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언제 부터인가 .. 하늘색이 좋아졌다. 하늘색은 하늘색이기도 하지만

바다색이기도 하다.

작가 유용주씨는 '마린을 찾아서'라는 책 제목에서도 보이듯 바다색을 참

좋아한다고 하였던바, 마린중에서도 울트라 마린(가장 아름다운 푸른바다색)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는데

나도 어느새 그 색을 좋아하게 되었다.

 



 

 

최근, <맘마미아>란 영화에서도 울트라 마린이라 할수 있을 아름다운 바다색을 보았는데,

육지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하늘빛으로 그 바다색을 추억할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바다색은 진품이고 하늘색은 짝퉁이라는 것은 아니다.

둘다 용호쌍박.

 

아무튼, 하늘은,

하늘은 누구를 닮아 저렇게 넓고 또, 저 빛깔은 어디서 오고, 도대체 어떤 조합을 했기에 저리 아름다울수 있는지...

가을은 곡식이 익고, 울긋불긋 단풍이 지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하늘이 가장 멋진 옷을 입고 우리들을 내려다 보는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 하늘 만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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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비밀 (2disc) [일반판]
주걸륜 감독, 계륜미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이니셜 D>에서.

듣도 보도 못한, 왠 고삐리 같은, 배우같지 않은 , 고교 하교길에서

흔히 뵐듯한 저 외모가 어찌 주인공을 했을까.. 주걸륜, 때문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로

분한 황추생 아자씨가 <무간도>때에 비해 살이 너무 빠져서 '살빼기에 성공했나벼.' 부러워하며

또는, 내눈엔 '여문락'이 좀 떴으면 좋겠는데

왜 안뜨는 고야? 하면서 보다가 이 문제의 주인공의 얼굴을 익혔다.

 

추석날, 엄마와 언니와 얘기를 하면서  자막을 읽으며 무성영화 보듯 보다가

두 연상의 여인이 자는 바람에 소리켜고 보았다.

그런데 , 성우 아자씨, 목소리가 너무 아니었어. 걸륜에 비해 너무 늙었어. 고삐리의 목소리가 아녔어.

그런데 외모는 그래도 나이는 얼추 서른이었던가.

아무튼, 걸륜씨는 '걸륜거사'라 해 마땅할 재주꾼이었다. 이니셜디의 그 풋내나던

고교생 같던 놈이 천재의 탈을  썼다니.. 햇살좋고, 영상 좋고,  피아노 솜씨꺼정, 그 나이에

감독이 왠말이냐? 그것도 연습용이 아닌 완벽한 데뷔라니...

 

영화의 내용은 내 어설픈 머리로 이해하자면 여러번 더 봐야 할판.

<메멘토>는 영화끝나고 문제의 답을 주지만 이 영화는 답도 없는듯... 때문에 인터넷

바다에는 무수한 해석이 나돌고 어설픈 내가 읽으면 이 말도 맞고 저말도 맞고...

 

교복도 참 예뻣다. 예술고 교복 이라 그런가. 첫사랑을 간직한 교복이라서 그런가.

황추생: 여전히 살이 빠진채로 인걸 보니 확실히 빠진살 '굳히기'에 성공 했군여. ㅋㅋ

황씨왈, 아들에게,

"너처럼 잡념이 많은 젊은 나이엔 음악을 많이 들어야 혀."

너무 멋진 말이었다. 요즘 입시에 시달리던 우리의 아해들도 늘상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더라만, 도대체 그 귓가에 무슨 음악이 흘러나오나 싶어 빼앗아 들어보면...

