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시댁에 가서 마늘  수확을 돕고 왔다. 돕고 왔다고 하지만 가장 쉬운
마늘 뽑기만 하였다. ㅋㅋ

케이비에스 라디오 오유경의 <교육을 말합시다>에 철학자 탁석산씨가
일주일에 한번인가 나와서 '청소년기에 익혀야 할 인생의 기술'인가 하는 코너에서
매번 감탄을 자아내는 말을 하는데.

일전에 들었던 그 감탄 어록중 하나를 생생히 체험한 하루였다, 마늘 거두기는.

즉, 진행자 오유경씨가 '어떻게 하면 (빨리)행복해 질수 있나요?' 비슷하게 물었다.
그랬더니 탁선생 왈. (뭐라고 했을까?)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움직이면 됩니다. 몸을 움직이면 빠른시간에 행복을 느낄수
있습니다. 운동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단 몇십분 안에 땀이 쪽 나면서 기분이 상쾌해 집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고개가 끄덕여 지면서 수년전 달리기가 생각났다.
마라톤을 한답시고 고등학교적 오래달리기 이후 처음으로 대학 운동장 네바퀴를 뛴적이 있었다.
네바퀴를 뛸수 있으면 더 연습하면 5, 10킬로는 나갈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그때 운동장 네바퀴를 뛰고 나서 느꼈던 희열이여!
달리기를 미치는 순간 갑자기 온몸에서 열과 쥐와 땀이 나면서 말할수 없는 기쁨이 밀려왔었다.)

오유경: 독서도 행복을 주지 않나요?
탁선생: 독서도 물론 행복을 가져다 주지만 책한권을 다 읽고나야 행복을 느낄수 있습니다. 과정에서 행복을 느낄수도 있겠지만 시간적으로 따지면 최단시간에(단 몇분만에도) 행복을 느끼기에는 운동이 최고죠.^^

끄덕끄덕. 아무튼 탁선생은 인간은 행복을 위해 운동, 노동 등이 필요하다는 인생의
기술을 가르쳐 주고 총총히 사라졌다.ㅎㅎ

공부도 뭐도 결국은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것 아닌가. 행복하려면 결과만 중요한게 아니라
무엇보다 '과정'이 행복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공부하는 이 순간, 혹은 모르는 것을 하나하나  알아갈때
너무너무 행복하다면 그 학생은 공부 계속해도 된다.

그러나 너무너무 하기 싫지만 장래를 위해서 억지로 이 악물고 한다면
용케 잘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었더라도 그 궁극엔 또다른 허무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누군가를 짓 밟아야 내 성적이 올라가는 이런 성공은 방향 자체가 틀렸다.

등록금 투쟁이 한창인데.... 사회적으로는 등록금에 이의를 걸고 공론화해야 되겠지만
학부모가 할수 있는 가장 최상의 등록금 투쟁은  대학 안보내고 1~2년 아이들에게 안식년을 줘 보는 것이다.
고교 3년동안 불철주야 성적이 좋고 나쁘고 떠나 공부하는 시늉을 했다면
그 스트레스 찌거기를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휴식은 필요하다고 본다.

공부가 다 무슨소용인가.  아이들 영혼이 말이 아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부모들이 욕심을 좀 버렸으면 좋겠다.
난 지방인데다 성적지향에 뜻이 없어 천하태평으로 살고 있는데 대문글 기사를 보니 윗동네는 난리도 아니네.
기사만 읽어도 숨이 턱턱 막혀오는데 아이들이 그 생활을 3년 6년 한다고라?
ㅉ ㅉ .....

애들이 불쌍한데, 가장 가까운 부모인 내가 그릇된 욕망으로  가장 심한 고문을 가하고 있는건 아닌지 다들 양심의 가슴에 손을 한번 얹어 봐야 할듯.....  


(아래는 펌글)

손학규 위기의 본질
정치의 본질은 포지셔닝 게임이다. 자신이 어떤 포지션에 가 있느냐에 따라 거기에 연동되어 자기 행동이 결정된다. 백청강은 한국에서 아웃사이더다. 백청강의 아웃사이더 포지션이 그의 행동을 결정한 것이다.

아무도 백청강에게 상금의 절반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정치판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손학규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고건에게 총리 자리를 내놓았고, 이해찬에게도 실세총리자리를 내놓았다. 검찰권력을 비롯하여 너무 많이 내놓은 것이 탈이라면 탈이었다. 결코 이명박처럼 혼자서 고소영, 강부자로 쳐묵쳐묵 하지 않았다. 마땅히 김정길에게 가야할 자리를 내놓지 않고 손을 안으로 굽힌 손학규와 달랐다.

백청강은 어떤 연유로 상금의 절반을 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을까? 역시 포지셔닝 원리다. 누구라도 큰 꿈을 가진 사람이 아웃사이더 포지션에 가 있으면 저절로 그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기택은 공천권을 독식하다가 망가졌고, 정동영 역시 지인 위주로 공천을 개판쳐서 망가졌고, 이인제 역시 독식을 꾀하다가 망가졌다. 앞으로 손학규가 망가지는 공식 또한 마찬가지다.

