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 마을을 다녀왔다. 세상에 비도 비도 어쩜 그리 많이 내리는지... 아침 7시 출발부터  추도식이 끝날 때 까지 내리고, 내리고, 또 내리고, 줄기차게 내렸다. 미리 우산과 비옷을 준비해 가긴 했지만 그것이 그렇게 요긴하게 소용될줄이야.  

삼 십 줄 비혼 조카와 갓 마흔의 기혼 조카, 여자 셋이서 갔다. 진영역에 내리니 사람들이 북적북적.. 택시 없나 살피니 봉하 행 버스가 준비되었다며 자원봉사자가 안내하기에 버스를 타고 공단 공터에서 내렸다.

하여, 그곳 들머리부터 걸어갔는데 순식간에 빈틈없이  줄이 길게 이어졌다. 마을에 도착하여서는 나눠주는 노란 리본을 달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선물이라는 노란 술떡도 받았다.
추모장 곳곳은 이미 만원이라 들어갈 염두를 못내고 부엉이 바위 아래 추도식 장소로 이동했다. 아무리 비가 내린다 해도 우리야 저 한몸만 챙기면 되었지만 안내하는 노사모 봉사자 분들은 수고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비가 내리긴 했어도 그 비가 걸리적 거린다는 생각은 이상하게도 들지 않았다. 나만이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런 것 같았다. 그저 내리는 비마져도 좋았다. 혹 노무현 대통령이 비가 되어 우리들을 감싸는 것은 아닌지.... 나무들도 그렇게 느끼는 듯 비 맞은 초록의 나뭇잎들은 풋풋하기 이를 데 없었다.

좀 이른 시각(10)에 도착했기에 2시의 추도식 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그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뭐 딱히 한 것도 없었다. 우산 들고 돌아다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 것 같아 일찌감치 부터 식장 의자에 앉아서 무작정 기다렸다.


우리만이 아니고 미리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기에 자연스레 따라 앉은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까운 곳에 사니 구석구석 답사하는 일은 다음에 해도 되기에... )아무튼, 그렇게 미리부터 앉아서 고개만 한 바퀴 씩 돌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엉이바위, 사자 바위를 봤다가 초록의 나무들을 봤다가 오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셋이 이야기를 조금하다가....그리고 대부분은 빗소리와  비의 향기와 비의 자태를 감상하며 어찌 보면 무심이고 또 어찌 보면 충만함으로 마냥 앉아 있었다.

.......
이윽고 추도식이 시작되었을 때는 이전 보다 더 빗발이 거세어져 조마조마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찬 빗발에도 불구하고 단상위도 아래도 흐트러짐 없이 추도식을 엄수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가 앉은 뒤가 궁금하여 문득 고개를 돌려 보다 ‘까악!’. 수만 개의 눈동자가 미동도 하지 않고 오직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정적에 울컥 눈물이 났다. 
 

부엉이 바위 아래와 정토원 가는 길의 나무들 사이사이에도 사람들이 빼곡히 서있었는데 나무와 사람이 그렇게 잘 어우러지는 것 또한 처음 보았다. 다시 단상으로 고개를 돌려, 조금 떨리는 사회자의 목소리, 이해찬 총리와 도종환 시인의 추도사와 시. 함께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 아침이슬....

(풋~ ‘나는 합창이 좋은 줄은 모르겠어’ 하며 불과 한 시간쯤 전에 무슨 얘기 끝엔가 조카가 말했었다. 그랬었는데, 비를 맞으며 연습도 없이 즉석에서 어우러진 수 만 사람들과의 공명에 합창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느낀 그녀는 몇 번이고 감탄하였다.^^)

식이 끝나고 묘역으로 가니 님의 묘비엔 이미 수많은 국화 송이가 덥혀 있었다. 박석은 미리 위치를 확인하고 가지 않으면 하루 종일 찾아도 내 박석이 어딘지 모를 것 같았다. 미리 위치 확인을 하고 왔다 해도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자기 박석 찾는다고 헤매다간 민폐 끼치기 십상.^^

수많은 사연이 새 겨진 박석의 글귀를 드문드문 읽으며 묘역을 벗어나 시각을 보니 그럭저럭 3시 반. 그냥 오려니 섭섭하여 국밥 집에 들러 국밥 한 그릇 씩 먹었다. 배도 고프고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심정도 생각하여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후루룩 순식간에 다 먹었다.

기차시간 까지는 여유가 있었으나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을 보자니 역시 우린 빨리 나가주는 게 돕는 일인 것 같아 역으로 향했다. 공단 공터에 오니 임시 버스를 타려는 줄이 또 어마어마해서 일단은 걷기로 했다.

걸어가는 사람들의 줄도 끊임없이 연결되어 길 잃을 염려는 없었다. 애초에는 한 30분 걷다가 택시타고 가자였는데 걷다보니 역까지 걸어오게 되었다. 시간을 따져보니 봉하 마을에서 진영역까지는 두 시간 가량 소요되었다. 한시간정도의 시간이 남아 역 근처 중국집에서 시간도 때울 겸 짬뽕을 먹었다.

짬뽕을 기다리며 티비를 보는데 전교조 선생님들을 대량 해임, 파면한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참말로 가지가지. 소름이 끼쳤다. 그 어디보다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할 직업군인데 시민으로서 칭찬받아 마땅할 일을 했거늘 상은 못 줄망정 해임이라니. 파면이라니. 공무원법에 어긋났다면 경고 조치를 하든가 해야지 무턱대고 칼을 휘두르다니.

이래저래 투표가 중요하겠다.

......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는 호실은 같으나 내리는 곳도 좌석도 제각각 달라 모두 떨어져 앉았다. 집에 오니 저녁 8시 30분. 나의 외출을 허락한 가족에게는 아부의 선물이 필요했기에 슈퍼에 들러 아이스크림과 맥주를 사서 선사를 하고 결정적으로 가방속의 술떡을 꺼냈다.

“ 자, 묵어라. 노무현 대통령의 선물이다. 조카들것 같이 먹고 내 것은 개봉을 안했다. 여러분 줄려고. ㅋ ㅋ”

그러고 보니 비오는 날 우산을 받쳐 들고 하루 종일 밖에 있어보기도 난생 처음이었던 것 같다. 감사한다. 님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싶다. 게으른 중생이라 많은 실천은 하고 살지 못하겠지만 항상 잊지 않고 님의 뜻을 생각할 것이다.^^

(다음날 문득 궁금하여 박석 위치를 확인해 보니, 두 개의 박석 중 하나는 워매~ 무척 찾기 쉬운, 대통령 묘비 바로 아래에 있었다. 조카의 문자 왈 ‘와~ 박석 완전 대박이데’ 뭐 어딘들 대박 아니랴. 박석의 기회 또한 감사하고 박석 값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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