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예고편을 보았을 때, 짧은 순간이었지만 뭐랄까 속에서 '울컥' 하는 기분을 느꼈다. 예고편이 저 정도인데 본론으로 들어가면 아예 눈물바다를 이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서 개봉하기를 기다렸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영화 한 편을 기다려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예전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을 기다릴 때도 이렇게 애타는 기분은 아니었다. 단지 임상수 감독의 세련된 표현 방식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달랐다. 시사회를 경험한 기자들의 대다수가 '오랜만에 울었다'는 표현들을 많이 썼던데 정말 그들 기자들의 가슴을 울렸다면 기대해도 좋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하여 어서 개봉되어 5000만을 울려서 '씻김굿'을 크게 한 번 하고 뭔가 우리 모두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손수건도 준비했는데, 눈물이 안 나오네

그렇게 20여일 기다려 그제 남편과 함께 오전 9시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이른 시간인데도 극장 안은 앞줄 세네 줄 빼고 꽉 채워졌다. 누군가의 충고대로 손수건 두 개를 준비해간 나는 울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너무 준비가 완벽했나. 도무지 눈물이 나오질 않았다. 중간 중간 눈물이 되기 전 단계까진 갔어도 도무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영화를 보면서도 자책을 하였다. 역사의식이 부족해서 눈물이 안 나는 걸까. 택시기사 '인봉'과 날건달 '용대'가 너무 웃겨서 그런 걸까.

진정한 감동은 웃겨도 눈물이 나야 되는 게 아닐까. 눈물 흘리는 데 둘째라면 서러울 나인데 어찌 이리 냉정해지는지…. 피 흘리며 맞아 죽어가는 영화 속 시민들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랬지만 극장안 분위기(?)는 훌쩍훌쩍 대체로 좋았다. 영화 끝나고 물어보니 남편도 괜찮았다고 하였다.


 
 
 
ⓒ 기획시대
 
지리산을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전라도 쪽에서도 경상도 쪽에서도 오를 수 있다. 지리산 등반 지도를 보면 굵직한 코스만 해도 12코스가 넘는다. 칠선계곡코스·중산리코스·대원사코스·뱀사골코스·노고단코스·화엄사코스·백무동코스·피아골코스 등등 참으로 다양하다.

이 뿐인가, 앞에 열거한 것이 '대로'라면 꾼들과 지역민들이 오르는 오솔길들도 무지 많다. 이처럼 길은 여러 갈래지만 그 어느 길을 오르더라고 오르고 오르면 천왕봉에 다다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광주'를 해석하는 데도 여러 길이 있을 것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영화라는 형식으로 이제 겨우 '80년 광주'로 향하는 '하나의 길'을 개척했을 뿐이다. 하나의 길로는 '5·18'을 다 알 수 없다. 12가지 길을 개척해도 오월광주를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80년 5월,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얼마나 억울하게 희생되었는지 그 원한을 풀려면 지리산 오르기보다 훨씬 더 많은 방법으로 재조명·재해석되어야 된다고 본다.

즉, 이번처럼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본 광주뿐만이 아니라, 운동권이 느꼈던 광주, 신부님(성직자)·대학교수·시인·소설가·농부·진압군 병사·진압군 장교, 하다못해 전두환이 생각했을 광주 등등 다각도로 '80년 광주'가 해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2·제3의 <화려한 휴가>가 나오기를...

뿐만 아니라 5·18을 겪었던 사람들의 '그날 이후'의 삶을 영화로 만들어도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키리라 본다.

우려먹고 우려먹고 더 이상 우려먹을 건더기가 없을 때 눈만 감으면 지리산 등산로가 훤하게 그려지듯 80년 광주의 한이 모두의 뇌리에 선명이 기억되고, 5·18로 누릴 것 다 누린 인간들이 얼굴 부끄러워 세상에 못나오고 익명으로 재산 기부하고 사라질 때까지 우려먹었으면….

그리고 제2·제3의 <화려한 휴가>는 등장인물들을 MBC 드라마 <제 5공화국>에서처럼 실명으로 하여 사실감을 더했으면 좋겠다. 전 재산 29만원으로도 굴릴 것 다 굴리고 당당하게 사는 그와 또, 그의 부하들의 얘기는 빼놓지 않고 시나리오에 넣어주었으면 좋겠다.

"'안주가 건방지네'의 인봉이 아저씨! 안주만 건방진 게 아니라 <화려한 휴가> 하나로 5·18을 끝낸다면 고거야 말로 참말로 건방진 게라, 다음 번엔 택시 기사 말고 다른 역할로 5·18 영화에 출연해 주시씨요, 잉?"

마지막으로, <화려한 휴가>는 전 국민이 봐야 할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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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7-31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설님, 눈물이 나지 않는 게 더 정상이지 싶어요.
저도 오늘밤 옆지기랑 보려고 예매해두었어요. 전 눈물이, 어찌 되려나
모르겠네요. 전 사실 이런 영화는 코믹한 부분을 넣지 않으면 좋겠던데
이 영화도 초반은 코믹한 부분이 제법 있나 봐요.. 제2,제3의 '화려한휴가'에
대한 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폭설 2007-08-01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눈물 흘렸는지 우쨌는지 알려주세용?^^

프레이야 2007-08-0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리뷰 올렸어요, 폭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