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좋다.햇살이 방안 가득 들어오니 옛생각이 난다.  

알바를 하던 청춘의 어느 한나절 봄햇살이 너무 좋아 기쁘면서도 

가슴에 휑~~하니 몹쓸 바람이 쓸고 지나가는 듯해 우울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허전함은 

사라지고 그저 따스하다는 느낌과 함께 포근하고 정답고 그렇다.  

 

그런가운데... 

양말을 깁고 있다. 놀다가 세월 다 보내는 큰애는 늘 양말을 구멍내고 마는데... 

깁기 싫어 하나둘 미뤄놨더니 더이상 신을 양말이 없을 정도가 되어서 할수 없이 깁고 있다. 

깁는 깁에 내 양말도.  

10짝이 넘는 것을 기우려니 오전해가 다갔다.  

 

양말 몇푼안하지만 기워신는 것은  엄지부분과 앞 발바닥 부분만 나가기 때문에 

그 부분만 수정하면 멀쩡하기에 그리한다. 덤으로, 기운 양말 신는것도 

녀석 삶에 도움도 되고 추억도 될것 같아서... 

   

여하간, 날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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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도 비싸고 싸고를 떠나 맨날 입게 되는 옷이 있듯  

알라딘 서재 옷 또한, 나는 이 풍차돌아가는 풍경을 매번 선택하게 된다. 

너무 지겹지 않나 싶어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가도 이내 이 풍자들녘으로  

돌아오고 만다. 

 

가을쯤에는 감이 열린 풍경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 아마 이 두개의 풍경을 그간의 

알라딘 생활에서 가장 좋아했던 서재 옷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이젠 고향을 떠나듯 이 두 풍경을 떠나고 싶건만, 도무지 나와 맞는, 내 마음이 열리는  

새로이 정착하고 싶은  풍경이 없으니....  

뭐시라? 니 스스로 풍경을 기증해 보라고? 

그러고 싶은 풍경도 있지만 어떻게 기증하는지 몰라서...ㅠㅠ 

그리고 스스로 만들어 보고 싶어도 해 보니 잘 안되었다. (다시 한번 만들어 볼까?) 

 

아무튼, 결론은, 알라딘 서재옷 묵은것 좀 퇴출하고 새옷좀 가득 맹글어 주었으면..^^  

그리고 음악을 넣을수 있는 기능도 있었으면...

뭐시라? 

외양이 중요한게 아니라 내실이 중요하다고라? 

그렇게 말하면 할말이 없기는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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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럼독 밀리어네어>

지난주 토요일 이 영화를 보러 갔을땐 마침 모 여중 아이들이 단체로 이 영화를 보러와서 시끌벅적했다. 어인일인가 했더니. 한달에 두번 동아리 활동을 하는데 자신들은 영화 동아리인지라 영화관에 온 것이라고.

영화를 보기 전이었지만 그 영화 동아리 학생들은 참 행운녀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시절 보는 한편의 영화는 때론 가슴깊이 '추억'으로 각인될수도 있기에...내가 중학시절 처음본 영화는
한진희 정윤희 주연의 <사랑하는 사람아>였는데, 그 수준 차이라니....^^

아무튼, 이 영화 감동적이었다. 여중생들이 영화 홍보지를 전부 쓸어가 버려 예비 지식이 전혀 없는
가운데서 영화를 보며  영화 전반 모든 면이 완벽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빈민가 인도의 현실도
충분히 보여주었다 생각했고, 현재와 회상의 적절한 교차, 깔리는 음악, 무엇보다 세련되었던 음향 등등 남우주연,
여우주연(케이트 윈슬렛 받음을 사전인지)빼고 다 줘도 되지 않을까 나름 상상하며 .... 영화끝나고

소녀들이 팝콘과 함께 흘리고 간 영화홍보지를 주워 확인해본 순간 ,
'어머, 나 자리 깔아도 될까봐. ㅋㅋ'
정말이지 여우주연 남우주연 빼고는 다 받은듯~~~

그러나 참 묘한것이 영화를 보는 그 순간에는 세상에 완벽도 이런 완벽이 없다 생각했는데
극장문을 나올때 까지는 괜찮아도 집에 도착하니 더이상 영화가 복기되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어떤 영화는 볼때는 지루해도 지나고 나서 자꾸 생각나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볼때는 감독이 신의 손을
빌려서 만든 작품이 아닐까 싶었었는데 끝나고 나니 여운이 없었다. 참, 뭐라해야 할지...
게다가 그즈음 한겨레 21에서 영화는 영화일뿐 인도빈민의 삶은 여전히 암울하다는 기사와 사진을
접하자 더더욱 감동이 시큰둥으로 바뀌어 버렸다.

