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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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재 일일 방문자 수가 200 여명쯤 될때 나는 우연히 로쟈씨네 집을 처음 방문하였다. 

'이런 곳도 다 있군요' 내말이~~~ 참 뭔가 나같은 군상과는 차원이 다른 

어떤 존재 같았다. 해서 가끔 들르다가 한때는 무작정 로자씨의 마이리스트중  

어느 하나를 골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체크해서  책을 사기도 하였다. 

그러나 푸훗~ 책장에 고대로 모셔두고 읽지 못한 것이 많다. 

 

읽지는 못했지만 핑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읽을것이고  

읽지는 못해도 끊임없이 새로운, 내가 모르는 세계의 책을 소개해주는 로자씨가 고맙다. 

사실 나는 로자씨의 서재에 들를때 글을 읽기보다 제목만(?) 읽을 때가 많다.

그런데 제목 읽는 것도 벅차 방문자수 300 이후로는 발길도 뜸하였다. 

 

대신 우연히 버스를 타고 오다가 라디오에서 로자씨의 음성을 듣고 음 목소리는  

또 저렇군. 한겨레21과 시사인에 올려진 서평을 보고는 오호라  

비범한 사람은 결국 만인앞에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구나... 그러다  '책 읽는 밤'에 

출연한 그의 얼굴을 보고는 아 쪼까 깐깐 답답시러븐 천상 샌님이구나 ㅋㅋ.... 

(이러니, 꼭 스토커 같네. 그러나 너무 걱정마셈.  로자씨는 그것으로 끝입니데이. 호기심이 해결 되었기에...^^) 

 

아무튼, 이런저런 관찰을 거쳐 몇주전 드뎌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읽게 되었다. 

읽고난 바로 다음 뭔가 끄적여야 되는데 그 새 다 까먹어버려 가물가물하다. 

김훈, 고종석, 김규항의 문체에 대해 200프로 동감했다. 

아주 가렵던 부분만 솔솔 긁어주는 그 센스라니.

사실 난 왠지 아직 김훈을 읽고싶지 않아 읽지 않았고 고종석의 문체에 대한  

가없는 찬사가 반쯤 이해 안가고 김규항에게는 글의 내용보다 그의 문체에 

끌리곤 하였다. 

 

특히 김규항씨의 문체는 까미유 끌로델의 조각 '왈츠'에서나 느껴지는  

매끄러운 아름다움과, 군더더기는 없으면서 뼈대는 있고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 물결치는, 그리운 어떤 느낌이 그의 문체에서  

느껴지곤 했는데 ....데, 그분이 김대중 노무현을 가차없이 씹을때는 당췌 이해가 ....

저는 얼마나 잘나고 추진력있는지.....  

 ..... 

장정일에 대한 언급 공감갔고.... 

러시아에는 네 스키가 있는데 음악에는 차이콥스키, 문학에는 도옙스키, 미술에는 칸딘스키, 

영화에는 타르코프스키... 넘 웃겼다. 

몇년전 예술의 전당에서 칸딘스키 전신회를 뻔히 눈앞에 두고도 보지 않고 밑에 층의  

도자기 전시회만 보고온 기억이 있는데 그때 보고올 껄. 내 언제 칸딘스키 그림 볼거라고.. 

 

그땐 단순히 이해도 못하는 그림 봐서 뭣하나 해서 안 봤는데 후회가 되네... 이해 못해도  

한번 보기나 할것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은 내가 두번째로 이해안가고 어려운 영화였는데 

(첫번째는 노스텔지어) 고러코롬 분석을 해 놓으니 그런강?   

......  

이름만 알고 그들의 책 제목만 몇개씩 알 뿐인 오! 무수한 철학자들의 말쌈과 로쟈씨의 

해설....그냥 부처님 말씀 예수님 말씀처럼 쉽게 말하면 말이 안되는지 철학자들은...ㅋㅋ 

집중해서 읽으면 이해가 되기도 하나 쉽게 넘기며 읽을수는 엄꼬 다시보고 싶지도? 않은! ㅋㅋㅋ  

 

아무튼, 결론적으로 로쟈씨는 정말이지 용의자 엑스처럼 책과 글에 헌신하는 사람같다. 

이토록 학문과 각종 예술에 몰입하자면 뼈가 뽀사지고 온몸의 진기가  

다 빠질것 같은데..... 그 모양을 매일 봐야 하는 옆지기와 자녀는 오죽할까? ^^ 

 

나라면 책을 '사부작 사부작'(개그맨 김신영 식으로) 보따리에 싸서 가을 낙엽과 더불어 확!  