손학규는 가진 것이 없으니 달리 내놓을 것도 없다. 이는 이인제, 이기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몰락은 정해진 수순이다. 아무도 손학규에게 가진 것을 내놓으라고 말하지 않지만, 손학규가 쳐묵쳐묵의 권한을 행사한 다음에는 ‘어? 이 인간봐라. 날로 먹네?’ 이렇게 된다. 그것이 정치판 원리다.

정치판에서는 미리 요구하지 않고 뒤에 응징한다. 김정길이 미리 손학규에게 손 벌리고 요구하지 않았듯이 말이다. 미리 의사를 전달하려고 해도 라인이 없다. 그러므로 손학규가 망가지는 것은 필연이다.

백청강은 잔머리가 발달해서 분위기를 감잡고 거액을 내놓았을까? 천만에! 백청강은 돈이 남아돌아서 5천만원을 내놓았을까? 천만에! 총 상금 3억원 중 음반제작비 2억을 제외한 실상금 1억원 중 세금 22퍼센트를 제하면 아마 7천 8백만원쯤 될 것인데 그 절반을 제 스스로 약속했으니 3천 9백만원 정도면 될터인데, 백청강은 현금과 물품을 합쳐 5천만원어치 이상을 내놓았다.

가난한 사람이 돈 생겼다는 소문 나돌면 사돈의 팔촌까지 따라붙는다. 중국에서 어떤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었는데 알지도 못하는 친척 20여명이 몰려와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연변청년의 1억은 중국에서 그 몇 배의 가치가 있다. 그런데도 백청강은 왜?

아웃사이드는 외곽이다. 외곽에 있으면 눈에 잘 띈다. 그러면서도 움직임이 자유롭다. 눈에 잘 띄지만 대신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가운데 높은 자리나, 눈에 띄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않은 중간자리와 다르다.

외곽에서 안쪽으로 치고 들어가는데 필요한 가속도를 얻기 위하여 해야할 행동이 있고, 백청강은 그것을 한 것 뿐이다. 상대적으로 인사이드에 있는 기부왕 김장훈보다 훨씬 더 적은 액수로 동일한 효과를 낸 것이다. 이렇듯 포지션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

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경찰이 오기 전에 모범운전사 아저씨들이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한다. 그분들은 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원해서 봉사를 할까? 역시 포지셔닝 원리다. 아웃사이더들은 시키지 않아도 그 일을 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출마 결단을 찬양하지만 분명한건 노무현 외에는 딱히 그렇게 할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 일을 한 것은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그 일을 할 사람이 자기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는데, 나 외에는 할 사람이 없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 일을 하게 된다.

모범운전사 아저씨는 도로에서의 비상한 상황을 만나서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다. 운전에 능숙하지 못한 김여사가 그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인간은 누구라도 자기 외에는 할 사람이 없으면 하게 된다. 반대로 자기 외에도 할 사람이 여럿 있으면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인간을 밑바닥에서 움직이는 힘은 포지션이다.

고 이수현씨는 일본 지하철에서 자기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바로 뛰어들었다. 많은 일본인들은 자기 외에도 많은 사람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백청강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 외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나서야만 효과가 극대화 되는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한국인이 우승하고 상금의 절반을 내놓았다면? ‘저 인간 오버하네.’ 하는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왜? 누군가 내놓으면 그것이 관례가 되어 다른 사람도 내놓아야 하므로 모두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허각도 이미 써버린 상금을 도로 내놓아야 하고, 앞으로 있을 모든 대회의 우승자는 상금의 반을 내놓아야 하나? 오직 아웃사이더인 백청강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강해지는 지점이 그러하다.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청문회 스타로 뜨지 않았다면 부산출마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대통령 자리에 도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이전에 고졸출신에 성공한 변호사가 한국에서 자기 한 사람 밖에는 없다는 사실, 곧 밑바닥 사람들의 본심을 알고 그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자기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민주화 운동에 나서고, 정치판에도 뛰어들었던 것이다. 고시공부 한 것 외에 인생경험이라곤 없는 대졸출신이 그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인간 노무현 외에 없었다. 단 한 명도.”

유시민 역시 마찬가지다. 고졸 노무현을 위기에서 구할 사람은 잘난 서울대 출신인 자신 외에 없었다. 유시민 아니고 다른 누군가가 노무현 후보를 구하기 위해 총대를 매고 뛰어들어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다. 사실 유시민 외에도 많은 사람이 노무현 후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문성근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다만 서울대 학생회장 출신에 인기 방송진행자에 항소이유서의 유시민이 가장 포지션이 좋았던 것 뿐이다. 유시민 혼자 딱 먹히는 포지션에 가 있었던 것이다.

오직 나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역사를 끌고 가는 힘이다. 바퀴의 축처럼 사방으로 물려 돌아가는 지점에 서 있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어느 순간에 자신이 붙박이별이 되어 여러 위성을 통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유시민이 그렇다. 김해 보선에서 이겼다면 이긴대로 여러 위성들이 유시민의 행보를 보고 거기에 연동시켜 자기 포지션을 결정한다. 유시민이 지니까 또 지는대로 여러 위성들이 거기에 연동시켜 자기 포지션을 새롭게 결정한다. 지금 문재인이 살짝 나서고, 문성근이 살짝 떠주고, 이정희가 슬쩍 주변을 장악하고, 조승수가 입이 삐죽이 나와서 돌아서는거 보인다.