영화속 빈민가도 충분히 현실을 반영한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한겨레 21에서 본 사진은 그 보다 더 함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더러운 물도 아니고 완전 독극물같은 물이 들어있는 통에서 서너살 꼬마가 목욕을 하는지 노는지.....
안 가보았으니 알수가 있나.

아무튼, 우쨌거나, 그럼에도 <슬럼독...>은 좋은 영화였다. 내가 늙어서 봐서 그렇지 청소년들이 보면 그 여운이
오래 갈지도 모르겠다. 아니, 갈것이다.^^

2. <그랜 토리노> <더 리더>

클린트 감독의 마지막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광고 덕분에 기대를 하고 보았는데 음...클린트 행님은 역쉬 대단혀~~~ 내용이야 지극히 평범한 노년의 일상과 주변사람들과의 소소한 다툼의 나열이었으나....
그렇게 천천히 얽어가다 영화 후미 찐한 감동을 주었다.

마지막 노래는 누가 불렀는지 혹 클린트 행님이 부르신것은 아닌지 이글스의 조 웰시가 늙어서
더이상 기운이 없을때 마지막으로 기운을 차리고 노래를 부르면 그런 목소리가 날까...

무엇보다 관속에 미리 들어가 누워보다니... 고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만큼이나 평안하고 원없어 보였다.
아마, 세월 더 지나 클린트 행님은 꼭 그렇게 영화처럼 아름답게 가실것이다.
원래 마지막이라하면 또 다른 마지막이 남을수도 있는바, 아마 향후 한편 더 찍으시지는 않을까나..ㅎㅎ

찍기 힘든 영화 말고, 총도 무거우니 총도 들지 말고, 그저 좋은 경치 보면서, 농담따먹기나
하면서, 옛추억을 떠올리는, 첫사랑 같은 그런 영화 한편 더 만들어 주시면 안될까요?

.......

책읽어주는 남자는 케이트 윈슬렛을 다시 보게 만든 영화였다. <네버랜드를 찾아서>에서의
그녀도 좋았지만 이번은 그때보다 훨 멋있었다. 비록 주름진 얼굴이었지만 그 주름마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반대로 랄프파인즈가 그렇게 늙어 버린것은 영 애석했다. ㅋㅋ..

언어가 독일어 였다면 훨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이 영국배우라 할수 없는가...

....
언급한 세 영화중 가장 기억에 남든 장면은 클린트 행님 총맞는 장면과 관속에 누워있는 장면.
더리더에서는 성당(성당 묘지?)으로 향하던 누런 들녘의 풍경과 넓은길, 그리고 죽은 한나의 묘지석을 손으로 쓸어
낙엽을 치우던 장면이 지금도 생각나... 이상. 3월에 본 좋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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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3-31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케이트 윈슬렛 연기가 완전 물이 올랐더군요.
그랜토리노도 묵직하니 그러면서도 가볍게 치고 달아나는 듯~

폭설 2009-04-01 10:28   좋아요 0 | URL
그런 영화 한편 완성하고 나면 죽어도 원이 없을것 같아요.ㅋㅋ..
그리고 독일의 도시, 시골 풍경 넘 좋았어요.
 
[블루레이] 시크릿 윈도우 - 아웃케이스 없음
데이비드 코엡 감독, 조니 뎁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이 영화. 참 보고 싶은 영화였다. 

그런데 구할수가 없었다. 살 수도 없었다. 블루레이가 뭐시여? 

새로운 디브디 기기? 

아무튼, 언젠가는 볼수 있겠지 했는데 그때가 어제였다. 

우연히 케이블에서 다음영화 <시크릿 윈도우>라고라? 

 

해서 간만에 티비로 영화봤다. 풍경이 좋은 영화였다. 그리고 조니뎁씨의 

모양새도 좋았다. 아름다운 풍경속 별장같은집. 

