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 내려놓기
법륜스님 지음 / 정토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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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즉문즉설 대구강연에서 2000석을 꽉 메운 좌중을 훑어보며 법륜스님은 말했다.

 

"여기 오신 분 중 결혼 안 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앞자리에 앉았던지라 뒤를 돌아 둘러보니 수십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기혼자들에 비해 적은 수였으나 나름 간절한 마음을 갖고 지혜의 한 말씀 듣고자 찾아 왔을 터인데 스님의 답변은 의외로 단 한 줄이었다.

 

"결혼하지 마세요!"

 

이에 좌중의 기혼자들은 순간 일제히 '푸핫~' 뿜었다. 비혼들은 영문을 몰라 했지만 기혼자들은 결혼 그 하나로 모든 갈등과 고민이 파생됨을 알기에 공감했던 것이다. 한차례 웃음이 멎자 스님은 어리둥절한 비혼들에게 한 소절 더 덧붙인 문장으로 말하였다.

 

"결혼 하지 마세요, 단 수행하기 전까지는, 배려하기 전까지는."

 

결혼 10년차가 넘어가니 나름 결혼생활에 대한 비법 아닌 비법을 말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스님 말대로 '배려'에 있는 것 같다. '서로서로' 배려만 한다면 괴로울 일이 별로 없다. 어느 한쪽만 배려해도 안 되고 서로서로 상황 봐가며 오늘은 내가 양보하고 다음엔 상대가 양보하다 보면 싸움의 기술도 생기고 더 나아가면 '니가 다 이기세요'라며 굳이 내 방식을 고집하고 싶어지지도 않게 된다.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싶지만 결혼하고 나면 이제 자식만 낳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지요. 자식을 낳고 나면 이젠 우리아이 좋은 대학 갔으면, 좋은 취직자리 얻었으면, 좋은 며느리 사위 봤으면, 손자 손녀 봤으면… 욕심이 끝이 없지요. 따지고 보면 다 이 욕심 때문에 괴로운 겁니다."

 

그러면 욕심은 어디에서 오나? 욕심은 어디에서 올까? 알고 나면 평범한 이 답을 나는 40여 년 동안 모르고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이 살아가면서 욕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터무니없는 욕심이라면 몰라도 '건전한' 욕심이라면 가져도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거나 그거나 다 욕심은 욕심일 뿐인데.

 

아무튼, 우리를 괴롭게 하는 이 욕심(욕망)은 왜 생기고 어디에서 올까. 스님(원조는부처님^^)은 '무지(無知)'에서 온다고 하였다. 즉, '참 진리'를 모르는 '무지' 때문에 욕심이 생긴다고 하였다. '무지'라굽쇼? 나는 정수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아하, 정말 그렇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처음 듣는 말도 아닐 텐데 유독 내 나이 40대에 맞춤한 듯 꽂히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러지 않고 여전히 이런저런 욕심을 부리며 살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금 이 순간 소소한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 상황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백일의 약속, 백일의 기도

 

그러면, 지금 이 순간,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스님은 거창 할 것 없이 우선 백일동안 기도를 해보자고 한다. '이치를 깨치고, 습관을 거슬러 이겨, 꾸준히 정진'하기 위해 우선 백일 동안 먼저 해 보자고. 그 형식은 하루 세 가지를 하는데, 즉, 다음과 같다.

 

1. 108배와 명상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한 시간의 마음 챙김

2. 고통 받는 이웃을 살리는 천원의 나눔

3. 하루 한 가지 세상을 밝히는 선행

 

108배는 불교 신자가 아니라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무슨 댄스나 에어로빅에 비하면 동작이 어려운 것도 아니니 마음만 먹는다면 운동하는 셈치고 해봐도 손해 볼일은 없을 것이다. 천원의 나눔 역시 하자면 쉽고, 한 가지 선행은 거창 할 것 없이 만약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에게 칭찬 하나, 이름 한번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세 가지를 행하면서 백일을 기도하면 자신의 '꼴을 알게' 된다고 하는데 자신의 꼴이 어떤지 궁금하지 않으신가. 나아가 이렇게 3년을 기도하면? 자신의 '업'을 알게 되고, 사람이 (좋게)변하니 운명을 (능히) 바꾸고,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하니 가다 쉬어도 본전을 넘을 테니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터.

