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9일은 4·19혁명일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결혼기념일이었다. 특히나 올해 사일구는 그 결혼이 만 10년 되는 날이었다. 10년 전 4월, 4월에 결혼하기로 하고서 네 번의 일요일 중 거침없이 19일을 택한 것은 그날이 '4.19혁명일'이었기 때문이었다. 

30여년 전 이날엔 민주주의를 위해 젊은 넋들이 꽃 같은 자기 목숨을 버리기 까지 했는데, 겨우 두 사람의 마음 합치는 것을 힘겨워 한다면 '말이 안 되지'하며 사일구의 역사성에 기대 보기로 했다. 지나고 보니 그렇게 의미를 두어서 그런지 몰라도 확실히 '4·19 효과'는 있는(?) 것 같다. 궁금하면 내년 '사일구'에 결혼들 해보시라. 

하여간 그때나 지금이나 결혼기념일이 '사일구'인 것은 생각만 해도 그냥 기분이 좋다. 소소하게는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릴 일이 없어서 좋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 중에는 4·19가 무슨 날인지조차 모르는 학생들도 많다는데 적어도 내 아이들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니 안심이다.

아무튼, 남들의 혼자 살줄 알았다는 직감을 부수고 결혼을 했고 무탈하게 10년씩이나 살게 되어 이래저래 감사하고 감회롭다. 5,6년도 아니고 8,9년도 아닌 10년이라는 햇수에 느낌이 더 새롭다. 산이 있다면 일단 큰 산 하나는 넘은 기분이다. 물론 앞으로도 나름 큰 산들이 버티고 있겠지만 일단, 아이들을 웬만큼 키웠다는 것이 안심되고 수지맞는 장사를 한 것 같다.

그나저나, 정말이지 지나고 보니 세월이 유수 같다는 옛사람 말이 실감난다. 결혼이 5, 6년으로 흘러가고 있을 때는 언제 10년이 되나 했는데 이렇게 결혼 10년을 맞고 보니 지난 3650일이 한 10초로 축약되어서 느껴진다. 10초가 무에냐? 찰나처럼 느껴진다. 혹은 마치 그런 과거가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친정엄마는 여든이 되었을 때 말하기를, 지난 세월이 '한순간' 같다고 하였었다. '엊그제'같다고도 하였었다. 결혼 20, 30년 된 사람들에게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정말이지 엄마가 느꼈던 그 '한순간'을 나도 느꼈다.

하여간, 앞으로 10년 또한 화살처럼 빠르게 흐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빠르게 흐르는 만큼 그 순간들이 지루하지도 않을 것 같다. 애들도 크고 어느 정도 자유로우니까 그런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지난 10년을 살면서 나름의 지혜가 생겼을 것이기에 앞으로 10년은 이 지혜의 양식을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헐어 쓰면 될 테니 유비무환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기념일에 발견한 새로운 취미

그런데, 결혼 10년 되던 지난 사일구에는 웬일인지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갔다. 결혼 자축은 저녁을 밖에서 먹는 것으로 일치감치 합의 봤는데 그래서 그랬나, 시간이 너무 안 갔다. 오전 내내 집에서 뭉개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인근 대학가 농구장에 가서 규칙무시하고 무조건 넣기만 하면 되는 농구를 하였다. 

농구를 하다가 좀 쉬면서 보니 스쿼시 벽이 눈에 띄었다. 눈에 띄기만 한 게 아니라 그 무심한 벽에 순간, 느낌이 확 왔다. 테니스는 같이 해야 되는 것이 부담이라 당기지 않았는데 스쿼시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 갑자기 매력으로 다가왔다.

뭔가 늘 한 가지에 미칠 것을 발견해야 사는 맛이 나는데, '영화' 약발이 떨어져가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으나 찾지 못하였는데, 스쿼시 벽을 보자 '심봤다'는 기분이었다. 당장 테니스채를 사러가자 하니 남편과 아이들은 '배드민턴이나 재대로 치고 그 다음에 스쿼시를 하든지'하였다.

3:1이라 그것도 좋은 생각이라 하며 한발 물러섰으나 내 마음을 이미 스쿼시가 점령하고 있었다. 스쿼시가 점령하고 있었기에 우겨서 스쿼시가 더 폼 난다 하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어 그냥 배드민턴에 한 표 더 주는 척했다.

아무튼, 농구를 하고 '스쿼시'라는 올해의 '산삼'을 발견하고 집에 와서 조금 쉰 후 치즈오븐 스파게티를 먹으러 갔다. 둘째가 다 못 먹겠다고 해서 얼씨구나 반절을 대신 먹어주고, 가누기 힘든 몸으로 밖으로 나오니, 열 번째 맞는 결혼기념일의 하루가 서쪽 하늘을 물들이며 그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부록: 결혼생활의 지혜

1. 부부는 항상 함께 해야 된다는 생각을 버리자. 따로 놀고 싶을 땐 따로 놀면서, 서로를 '응원'이 안 되면 '묵인'해 주자.

2. 따로 놀다보면 같이 놀 일도 생기고, 따로 놀면서 발견한 재미들은 어느 순간부터 함께 즐기게 된다.

3.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말은 같이 놓든가, 같이 높이든가, 좌우지간 높이를 '통일'하자.

4. 상대에게 자기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강요하지 말자. 도리? 도리 다 하려다 중간에 나가  떨어진다. 항시 명심하기를 우리가 잘 살아주는 것이 효도의 처음이라 생각하고 부모님에게는 필요이상의 기대를 주지말자. 자식만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되는 게 아니라 부모도 자식으로부터 (정신적으로)독립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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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8-04-24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설님, 결혼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어머님의 "한 순간"이라는 말씀이 마음에 짜~안합니다.
앞으로 결혼 20주년, 30주년....금혼식....
세월이 갈수록 더더욱 많이 감사하고 행복하세요!^^

폭설 2008-04-27 18:1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책 대박나세요~~~~

hnine 2008-04-25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 10주년이라서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축하드리고, 마지막 부록, 전부 공감입니다 ^^

폭설 2008-04-27 18:19   좋아요 0 | URL
님의 결혼 10주년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10년 또한 행복하게
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