솰라 솰라 랩이 들어간 노래 아니면 에스비워너비등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평소,

질풍노도의 시기엔 무엇보다 고전음악이 '약'이라 이 연사 강력히 주장하였던바... 황씨 아자씨가 똑같은 말을 하니 월매나 반가운지~~~

아무튼, 다 이해는 하지 못했어도 이 영화 아름다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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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차, 화개차 말은 있어도 하동차라는 말이 없어 나는 하동을 떠올리면 아랫마을 하동사람 윗마을 구례사람만 떠오르고 차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화개도 상계도 다 하동땅에 있는 것이었네. ㅎㅎ..
벗이 있어 이번 여름엔 하동을 가게 되었다. 예전 지리산을 가면서 두어번 하동땅을 밟은것 같은데
그때는 왜 차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 때완 달리 이번엔 차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고 가서인지 눈에 띄는 것이란 온통 차밭 뿐이었다.
이밭저밭, 이산저산 땅떼기라고 보이는 곳에는 모두 벼아니면 차였다.
보성녹차, 한라녹차만이 아닌 하동녹차도 한몫함을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친구네가 급한 볼일이 생겨 먼저 가버리는 바람에 나와 두아이는 주인없는 집에 하루를 더 묵고 이튿날 화개면으로 나오는 시내버스를 타야 되는데 버스시간도 모르고 또 기다렸다가 타기도 싫어서 마냥 이길을 걸었다. 봄이면 이 벚꽃길을 걷고자 남도 사방에서 몰려와 야단 법석이라는데 우리들이 걸을때는
한여름이라서 그런지 간간히 자전거타는 남자들이 전부였다.

벚나무 그늘이 시원하여 별로 덥지는 않았는데 둘째가 힘들어 못 걷겠다며 난리를 쳐 '더위사냥'으로
에너지 충전을 해주고 걸었다. 다 걷고 보니 한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었다.
'이때 아니면 언제 걸어보나 싶어 걸었는데 녀석들 마음에도 이 벚나무길이 오래 남아있었으면...'


 


 

벗이 사는 마을 초입, 날은 덥고 갈길이 막역하여 사진도 귀찮았지만 억지로 찍었는데
여름 햇빛의 열기가 느껴지삼?

 



 

 

 통영에서 배타고 시간반(?)거리에 있는 추도라는 섬에서 일박을 하였다.
워매, 바다는 어찌그리 넓은지... 떠날땐 이 바닷물이 너무 무서워 여행이 성사되지 않기를 바랬는데..
막상 가니 바다가 좋았다. 아, 물론 풍랑이 거세었으면 파도가 치기전에 심장이 오그라 들었을 것이다..

 



 

 난 바다에서 제일 신기한것이 간조와 만조이다. 매일 한번씩 물이 빠지고 찬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처얼썩, 처얼썩 썰물 밀물이 교차하면서 간조가 되기도 만조가 되기도 한다니 좀 쉬고 싶은 날은 없을까이?
이 간만의 차는 달의 인력 때문이랬나. 아무튼, 그 왔다리 갔다리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수년천 철썩였고 앞으로도 철썩일 것이라는게 너무 신기했다. 만약 혹, 달에 불상사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 외계인이 달을 폭파해 버리면 어떻게 되는거지? 길 잃은 바다는 육지로 마구 급습해 올라나?




 

여름이라 그런지, 원래 섬날씨가 그런지, 습도가 무척 높았다. 햇볕은 눈이 부셔도 빨래는 잘 마르지 않았다.
언덕에 서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노라니.... 바다 만큼 인간에게 무한 상상력을 일깨워주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상으로 저 바라다 보이는 바닷물을 거대한 빨대로 몽땅 빨아서 육지로 보내버렸다.

물이 몽땅 빠진 바닷속이 궁금하지 않은가...ㅋㅋ 바다 맨  밑바닥의 땅을 파고 끝까지 들어가면 반대편 바다 밑이 나오는 걸까. 아니 맨틀과 지구핵이 막아서 뚫고 지나갈수 없는 것일까..ㅎㅎ


 

섬의 동백나무는 광안리 동백 못지않게 수령이 오래되어 보였다. 동백나무엔 석류같은 열매가 열려서
처음엔 석류나무인가 했는데 동백이었다. 열매가 하도 실해서 따서 술같은 것을 담가 먹을수 없나 의문이
들었는데 물어보지 못했다.


 



 

 

지인의 지인이 섬에 사둔 집. 섬에 집이 있다길래 어떤 집인가 궁금했는데 작고 아담하고 주인의 정성이 느껴졌다.
마당에 부어진 자갈, 동백, 담쟁이, 텃밭....등등은 일일이 주인장이 보수한 것이라고.

