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4 - 네팔 트레킹 편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4
김남희 글.사진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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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솔직히 암벽 등반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언젠가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니 그렇게 매달려서 앉은 채로 잠을 자기도 하였다. 암벽 중간에서는 힘들게 올라왔기에 도로 내려 갈 수도 또 쉬지 않고 계속 오를 수는 없으니 때 되면 그렇게 앉아서 다리만 펴고 쪽잠을 자는 것이라 했다.

줄이 잘못되어 끊어지면? 당연 떨어지는 것이고 중상 아니면 불귀의 객이 될 터. 그런 아슬아슬한 상황에 왜 소중한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몸을 엮어두는지 나 같은 소심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엄홍길, 허영호씨 등이다. 이제 고만 올라가시나 싶으면 또 짐을 꾸리고...물론 그들의 탐험정신과 불굴의 의지는 존경한다. 덕분에 안방에 앉아서도 설산 속을 걷고 있는 사나이들의 호연지기를 전달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제는 고만들 올라가시기를.

나는 에베레스트, 히말라야, K2니 하는 말만 들어도 으스스 떨린다. 그보다 낮은 베이스켐프가 어쩌고 해도 저산소증에 걸릴 것 같다. 따뜻한 방안에 앉아서 생각해도 그럴진대 여자 혼자 몸으로 열흘, 스무날씩 산소도 적다는 산길을 걷다니. '소심'하고 '까탈스럽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아무튼 평소 사람들이 여행하면, 네팔, 티베트, 인도 등을 떠올려도 나는 그쪽 지역에는 '전혀 생각없수다'였다. 그랬는데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혼자 떠나는 걷기여행4>(미래M&B) '네팔 트레킹' 편을 읽고 비로소 호기심이 생겼다.

에베레스트(8848), 안나푸르나(8091), 로체(8501) 정도가 귀에 익은 지명들인데 창체(7559) 푸모리(7165) 캉충(6089) 아마다블람(6856) 캉데카(6779) 탐세르크(6618) 등 봉우리도 많고 다들 높이가 장난 아니시다.

저자는 위의 봉우리들은 꿈도 못 꾸고 다만 4,5천 미터의 베이스캠프까지 걸어가는 것이 트레킹 여정이었다. 지리산이 1915m이니 4,5천m라 해도 지리산 두 배 반을 더 올라야 하니 나는 그마저도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나저나 4천 미터가 넘는 고산의 밤 기온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홉 시까지 난롯가에서 머물다가 방으로 돌아왔는데 실내온도가 바깥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추위도 따라와 방에서도 입김이 나온다. 필요한 물건들을 침낭 속에 넣고 자지 않으면 다 얼어버린다. 화장품도 얼고, 침대 머리맡에 둔 찻잔의 물도 얼고, 물휴지조차 꽁꽁 얼어버린다. 카메라 건전지와 물휴지를 침낭 속에 넣고 잠자리에 든다. -(본문 54쪽)

그냥 살얼음이 끼는 정도가 아니라 꽁꽁 얼어버린다니 생각만 해도 뼈가 시리다. 언젠가 친구와의 지리산 여행에서 빌린 텐트가 있어 산장이 아닌 텐트에서 잔적이 있었는데 습하고 냉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올라와 도저히 등 붙이고 잘 수가 없어 앉아서 남은 밤을 센 적이 있었지만 물 따위가 얼 정도는 한참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것이 어는 밤이라 해도 두터운 겨울 침낭 속으로만 들어가면 그런대로 만사형통(?)인가 보았다. 그리고 일기가 불순한 날이 아니면 사방이 확 트여 전망이 그만이고 고개 들어 산을 보면 눈 덮인 세계 최고봉 산들이 장엄 그 자체로 침묵하고 있으니 지대로 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산도 산이지만 그 산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의 순박하고 가난한 삶 또한 짠하고도 아름다워 보였다. 산꼭대기 까지 치고 올라간 수십, 수백 줄의 계단식 논과 그 중간 중간 산허리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삶의 무게는 얼마일까. 그 논에서 나는 감자는 또 어떤 맛일까.  

