생각 해봐."

"진정으로라면 어떻게?"

 

그토록 예뻐하면 답이 나와도 벌써 나왔을 텐데 녀석의 누나들은 나를 만날 때면 늘 한숨이다. 아무리 예뻐해도 공부 못하는 것을 잘하게 할 수는 없는지. 글쎄, 이번 중간고사에서는 수학을 19점인가 맞았대나. 수학이라면 거의 만점 가까이 맞았던 둘째 조카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점수였을 것이다.

 

"찍어도, 찍어도 어찌 그리 정답을 피해가면서 찍었는지."

"야, 갸는 아무래도 그 부분에서는 이 고모의 피를 이어 받았나봐(웃음)."

 

수학 왕 조카의 장탄식을 듣자 푸~훗 옛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왕년의 학력고사에서 일찌감치 수학을 포기했기에 수험 당일엔 무조건 찍었는데 나중에 결과를 보니 15점이었다. 좀 잘 찍어서 30점은 언감생심, 25점쯤 받고 싶은 것이 내 소망이었는데 수학은 내 시험 점수로 '확률'이라는 단원의 존재를 알려줬을 뿐이었다.

 

아무튼, 10점대의 점수를 받은 전력이 있기에 막내 조카의 19점은 나로서는 200퍼센트 이해가 가는 점수였다. 그 19점은 그나마 객관식이 있는 시험에서 '확률'이라는 것이 적용되었으니 망정이지 실지의 성적은 0점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내 경험에 비춰 볼 때 억지로 노력하기보다 그냥 포기하는 게 맞다고 본다. 포기하고 그 시간에 다른 것 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 생각한다. 아닌 게 아니라 막내조카는 수학은 19점 받으면서도 국어는 조금만 공부하면 90점대를 넘는다고 했다. 그러니 이 아이의 머리는 100퍼센트 인문 쪽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점수로서 증명하는바.

 

문제는 그 많은 수학 시간을 어떻게 3년씩 견디냐 하는 것이렸다. 이 부분에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조카처럼 수학에 취미 없는 얘를 앉혀놓고 가르치는 선생님도 불쌍하고 배우는 조카도 불쌍하고…. 그 지루하고 어이 없는 경험은 이 몸 또한 뼛속 깊이 경험해 본 것이기에 막내조카 또한 나의 전철을 밟을 것을 생각하니 애처롭다.

 

아무튼 오빠네 가족들은 중학교 3년과 그리고 이번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그래도, 그래도" 하면서 "혹시나, 혹시나"하면서 기대를 접지 않았는데 이번 19점 앞에서는 확실하게 풀이 꺾인 듯했다. 나는 막내조카가 중2 무렵부터인가 공부가 싫다면 학원비(월 20만 원)를 차라리 다른 식으로 소비하라고 누차 건의했다.

 

즉, 학원비의 절반은 저축하고 나머지 절반만 털어서 한 달에 두 번 정도 기차 타고, 버스 타며 타 지역을 같이 여행하라고 말이다. 1차 목표로는 가까운 남부 지방 주요 사찰들을 두루 탐방한다든가 아니면 역시 남부 지방 명산들을 두루 답사 등 견학거리는 찾으면 세고 센 것 아닌가.

 

그러면 이 누님들은 순간은 혹하나 자기들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공부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학원행을 독려했다. 때문에 한 다리 건넌 내 처지에서 자꾸 강요할 수도 없어 나 몰라라 했는데 역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부 학원 말고 다른 학원 보내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막내가 나름 융통성(?)이 있어서 공부 스트레스를 주는 쪽쪽 다 받아 먹지는 않는다는 것. 성적도 안 오르는데 가기 싫은 학원을 꾸역꾸역 가면서 스트레스 왕창 받으며 우울해 하면 보는 사람도 애처로울 것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학원 잘 가는 척 하면서 요령껏 빼먹으며 가끔 영화도 한 프로 씩 땡기는 듯했다.

 

그러다 꼬리가 길 경우 한 번씩 들켜서 반란이라곤 모르는 오빠네 식구들을 아연 실색케 하지만 나는 녀석의 그런 낙천성에 한 표 주고 싶어진다. 나아가 비굴하게 학원이나 '띵겨' 먹는 그런 짓 좀 하지 말고 당당하게 "부모님, 누나들 나 학원 싫소"라고 좀 외쳐주었으면. 당당하게 외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대안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인즉슨, 고교에 올라온 조카는 공부학원 말고 태권도 학원을 보내 달라고 했다는데 가족들은 들은 체를 안했다고 한다. 운동 배워 힘 쓰는 것 아닌가 불안해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게 아니고 아무래도 걔가 청춘이다 보니 에너지가 남아 돌아 그런가 본데 건실한 육체를 가지다 보면 혹 호연지기가 생기지 않을까 보내보라고 권했다.