불싸질러 버리고 싶어질 것이다...ㅎㅎ

무르팍 도사씩 결론을 내자면 로쟈씨는 현재 너모 피로해 보인다.  

인간사 철학도 좋고 뭐도 좋고 다 좋지만 결론은  

로쟈씨의 책에도 나와있듯이  

'먹고, 살아남고, 자기 복제' 이외에는 다 부질 없는 것 아닌가벼. 

하므로,

한달동안 책을 금하고 가족과 함께 가을 단풍이나 보러 이산 저산 쏘 다니시길~~팍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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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급한 부모를 둔 아이라면 세상에 나오기 전 엄마뱃속에서부터 구경할 수 있는 곳이 제주도일진대. 나는 마흔 둘이 되어서야 드디어 제주도를 구경하게 되었다. 나의 작은 언니는 나보다 더하여 쉰다섯이 되어서야 제주 땅을 밟았다.

 

늦은 감이 있으나, 늦은 만큼, 오래 기다린 만큼 만족도는 배가 됨에랴. 내 또래의 경우 주변을 둘러보면 제주도 못가 본 사람은 언제나 나 혼자였다. 많이는 신혼여행으로 혹은 친구들과 혹은 가족여행 등 다들 늦어도 마흔 전에는 제주도를 졸업하는 분위기였는데 나만 사십이 넘도록 늘 상상으로만 제주도를 만났다.

 

그 실물을 알 수 없기에 제주도 갔다 온 사람들에게 늘 묻곤 하였다.

 

"정말, 제주도는 우리나라 땅이 아닌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한 그런 곳이야?"

"가로수부터 다르고 남태평양 어느 섬의 느낌이 난다 메?"

"귤 밭에서 귤을 따면 정말 재미있겠네?"

"올레는 정말 입소문처럼 매혹적이야?"

 

그러면 다들 고개를 끄덕 끄덕했다. 정말 제주도는 한번 가볼 만하다면서. 4박 5일 아니면 넉넉하게 한 일주일 정도 말미라면 제주도를 두루두루 답사할 수 있다기에. 그렇구나, 나도 언젠가는, 했었는데 그 날이 바로 이번 10월이 된 것이었다.(16~18일)

 







  
백록담은 물이 말라 익숙하던 사진과는 너무 달라....
 
백록담











  
백록담 정상에 선 사람들
 
백록담 정상





사실 남들 다 가본 제주도를 그동안 안가고도 별 답답함 없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껴두고 뜸을 좀 들여서 보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나름의 속사정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행기에 대한 무서움 때문이었다.

 

이젠 까마득한 추억이 돼버린 10년도 더 지난 일인데, 1995년 여행 차 부모님 몰래 비행기를 한 번 탔고 다음해 역시 부모님 몰래 일어 공부 차 일본에 가서 생활했던 것이 내게는  군대기억처럼 이따금 일 년에 한번 이상 악몽으로 떠오르곤 하였다.

 

흔히 제대 군인들이 자신은 분명 제대를 했는데 어느 날 꿈속에 입영통지서가 날아와서,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기에 이런 게 또 날아 와? 아니 내가 정말 군대 안간 게 아닐까? 군대 안간 게 진짜고 군대 간 건 꿈이 아닐까. 아니, 아니야, 갔다 왔잖아. 왜 하필 나에게 이런 행정착오가 나서 두 번 군대 가야 되는 거야? 행정 착오건 뭐건 군이 명령하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 아냐? 으앙~~' 하며 가위 눌리는 것처럼 나는 공항에서 비행기 표를 분실하는 꿈과 도쿄에서 방 못 구하는 꿈을 교대로 꾸곤 하였다.