유시민이 1미터 움직이니 거기에 연동시켜 다들 10미터씩 움직여준다. 그것은 마치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강타자가 등장하니 외야수들이 다들 뒤로 한걸음씩 물러서는 것과 같다. 반대로 교타자가 등장하면 다들 위치를 앞으로 당겨서 번트수비 자세로 들어갔을 것이다.

하나가 움직일 때 거기에 연동되어 모두가 움직이는 모습을 본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 일을 찾아서 하게 된다. 그러나 타고난 위성들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 맞추어 자기 행동을 결정한다. 손학규, 이인제, 정동영, 이기택처럼 어쩔 수 없는 위성들 말이다. 그 또한 운명이다.

손학규가 만약 총선에서 공천을 잘 한다면? 그가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분점을 했듯이 권력분점을 실천할 의지를 보인다면? 필자는 그를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법칙은 원래 없다. 원래 그게 안 된다. 해봐라 되는가?

설사 손학규가 용기를 내서 그것을 실천한다 해도 ‘거래’로 비쳐져서 효과가 반감된다. 지금 손학규는 업둥이 신세라서 민주당 안에 자기세력을 심어야 한다. 수레바퀴의 축은 사방으로 힘을 받으므로 바퀴살보다 더 단단해야 한다. 손학규가 자기 세력 없이 권력분점을 꾀하면 붕괴된다. 정치적 자해가 된다. 

그러므로 손학규는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으며, 만약 그러면 더 나빠진다. 정세균은 대의를 위하여 살신성인 했지만 얻은 것이 없다. 손학규가 노무현 대통령처럼 살신성인을 실천하면 대선후보도 못 된다. 손빠가 없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안 되는건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출발점이 나쁘다.

조승수가 진보진영의 ‘대의’를 따라 참여당을 존중하고 대통합에 나선다든가 하는 일은 없다. 그 전에 진보신당이 깨지도록 세팅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노선차이는 없다. 그건 인간이 지어낸 구실에 불과하다. 본질은 노조를 끼고 있는 민노당은 대중의 압력을 받고 있고, 진정한 개인주의자에 자유주의자 집단인 진보신당은 ‘A급 살롱좌파’가 되고자 하는 구성원들의 욕망에 지배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욕망이 해체될 때 진보신당은 존재의미가 없다.

역시 포지셔닝 원리다. 창당 10년을 넘긴 민노당은 집권의욕을 보여야 당이 유지되고, 진보신당은 당원들에게 ‘A급 살롱좌파’라는 자부심을 주어야 당이 유지된다. 예컨대 참여당이 집권의욕을 보이지 않는다면 존재가치가 있는가? 없다. 직점 집권을 못해도 어떻게든 세상을 바꾸는 일에 참여당은 참여해야 한다. 당명부터 ‘참여’로 못박혀 있다. 진보의 집권에 참여당이 홀로 불참당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참여당 입장에서 범진보대통합에의 참여는 운명이다. 물론 민주당에 흡수되면 안 된다. 참여란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정해진 운명이다.

세습문제가 어떻고, FTA가 어떻고, 비정규직이 어떻고 하지만 모두 개소리에 불과하다. 긁어서 협상카드를 만들려는 수작일 뿐이다. 진보신당의 문제는 자존심이고, 민노당의 문제는 집권비전이고, 참여당의 문제는 진보진영의 승리에 참여하는 것이고, 민주당의 문제는 정치 자영업자들에게 금뺏지 하나씩 달아주는 것이다. 이 역시 정해져 있다. 노선 좋아하네.

민주당은 최대 다수의 의원 당선에 목을 걸고 있고, 참여당은 대선에서의 키 역할에 목을 걸고 있고, 민노당은 차차기를 겨낭한 집권비전 제시에 목을 걸고 있고, 진보신당은 오로지 살롱에서 깔 노가리 술안주에 목을 걸고 있다. 이것이 진실이다. 그 모든 것은 포지션이다.

골키퍼는 한사코 막으려 하고, 공격수는 한사코 득점하려 하고, 미드필더는 한사코 패스하려 한다. 민주당은 골대 앞에서 서성거리며 동료의 패스만 요구하며 주워먹으려 하고, 참여당은 어시스트 기회를 노리면서 여차하면 득점까지 책임지려 한다. 각자 정해진 자기 포지션따라 움직이는 것.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것. 아니라고 부인할 자 누구인가?


http://gujor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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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1 -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신 클래식 강의
조윤범 지음 / 살림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조윤범. 그를 떠올리자면, 참여정부 초로 기억되는데, 모 방송에서 <학력인가? 학벌인가?>라는 주제로 다수의 출연자와 방청객이 어우러진 대 토론회가 생각난다. 그때 토론의 결론은 압도적으로, 아무리 학력(실력)이 있어도 대학(학벌)은 졸업해야 되는 것으로 났었다.