낛시를 좋아하는 분이라 섬에다 집을 샀고 은퇴후 일년을 머물면서 집을 꾸몄는데 고독이 밀물처럼 밀려와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고..ㅋㅋ 대구에서 떠난 우리 일행(8명)에다 지인네 가족 4명등 대식구가 출동했는데, 너무도 친절하게 베풀어 주어서 무척 감사했다.


 



바닷가 집들은 다들 작고 소박하였다. 두엇 별장같은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옛집을 조금 고친 선에서 살고들 있었다. 1박 2일 짧은 일정이었지만 섬에서의 하룻밤은 10박 11일 처럼 긴 추억이 되었다.
글쎄 다시 한번 더 이 섬을 찾을 수 있을지... 다시 한번 더 가게 된다면 섬 구석구석을 한번 걸어보고 싶다.
이번엔 짧은 일정이라 그냥 바닷가에서 게 잡고 낛시하고 삼겹살 굽고 문어 삶아 먹고등 원초적
욕구들만 채우면서 보냈다.^^

결론은, 내마음에 섬은 몇년전에 가 본 '거제도'와 그리고 이번 여름에 본 '추도' 둘 뿐이다.^^
그중 '추도'가 더 짠하다. 거제도는 잘먹고 잘 살아서 그리고 커서 걱정이 안되나 '추도'는 왠지 외롭고 슬프다.
ㅠㅠ..


 



바닷가에 이런 집 하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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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일 차 우체국에 갔다가 손님이 많아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리던 중 모 여성지를 훑게 되었다. 이런 저런 화제 거리들을 넘기다가 류승완 감독이 큰딸을 대안학교에 보낸 ‘이유’에 시선이 멎었다.

 

‘성적비관으로 자살한 학생수가 8000명인데, 그 숫자는 베트남전쟁에서 사망한 한국인 군인 수(5000명)보다 많다는 것에 충격을 먹었어요.’

 

나도 얼마 전 신문에서 성적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 수의 연도별 통계를 보고 무척 충격을 받았기에 그 심정 충분히 이해되었다.

 

아래는 얼마 전 신문에서 본 성적비관으로 자살한 10대들의 각기 연도별 사망자 수이다.



2000년.................. 264명

2003년.................. 297명

2005년.................. 279명

2006년.................. 233명

 

너무 많다. 통계의 기간을 몇 십 년 길게 통산하면 8000명이 충분히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마어마한 통계완 달리, 한해에 우리가 현실적으로 알게 되는 성적비관 자살자수는 서너 명에 지나지 않는다. 해마다 입시철 언저리에 접하는 성적비관 청소년 자살은 언제 부터인가 명절 언저리의 명절증후군 기사만큼이나 의례 나오는 기사의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런 기사가 뜨면 한 며칠은 안타까워하며 입시 제도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듯 하나 며칠 못가고 스리슬쩍 새로운 뉴스에 묻혀 유야무야  되고 만다. 마치 명절 증후군에 대한 기사가 명절 지나면 사라지듯이 성적비관자살 청소년에 대한 기사도 그렇게 사라진다. 괜히 자꾸 떠들다가 가만있는 청소년들 자극할라 나름 속으로 핑계도 대면서.

 

그러나 우리가 저마다 침묵하고, 그저 내 아이가 아니라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이,  아이들은 소리 소문 없이 죽어갔던 것이다. 통계에 비추자면 매달 20여명의 아이들이 성적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일진대, 성적이 얼마나 압박하기에 하나 밖에 없는 자기 목숨을 내 놓는 것일까.

 

모의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쪽지시험. 시험, 시험, 시험.... 기사들을 보면, 수능성적을 비관하여 목숨을 버리기도 하지만 중간고사, 모의고사 잘 못 본 것을 비관하여 아직 새파란, 입시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중학생마저 또는, 고3도 아닌 고1 마저 아파트 창문을 뛰어내렸다.

 

뿐인가. 매번 일등 하던 학생이 어쩌다 한번 미끄러진 일을 가지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하였다. 도대체 성적이 무엇이 관대 목숨보다 중요하게끔 느끼도록 우리 기성세대들은 아이들을 닦달한단 말인가.