 

꿈에서 깨고 나면 제대군인들이 그런 것처럼, '꿈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안도하며 대신 군대에서 끊임없이 나오던 배추국과 미역국을 싫어하듯이 나는 앞으로 오래도록 비행기를 타지 않음으로서 악몽을 떨치려 하였다. 그랬는데 그것도 한 10년을 넘어가니 공포는 사라지고 역으로 비행기 한번 타보는 것이 소원이 되었겠다.(ㅎㅎ) 

 

한라산도 지금 단풍 절정

 

이즈음 저녁 뉴스를 보면 계절이 계절이니 만큼 단풍에 대한 소식을 꼭 전하는데 그럴 때 마다 그것을 보도하는 기자는 며칠은 어디가 단풍이 절정이고 또 그 다음은 어디하며 읊어 주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제대로 가을 단풍을 보려면 신문이나 방송의 단풍뉴스를 놓치지 말아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러하기에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단풍을 보리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신문에서 본 단풍 절정예상일에 한라산은 아예 예상 물망에도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함께 갈 언니도 좀 더 있다 단풍이 절정이다 할 때 가면 어떨까 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항공권 예약이 이미 다 차서 자리가 없으니까 단풍 꿈은 접고 그냥 제주도 간다는데 의의를 두고 가자며 나선 것이었다.

 







  
멀리 보이는 단풍 능선
 
단풍





 











  
우리도 이렇게 아름답게 최후를 맞을수는 없을까.
 
단풍





그런데 웬걸? 한라산도 이미 단풍이 절정이었다. 한라산 꼭대기에는 단풍은 벌써 지고 단풍나무들은 저마다 월동준비를 끝내고 겨울눈만 발갛게 내놓고 있었다. 즉, 한라산 정상은 이미 매서운 바람으로 나뭇잎이 붙어있을 수가 없었고 그보다 고도가 조금 아래인 곳부터 한라산의 반절은 온통 단풍 천지였다.

 

우리 자매가 그랬듯이 한라산을 오른 등산객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단풍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쩜!'하며 감탄사를 늘어놓았다. 아무렴, 아침에 한라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만 해도 단풍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한라산 기슭은 여전히 녹색이 창창했고 무성한 잎들이 만들어 준 그늘로 인해 산은 보다 그윽하고 고요한 느낌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단풍뉴스에서 말하는 단풍의 절정이 단풍이 산기슭까지 완전히 내려온 때를 말한다면 한라산 단풍은 아직 절정이 아니겠으나. 산기슭까지 다 내려온 때를 절정이라 말한다면 그때는 아마 1500미터 이상 고도에서는 단풍이 모두 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며칠은 어느 산의 단풍이 절정이네 하는 보도는 수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즉, 10월이라면 어느 산을 가든 정상을 오르는 사람이라면 다 단풍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정상에 오르지 않고 조금 오르다 말 사람들은 동네 야산이 혹은 도시의 가로수가 조금씩 물들면 그 때 산엘 가면 기슭까지 내려온 단풍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단풍길, 한라산엔 여느산에 비해 산죽이 특히 많았다
 
단풍나무 숲길





마치며...

 

하여간, 지난주에도 한라산 중턱과 그 이상의 고도에서는 단풍이 한창이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그 단풍이 좀 더 밑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그 내려온 만큼 위쪽의 단풍잎들은 떨어져 내려 이제는 뭇 등산객들의 발길에 머물 것이다.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울긋불긋 단풍이 있었기에 충만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한라산의 산세가 온화해서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고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지리산 외에는 그런 생각 안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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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시절>. 첫 느낌으로 딱 드는 생각이 '제목 참 좋구나, 너무 좋네!'였다. 제목만 구워삶아 먹어도 본전은 뽑겠구나 싶었다. 허진호 감독의 다섯 번째 사랑영화. 이미 네 번을 곱씹고 또 다시 사랑을 속삭이려니 그 창작이 얼마나 고되었을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번엔 또 무슨 '야그'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까 호기심이 갔다.

 

 

 

지난해 봄인가. 가을인가. 오십 중반 오빠에게 당송 시선집을 선물하면서 나도 한권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선물하기 전에 미리 한번 펼쳐 봤지만 내가 찾던 그 어떤 빛깔의 시들이 보이지 않아 나는 다른 시집을 사야지 마음 먹고서는 차일피일했는데 이 영화를 보자 그 숙제를 할 때가 지금이구나 싶었다.

아마 이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학창시절 교과서 속에서 잠자던 두보를 불러내게 하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고문시간 이후로, 한문시간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두보'를 접했다.  이 영화에 두보가 없었더라면? 아예 영화 자체를 상상할 수가 없다. 두보가 말년에 머물렀다는 대숲이 울울한 초당에서 주인공들은 재회를 하는데, '대숲'과 '메이'와 '동하'는 삼합도 그런 삼합이 없으렸다. 

