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본 나무랄 데 없는 일본영화였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그렇게 풀어낼 수도 있다니.  수학자의 사랑? 수학자는 사랑도 수학적으로?

유시민은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수학도들은 경제학도가 쓰는 수학은 수학이 아니라 산수라고 비웃는다면서 '휘어진 공간' '4차원 공간', '무한차원 공간' 등 해독불가의 수학을 공부, 연구하는 옆지기를 공처를 넘어 경처(?)한다고 하였었다. 암만. 나는 초등수학도 신기한데....

 



(이 해맑은 모녀의 미소에 이시가미선생은 삶의 의욕을 찾았다.)

 

큰애에게 수학을 예습차원으로 조금씩 봐주면서 좀 어렵겠다 싶은 문제는 미리 풀어보며 어떻게 설명할까 궁리를 하는데 그 과정이 즐겁다. 이렇듯 초등 수학도 그럴진대, 로켓을 쏘아 올리고 우주를 설명하는 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사고의 심오함만큼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기쁨 또한 어마어마하지 싶다.  

그런가하면 수학을 못해도 수학을 즐길 수는 있다. 그림 못 그려도 그림 감상은 그림 그리는 사람 못잖게 할 수도 있듯이 수학은 못해도 수학자들의 탐구세계와 발견을 이야기형식으로 읽고 듣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또, 수학 공식을 풀거나 이해는 못해도 수학을 '무한대'로 동경할 자유는 있다.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매력적인 영화였다. 수학에 대한 추상적 동경을 가진 입장에서 보자니 두 천재의 대화와 설명은 논리로 무장된 언어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 아름다움이 깊었다.

'물리학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에 맞게 검증을 함에 반해 수학은 다양한 경로로 해석함이 물리학과 다르다'고 하였던가. 수학은 단지 물리학의 도구인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기도. 아니, 물리학이 수학에 포함되는 건가. 아 몰라 몰라. 여하간, 내 눈에는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물리학도 대단하고 다양한 각도로 해석을 시도하는 수학도 대단해 보인다.

 
(이 배우 이 영화에서 빠져나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듯..고독도 고독도 이런 고독이 음써...)


천재 수학자는 사랑도 고차원?

아무튼, 고독을 몸뚱이 전체로 빚어내는 고교 수학선생 이시가미 테츠야(츠츠미 신이치분)는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말할 기운도 없이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외톨이중의 외톨이였다. 같은 천재인 동기 유카와(후쿠야마 마사하루 분)는 대학 교수로서 짱짱하건만 이시가미 선생은 명예도 부귀도 관심 없었다.

그에게 열린 공간은 오로지 수학뿐이었다. 수학의 세계가 끝이 없듯 수학연구도 끝이 없었고 그의 고독 또한 끝이 없었다. 그러다 그는 그 고독의 어느 찰나,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자 못된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침 이사 인사차 초인종을 누른 이웃 야스코 모녀의 지극히 소박한 작은 친절에 다시금 살아갈 의욕을 찾았다.

야스코(마츠유키 야스코분)가 운영하는 도시락 가게에 매일 들러 정성이 담긴 도시락을 사면서 삶의 온기와 사랑을 느꼈다. 그러나, 감히 표현할 수는 없는.... 대학 동창 유카와 교수에게 '너는 언제나 젊구나.' 부러워하며 고백 같은 쓸쓸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웃으니 얼마나 보기 좋아요. 이시가미 샘^^)

한편, 영화는 언뜻언뜻 지나가는 풍경으로 일본사회의 건조한 현실도 보여준다. 바빠 보이는 도시락집 사장임에도 그녀의 집은 좁고 갑갑했는데 그나마도 일본에서는 언감생심인지. 여형사를 아직도 커피심부름이나 하는 존재로 아는 상사가 있는가 하면, 교실 붕괴로 까지 느껴지는 아이들의 한심한 수업태도라니 내 나라나 남의 나라나 참... 

또한, 영화 속 외톨이는 다행히 천재수학자로 수학자다운 커다란 사랑을 그리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은둔형 외톨이들은 여전히 일본사회의 숙제다. 뿐인가. 노숙인들 마저 철저히 개인적이고 깔끔하여 타인에게 피해를 안주는 반면 바로 옆 노숙자가 짐만 있고 더 이상 안보여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 무심함이라니. 

아무튼 이 영화는 살인 사건의 범인을 좇다가 뜻밖의 한 수학자의 지고한 사랑과 마주하게 되는 영화이다.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며 과학자다운 접근으로 형사를 앞서가는 유카와 교수의 말들에서 보여지 듯 영화는 시종 논리적이고 세련된 전개로 나아간다. 아무도 생각 못 할 마지막 반전도, 글쎄 수학 잘하는 사람들은 그런 반전을 미루어 짐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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