고졸 출신의 어느 잘생긴 대기업 다니는 남성은 자신이 그 기업에 입사하기까지의 성공담을 술술 매끈하게 얘기했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대학은...’ ‘저렇게 실력과 당당함이 있으니 더더욱 학벌 한줄 넣어주면 금상첨화 아닐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토론을 보면서 대학을 가지 않고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쪽의 의견이 형편없이 힘을 잃는 것이 안타까워 토론을 보는 내내 맥이 탁 풀렸었다. 당시 대부분의 젊은 층들이 ‘그래도 대학은...’이라고 말할 때 나이든 축의 참가자들이 ‘살아 보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 실로 중요한 것은 이러이러한 것....’하면서 여타의 길을 제시해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아무튼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던 그때 긴 생머리를 도사처럼 뒤통수에 묶은 록 음악가처럼 보이는 청년이 대학 안가고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며 ‘열변’을 토했다. 자신은 대학에서 이것저것 배우며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오로지 (바이올린) 연습에만 매진하기 위하여 대학을 거부 한다고 하였었다.

에끼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록음악이나 문학 등 여타 그와 비슷한 거라면 몰라도 클래식 기악을 스승 없이 배운다는 것이 가능한가, 회의적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고전 음악계가 학벌타령이 좀 심한가. 그 같은 동네에서 밥 벌어 먹고 살자면 아니꼽고 치사해서라도 대학간판 한줄 쯤이야 그냥 넣어주고 말지 웬 고집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쨌거나 그는 인상적이었다. 교육부 장관이 해야 될 말을 그가 하고 있었다.

그 후 몇 년 세월이 흘러, 예당TV에서 <조윤범의 파워 클래식>을 보게 되었다. 아, 저 말총머리! 그는 무대전면을 뚜벅뚜벅 왔다 갔다 하며 예의 몇 년 전 토론회 때처럼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누가 들어도 금방 호기심이 일게 그는 설명을 참 재미있게 하고 있었다.

나는 몇 년 전의 ‘회의’를 버리고 그 당당한 모습에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 좋다. 주류에 똥침을 날리고 스스로 길을 개척해 깃대를 꽂고 새로움을 선사해주는 이런 사람들이 좋다.

<조윤범의 파워 클래식>(살림)은 조윤범식으로 전하는 서양음악이야기다. 바로크 시대부터 현대음악에 이르기 까지 그 특유의 화법으로 음악가들의 풍부한 일화들을 양념으로 썩어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음악 애호가들의 음악이야기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저자는 현재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현악 사중주단 <콰르텟 엑스>를 이끌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악사중주나, 피아노 오중주, 팔중주 등 현악중주에 대한 얘기들에서는 자신들의 연주와 연습 경험들을 소상히 들려준다. 이곡은 혹은 저곡은 연주자의 입장에서 막상 연주를 하거나 연습을 할 때 이런저런 점이 있다는 설명은, 현악기를 배우는 입장이라면 귀에 쏙 들어올 것 같다.

그저 음악은 아름답기만 하면 되고, 연주자들은 오랜 연습의 결과로 무슨 악보를 들이대도 그냥 저절로 손이 움직이는가 싶었는데 때론 더할 수 없는 ‘육체노동’이기도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기야 유행가도 어려운 곡 하나 열창하고 나면 기운이 쪽 빠지는 데 쉼 없이 몇 십 분을 활을 당기고 밀고를 하자면 보통일이 아닐세.~

기교가 어려운 곡들은 연습할 때는 무지 힘들지만 연주하는 보람이 있는데 반해 청중도 좋아하고 연주하기도 쉬운 곡은 몸은 편한데 연주자의 흥은 그에 반하는가 보았다. 또, 듣는 이의 감동과 연주자의 감동이 일치하는 것만도 아닌가 보았다.

아, 윤이상.

특히 이 책에는 무엇보다 고 윤이상 선생에 대한 언급이 있어 좋았다. 끝내, 고국 땅을 다시 한 번 못 밟아보고 돌아가셨는데. 선생의 독일에서의 삶의 흔적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그는 살아생전에 4개의 오페라, 9개의 합창곡, 6개의 성악곡, 17개의 관현악곡, 5개의 교향곡, 10개의 협주곡, 9개의 실내 앙상블, 6개의 현악사중주곡 외에도 40여개의 실내악곡, 14개의 독주곡을 남겼다. -<본문 398쪽>

현대음악이라 하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한데 어쩐지 선생의 곡은 예외로 저절로 이해 될 것 같다. 광주의 아픔을 이야기한 관현악곡<광주여 영원하라>와 민주화 운동을 하다 스스로를 불태운 이들을 위한 교향시 <화염속의 천사>는 제목만으로도 가슴이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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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올 봄에는 딸기를 못 먹어봤다. 보통 4월이면 딸기 트럭이 '딸기 사세요.' 하며 목청을 높였었는데 그 소리를 올 봄에는 못 들었다.
내가 딸기 못 먹은 것이야 워낙 대체할 과일이 많으니 못 먹어도 그만이지만
딸기 농가들 딸기농사 다 재미 못 보신것은 아닌지.....

지난해 적멸하신 법정스님은 영화로 돌아왔다. <법정스님의 의자>
스님의 모습과 육성이 많이 들어가 있어 기존에 보아오던 티비 다큐와는 또 달랐다.

