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 차 우체국에 갔다가 손님이 많아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리던 중 모 여성지를 훑게 되었다. 이런 저런 화제 거리들을 넘기다가 류승완 감독이 큰딸을 대안학교에 보낸 ‘이유’에 시선이 멎었다.

 

‘성적비관으로 자살한 학생수가 8000명인데, 그 숫자는 베트남전쟁에서 사망한 한국인 군인 수(5000명)보다 많다는 것에 충격을 먹었어요.’

 

나도 얼마 전 신문에서 성적비관으로 자살하는 학생 수의 연도별 통계를 보고 무척 충격을 받았기에 그 심정 충분히 이해되었다.

 

아래는 얼마 전 신문에서 본 성적비관으로 자살한 10대들의 각기 연도별 사망자 수이다.



2000년.................. 264명

2003년.................. 297명

2005년.................. 279명

2006년.................. 233명

 

너무 많다. 통계의 기간을 몇 십 년 길게 통산하면 8000명이 충분히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마어마한 통계완 달리, 한해에 우리가 현실적으로 알게 되는 성적비관 자살자수는 서너 명에 지나지 않는다. 해마다 입시철 언저리에 접하는 성적비관 청소년 자살은 언제 부터인가 명절 언저리의 명절증후군 기사만큼이나 의례 나오는 기사의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런 기사가 뜨면 한 며칠은 안타까워하며 입시 제도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듯 하나 며칠 못가고 스리슬쩍 새로운 뉴스에 묻혀 유야무야  되고 만다. 마치 명절 증후군에 대한 기사가 명절 지나면 사라지듯이 성적비관자살 청소년에 대한 기사도 그렇게 사라진다. 괜히 자꾸 떠들다가 가만있는 청소년들 자극할라 나름 속으로 핑계도 대면서.

 

그러나 우리가 저마다 침묵하고, 그저 내 아이가 아니라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이,  아이들은 소리 소문 없이 죽어갔던 것이다. 통계에 비추자면 매달 20여명의 아이들이 성적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일진대, 성적이 얼마나 압박하기에 하나 밖에 없는 자기 목숨을 내 놓는 것일까.

 

모의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쪽지시험. 시험, 시험, 시험.... 기사들을 보면, 수능성적을 비관하여 목숨을 버리기도 하지만 중간고사, 모의고사 잘 못 본 것을 비관하여 아직 새파란, 입시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중학생마저 또는, 고3도 아닌 고1 마저 아파트 창문을 뛰어내렸다.

 

뿐인가. 매번 일등 하던 학생이 어쩌다 한번 미끄러진 일을 가지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하였다. 도대체 성적이 무엇이 관대 목숨보다 중요하게끔 느끼도록 우리 기성세대들은 아이들을 닦달한단 말인가.

 

막말로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맛을 아나. 아이들이 자기목숨으로 배수진치고 공부하고 있음을 통계가 확인시켜주면 우리사회, 우리 부모들도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텐데  왜 우리부모들은 ‘그래도 내 아이는 아니야’ 생 까고 있는 것일까.

 

내 아이가 아니면 단가. 내 아이가 아니고 남의 아이라도 해마다 2,3백 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버린다면 내 돈으로 내 아이 사교육 하는 일도 자제해야 마땅한 것이다. 교과부 장관, 시도교육감들은 이런 생목숨이 날아가는 데도 잠이 오는가 모르겠다.

 

아이들이 이토록 압박감을 느껴도 갈수록 사교육은 더 극성이 되어가고 있다. 국제 중은 거기다 기름을 부었다. 며칠 전에 보니 우리 국민들이 올 상반기에 쏟아 부은 사교육비가 15조랬나. 너무 어마어마해서 얼마나 큰돈인지 가늠이 안 간다.

 

게다가 그것은 전 년에 비해 10%인가 는 것이라는데, 결론적으로, 그렇게 사교육에 돈을 쏟아 붙는 만큼 그에 비례해 학생들이 느끼는 정신적 공황감은 더 세어질 것이다.

 

사이비 종교에만 ‘집단 최면’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학부모야 말로 ‘사교육교’의 맹신자들이다. 도대체 이 집단 최면엔 무슨 충격을 주어야 제 정신이 번쩍 들까. 학생들이 좀 더 뛰어내려 줘야 하니? 그런 거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