 

나아가, 독서 계속하고 기타 학원 같은데서 기타를 좀 배우게 하면 어떨까 했지만 이 고리타분한 가족들은 '딴따라' 시킬 일 있나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딴따라는 아무나 하나. 딴따라 될 생각이 있을 정도로 기타를 튕긴다면 다른 무엇도 야무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은 태권도를 배우면서, 손톱에 핏물이 들도록 기타 줄을 뜯으면서 혹, 인내, 용기 그리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인데 가족들은 딴따라와 조폭만 연상했다. 휴~, 아무튼 궤도를 이탈하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하고 어렵다. 그러나 한번 이탈해보면 별것 아니고 단지 해방일 뿐일진대….

 

우리 다닐 때야 한번 공부 시기를 놓치면 영원히 낙오자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입시 공부를 잘 따라가는 애라면 힘들어도 그냥 가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 조카처럼 따라갈 생각이 전혀 없는 경우는 계속 학교와 학원 이중으로 다니게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청소년 학대다.

 

둘 다 보내며 애를 혹사 시키기보다 그중 하나는 떨쳐 버리고 대신 견문을 넓혀 주는 것이 오히려 더 조카 마음에 단비를 주는 게 아닐까. 물론, 새가슴 오빠네 가족들은 학교를 관두게 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니, 소득 없는 학습학원이나 이참에 제발 좀 정리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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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 85개를 5일 만에 뚝딱!

 

어린 시절, 과일을 좋아했던 나는 과수원집 딸들이 무척 부러웠다. 중학시절엔 과수원 하는 친구의 집에 갔다가 굵기가 작은 홍옥 여러 소쿠리 분량이 소여물 옆에 쌓여 있는 것을 보고는 놀랐다.

 

'아니, 먹는 과일이 왜 저기 있지.' 좀 작아도 사람이 먹기엔 충분했는데 소먹이로 주는 것을 보고는 그 소가 어찌나 부럽던지. 소를 주느니 나를 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쑥스러워서 못했다.

 

친구 집에서는 작은 홍옥은 사과 축에도 들지 못했고 처치 곤란이라 소가 어서 먹어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그 친구에게 그때 얘기를 하면 친구는 내 부러움과는 정반대의 대답을 하였는데, 듣고 보니 과수원집 딸에게도 나름의 고충은 있었다.

 

"내 사과를 안 먹고 말지. 가을에 사과 딸 때마다 무거운 사과 바구니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니? 요즘 부모들은 자식들 일 안 시키지만 우리 때는 본전 빼고도 남게 시켜 먹었잖니? 내게 사과는 맛있는 과일이 아닌 '노동'으로 기억된다."

"아무리 그래도 내겐 니 노동이란 말이 사치로 들린다. 일 많이 해도 좋으니 사과 많이 먹고 자랐더라면…."

 

아무튼, 과일에 대한 내 여한이 자식들에게도 유전되었는지 두 아이 다 과일을 무척 좋아한다. 요즘은 과일이 철도 없이 일 년 내내 쏟아지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 과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우리 가족은 나의 옛날과 다름없이 없어서 못 먹어 안달이다.

 

얼마나 과일을 많이 먹어대나 하면 참외를 15kg들이 큰 상자로 하나 사면 5일을 못 버틴다. 15kg 큰상자일 경우 보통 주먹만 한 크기의 참외가 한 85개 정도 들어있는데 우리 식구는 그것을 4~5일에 다 먹어 없앤다.

 

6월 들어 벌써 두 상자를 먹었다. 아니, 5월 말일 전후에 한 상자 먹고 아직은 참외 값이 좀 비싼 듯해서 중간에 토마토 두 상자를 끼워 먹고 다시 참외 한 상자를 먹었다. 토마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 이웃들은 기겁을 한다.

 









  
과일상자. 버려도 늘 쌓인다.^^ 과일 값을 모두 합하면 78000원. 싸지요?
 
과일상자

 

"아니, 한 상자도 아니고, 토마토를 어째 한꺼번에 두 상자씩이나 살 수 있어요?"