뭣이라? 지리산 종주정도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저자가 걸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등에 이르는 여정은 등산로가 아닌 그냥 산길이라고 하였다. 때문에 '지리산 종주'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나. 뭐, 지리산 종주정도라고? 내게는 제일 만만한 산이 지리산이기 때문에 이 말이 특히나 다정스레 읽혔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팔에는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한의 편리를 보장 받으며, 최상의 풍경을 접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가득'하다고 하였다. 고산병을 주의하며 '천천히' 움직인다면 누구나 도전 가능하다고. 특히 트레킹 중간 중간 두세 시간 거리마다 숙소는 물론 매점이 있다고 한다.

즉, 지대가 높아 공기가 좀 희박하고, 춥고 배고프고 배낭이 무거울 뿐, 길의 상태는 나 같은 사람도 충분히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예 나 같은 사람은 그곳에 발 디딜 수조차 없는 조건 인줄 알았는데 이 책은 복채도 안 받고 천기를 누설해 주었다.

.....

글쎄... 꿈으로 끝날지 현실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우좌 간 이후의 내 삶에 '풍요의 여신(안나푸르나)'에 안길 꿈 하나를 더 추가한다. 꿈이 현실이 되려면 '안나푸르나 적금'부터 하나 들어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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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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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황신혜밴드’라고 해서 동명의 탤런트 이름을 차용하여 조금은 유머러스하게 이름을 지은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황신혜밴드란 ‘황당’하고 ‘신기’하고 ‘혜성’같은 밴드라는 뜻이었다. 아니 그렇게 심오한 뜻이?

그나저나 이 분 참 매력적인 분이다. 이 분은 도대체 안 건드리는 분야가 없는 분인 것 같다. 개인전에 쓸 돈을 모으고자 하루에 한 번 라면만 먹으며 분투하여 서른 전에 벌써 네 번의 개인전을 열었단다. 대단한 열정이다. 뿐인가, 보통사람은 일생에 한 번 하기도 힘든 퍼포먼스, 연극, 공연, 노래, 글 등 두루두루 너끈하게 모두 섭렵했다. 그 열정 나 좀 떼어 주시면 안 되는지.(웃음)

하여간, 이 분은 자신을 일러 ‘무규칙이종격투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를 다방면에 사통팔달한 종합예술가라 부르고 싶다. 종합예술가 만으로도 충분 할 텐데 이분은 거기다 이력 한 자락을 더 얹었다. 카운슬러로.

<너 외롭구나>(예담)는 황신혜밴드를 만들어 ‘다섯 장의 독집 앨범’과 ‘다섯 장의 옴니버스 앨범’을 발표한 가수 김형태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조언으로 엮어진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누리 집에 올린 청춘들의 고민에 정신이 번쩍 드는 답 글들을 달아주었는데 혼자보기 아까운 명쾌한 조언들이라 책으로까지 묶게 된 모양이다. 그런데 그의 조언은 청춘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40대 아줌마인 내가 읽어도 ‘맞아 맞아’ 공감이 갔다. 갔다 뿐인가. 용기까지 덤으로 얻었다. 

 재미없고 후지면 당신 스스로 바꾸세요...

우리는 흔히 뭔가를 하고자 할 때 잘 안되면 나 자신의 됨됨이 보다 환경 탓을 하게 된다. 부모를 못 만나서, 후진 대학이라서, 혹은 못 생겨서 등등의 핑계를 댄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나는, 감히 확언하건대, 젊은이에게 ‘나쁜 환경’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나쁜 환경 때문에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고, 더 생각해야 하고,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력과 생각과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입니다. - 본문112쪽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삼박한 처세술 한 수를 부탁하는 청년에게 그는 말하기를.

처세술이 뛰어난 인간이기보다 교양 있는 인간이 되고자 애쓰고, 남들이 앞서가거나 말거나 싸움을 걸어오거나 말거나 적수들과 싸워 이기기보다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일에 열중하세요.....싸워서 이기기보다 수준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세요. - 본문 114쪽

외로움은 청춘의 쓰디쓴 자양분...