언젠가 작가 장정일은 나중에 죽을때
'눈내리는 겨울산 속으로  들어가서 죽겠다'고 하기에

에게게.. 그게  마음대로 되간? 하며 꿈도 야무지군 했는데 스님의 영화를 보고나니
그게 바로 '천화'였구나. 천화란 산을 오르긴 오르는데 (되돌아 갈수 없게 )길이 아닌 곳으로 오르고 또 올라 기진 맥진 쓰러지면 그자리에서 주변 나뭇가지와 잎을 요와 이불삼아 깔고 덮고 죽는 것이라 하였다.

법정스님은  천화처럼은 못 갔지만 가장 비슷한 마음으로 가신것은  확실한것 같다.

아무튼 영화를 보고나니 내 마음이 한번 더 개운해 졌다.^^

<오월애>는 여느 다큐영화들이 그렇듯 좀 지루하긴 해도 다소 참고 봐야 되는 것은
아닌가 했는데 웬걸 지루할 새가 없었다. 다년간에 걸친 그 수많은 인터뷰를
이리자르고 저리잘라 이리 꿰매고 저리 붙여 전체적으로 하나의
통일성을 찾아간 솜씨가 놀라웠다.

그리고 광주는 여전히 아프구나 하는걸 느꼈다. 30년이 더 지났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뒷 모습으로 인터뷰하는 분을 보면서 그 옛날의 공포는 여전히 현재형이구나 싶어 짠했다.

그 분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분들의 상처도 여전히 현재형이었다. 광주민주화혁명으로 이름이 바뀌고 국가유공자로 피해보상금 받은걸로  모든 것이 또는 그나마 아쉬운 대로 해결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죄스러운 생각이었는지......ㅠㅠ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어서 좋은세상 만들어야 할텐데...
그리고 오월 광주에 관한 영화는 해마다 계속 나와주기를~~ 대작은 대작대로, 다큐는 다큐대로....^^

결론은, 며칠 안 남은 오월, 이 두편의 영화는 확실히 보고 유월을 맞자 머이런. ㅋㅋ

.....................

봉하 2주기도 1주기때처럼 여전히 비가 내렸다. 내 한 몸 추스리면 그만인 우리야 상관없지만 진행하는 분들이 고생이 많았다. 월요일인 관계로 지난해에 비해 추모인파가 줄긴 했으나 묘역을 채우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
내년에는 나처럼 단돈 만원으로 왕복 차비가 해결되는 대구 부산 인근 사람들이 쪽수를 많이 채웠으면 하는 바램..^^


(아래는 펌글...)








"노무현 대통령의 진짜 의미"
'국민의 명령은 가는 김에 끝까지 가기.'





◎ “이명박 지지 26.4% vs 노무현 대통령 지지 68.3%” (일요신문 조사)

유권자들은 왜 이제와서, 떠나고 없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것일까? 그렇게 등 떠밀어 보낼 때는 언제고? 왜 태도를 바꾸었을까? 왜? 무엇 때문에?

[정답].. ‘이명박과 박근혜, 손학규 트리오의 삽질로 교착된 암담한 현상을 타개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의 구심점을 결집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활약할 때는 지식인들도 힘 있는 글을 썼다. 그들의 글에는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선비의 기백이 있었다. 권력과 맞장 뜨겠다는 지식인의 배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강준만 소식없고, 진중권 로또타령 뻘짓 중이고, 기타등등 쟁쟁한 인물들 증발, 자취없고, 오마이뉴스나 서프라이즈에 서식하는 찌질한 군상들 몇 궁시렁거리는 소리나 들려올 뿐이다. 그들은 어설프게도 손학규로 어째볼까 잔머리나 굴린다.

에너지 없다. 김 빠졌다. 격론도 없고 반론도 없다. 메아리도 없다. 대립각조차 세워지지 않는다. 빈 방에 한숨소리 공허할 뿐이다. 이제 이 나라 지식인들의 글에서 과거와 같은 패기도, 기개도, 낭만도, 치고 나가는 기운도, 그 무엇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구질구질한 변명같은 글이 어지럽다. 참!

심지어는 노탓으로 먹고 살던 조중동도 매가리가 없다. 노탓 대신 내세운 북탓전략이 먹히지 않는 판. 한다는 소리가 김정일이 어쩌고 70년대 반공도서 수준. 가스통 들고 설치던 어버이 연합도 맥이 빠졌고 전여옥, 김동길이 간헐적으로 냄새를 풍길 뿐 과거의 그 눈에 선 핏발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리하자. 민중의 입장에는 의도가 있다. 젊은 세대가 유시민을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고삐없는 망아지 민주당을 통제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류는 비열한 오마이뉴스 등에도 감지된다.

유시민이 움직이지 않으니 문재인을 어째보려고 살살 지분거린다. 왜? 지면은 채워야 하는데 건수는 없고 독자는 날로 떠나고. 문재인으로 안 되니 김두관을 또 집적거려 본다. 어떻게 유시민 비판 뉘앙스라도 건지면 횡재다.

뭐 어떤 인터뷰를 따던 제목은 일단 유시민과 관련짓는다. 아무 상관없는 재야인사 인터뷰도 제목은 유시민 어쩌구.. 장문의 인터뷰 중에 유시민 관련은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던진건데, 그것도 비판으로 보기는 어렵고 그냥 기자가 유도하니까 마지못해서 한마디 해준건데 그게 왜 제목으로 붙냐?