두보초당에서 관광객들에게 통역을 하고 있던 여주인공 메이(고원원분)는 중국 출장길에 그곳을 찾은 중장비회사 팀장인 동하(정우성분)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미 유학시절 상대의 진심을 긴가 민가 저울질 하다 귀국하는 바람에 이별 아닌 이별을 했었는데 자신의 일터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서울에서 김 서방은 만날 수 있어도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수는 있어도 사랑을 숨겼던 상대를 고색창연한 시성의 초당에서 만나기란 전생에 5만 번 스쳐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라는 매개가 있어 감독이 그런 전능을 발휘 할 수 있으니 이 아니 좋을소냐.  

아름다웠다. 이름만큼이나 청초한 메이와 '어머나, 내게 사랑이 오고 있는 거야? 그런 거야?' 설렘이 느껴지던 동하의 눈빛은 대숲에 서걱이던 바람소리와 봄밤 거리를, 유리창을 적시던 비와 함께 묘한 동경을 주었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새자면, 내 많은 조카들 중 나보다 먼저 결혼을 하여 중학생 아들을 둔 서열 1번 조카 왈.

"가만 보면 한국 여자들 남편을 너무 못살게 구는 것 같아(물론 반대의 경우도). 난 둘 중 하나는 외국여자와 결혼할 것을 한번 권장해 볼 참이야. 후후~"

"정말? 나도 그런 생각 한 적 있는데... 인생사 한번 사는 것 꼭 한국여자랑 결혼하란 법이 있니. 가능하면 다른 나라 여성이랑 결혼 해 다른 문화를 접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만약 그런 인연이 생겨서 한다고 하면 안 말릴 거야."

"나는 봐 가며... 후훗~"

그러나, 영화 속 중국 지 사장(김상호 분)은 동하의 흔들리는 마음을 읽으며 말하였다. "사랑에는 국경이 있습디다." 하먼이라. 특히 한중일의 경우 각자 나름의 존심들이 있어 살다보면 마음속에 국경이 한두 개 그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뭐 무서워 장 못 담굴 것 까지는 없고. 국제결혼이야 말로 평화의 전령사가 되는 길 아닌가.

그래서 결론이 뭐꼬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밤의 비처럼 그리운 그대가 '지금' 있으면 주저 말고 똑똑 문을 두드리시라. (세칭 품절남녀들은 자중을 하고...) 곳간이 큰가 작은가 따지지 말고 그이가 '호우'인가 아닌가만 따지시라. 그러나 그이가 '호우'이기는 하나 외관이 '지사장님'을 닮았으면 어쩐다? 많은 비혼들의 딜레마가 혹 거기 있슴둥? 

이미 그 길을 지나온 나로선 그저 마음을 비우(?)란 말밖에... 품절남녀들은 쓸쓸하면 시나 한수? <호우시절> 덕분에 이런 좋은 시를 또 알게 되네. 

春夜喜雨(춘야희우)  -봄밤의 반가운 비   -두보-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좋은 비는 내릴 때를 아나니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봄 되어 내리니 만물이 소생하는 구나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봄비는 바람 따라 살며시 밤에 내리는데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가늘게 소리도 없이 만물을 적시네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들길에 구름 드리워 사방이 어두운데  

江船火獨明(강선화독명)....강가의 배 등불만이 외로이 반짝이네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날 밝으면 붉게 젖은 땅을 보게 되리니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금관성의 꽃들도 비에 젖어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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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별님 - 동화작가 정채봉이 쓴 김수환 추기경 이야기
정채봉 지음 / 솔출판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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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가 돌아갔을때 나는 울지 않았다 .  

나 아니라도 신자들이 많이 울어주겠지.... 하면서.

하여, 티비에서 다들 눈물짜고 꽃을 바치고 할때 그냥 덤덤한 마음으로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다 시사인 표지로 나온 빨간 옷을 입은 그를 보고, 

빨간색이 참 잘 어울리는 남자구나 생각했다.  

 

 기사를 읽고는 빨간색 만큼이나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십년 함께한 그의 불면증에 짜안 가심이 아팠다. 

월매나 괴로웠으면, 하루이틀도 아니고, 한두달도 아니고, 일이년도 아니고  

수십년, 쭈욱 그렇게 전전반측 잠을 못 이루셨을까이.. 

 

하여 송구스런 마음에  뒤늦은 추모의 념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한집에 신부님이 둘씩이나.... 추기경님은 본시 신부되기 싫었는디 추기경까지 되셨네. 