돌이켜보면 나의 청춘은 외로움과의 싸움의 연속이었다. 늘 ‘한숨’이 나오도록 외로웠던 것 같다. 외로워서 책이니, 음악이니, 자연이니 하는 것들에 빠졌었는데 이 책 저자의 글을 읽으니 제대로 된 처방(?)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안 외롭냐고? 물론 외롭다. 외롭기 때문에 지난해와 올해는 연속적으로 ‘영화’를 처방하고 있다.(웃음)

외로움은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입니다. 외로움은 청춘의 쓰디쓴 자양분입니다. 알 껍질 속에서 날개가 혼자 자라듯이. 이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내 작은 방 안에서의 가슴 끓는 청춘의 외로움은 비상하는 날개가 돋으려는 아픔입니다. 그러므로 꿈이 있는 젊은이라면 기꺼이 외로워야 합니다... 

...외로움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은 창조적이며,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사람입니다. 외로움이란 ‘나와 세계의 관계에 대해서 혼자 깊이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은 나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며 세상을 알고자 하는 갈증이며, 나와 타인과 세상을 조화롭게 연계시키고자 하는 열망입니다. - 본문 303쪽

저자의 지적처럼 어쩌면 청춘들에게 주어진 외로움은 청춘들을 보다 더 깊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자양분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외롭다고 쉬이 타협하지 말고 외로움에 과감히 맞서서 더욱 깊어지기를 저자는 권한다. 그 깊어짐의 매개가 예술이면 더욱 좋고. 

저자는 ‘예술을 향수하고, 음미하고, 동경하고, 존중하고, 갈구하는 것이 사회의 기본적인 문화 환경’이 되기를 소망했는데 아무렴... 나이가 들수록 예술이야 말로 우리를 구원할 종교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이 책은 학교의 선생님, 교수님들이 해주지 않는 지당한 말씀을 에누리 없이 섭렵해준다. 때문에 다 읽고 나면 저자에게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 번 시험해 보시라, 진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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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이책에 대한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이책의 외모에 대한 것입니다.^^ 만약 이 노란색 표지의 책이 다 팔린다면  책 표지 디자인을 한번 바꿔보길 정중히 권해 봅니다.

뭔가 시원하지가 않고 갑갑합니다. 디자인 디자도 모르지만 그냥 그렇습니다. 그리고 뒤에 인용된 문구도 그래요. 다른것으로 좀 갈아 주었으면... 우좌간 저는 이책이 너무 좋아요. 젊은이들에게 더없이 필요한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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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12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설님, 잘 읽고 갑니다.

폭설 2007-09-13 09:2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가을이네요. 뭔가 조금씩 쓸쓸해지는 그런 날들이네요.
혜경님 즐거울 가을을~~~
 

<화려한 휴가> 예고편을 보았을 때, 짧은 순간이었지만 뭐랄까 속에서 '울컥' 하는 기분을 느꼈다. 예고편이 저 정도인데 본론으로 들어가면 아예 눈물바다를 이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서 개봉하기를 기다렸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영화 한 편을 기다려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예전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을 기다릴 때도 이렇게 애타는 기분은 아니었다. 단지 임상수 감독의 세련된 표현 방식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달랐다. 시사회를 경험한 기자들의 대다수가 '오랜만에 울었다'는 표현들을 많이 썼던데 정말 그들 기자들의 가슴을 울렸다면 기대해도 좋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하여 어서 개봉되어 5000만을 울려서 '씻김굿'을 크게 한 번 하고 뭔가 우리 모두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손수건도 준비했는데, 눈물이 안 나오네

그렇게 20여일 기다려 그제 남편과 함께 오전 9시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이른 시간인데도 극장 안은 앞줄 세네 줄 빼고 꽉 채워졌다. 누군가의 충고대로 손수건 두 개를 준비해간 나는 울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너무 준비가 완벽했나. 도무지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중간 중간 눈물이 되기 전 단계까진 갔어도 도무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자책을 하였다. 역사의식이 부족해서 눈물이 안 나는 걸까. 택시기사 '인봉'과 날건달 '용대'가 너무 웃겨서 그런 걸까.