"한 상자는 말이 상자지 너무 헤퍼서 며칠 못 가기도 하고 또 토마토 가격이 쌀 때는 달랑 한 상자 배달해 달라기 뭣해서 사는 김에 두 상자 삽니다."

"우리는 봉지로 사먹어야지 상자로 사먹으면 반도 못 먹고 결국은 버리게 돼요."

"우리는 없어서 못 먹어요."(웃음)

 

아무튼 요즘은 참외와 토마토가 당기는 계절이지만 조금 있으면 수박과 포도가 여름날의 열기를 식혀준다. 그런가 하면 그 다음은 풋사과 '아오리'가 신고식을 하기에 두어 상자 먹어 줘야 하고, 아오리를 먹고 나면 감과 빨간 사과가 나온다. 찬바람이 불면 남도의 귤이 또 우리네 미각을 꼬드기고 삼동엔 이 귤과 시원한 배와 사과를 번갈아가며 한 상자씩 비워야 한다. 일조량 적은 겨울철이라지만 우울할 새가 없다.

 

그러다 봄이 오고 대지가 꿈틀거리는 4월이면 딸기가 또 옆구리를 찔러댄다. 딸기를 얼추 먹고 나면 토마토가 나오고 큰 토마토 방울토마토 번갈아 먹고 나면 아아,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노란 참외가 지나치려는 내 발길을 붙든다.

 

사실, 오늘 점심부로 참외가 똑 떨어졌는데 사러갈까 말까하다 참아보자며 참고 있는데 갈증도 아닌 것이 배고픔도 아닌 것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데 아마도 과일이 고파서 생긴 금단 증상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금단 증상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이라도 하면서 침이라도 삼키고자, 상상으로라도 좀 먹고 싶어서 말이다.(웃음)

 

참으로 고마운 과일가게 사장님 부부

 







  
단골 과일가게의 현증택 사장님. 1남 1녀 자녀들이 다 성장하여 그런지 부부가 다 인상이 여유롭다.
 
과일

 

과일을 상자째로 그것도 일주일도 안 돼서 한 상자씩 비운다면 비용이 상당하리라 짐작할 것이다. 물론 과일값으로 지출이 많다.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고기를 잘 안 먹고 외식도 거의 안 하니 그나마 감당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이렇게 호사스럽게 과일을 사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다 좋은 과일가게를 만났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쎄 한 2년 정도 되었을까. 동네 시장으로 향하는 길목인 이웃 아파트 후문에 어느날부터인가 노점 과일 가게가 들어섰다.

 

해서, 시장을 다 보고 돌아오는 길에 어쩌다 과일을 빼먹었으면 한번씩 들르곤 하였다.  그런데 한번 두번 차츰 그곳에서 과일을 사다보니 이번엔 두 분의 후덕한 인상이 눈에 들어왔다. 착한 사람 밀어주고픈 게 인지상정. '이왕이면 이곳에서'하다 보니 단골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자째로 과일을 살 때면 동네의 여느 과일 집보다 많이 쌌다. 그것은 과일을 많이 좋아하는 우리로서는 여간 생광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특별히 싸게 파는 이유가 무엇일까 늘 궁금했는데 이번 참에 여쭤보니 떼 오는 가격은 대동소이한데 '박리다매'를 한다고 하였다.

 

'박리다매? 아마, 과일장사로 나선 지 얼마 안 되었기에 특별히 손님 사로잡을 자신이 없어서 더 싸게 파는 것으로 전략을?'이라고 순간 생각했는데,

 

"과일장사 한 지가 그러고 보니 27년째네요."

"어머, 그렇게 오래요?"

"여기는 집사람이 하고 저는 또 다른 데 가서 합니다."

 










  
과일 옆에 따로 자리잡은 매실과 완두콩. 완두콩은 이즈음 왕창 먹어줘야. 매실을 보니 매실농축액을 담글까 말까.^^
 
매실

 

그러고 보니 오후에 그곳을 지나 칠 때면 아주머니 혼자 계실 때가 많았다. 그리고 과일이 쌌지만 상자째로 사도 하자를 별로 발견할 수 없었는데 알고 보니 다 '27년' 경험이 녹아 있어 그런 것이었다.

 

아무튼, 이 단골 과일가게를 드나들면서, 이렇게 이문을 적게 보며 과일을 싸게 파는 것도 일종의 선업을 쌓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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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재단>에 의하면 캄보디아에서는 우물하나 파는데 우리 돈으로 50만원 든다고 하였다. 50만 원 짜리 우물 하나를 파면 약 500여명의 사람들이 전염병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물을 먹고 사용할 수 있다고.

