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향>이라. 90년대 초였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책을 통해 대구에 오래된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여 당시 소설을 읽고 난 후, 대구에 들르면 꼭 한번 찾아봐야지 마음먹었으나 어쩌다 보니 못 가게 되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세기 말 언저리에 조카랑 작심을 하고 한번 찾아 갔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가 간 그날은 무지 더운 날이었는데 <녹향>은 여느 찻집과 달리 시원하지가 않았다. 후덥지근한데다 음악마저 묵직하고 비장미가 느껴지는 곡을 틀어놓으니 휴식은커녕 심장의 압박을 느꼈다. 하여 후루룩 주스를 급하게 마시고 30분쯤 앉아 있다가 나왔다.

 

'아무리 고색창연해도 자주 찾기는 글쎄...'하며 <녹향>을 잊었다. 그렇게 쭉 잊고 살았는데 지난 5월 중순쯤 신문을 읽다가 잊었던 <녹향>이라는 두 단어를 보게 되었다. 사연인즉, 녹향을 살리기 위하여 음악가들이 녹향에서 연주회를 한다는 것이었다.

 

'엥? <녹향>이 아직 살아있었단 말인가?'

 

잊고 살았는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거늘 그 땅값 비싼 도심 한복판에서 녹향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는 말인가. 심히 놀라웠으며 갑자기 호감이 급상승 했다. 녹향에서는 <아티스트 녹향으로 가다>라는 주제로 6월 한 달과 7월 초순까지 총 18회에 걸쳐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말하자면 일종의 녹향 살리기 '음악 바자회'인 것이다.

 

나는 마음 같아서는 다 가고 싶었지만 거리와 시간을 핑계 대며 일단 피아니스트 강충모씨와 첼리스트 정명화씨의 일정에 예약했다. 그런 다음 강충모씨의 회차 때 나 혼자 가서 분위기를 살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되는지.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아이들이 지루해해서 음악회 분위기를 망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결론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무방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첼리스트 정명화씨와 함께 한  날인 지난 6월 22일 아이들을 데리고 일지 감치 녹향을 찾았다. 정명화씨는 다음날 부산에서 연주회가 있어 부산을 가던 길에 어렵게 시간을 낸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소중한 옛것을 너무도 쉽게 갈아 업고 새 건물을 지어올리곤 하는데 이 녹향은 지금 이대로 낡은 이대로, 그대로 보존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실은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녹향은 대한민국 제1호 고전음악 감상실이라는 것이었다. 1946년 이창수 옹이 처음 문을 열었다는데 올해가 2010년이니 만 6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당시 20대 초반에 녹향을 열었던 이창수 할아버지는 팔순 노익장을 과시하며 여전히 녹향을 지키고 계셨다. 

 

<아티스트 녹향으로 가다>는 이제 4번 밖에 남지 않았다. 7월 2일 신상준(바이올리니스트), 3일 주영위(국악지휘자), 5일 은희천(바이올리니스트), 9일 이승호(플루티스트)씨가 녹향의 밤을 꾸민다(저녁 7시30분~9시 T.621-3301).

 

대구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방문해 보시기를. 역사가 느껴지는, 64년이라는 시간 동안 녹향을 고스란히 지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는 현대의 음향기기가 흉내 낼 수 없는 묘한 향기가 묻어났다. 

 

<녹향>. 음악의 고향 <녹향>. 오래도록 존재했으면 좋겠다.

 


첼리스트 정명화

오늘은 나와 동생과 엄마가 버스를 타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대구 어딘가에 있다는 녹향을 찾아갔다.

 

동성아트홀 앞에서 외사촌 누나를 만나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드디어 들어갔다. 아니.... 출입구가 가로 1미터 될까 말까 정도에 출입구가 시작부터 마음을 더욱더 실망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안에는 너무 좁았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게 만드는 이 지루한 시간도 도통 흘러갈 생각을 안했다. 시간이 흘러 첼리스트 정명화라는 소리와 함께 어디서 많이 본 동네 슈퍼에서 만난 것 같은 낯익은 얼굴의 50대 아줌마가 등장하였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정명화 선생님이었다. 나와 동생 그리고 앞좌석 유치원 애들 빼고 고막이 터지게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나도 책에서 보던 정트리오 중의 한사람이 이런 작은 녹향에서 연주를 하러 왔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직접 듣지 못하고 라디오(시디의 착오)녹음된 것을 계속 들었으나 막판에 어떤 아저씨의 질문으로 직접 첼로를 켜게 되었다. 난 머가 먼질 잘 모르겠다. 그 연주가 끝나고 사인 받고 사진 찍었다.

 

나와 동생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좋아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유명한 사람을 이 내 두 눈으로 보아서 이것이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초등 5년생 큰애의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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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3 15: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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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4 15: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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