그좋은 집에서 과자만 부수며 글을 쓰는 사나이.... 어찌그리 처량하고 외롭던지... 

 

<뷰티플 마인드>보다야 덜 외로워 보였지만 아무튼  검은모자 늠자는

왜자꾸 나타나서 괴롭히는 고야? 

<뷰티플...>을 볼때도 그랬지만 이 영화도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야 

우리의 주인공을 괴롭히는 놈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야그는 그 사연의 탄로를 우려하기에 생략~~~ 

 

그런데, 이 디브디 소개글을 읽다가 영화보다 더 반한 대목. 

바로 언어지원이다. 무려 17개국어였나. 외수 선생님이 남들 영어공부할때 

파푸아 뉴기니어 공부하라셨는데 ... 파푸아어는 아쉽게도 없으나, 

대신 다른나라언어들이 총 망라 되어있네. 북유럽 , 영프독, 동유럽, 헤브라이어, 아랍어등. 

넘 멋지다.  

 

오늘 영화 한편 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문득, 영프독서어 아닌 다른 나라말 하나쯤 

취미로 좀 배워보는 것도 좋겠다 하면서, 그런 제 3세계 말을 배울려면 교제는 어떻게 

구하는 것일까. 외국어 대학홈피에 들어가면 정보가 나와있을까 하며 궁리했었는데 

이 영화 디브디에 그런 언어들이 지원된다니... 못 먹는 떡이라도 방가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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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3-22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설님, 이 영화 보셨군요.
전에 사둔 디비디가 있어요.
조니 참 좋더군요. 풍경도요^^
정말 다른 언어를 배운다면 뭘 배울까, 생각해보게 되네요.ㅎㅎ

폭설 2009-03-22 15:17   좋아요 0 | URL
사람들은 불어는 부드럽고 독일어는 딱딱하다고 하던데 저는 독일어가 훨 듣기 좋아요. 독일어는 모르지만. 불어는 비음이 많아 답답하고 스페인어는
땍땍거리는 것 같고 중국어는 갑갑하기가 불어와 비슷하고...

독일어가 영어만 같아도 좋겠는디...ㅎㅎ 모든 언어는 아름다운것 같아요.^^ 한 10개국 언어를 다 현지에서 많이도 말고 한 6개월씩만 배웠으면~~~ 울동네 선교사 우리말을 너무 잘하기에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고 하니깐.

한국어 마을에서 두달배우고 와서 시방 2년 되었다는데 못하는 말이 없었어요.
^^
 
입시전쟁 잔혹사 - 학벌과 밥줄을 건 한판 승부 인사 갈마들 총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강준만 교수의 <입시전쟁 잔혹사>(인물과 사상사)를 보니, 대한민국 사교육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1950년대부터 기승을 부렸다는 것이 아닌가. 

<1955~1956년경 국민학교 5,6학년 학생들은 월 100여 시간의 과외수업을 받느라 아침 6시에 등교해 저녁 7시가 되어서 교문을 나와야 했다. 그런 과중한 과외공부로 인해 '국민학교 아동보건 이상론' 까지 나왔다. 서울 돈암 국민학교 6학년 학생이 등굣길 노상에서 졸도 사망한 사건이 일어나자 그것이 과외 때문이냐 평소건강 때문이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질 정도였다.>(본문 93쪽)

위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사회에 적용시켜도 손색이 없다. 좀 다른 게 있다면, 1950년대의 사교육 열풍은 서울이나 대도시 중심의 학생들에게 해당된 것이란 것이다. 그에 반해 오늘날의 사교육은 부유하건 가난하건 대도시건 중소도시건 구별 없이 학생이 있는 가정에는 거의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나름의 교육열 덕분에 '해방당시에는 문맹자 77%였는데 지금은 80년대 이후 출생의 경우 대졸자가 77%'라고 하니 양적 발전을 따지자면 우리나라 따라갈 나라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빛이 너무 강렬했기에 그만큼 그늘도 깊은 것인지 정말이지 굴절된 교육의 폐해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은 성적순이고, 남을 제치고 이겨야 살고, 명문대 입학하려면 강남으로 이사 가야 되고 10분만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니' 이렇게 비교육적인 말이 어디 있는가. 자명하게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각자 개인이 느끼는 만족도에 따라 다르다. 남을 제치고 이겨야 살기보다 협동할 때 오히려 그 협동하는 가운데서 진짜 실력과 신뢰가 쌓여 상생 할 수 있다.