진정한 감동은 웃겨도 눈물이 나야 되는 게 아닐까. 눈물 흘리는 데 둘째라면 서러울 나인데 어찌 이리 냉정해지는지…. 피 흘리며 맞아 죽어가는 영화 속 시민들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랬지만 극장안 분위기(?)는 훌쩍훌쩍 대체로 좋았다. 영화 끝나고 물어보니 남편도 괜찮았다고 하였다.


 
 
 
ⓒ 기획시대
 
지리산을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전라도 쪽에서도 경상도 쪽에서도 오를 수 있다. 지리산 등반 지도를 보면 굵직한 코스만 해도 12코스가 넘는다. 칠선계곡코스·중산리코스·대원사코스·뱀사골코스·노고단코스·화엄사코스·백무동코스·피아골코스 등등 참으로 다양하다.

이 뿐인가, 앞에 열거한 것이 '대로'라면 꾼들과 지역민들이 오르는 오솔길들도 무지 많다. 이처럼 길은 여러 갈래지만 그 어느 길을 오르더라고 오르고 오르면 천왕봉에 다다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광주'를 해석하는 데도 여러 길이 있을 것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영화라는 형식으로 이제 겨우 '80년 광주'로 향하는 '하나의 길'을 개척했을 뿐이다. 하나의 길로는 '5·18'을 다 알 수 없다. 12가지 길을 개척해도 오월광주를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80년 5월,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얼마나 억울하게 희생되었는지 그 원한을 풀려면 지리산 오르기보다 훨씬 더 많은 방법으로 재조명·재해석되어야 된다고 본다.

즉, 이번처럼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본 광주뿐만이 아니라, 운동권이 느꼈던 광주, 신부님(성직자)·대학교수·시인·소설가·농부·진압군 병사·진압군 장교, 하다못해 전두환이 생각했을 광주 등등 다각도로 '80년 광주'가 해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2·제3의 <화려한 휴가>가 나오기를...

뿐만 아니라 5·18을 겪었던 사람들의 '그날 이후'의 삶을 영화로 만들어도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키리라 본다.

우려먹고 우려먹고 더 이상 우려먹을 건더기가 없을 때 눈만 감으면 지리산 등산로가 훤하게 그려지듯 80년 광주의 한이 모두의 뇌리에 선명이 기억되고, 5·18로 누릴 것 다 누린 인간들이 얼굴 부끄러워 세상에 못나오고 익명으로 재산 기부하고 사라질 때까지 우려먹었으면….

그리고 제2·제3의 <화려한 휴가>는 등장인물들을 MBC 드라마 <제 5공화국>에서처럼 실명으로 하여 사실감을 더했으면 좋겠다. 전 재산 29만원으로도 굴릴 것 다 굴리고 당당하게 사는 그와 또, 그의 부하들의 얘기는 빼놓지 않고 시나리오에 넣어주었으면 좋겠다.

"'안주가 건방지네'의 인봉이 아저씨! 안주만 건방진 게 아니라 <화려한 휴가> 하나로 5·18을 끝낸다면 고거야 말로 참말로 건방진 게라, 다음 번엔 택시 기사 말고 다른 역할로 5·18 영화에 출연해 주시씨요, 잉?"

마지막으로, <화려한 휴가>는 전 국민이 봐야 할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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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7-31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설님, 눈물이 나지 않는 게 더 정상이지 싶어요.
저도 오늘밤 옆지기랑 보려고 예매해두었어요. 전 눈물이, 어찌 되려나
모르겠네요. 전 사실 이런 영화는 코믹한 부분을 넣지 않으면 좋겠던데
이 영화도 초반은 코믹한 부분이 제법 있나 봐요.. 제2,제3의 '화려한휴가'에
대한 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폭설 2007-08-01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눈물 흘렸는지 우쨌는지 알려주세용?^^

프레이야 2007-08-0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리뷰 올렸어요, 폭설님.^^
 

남들은 아이가 초등들어가면 책상과 공부방은 기본으로 만들어 주던데






저는 집이 좁다는 이유로, 또 1학년이 공부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아무데서나 좀 쓰고 말지 하면서
가방만 사주고 책상은 사주지 않았습니다.

그런것이 2학년이 되어도 , 새삼스럽게 무슨 책상은 그냥 대충 식탁에서 ....