 

그런가 하면 아프리카 사막의 어디에서는 물 한 통(큰말통)에 우리 돈으로 15원인가 하는 것을 TV에서 본적이 있다. 어느 단체인가 ‘100원으로도 도울 수 있습니다.’라고 하던데 정말 사막에서는 우리 돈 100원이면 물을 여러 통 살 수 있을 것이었다.

 

<여행 생활자>의 유성용은 4000미터가 넘는 중국 고산지역을 여행하면서 추울망정 물 걱정은 없던데. 왜냐하면 물이 고프면 그냥 눈을 뭉쳐 즉석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으면 되었기에 말이다. 그 눈 다 쓸어다가 사막에 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무튼, <환경재단>에 의하면 전 세계 65억 인구 중 ‘11억 명’은 물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중 연간 ‘2000만 명’은 수인성 전염병으로 고생을 하고 매일 ‘4500명’의 어린이들이 오염된 물을 먹어 사망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목포 같은 도시는 해마다 갈수기에는 물 부족으로 애를 먹던데...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내가 처한 환경이 얼마나 고마운지 새삼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그나마 평소에 쓰는 물이라도 좀 절약하면서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진다.

 

물 절약, 아주 쉬워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느끼겠지만 요즘 아파트의 수압상태는 정말 좋다. 좋다 못해 너무 세다. 화장실은 물론 앞뒤 베란다 모두 찬물 더운물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가 하면, 세탁기 수도꼭지 따로 화분용 수도꼭지 따로 등등 필요한 곳에 수도꼭지는 언제나 대기중이다.

 

‘주인님, 언제든 틀어주세요.’

 

그러나, 이러한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보편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다들 당연하다 생각하기 쉬운데 11억 물 부족 사람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내 경우, 고맙다는 생각은 항상 하지만 물을 알뜰살뜰 쓰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내 나름으로 절약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수압을 조절하여 물줄기를 약하게 해서 쓰는 것이다. 이 수압조절은 수도꼭지에서 즉석으로도 할 수 있지만 매번 쓸 때 마다 그렇게 하려면 귀찮아지기도 하기에 보다 편리한 대책(?)이 필요하다.

 

어떻게? 즉, 보통 화장실 세면기 밑이나 부엌 싱크대 밑을 열어보면 두 개의 타원형 ‘수압조절나사’가 있다. 하나는 온수 다른 하나는 찬물이다. 때문에 수압을 조절하려면, 수도꼭지를 온수 쪽으로 한번, 냉수 쪽으로 한번 틀어서 각각의 수압을 조절하면 된다. 간단하다.   그렇게 한번 조절을 해놓으면 매번 수도꼭지를 들어 올릴 때 ‘살짝 들어 올려야지’ 신경 안 써도 되기에 훨씬 수월하다.

 







  
왼쪽은 온수 오른쪽은 냉수
 
물절약

물론 처음에는 의욕이 앞서 물줄기를 너무 약하게 해 놓았다가 답답해서 다시 올리기도 하는데, 몇 번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더도 덜도 말고 딱 알맞은 물줄기를 찾게 된다. 희망하는 물줄기야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여하간 크게 줄이든 작게 줄이든 물을 절약할 수 있음은 확실하다.

 

아직, 수압조절나사의 존재를 모르신다면 한번 봐 주시길. 뭣이라, 다들 안다고요? 그러면 죄송(머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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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8-06-1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고 있긴 했는데^^ 문제는 제가 죽으라고 줄이면 가족들이 죄다 풀어놓는다는 것. 이거 고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폭설 2008-06-11 11:27   좋아요 0 | URL
광화문 컨테이너 처럼 용접을 하세요.ㅋㅋ..^^

Arch 2008-06-21 01:38   좋아요 0 | URL
ㅋㅋ 이 댓글 이제 봤어요. 용접 기술 좀(굽신 굽신)

깜소 2008-06-10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직접 수도꼭지에서 하는데 남들이 뭐라 그래요~ㅋㅋ 장난하냐는둥 쪼잔하다나 뭐래나..ㅎㅎ 남자라서 그런 소릴 듣는건지 원~ 아끼자는데 남녀가 뭔 상관인지~ 반갑습니다^^

폭설 2008-06-11 11:29   좋아요 0 | URL
물부족 다큐 같은 것 할때 같이 보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물통 두개씩 들고 왕복6시간을 걷곤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