강남으로의 이사? 그간의 실적과 대학들의 학생선발 기준으로 봐서는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경쟁이라는 회초리로 아이들을 볶아서 일류대 보내면 부모는 만족감을 느낄지 몰라도 학생본인은? 학생본인도 과연 행복할까. 그리고 그 학생에게 과연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하는 열망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공부 잘해 일류대 들어간 한 무리의 학생 군을 표본 추출하여 그들의 졸업이후의 삶에 대해 누가 연구할 생각은 없는지, 하고 있는지.)

일찍이 교원 노조가 있었더라면....

<교원 노조 운동은 1960년 7월 17일 '한국 교원노동조합 총 연합회'를 결성함으로써 전국적으로 통일된 체제를 갖추었다. 이때 노조에 참여한 교사는 1만 9883명이었다. 이후 2만 명을 비공개로 받아들여 전체 교사 10만 가운데 4만 명가량이 노조에 가입했다. ... 그러나 교원노조운동은 1961년 5.16쿠데타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5.16주체세력은 교원노조를 혁신계 단체로 간주하여 5월 17일부터 1500여명에 이르는 교원을 체포하였다. 그리고 이후 28년간  교원노조는 교육계의 금기가 되었다.>(본문 105~106쪽)

89년 5월 선생님들이 교원 노조의 필요성을 제기할 때 무심한 대중들은 선생님들이 왜 스스로 노동자로 자처 하냐며 이해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었다. 교사들 중에도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다 항변한 사람도 있었었다. '노동자라니, 신성한 교직에다 어디 감히.' 

보통사람들이고 선생님들이고간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결국은, 박정희가 18년 장기 집권 동안 교원노조에 대해 입도 뻥긋 못하게 하고 그 다음 군사정부 역시 그것을 따랐기에 그렇게 된 것이었겠다. '28년' 이라는 장장 한세대의 기간 동안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니. 그렇지 않고 일찍이 교원노조가 제대로 키워져서 교사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으면 교육이 이렇게 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교육과 부동산은 이란성 쌍생아, 오직 내리막길이 있을 뿐...

이 책 <입시전쟁 잔혹사>에는 책 제목 그대로 우리나라 입시가 낳은 각종 잔혹함이 총 망라되어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의 매관매직부터 치맛바람, 기러기 아빠, 우골탑, 각종 기상천외 과외, 원정출산, 노래방 도우미를 해서라도 사교육을 시켜야 되는 슬픈 모정까지 입시와 관련된 사건사고 이속에 다 있다.

강 교수는 이 뿌리 깊은 입시전쟁의 해결책으로 '일류대의 소수 정예가 대안'이라고 하였지만 내 생각은 부모들이 욕심을 버리고 자녀들에 대한 투자를 거두어들이는 게 우선해야 된다고 본다. 

'남들 다 시키는데 내 자식만 안 시키면 내 자식만 손해 아닌가.' 이런 경쟁심으로 이때까지 버텨 왔겠지만, 이젠 방향을 바꿀 때도 된 것 같다. 부동산이고 입시사교육이고 그동안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러나 이젠 아닌 것 같다. 부동산이 어느 모로 봐도 하락세이듯 사교육 또한 무너질 일만 남았다고 본다. 

학생들의 '인내력'에도 부모들의 '경제력'에도 임계점이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요즘 기숙학원 광고에는 '신앙과 과외까지 책임져 준'다는 문구가 등장할까. 신앙에라도 의지해야 할 만큼 아이들의 정서는 불안한 것이고 정규 시간 열강을 해도 과외로 다시 보충을 해야 한다면 학생의 향학열은 거의 바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부동산은 말해 무엇하랴.

그러나 부동산은 작금의 경제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경착륙 아닌 연착륙을 유도 해야겠지만 사교육은 두려울 게 뭐가 있나. 사교육은 당장 그만두어도 손해 날 일 전혀 없다. 오히려 가계는 흑자로 돌아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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