 

법륜 스님은 <기도>(정토출판)라는 신간을 내고 현재 즉문즉설 순회 강연중이시다. 9월 5일 (9시 40분 대전무역전시관에서) 즉문즉설과 더불어 백일기도 '입재식'을 한다니 지금 괴로운 사람은 피서 가는 셈치고 한번 가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어보라. 그 어떤 청량음료보다 시원한 순간을 맞을 것이다.

 

굳이 현장에 가지 않더라도 매일 아침 불교TV에서 9시 30분에 시작하여 15분 정도 하는 스님의 즉문즉설 녹화방송을 꾸준히 보는 것도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되고….(웃음) 이러니 다른 종교를 가지신 분들이 오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개인적으로) 정기적으로 절에 다니는 불교 신자는 아니다. 종교에 대해서라면 리처드도킨스에 혹하는 편.

 

그렇다 해도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 등은 인류의 무지를 밝혀주는 아주 큰 등불이자 스승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저 감탄 할 뿐이다. 2500년, 2000년 전에 어쩜 그리 모두에게 자비롭고 평등하고 사랑이 가득한 설법들을 하셨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들의 말씀을 잘 못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도 어쩜!

 

마지막으로 법륜스님의 한 말씀.

    

"이치를 모르고 길을 가는 것은 길을 모르고 길을 가는 것과 같고, 이치를 알고도 가지 않는 것은 길을 알고도 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위의 말을 4대강과 언론에 비추면 4대강 사업은 이치를 모르고 길을 가는 것과 같고, 언론은 이치를 알고도 길을 가지 않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PD수첩>이 있어 우리는 간신히 숨을 쉴 수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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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는 20대 초반 한번 먹어보고 팽. 우뭇가사리는 30초반 두어술 뜨고 팽했었다.
뭐 이런 것들을 다 맛있다고 먹고 난리야, 사람들은.

그랬는데 마흔넘어 드디어 나도 콩국수와 우뭇가사리를 먹을수 있게 되었다.
아니, 이렇게 맛있는 것을 왜 그동안 거부했을까. 발단은 이랬다.
아이들을 매개로 알게된 이웃의 지인이 ' 콩국수 한번 해'준다기에 나는
그것이 먹기 싫어 우리집에서 내가 먼저 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니가 먼저 내가먼저 하다가 도저히 그녀의 콩국수를 이길수 없어 내가 졌다.
예전의 나였으면 나 그런것 못먹어 하며 다른것 해달라고 했을 터인데
나이를 먹고 보니 '한번 먹어보자 ' 싶었다.

그래서 콩국수를 먹게 되었는데 어머어머! 너무 맛있었다.

"내가 알기론 콩국수는 비릿한 것이었는데 이 고소함의 정체는 뭥미?"
"땅콩이예요. 흰콩에다 검은콩과  땅콩을 조금 넣어서 갈면 아주 고소하고 맛있어요.
그리고 콩은 살짝 삶아서 비린내를 없애고요."
"그게 다 인가요?"
"네. 믹서기에 물 붓고 갈아서 삶은 국수에 부어먹으면 되요. 간은 소금으로 하고.. 고명으로 오이채 썰어 넣고...끝."