얼떨결에 눌러 앉아 터줏대감 되더라고 딱~~^^ 

사형제폐지에 남달리 천착하셨던 것은   

젊은날 대구교도소 사형장에서의 경험때문.  

즉, 사형 집행장에서 밧줄이 끊어져 집행도 하기전에 

사형수가 아래로 떨어졌는데  그 사형수 필경 죽었을 것이라하며(사형수는 사형장을 걸어오며 이미 혼이 나간다고...하물며 떨어지기 까지 했으니 ...) 

모두 아래층으로 내려가보니.... 

"주교님 또 뵙습니다.^^" 

그후 어쨌냐고? 

 

밧줄을 손봐서 다시 사형집행을 하였고 그는   

"30분 후에 천국가서 주교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분의 이름은 최. 월. 갑. 

 

두분은 시방 천국에서 만났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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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는 백범일지
김구 지음, 도진순 엮음 / 돌베개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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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핸가 ‘모건 프리먼’ 주연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 전 대통령의 전기 영화가 만들어 진다는 뉴스를 보고, 기시감을 느꼈다. 믿거나 말거나 좌우지간 나는 상상했었다. 몇 년 전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자서전(두레출판사간행)을 읽으며 이 보다 더한 시나리오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내 마음대로 만델라 대통령 역엔 망설임 없이 모건 프리먼을 찍었었다. 두고 보자 하면서...ㅎㅎ.


그의 어린 시절에서 보여 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부족 전통, 흑백 분리정책에 저항하다 감옥에 잡혀간 그와 수많은 아프리카민족회의 사람들, 그곳에서 고문과 강제 노역을 당하며 27년 6개월의 감옥살이, 그 후 극적으로 대통령이 되고 세계의 지도자 반열에 오르는 것 등에서 보자면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는 없을 것이다. 
 

뿐인가, 사소하게는 남의 입질에 오르내리기 좋으나 영화소재로서는 부족함이 없는, 어려울 때 감옥 밖에서 함께 투쟁해준 재혼한 아내와 헤어지고 또다시 역시 어려울 때 도와준 이웃나라 여자 대통령과 ‘삼혼’ 하는 등 노익장도 그런 노익장이 없으렸다. 현재 93세. 그가 돌아가고 난 다음 영화를 만들어도 좋겠지만 그의 살아생전 영화를 만들어 그에게 느낌을 물어봐도 나쁘지 않을 터, 암만.

아무튼, 나는 지금 이제나 저제나 만델라 전 대통령의 전기 영화 개봉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내년 여름쯤? 아니면 가을? 생각만 해도 설레어 진다.

이희호, 김대중의 삶도 만델라 못잖아

7월 2일자 (한겨레)신문 ‘왜냐면’에서 박영환 민족문제 연구소 고문은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 김구 선생께 매료되어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는 ‘졸도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 대목에 손뼉을 치며 공감한 것은 나또한 <백범일지>를 읽고 선생에게 반했기 때문이었다.

‘훌륭한 사람은 단 한권의 진솔한 기록만으로도 읽는 이의 마음을 통째로 빼앗는구나.’

잠시 옆길로 새는 감이 있으나, 단 한권의 책으로 타자를 사로잡는 사람을 한사람 더 소개하자면 그는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시절일 때 나는 <여보 나좀 도와줘>(도서출판 새터)를 읽고 이 사람은 진짜 믿어도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내가 쉽게 경도 되는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 않음을 증명할 말을 며칠 전에 들었다. 임 떠나고 뒤늦게 부랴부랴 <여보, 나 좀 도와줘>의 책장을 넘긴 이웃 지인이 독서 소감을 말하였던바.

‘이분은 너무 진실해서 나도 예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때부터 그를 좋아했을 거야. 나만이 아니라 누구든 이 책을 읽으면 이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좀 더 일찍부터 좋아하지 못한 게 한이야. 이분 친구도 너무 멋있고...’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희호 김대중. 솔직히 이 두 분. 별 ‘찌릿한’ 감정은 없이 그저 ‘현대사의 파고와 더불어 역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하나, 6.15 선언이 채택 되던 해의 그 순안공항에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말 믿음직스럽고, 눈부시고, 존경스러웠다. 나는 그가 너무도 큰일을 해내었기에 TV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었다.