 

막말로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맛을 아나. 아이들이 자기목숨으로 배수진치고 공부하고 있음을 통계가 확인시켜주면 우리사회, 우리 부모들도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텐데  왜 우리부모들은 ‘그래도 내 아이는 아니야’ 생 까고 있는 것일까.

 

내 아이가 아니면 단가. 내 아이가 아니고 남의 아이라도 해마다 2,3백 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버린다면 내 돈으로 내 아이 사교육 하는 일도 자제해야 마땅한 것이다. 교과부 장관, 시도교육감들은 이런 생목숨이 날아가는 데도 잠이 오는가 모르겠다.

 

아이들이 이토록 압박감을 느껴도 갈수록 사교육은 더 극성이 되어가고 있다. 국제 중은 거기다 기름을 부었다. 며칠 전에 보니 우리 국민들이 올 상반기에 쏟아 부은 사교육비가 15조랬나. 너무 어마어마해서 얼마나 큰돈인지 가늠이 안 간다.

 

게다가 그것은 전 년에 비해 10%인가 는 것이라는데, 결론적으로, 그렇게 사교육에 돈을 쏟아 붙는 만큼 그에 비례해 학생들이 느끼는 정신적 공황감은 더 세어질 것이다.

 

사이비 종교에만 ‘집단 최면’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학부모야 말로 ‘사교육교’의 맹신자들이다. 도대체 이 집단 최면엔 무슨 충격을 주어야 제 정신이 번쩍 들까. 학생들이 좀 더 뛰어내려 줘야 하니?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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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집에 있던 화분들이다. 예전에 일렬로 쭉 늘어 놓았을 때는 그냥 무덤덤 했는데
이번에 이렇게 정리된 것을 보니 참 예뻤다.
가만 보니 화초만 예쁜 것이 아니라 꽃그릇도 예뻤다.

 우리집 화분으로 말하자면 대개가 짝퉁 청화백자(?)가 대세인데 친구의 화분들엔 청화백자가 없었다.
대신 저마다 모양과 크기를 달리하는 단  하나뿐일것 같은 화분들만 있었다.
이꽃 저꽃, 이그릇 저그릇 , 어느 하나 버릴것 없이 다 예쁘구나 감상하던중,


문득, 꽃그릇도 주인을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내가 촌스럽듯이 내 화분들도 가만보니 다들
촌스러웠구나 하는 생각이..ㅎㅎ. 말이 좋아 청화백자지 아기자기한 맛이 전혀없는 모양새들.

물론 나름 변명거리는 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외모보다  내면과 내실이 중요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항상 이런 변명으로 나의 약점을 연명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나의 꽃들에게도

후줄그레한 옷들을 입히고 말았다. 옷이 중요한게 아니라 무럭무럭 자라는
튼튼한 이파리와 줄기, 뿌리가 중요하다면서...ㅎㅎ.  

물론 보답하듯 나의 화초들은 튼튼하다.
그러니, 그렇기 때문이야 말로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옷(화분)을 입혀줘도 좋으련만...


난 너무 무심하고 심지어는 몇년의 세월이 흘러 엄청 커버린 화초에게도 여전히
몇년전의 옷을 입히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옷 갈아입히기 싫어서 새로산 화초의 경우 아예 처음부터 미래를 생각하며 큼지막한
옷을 입히기도 했다.


반성한다. (그러나 반성이 행동으로 옮겨지기에는 수년이 걸리지 싶다.^^)

하여간 친구의 꽃들과 꽃그릇들은 너모 예뻤다.
마찬가지로 친구의 옷 또한 집에서 입는 월남치마나 운동복 조차 예쁘다.


나는 외출복도 딱히 없고 집에서나 밖에서나 만년 청바지에 면티하나로  개긴다.
나야 말로 내 화분 만이 아닌 내 몸에 걸친 옷도 그러고 보니 '청화백자'에 다름 아니었네.ㅋㅋ

(아래는 분위기 없는 내 화분.. ㅠㅠ )



친구네와 비교되는 내 화분. 지인 들은 위의 벤자민을 볼때마다 키에 맞고 좀 어울리는 것으로 화분을

바꿔 주라는데 나는 늘 건성으로만 알았다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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