그렇게 쉬운 것이라면 일단 나도 한번 해봐. 하여 점심으로 콩국수를 얻어먹은 저녁
당장 만들어 봤던바. 먹을만 했다. 그런데 믹서기에 가는 것이 번거로웠다.
뭐. 새로운 방법이 없을까 하다 다음날 시장에서 두부파는집을 지나다
미숫가루도 아닌것이 그렇다고 볶은 콩가루도아닌것이 있어 혹시나 싶어
'이거 뭐예요?' 물어보니 콩국수 가루라고 하였다.

"정말 콩국수 해먹는 그거예요?"
"네 . 집에 가서 물에 타서 바로 해 먹으면 되니 쉽죠."

하여, 당장 샀고 그날 부로 사흘이 멀다하고 콩국수 가루를 사다가 콩국수를 해먹고 있다.
나아가 가만 생각해 보니 우뭇가사리 국물도 콩국물인것 같아 물어보니
맞았다.

하여 우뭇가사리에도 도전해 보았는데, 세상에, 우뭇가사리도
무척  맛있었다.

나 바보 아냐. 이렇게 맛있는 것들을 마흔넘어서야 겨우 먹어 보다니.
뭐 그래도 뒤늦게 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아무튼, 이 여름 콩국수가 너무 맛있다. 더불어 우뭇가사리도. ㅋㅋ
콩가루를 어떻게 하면 맛있게 만들 수 있는지
그 비법을 배워 내년에는 내손으로 콩쿡수 가루도 만들어 보고 싶다. ^^

(이렇게 쓰고 보니 또 먹고 싶다. 어서 날이 밝고 한낮이 되어, 더위야 물렀거라, 한 뚝배기 말아묵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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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가고 말았네....'로 시작 되는 노래의 제목이 갑자기 떠올라
한소절 해 보려니 그 뒤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7월. 수목장으로 시아버님을 훅 보내드리고 추도의 념으로 근신하며
살아야 마땅하거늘 '불생불멸' 네글자가 그 마음을 희석시켜  그냥 예정대로
놀러갔다. 아이들 데리고 2박 3일  2박 3일 두번 친구집을 전전하고 나니
어느새 7월의 마지막이 되었다.

시부님은 어제부로 서류상으로도 이승의 사람이 아니게 되었는데 아마 다음 세상어느곳에서
별이 되셨으리라.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든 이승의 인연을 끝내고 나면 다음 세계에서는 누구나 부처님과
예수님과 동급이 된다고 본다. 울 아버님도 모든것 내려놓고 영면하시리라 믿는다.^^  

차 사주고  집 사주는 시아버지 보다 며느리들  마음에 짐을 안 주었던 울 시아버지가 제일일세..

.....

시간은 갈수록 더 빨리 흐르는것 같은데 몸은 갈수록 더 게을러지고 나태하기 이를데 없다.
누구는 이 더운 땡볕에 고공 농성을 해야하고  그 아래서 초 한자루 켜는 일도 버거운 나는
환경운동 연합에서 날아오는 문자를 매법 씹고 만다. ㅠㅠ...

7.28 보선. 손 한번 잘 까딱하면 역전할수 있는 것을 우리는 그 기회를 놓쳤다.
한군데도 아닌 여러군데서 놓쳤다.
놓치니, 선량들이 저렇게 이 땡볕에 고생을 하는 구나. ㅠㅠ...

.....

법륜 스님이 새 책을 냈는데 울 동네에서도 드뎌 강연 날짜가 잡혔겄다.
(8월 21일 토 오후 3시 영남대 천마아트센터, 자가용 사절) 스님 말대로 우선 내가
행복해야 남에게도 행복을 전할 것이 아닌가. 내가 행복해야 세상의 행복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닌가. 