처음 결혼할때는 24평이 넓었는데 한자리에서 얼추 10년을 사니 요샌 집에만 들어오면
갑갑한게 마음같아서는 당장 큰집으로 이사 가고 싶습니다만
둘다 추진력이 없어서 말로만 갈까? 하다가 늘 주저 앉습니다.

괜히 어설푸게 이사갔다가 무서운 아래층 만나서 혼나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새 아파트는 주부에게나 좋지 아이들에게는 잘지은 감옥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이고, 또,
마침 쩐도 부족하고 해서 한번씩 이사가는 꿈을 꾸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년에 한차례 이물건 저쪽으로 저물건 이쪽으로 정도의 자리배치만 좀 바꾸면서
살았는데 어제 저녁엔 아주 즉흥적으로 문간방을 공부방으로 만들어봐? 하다가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문간방은 피아노와 컴퓨터, 책장들이 들어있어 갑갑했는데,

피아노와 컴퓨터를 꺼내기로 했습니다.
피아노는 무거워서 아무나 못 드는줄 알았는데 바퀴가 있어서인지 요령으로 밀어부치니
둘이서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피아노를 거실로 내니 거실에 있는 책장을 둘대가 없어 고민고민 하다가
현관 신발장과 일직선으로 5단 책장 두개를 놓으니 집들어오는 길이 미로처럼 좁아진 느낌입니다.

뭐 하여간 당분간은 이렇게 살아야 될것 같습니다.

날이 밝으면 시장에 가서 벽지 조금사서 분위기 좀 바꿔보고 방바닥에 비닐 장판이나 깔아 줄까 합니다.
모노륨 스타일은 전문가가 시공해야 되기에
그냥 성질급한 제가 하기엔 무늬는 모노륨, 제질은 비닐장판을 까는게 제일 흡족합니다.
그냥 들고와서 펴기만 하면 되니까요. ㅋㅋㅋ..

아무튼 먼지를 너무 마셔 목이 칼칼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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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2007-07-18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는 음악 못 올리나요? 아니면 제 기술 부족인가요? 누구 아는 사람 댓글 좀....
 
열정시대 - 출판인 한기호의 열정 인생
한기호 지음 / 교양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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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을 해도 목숨 바쳐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내 올케언니만 해도 일을 할 때 몸을 사리지 않는다. 누구에게 쫓기는 사람도 아닐진대 100m 달리기하듯 일을 한다. 때문에 올케가 잠시 놀고 있으면 어느새 들었는지 연락들이 온다. '아지매, 요새 논다면서? 우리 집 일 좀 해 주이소. 내 다른 집보다 좀 많이 줄게.'

그러면 난 얼마 더 준다는 말에 혹하지 말고 얼마 덜 주어도 좋으니 쉬엄쉬엄 일할 수 있는데 가서 적당히 분위기 봐 가면서 남들 하는 양만큼만 하라며 귀띔하곤 하였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무아지경이 되는 기라."

난 그런 올케언니를 보면서 시대를 잘못 만나서 그렇지 좋은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분명 성공한 직장여성이 되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곤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주어진 일에 몰입해서 남이 알아줄 정도로 열심히 하는 성실성을 늘 부러워하였다.


출판인 한기호씨의 <열정시대>(교양인)를 읽고 보니 이분 또한 올케 언니처럼 몸바쳐 일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이분은 올케언니와도 차원이 다른 분이었다. 올케언니는 해지면 집에 들어오는데 이분은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사람이 아니라 24시간 회사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군부독재의 어려운 시절 '창작과 비평사'를 물밑에서 이름없이 이끌어 온 사람이 다름 아닌 그였다. '1983년부터 1998까지 만 15년'을 '창비'의 영업담당자로 일했다니 돌이켜보면 그는 우리 출판계의 황금기였던 시기를 현장에 쭉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홍보에 실패하면 많은 독자를 만나기 어려울진대 그는 영업 담당자답게 글이 아닌 '온몸'으로 전국 구석구석의 서점을 돌면서 판매망을 구축했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신실한 행동으로 지방 서점 사장님들의 마음에서 감동을 끌어냈다.