참 나 원 기가차서. 그게 도리어 유시민 띄우기처럼 보이지 쪽팔려서 그런지 또 야권통합 어쩌구 물타기한다. 그 인터뷰에 응해준 재야인사 열받았을 거다. ‘그렇게 장시간 인터뷰 했는데 왜 기사제목이 내 이름이 아니고 엉뚱하게 유시민 이름으로 붙냐고? 시민단체 수장인 나는 이름도 없냐고?’

결론하자. 필자는 유시민 개인을 지지하는게 아니다. 필자는 우리가 민주당을 통제할 수 있는 대항무기를 손에 쥐기를 원한다. 지금은 유시민이 대항수단이다. 그런데 유시민 없으니 니들도 뻘쭘하지?

그래서 문재인도 건드려보고, 김두관도 찔러보고, 안희정 툭 쳐보고, 이광재도 한마디 따보고, 문성근한테도 전화넣어 보고 그러는 거지? 제목은 야권통합으로 멀쩡하게 걸어놓고 이해찬, 한명숙, 사진 딱 걸어놓고 쪽팔리는 것은 알아서 손학규는 안 나오도록 카메라 잡고 그지?

니들 하는 짓이 졸라리 웃긴다. 이슈메이커 유시민은 없고, 뭔가 썰렁하고, 분위기 안 살고, 민주당을 통제할 고삐는 정작 니들에게 더 급하고, 손학규 저 허당은 못 믿겠는 판에 김진표, 박지원은 어디서 뭣하나? 어째 그림을 만들어 보려니 문재인, 김두관, 안희정, 이해찬, 이광재, 한명숙, 문성근 다 모아서 야권통합 제목으로 유시민과 대립구도로 그림 나와주면 딱 좋겠지 그지?

까놓고 진실을 말하자. 현 손학규 상황은 유시민 공포증 때문에 급조된 니들의 헛발질이다. 유시민 공포증은 사실 니들의 환상이었다. 니들은 거짓 환상 만들어놓고 대항수단으로 손학규 띄웠다.

정동영까지는 내가 이해한다. 어차피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까. 그러나 손학규는 본질이 사기다.

손학규의 존재가치는 유시민을 견제하는데서 끝. 니들도 내심으로는 이미 손학규 팽했지. 그지? 유시민 입닫으니 손학규 존재감 급하락. 갑자기 사람이 매력이 없어보이지 그지? 원래 사람이란게 그래. 관심없는 이성도 애인 생기면 질투 난다고. 유시민 없는 판에 손학규는 허당이여. 매력없어.

이제 손학규, 김진표가 민주당 말아먹게 놔두자니 급하지? 똥줄타지? 대안없지? 문재인이라도 움직여주면 좋겠지? 더러운 자들.

니들이 유시민을 때린 진짜 이유는 지금 상황에서 니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재주가 그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알겠는가?

분명히 말한다. 비열한 자들은 늘 인신공격에 정책타령이다. 입이 비뚤어진 김에 끝까지 노무현 사람은 좋아도 정책은 지지하지 않고 어쩌고 개소리 한겨레. 그게 과연 정책의 문제였나? 기실 대표성의 문제였다.

니들이 진짜 무서워한건 노무현의 정책이 아니라, 노무현의 인격이 아니라, ‘바꾸는 김에 다바꾸자’..는 노무현의 상징성 바로 그것이었다.

◎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 .. 바꾸는 김에 다 바꿔보자.

이게 무서웠던 것. 보통사람 노무현, 바보 노무현이라는 슬로건 뒤에 숨은 메시지. 바로 이 뜨거운 감자. 니들조차도 그 바꿔야할 대상이라는 것. 예외는 없다는 것. 그러니 찌질하게 인격을 시비하고, 쪼잔하게 정책을 트집잡고 그러는 거다.

천하에 한심한 짓이 인격시비, 정책트집이다. 인격시비는 글 배운 사람이 할 일이 못된다. 정책문제는 대한민국 전체역량의 문제다. 이라크 파병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이 결정한 것을 가지고, 노무현 대통령 1인에게 책임물을 국민은 이 나라 어디에도 없다. 국민은 니들만큼 아둔하지 않다.

유시민의 이미지도 같다. 나는 유시민 개인을 지지하는게 아니다. 유시민의 상징성을 지지한다. 그것은 ‘바꾸는 김에 다바꿔보자’다. 지금 유시민이 입을 닫고 있으니 이 요구도 쑥 들어갔다. 그러나 휴화산이다.

지금 국민은 명박에게 워낙 데어서 기세가 꺾였다. 우리 조심하자. 우리 신중하자. 오버는 하지 말고 어떻게든 총선만 이기고, 일단은 정권교체만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총선 이기고, 정권교체 가시화 되면 국민은 또다시 태도를 바꾼다. 그리고 국민 기세 올라간다. 국민들 기 살아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이왕 내친 걸음이다. 바꾸는 김에 다 바꾸자.”