 
지난 봄에도 한차례 강연에 갔었는데  '앉아서' 듣는 사람 지루하지 않게
중간중간 유머까지 넣어가면서  장장 3시간 동안 '서서' 말씀을 하셨는데  워매 반하지 않을 도리가 음써~~

약점을 잡아 볼래도 3시간 동안 틀린말이 하나도 음써...
하여, 이번에도 스님의 즉문즉설이 기대된다.
말도 마라. 백문이 불여일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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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31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2 11: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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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2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녹향>이라. 90년대 초였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책을 통해 대구에 오래된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여 당시 소설을 읽고 난 후, 대구에 들르면 꼭 한번 찾아봐야지 마음먹었으나 어쩌다 보니 못 가게 되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세기 말 언저리에 조카랑 작심을 하고 한번 찾아 갔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가 간 그날은 무지 더운 날이었는데 <녹향>은 여느 찻집과 달리 시원하지가 않았다. 후덥지근한데다 음악마저 묵직하고 비장미가 느껴지는 곡을 틀어놓으니 휴식은커녕 심장의 압박을 느꼈다. 하여 후루룩 주스를 급하게 마시고 30분쯤 앉아 있다가 나왔다.

 

'아무리 고색창연해도 자주 찾기는 글쎄...'하며 <녹향>을 잊었다. 그렇게 쭉 잊고 살았는데 지난 5월 중순쯤 신문을 읽다가 잊었던 <녹향>이라는 두 단어를 보게 되었다. 사연인즉, 녹향을 살리기 위하여 음악가들이 녹향에서 연주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엥? <녹향>이 아직 살아있었단 말인가?'

 

잊고 살았는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거늘 그 땅값 비싼 도심 한복판에서 녹향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는 말인가. 심히 놀라웠으며 갑자기 호감이 급상승 했다. 녹향에서는 <아티스트 녹향으로 가다>라는 주제로 6월 한 달과 7월 초순까지 총 18회에 걸쳐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말하자면 일종의 녹향 살리기 '음악 바자회'인 것이다.

 

나는 마음 같아서는 다 가고 싶었지만 거리와 시간을 핑계 대며 일단 피아니스트 강충모씨와 첼리스트 정명화씨의 일정에 예약했다. 그런 다음 강충모씨의 회차 때 나 혼자 가서 분위기를 살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되는지.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아이들이 지루해해서 음악회 분위기를 망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결론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무방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첼리스트 정명화씨와 함께 한  날인 지난 6월 22일 아이들을 데리고 일지 감치 녹향을 찾았다. 정명화씨는 다음날 부산에서 연주회가 있어 부산을 가던 길에 어렵게 시간을 낸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소중한 옛것을 너무도 쉽게 갈아 업고 새 건물을 지어올리곤 하는데 이 녹향은 지금 이대로 낡은 이대로, 그대로 보존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실은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녹향은 대한민국 제1호 고전음악 감상실이라는 것이었다. 1946년 이창수 옹이 처음 문을 열었다는데 올해가 2010년이니 만 6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당시 20대 초반에 녹향을 열었던 이창수 할아버지는 팔순 노익장을 과시하며 여전히 녹향을 지키고 계셨다. 

 

<아티스트 녹향으로 가다>는 이제 4번 밖에 남지 않았다. 7월 2일 신상준(바이올리니스트), 3일 주영위(국악지휘자), 5일 은희천(바이올리니스트), 9일 이승호(플루티스트)씨가 녹향의 밤을 꾸민다(저녁 7시30분~9시 T.621-3301).

 

대구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방문해 보시기를. 역사가 느껴지는, 64년이라는 시간 동안 녹향을 고스란히 지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는 현대의 음향기기가 흉내 낼 수 없는 묘한 향기가 묻어났다. 

 

<녹향>. 음악의 고향 <녹향>. 오래도록 존재했으면 좋겠다.

 


첼리스트 정명화

오늘은 나와 동생과 엄마가 버스를 타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대구 어딘가에 있다는 녹향을 찾아갔다.