그러나, 그 후론 다시 역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 생각했을 뿐 김구선생에게서 느낀 노무현에게서 느낀 생각만 해도 심장이 ‘짠’해지는 그런 감정(?)은 없었다. 광주의 원흉을 풀어주고, 박정희 기념관을 세우자는 유화적인 자세는 못 마땅하다 못해 속에서 천불이 났다.(그러나,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그런 제의를 하셨을까. 그가 ‘전’을 풀어주고 ‘박’을 기념하자 말하도록 무식 충만했던 우리의 죄가 더 컸다, 알고 보니.)

그랬는데.... 뒤늦게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 <동행>(웅진지식하우스)을 읽고 나는, 이 부부에게 완전 홀딱 반하였다. 이희호 여사는 좋은 가문, 좋은 학벌에다 영부인 까지 하였으니 그 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으랴 싶었는데 세상에나 영광은 잠깐이요 고난은 백조다리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일본의 한 언론인이 김대중은 이희호가 있었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하였다는데 정말이었다.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대통령을 위하여 그토록 헌신한줄 나는 몰랐다.

희호여사의 표정이 무덤덤하잖은가. 그리고 강인해 보이기도 하고. 때문에 고통이 크다 해도 그리 큰 줄 몰랐다. 그 많은 옥바라지와 연금생활, 망명생활 그리고 한 발만 늦었어도 바다에 수장될 뻔 했던 중앙정보부에 의한 납치사건 등 두 분은 그 험난한 길을 어찌 다 겪고 이겨냈는지....

김대중 대통령이 동물과 식물을 무척 아끼고 잘 돌봤다는 얘기와 정치인이기에 앞서 항상 책을 가까이 하며 사색하고 토론하는 ‘학자적 품성’이 몸에 밴 남자였음을 알게 된 것은 과외의 소득이었다.(나는 그냥 닥치는 대로 책을 많이 읽는 남자로만...) 
 

결론은,

이들의 얘기는 영화 한편으로는 부족하고 해마다 한편씩 찍어내도 소재는 무궁무진 할 것이다. 나찌 영화만 해마다 우려먹으란 법이 있나. 만델라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얘기도 우리현대사와 김대중의 얘기도 몇 번을 우려먹어도 국물은 여전히 진할 것이다.

나는 벌써 김대중 대통령 부부 역으로 누가 어울릴까 배우를 고르고 있다. 내 꿈이 언제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의 언젠가는 이뤄지리라 믿는다. 기왕 이뤄 질 거면 만델라 대통령의 경우처럼 김대중 대통령 살아생전에 만들어져서 당사자에게 소감을 물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텐데...

‘우생순’의 신화를 만들었던 핸드볼 임 감독도 영화 끝나고 자막 올라갈 때 한 말씀 하던데, 이희호 김대중도 그들의 영화 끝 그 장면에서 한 말씀 덧붙인다면 얼마나 근사할 것인가. 아마, 세계인들이 더 환영하지 않을까. 우린 만델라에게는 사심 없는 박수를 보내면서 우리안의 보석엔 너무 무심한 것 같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국민의 정부 시절 두 번이나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다고 한다. 아마 두 분은 만나서 ‘당신 팔자나 내 팔자나, 우린 어찌 그리 징한 팔자를 타고 났을까. 그러나 후회는 없어.’ 하며 서로 농담을 주고받지는 않았는지.

마무리...

언젠가 들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인가 4시간씩 신장 투석을 받으신다고 하였는데..... 요즘처럼 사회적 문제 들이 연일 터질 때면 김 전 대통령의 안부가 먼저 걱정되곤 한다. 세상이 거꾸로 굴러가도 당신 몸만 챙기시고 그저 오래사시기를 빌어보는데, 워매, 낼 모래 아흔을 목전에 둔 이 늙은 오빠는 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그 누구보다 선명한 혜안으로 조언해 주시는데 그 형형한 청년 정신이라니,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해. 
 

그의 조언들이 현실정치에 부디 반영되어 헝클어진 남북관계가 복원되고 나라 살림살이 또한 제 궤도에 오르길 빌어 본다.

그러니, 결론이 뭐냐고요? 결론은 두 가지. 하나. 헐리웃이 만델라 전기 영화 찍고 있으면 우리나라 감독들은 최소한 김대중 전기 영화 시나리오만이라도 쓰고 있으라. 둘. 역사에 길이 남을 멋있는 사람들은 단 한권의 책으로도 읽는 이를 ‘확’ 잡아끈다, 머 이런.(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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