한 예로, 영업차 속초의 어느 서점(동아)에 들렀을 때, 밥 먹으러 간 직원들 대신 사장님이 혼자 계산대를 지키느라 분주한 것이 보였다.

때마침 어느 중년 여성이 20여권의 제목이 적힌 쪽지를 사장님께 보여주었는데 그는 사장님의 손이 달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 18권을 후딱 찾아주었다. 이놈 봐라. 감동한 서점사장님은 횟집으로 가 한턱냄은 물론 형님 아우로 평생 동지가 되었다고. 그는 이런 신뢰 관계를 대도시, 중소도시 전국의 모든 서점들을 돌며 발품을 팔아 형성했다.

찍고 또 찍어도 동나던 베스트셀러들...

<소설 동의보감>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서른, 잔치는 끝났다.> 열거한 제목들은 다 한때 이름을 떨쳤는데 그러고 보니 모두 출판사가 '창비'였다. <소설 동의보감>은 400만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1권만 해도 100만부, <나는 빠리의…>와 <서른, 잔치는…>은 발행 당해에 각각 30만과 39만부를 팔았다고.

요즘은 책을 내서 1~2만권만 팔아도 성공했다 소리 듣는 것 같은데, 그 당시 사람들은 웬 책을 그렇게 읽어댔는지 문득 부끄러워진다. 밤을 새워 찍고 또 찍던 시절도 있었다니, 지금 출판계 현황을 보자면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었다.

평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된 그의 글들을 보면서 참 옳은 말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에는 그렇게 옳은 말밖에 할 수 없는 그의 지난 삶이 들어있었다.

또, 제목 그대로 책을 향한 열정으로 책에다 청춘을 바친 한 사나이의 인생이 애잔하게 녹아있다. 뿐만 아니라, 지지리도 가난했던 고학시절과 군부에 맞서 데모하다 고문당한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영업사원으로 시작해서 15년 동안 브레이크 없이 몸 바친 '창비사랑'이 고스란이 녹아있다.

그의 마눌님은 그런 그를 일러 가장으로서는 모든 면에서 다 0점인데 딱하나 가족들 모두 에게 책을 알게 해준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여담이지만 창비의 간부 한 분이 그의 사주를 물어서 용한(?) 분에게 의뢰했던바. 그 용한 분 왈.

"이분 교수이신가요?"
"아니오."
"그러면 글을 쓰는 문인인가요?"
"아니오."

"그러면?"
"출판사 영업부장입니다."
"거참… 글을 많이 쓰고 글로 성공할 사람인데, 그리고 이런 사람 부하로 데리고 있으면 회사가 번창하니 절대 내보내지 마씨요. 단 자기 사업하면 잘 안 되는 사람이여."

사주 본 사람 말대로 그는 창비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자기사업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차리자 궁해졌다. 그래서 원고료 줄 돈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자기가 글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글을 많이 쓰고 글로 성공'한다는 말에 부합되기에 아마 자기 사업으로도 머잖아 성공할 것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는 뭐 하는 곳?

그는 1998년에 자신의 광주 민주화 운동 보상금이 나왔을 때 그 돈으로 ‘한국 출판 마케팅 연구소’를 설립했다. 설립의 변을 들어보자면.

도산 안창호 선생은 좋은 책 한 권이 학교 하나를 세우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런 뜻으로 나 혼자 학교를 세우는 것은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다면 1만 명이 책 한 권씩을 내면 1만개의 학교가 세워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연구소는 지금껏 부족하나마 모든 출판인들이 좋은 책(학교)을 세우는 데 유용한 정보를 어떻게든 생산해 내려고 애쓰고 있다. -본분 162쪽

그의 출판연구소는 문을 연 지 햇수로 벌써 10년째이고 그동안 단행본만도 40여권 이상을 펴냈다고 한다. 또, 격주간지로 나온다는 소식지 <기획회의>에서는 한국 출판계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방향, 그리고 출판 활성화를 위한 그의 고민들이 녹아있는 것 같은데. 출판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주장들이니 만큼 당국의 도서 문화정책에 그의 해법이 많이 반영되길 기대해 본다.

아무튼, '1만 명'이 책 한 권씩 내서 '1만개의 학교'를 세우는 그날까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잘 꾸려 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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