 

동성아트홀 앞에서 외사촌 누나를 만나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드디어 들어갔다. 아니.... 출입구가 가로 1미터 될까 말까 정도에 출입구가 시작부터 마음을 더욱더 실망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안에는 너무 좁았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게 만드는 이 지루한 시간도 도통 흘러갈 생각을 안했다. 시간이 흘러 첼리스트 정명화라는 소리와 함께 어디서 많이 본 동네 슈퍼에서 만난 것 같은 낯익은 얼굴의 50대 아줌마가 등장하였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정명화 선생님이었다. 나와 동생 그리고 앞좌석 유치원 애들 빼고 고막이 터지게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나도 책에서 보던 정트리오 중의 한사람이 이런 작은 녹향에서 연주를 하러 왔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직접 듣지 못하고 라디오(시디의 착오)녹음된 것을 계속 들었으나 막판에 어떤 아저씨의 질문으로 직접 첼로를 켜게 되었다. 난 머가 먼질 잘 모르겠다. 그 연주가 끝나고 사인 받고 사진 찍었다.

 

나와 동생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좋아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유명한 사람을 이 내 두 눈으로 보아서 이것이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초등 5년생 큰애의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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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3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4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봉하 마을을 다녀왔다. 세상에 비도 비도 어쩜 그리 많이 내리는지... 아침 7시 출발부터  추도식이 끝날 때 까지 내리고, 내리고, 또 내리고, 줄기차게 내렸다. 미리 우산과 비옷을 준비해 가긴 했지만 그것이 그렇게 요긴하게 소용될줄이야.  

삼 십 줄 비혼 조카와 갓 마흔의 기혼 조카, 여자 셋이서 갔다. 진영역에 내리니 사람들이 북적북적.. 택시 없나 살피니 봉하 행 버스가 준비되었다며 자원봉사자가 안내하기에 버스를 타고 공단 공터에서 내렸다.

하여, 그곳 들머리부터 걸어갔는데 순식간에 빈틈없이  줄이 길게 이어졌다. 마을에 도착하여서는 나눠주는 노란 리본을 달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선물이라는 노란 술떡도 받았다.
추모장 곳곳은 이미 만원이라 들어갈 염두를 못내고 부엉이 바위 아래 추도식 장소로 이동했다. 아무리 비가 내린다 해도 우리야 저 한몸만 챙기면 되었지만 안내하는 노사모 봉사자 분들은 수고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비가 내리긴 했어도 그 비가 걸리적 거린다는 생각은 이상하게도 들지 않았다. 나만이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런 것 같았다. 그저 내리는 비마져도 좋았다. 혹 노무현 대통령이 비가 되어 우리들을 감싸는 것은 아닌지.... 나무들도 그렇게 느끼는 듯 비 맞은 초록의 나뭇잎들은 풋풋하기 이를 데 없었다.

좀 이른 시각(10)에 도착했기에 2시의 추도식 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그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뭐 딱히 한 것도 없었다. 우산 들고 돌아다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것 같아 일찌감치 부터 식장 의자에 앉아서 무작정 기다렸다.


우리만이 아니고 미리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기에 자연스레 따라 앉은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까운 곳에 사니 구석구석 답사하는 일은 다음에 해도 되기에... )아무튼, 그렇게 미리부터 앉아서 고개만 한 바퀴 씩 돌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엉이바위, 사자 바위를 봤다가 초록의 나무들을 봤다가 오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셋이 이야기를 조금하다가....그리고 대부분은 빗소리와  비의 향기와 비의 자태를 감상하며 어찌 보면 무심이고 또 어찌 보면 충만함으로 마냥 앉아 있었다.

.......
이윽고 추도식이 시작되었을 때는 이전 보다 더 빗발이 거세어져 조마조마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찬 빗발에도 불구하고 단상위도 아래도 흐트러짐 없이 추도식을 엄수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가 앉은 뒤가 궁금하여 문득 고개를 돌려 보다 ‘까악!’. 수만 개의 눈동자가 미동도 하지 않고 오직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정적에 울컥 눈물이 났다. 
 