이렇게 된다. 그 변화의 깃발을 유시민이 잡든, 문재인이 잡든, 이해찬이 잡든, 문성근이 잡든 나는야 상관없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그렇다. 하나를 얻으면 그 기세로 둘을 요구한다. 둘을 얻으면 그 기세로 셋을 원한다. 결국 바꾸는 김에 다 바꾼다. 이것이 1년 후에 터뜨려질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다. 나는 단지 시간을 앞질러가서 예고편을 미리 때릴 뿐이다.

◎ 거짓 - 노무현 사람은 좋은데 독선적 인격, 중도적인 정책은 문제였다.
◎ 진실 - 노무현의 상징성, 대표성이 다음 세대까지 쭉 이어져갈까봐 무서웠다.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기승전결의 기가 될까봐 두려워 했다. 기로 일어나서 승, 전, 결로 이어가며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을 만들어버릴까 두려워했다. 그 엄청난 역사의 물결을 책상물림 먹물의 세치 혀로는 통제할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인격을 시비하고 정책을 트집하고 애들처럼 찌질하게 군 것이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진실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반대로 간다. 노무현 대통령이 일으켜 세운 기에 승으로 전으로 결로 완성한다. 계속 가는 거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는 작은 승리라도 하나의 승리가 필요하다. 한 번 승리하면 목표는 더욱 높아진다. 두 번 승리하면 국민의 목표는 더욱 높아진다. 이게 너희들이 이제부터 맛봐야 할 진짜배기다.

더 높아진 국민의 기상과 요구수준. 손학규로 성에 차나? 천만에. 이미 한번 진짜를 봐버렸는데, 눈버렸는데, 가짜로 만족하겠어?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무엇이 두려우랴! 우리 가는 김에 끝까지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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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사춘기 - 명진 스님의 수행이야기
명진 스님 지음 / 이솔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무서운 세상. 민주주의의 시계가 계속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이 시절에, 그나마 명진 스님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위안인가. 불의를 행하는 위정자에겐 거침없이 죽비를 내리치고, 하루아침에 공권력에 의해 삶의 터전과 핏줄을 잃고, 또, 감옥 보내고 우는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서는 스님도 그들과 함께 울었다.

눈물 닦는 사진과 동영상을 유독 많이 찍힌 스님을 보노라면 혹자는 속세를 떠난 구도자가 왜 저리 눈물이 많은가 오해 할 수도 있겠으나 알고 보면 스님의 눈물은 다 지극한 사랑이자 위로임에랴. 이 눈물 많은 스님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며 한권의 책을 세상에 내 놓았다.

<스님은 사춘기>(이솔). 덕분에 목적 없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삶속에서 잠시 쉼표를 찍고 스님이 던지는 삶의 의미, 존재에 대한 화두에 물음표하나 던지며 쉬어 갈수 있게 되었다. 스님은 어이하여 출가를 하였던가.

모든 스님, 신부, 수녀님들에겐 식상한 질문이겠으나 중생은 그것이 또 가장 궁금한 질문임에랴. 명진 스님은 6살 어린나이에 ‘죽음’이라는 화두를 만났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통해.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죽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죽음은 내가 삶을 투철하게 성찰하도록 했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도 이른 나이에 죽음과 맞닥뜨렸다. 내가 처음 마주친 죽음의 대상은 불행하게도 어머니였다.>-본문 11쪽

뿐인가. 스님에게 죽음은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서로 의지했던 동생이 해군에 입대한지 불과 몇 달 만에 군함 전복사고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연이어 쉰이라는 이른 나이에 아버지마저 병고로 세상을 떠났다. 스물 언저리 푸른 청춘에 피붙이 모두 떠나고 세상엔 스님 혼자만 달랑 남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화두를, 예기치 않은 시기라면 하나만 던져도 암흑이거늘 스님은 젊은 날에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세 개 씩이나 받았다. 그러니까 익히 보이던 스님의 눈물은 수행의 미진함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중생의 아픔을 가슴으로 알기에 흐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구나. 흐르되 걸림은 없는.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허공이다? 스님의 변을 들어보자.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은 본래 허공과 같이 텅 비어서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 묘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 한 물건을 마음이라고 하지만 마음이라는 게 어디 실체가 있는가. 내 마음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슬픔이나 기쁨, 욕심이나 자비심 같은 모든 감정은 허공같이 텅 비어 있는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용이다....... 

냉철하게 자기 자신을 살펴서 내 마음이 허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내 마음이 허공같이 텅 비어 공적한 것임을 알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들이 하나의 작용일 뿐 실체가 없는 것임을 투철하게 깨달으면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대 자유를 얻게 된다. 내 마음이 바로 허공인 그 자리는 능히 모든 것이 자유자재한 자리이다.>-본문 256쪽

노스님들은 명진 행자가 무서워~

스님의 걸음하면 법정스님의 빠르고 거침없는 걸음걸이가 생각나는데 명진 스님은 의외였다. 지난해 봉은사에서 뵌 스님의 걸음걸이는 평소 말씀이 거침없는 것에 비해 사뿐사뿐 한발 한발 새색시같이 내 딛으셨다. 그것이 참 인상적이어서 봉은사 신도인 친구에게 말했더니 절은 더 하다고 하였다.

“절은 또 얼마나 정성스럽게 하시는 줄 아냐? 천천히 한배, 두 배... 시종여일하게 하신단다.”
“그렇게 해서 언제 하루에 천배를 다하신다니?”
“한 꺼 번이 아닌 아침 점심 저녁 중간 중간 나누어서 하시는 거지.”