부엉이 바위 아래와 정토원 가는 길의 나무들 사이사이에도 사람들이 빼곡히 서있었는데 나무와 사람이 그렇게 잘 어우러지는 것 또한 처음 보았다. 다시 단상으로 고개를 돌려, 조금 떨리는 사회자의 목소리, 이해찬 총리와 도종환 시인의 추도사와 시. 함께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 아침이슬....

(풋~ ‘나는 합창이 좋은 줄은 모르겠어’ 하며 불과 한 시간쯤 전에 무슨 얘기 끝엔가 조카가 말했었다. 그랬었는데, 비를 맞으며 연습도 없이 즉석에서 어우러진 수 만 사람들과의 공명에 합창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느낀 그녀는 몇 번이고 감탄하였다.^^)

식이 끝나고 묘역으로 가니 님의 묘비엔 이미 수많은 국화 송이가 덥혀 있었다. 박석은 미리 위치를 확인하고 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찾아도 내 박석이 어딘지 모를 것 같았다. 미리 위치 확인을 하고 왔다 해도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자기 박석 찾는다고 헤매다간 민폐 끼치기 십상.^^

수많은 사연이 새 겨진 박석의 글귀를 드문드문 읽으며 묘역을 벗어나 시각을 보니 그럭저럭 3시 반. 그냥 오려니 섭섭하여 국밥 집에 들러 국밥 한 그릇 씩 먹었다. 배도 고프고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심정도 생각하여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후루룩 순식간에 다 먹었다.

기차시간 까지는 여유가 있었으나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자니 역시 우린 빨리 나가주는 게 돕는 일인 것 같아 역으로 향했다. 공단 공터에 오니 임시 버스를 타려는 줄이 또 어마어마해서 일단은 걷기로 했다.

걸어가는 사람들의 줄도 끊임없이 연결되어 길 잃을 염려는 없었다. 애초에는 한 30분 걷다가 택시타고 가자였는데 걷다보니 역까지 걸어오게 되었다. 시간을 따져보니 봉하 마을에서 진영역까지는 두 시간 가량 소요되었다. 한시간정도의 시간이 남아 역 근처 중국집에서 시간도 때울 겸 짬뽕을 먹었다.

짬뽕을 기다리며 티비를 보는데 전교조 선생님들을 대량 해임, 파면한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참말로 가지가지. 소름이 끼쳤다. 그 어디보다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할 직업군인데 시민으로서 칭찬받아 마땅할 일을 했거늘 상은 못 줄망정 해임이라니. 파면이라니. 공무원법에 어긋났다면 경고 조치를 하든가 해야지 무턱대고 칼을 휘두르다니.

이래저래 투표가 중요하겠다.

......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는 호실은 같으나 내리는 곳도 좌석도 제각각 달라 모두 떨어져 앉았다. 집에 오니 저녁 8시 30분. 나의 외출을 허락한 가족에게는 아부의 선물이 필요했기에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과 맥주를 사서 선사를 하고 결정적으로 가방속의 술떡을 꺼냈다.

“ 자, 묵어라. 노무현 대통령의 선물이다. 조카들것 같이 먹고 내 것은 개봉을 안했다. 여러분 줄려고. ㅋ ㅋ”

그러고 보니 비오는 날 우산을 받쳐 들고 하루 종일 밖에 있어보기도 난생 처음이었던 것 같다. 감사한다. 님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싶다. 게으른 중생이라 많은 실천은 하고 살지 못하겠지만 항상 잊지 않고 님의 뜻을 생각할 것이다.^^

(다음날 문득 궁금하여 박석 위치를 확인해 보니, 두 개의 박석 중 하나는 워매~ 무척 찾기 쉬운, 대통령 묘비 바로 아래에 있었다. 조카의 문자 왈 ‘와~ 박석 완전 대박이데’ 뭐 어딘들 대박 아니랴. 박석의 기회 또한 감사하고 박석 값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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