아무튼 스님의 걸음걸이와 절하는 모습으로 유추해 볼 때는 스님의 행자생활도 지극히 새색시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했는데 웬걸. 스님은 행자세계의 문제아였다.(웃음) 스님의 파란만장한 수행담은 읽는 내내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다른 스님들은 스스로 점잖아서도 못하고 무서워서도 못하는 질문을 명진 스님은 노스님들에게 거침없이 해댔다. 해인사 백련암 행자시절엔 일본어 배우라는 성철 스님의 말에 교학보다는 참선에 관심이 많던 스님은 일본어를 배워야 할 이유를 납득 못하였기에, 그냥 말도 없이 내뺐다.

‘남쪽에는 성철, 북쪽에는 전강’하던 그 시절에 성철 스님 눈에 단번에 들어 행자자리 꿰찼으면 일본어 아니라 더 한 것도 배우려 노력했으련만 스님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그 후로도 쭉 운수납자로 떠돌았다. 물론 가는 곳 마다 사건(?)도 일으켰다.

안동 봉정사에서의 일화 한 토막. 간염과 영양실조에 걸린 지인스님에게 소머리를 삶아 먹이려다 주지스님과 신도회장이 항의하자 스님 왈,

“그럼 스님 머리를 삶을 까요?”

주지스님과 신도회장이 아연실색했음은 물론이고 말리지도 못하였다. 결과는, 지인스님이 기력을 회복했다고.

그런가 하면 용맹정진기간에 졸음을 깨우기 위해 당번이 될 경우 보통 노스님이 졸면 모른척하는 게 관례하면 스님은 반대로 하였다. 젊은 스님이 졸면 모른 척 눈감아 주고 대신 노스님이 졸면 죽비가 부러지게 내리 쳤단다.

행자시절하면 보통 행자의 설움이 말도 못하게 큰 것으로 전해지는데 명진 스님의 경우는 행자인 명진 스님 보다 은사스님들이 더 힘들어 보였다.(^^) 아무튼 이 한권의 책에는 어느새 환갑이 된 지난 60년 스님의 인생이 시시콜콜 다 있다. 군부독재에 맞서고 불교개혁에 앞장섰던 것에서부터 스님을 짝사랑한 어느 여인의 이야기까지.

타협하지 않고 언제든 자유인으로 당당히 돌아서는 스님의 당당함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 행자시절부터 쭈욱 견지하고 있던 초지일관의 한 단면이었다. 후후~ 우좌간 스님은 그 순수한 야성을 잃지 마시길.

<불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니라 끝없는 ‘물음’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종교이다. 냉철한 이성으로 자신을 살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탐욕과 어리석음이 허망한 것임을 깨달아 무한한 자유와 지혜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본문 262쪽

정말 그런 것 같다. 불교는 끝없는 물음을 통해 스스로를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종교라기보다 ‘사상’이다. ‘자유’에 이르게 하는 사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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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3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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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영화에 대한 기억이 좋아서 읽게 되었는데  

영화는 책을 충실하게 따랐고나. 

(책의, 100여년 전 풍경에 대한 세세한 묘사를 탁월하게 재현해 낸 

영화의 미술, 의상 담당자들의 노고에 다시금 경의를~~~ )

 

영화가 있었기에 책을 읽는 내내 영상이 떠올라 읽고 봄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그런 충만을 느꼈다. 

 

특히,  

영화에서는 마지막 한 장면일 뿐이었지만(영화의 마지막도 물론 뇌리에 오래 남는...) 

책의 마지막 34장은 아처 뉴랜드에 대한 심리묘사가 탁월하고도 탁월하였다.

.... 그 저린 마음의 허허로움은 내 모세혈관에도 전이되어 꺼이꺼이...... 

10여장이 넘도록 세세히, 담담히 아처의 마음을 설명해 주어서  

그나마 이 책과 이별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그가 놓친것이 있다면 인생의 꽃이었다.  

그러나 이제와서 생각하면 너무나 얻기 어렵고 가망없는 것이어서,  

복권에서 1등을 뽑지 못한 것처럼 놓쳤다고 절망스럽지도 않았다.  

....... 

그녀는 그가 놓친 것 전부를 한데 뭉뚱그린 환상이 되었다. 희미하고 미약했으나,  

그 환상 때문에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어 본 적이 없었다. ... 

결혼에서의 일탈은 추악한 욕정과의 투쟁이 될 뿐이었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자랑스러이 여기는 한편으로 슬퍼했다.  

어쨌거나 흘러간 옛날이 좋았다." 

 

영화에서 '메이'가 위노나 인것이 별로 였는데 책을 보니 저자와 닮아서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키 차이가 너무 나서  영화 찍는 내내 힘들었다던데 

보는 나도 힘들었음^^ 올렌스 부인도 미쉘 파이퍼가 아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물론  

연기는 잘 하였음) 

원작이 워낙 좋으니 최근의 <제인 에어>처럼  내 평생에 이 책이 한번더  영화로 되는것을

보고싶다. ^^  생각만 해도 체온 급상승~ 

 

이디스 워튼, 저자의 이름을 나의 해마에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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