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와 함께하는 생활
서정남.경윤정.박천호 지음 / 부민문화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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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화초에 미치다

'화초 아저씨와 일전을 치르다'라는 기사를 쓸 때부터 본격적으로 나는 화초에 미쳐가기 시작했다. 그때는 '미쳐야 미친다'는 단 두 마디의 세련된 문장은 몰랐으나, 자고로 무언가 좀 알려면 필요 이상 집착 혹은 천착을 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 할 수 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내 인생에 '화초'에 미치는 날이 있을 줄은 몰랐다. 젊은 날로 쭉 거슬러 올라가자면 깊이 미치지는 못했으나 어쨌든 나는 늘 다방면에 미쳐 있었다. 책에 미치고, 음악에 미치고, 자연에 미치고, 술에 미치고, 그림에 미치고, 음악 중에서도 가곡에 더 미치고 등등 내 인생은 작으나마 늘 미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내가 삼십 중반에 뜬금없이 꽃에 미친 것은 순전히 일전을 치른 이름모를 화초아저씨의 덕택이 가장 크다. 그 아저씨가 고객인 내게 근거 없는 성질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나는 그저 해마다 봄이 되면 그때그때 끌리는 화초 몇 개 사서 봄이 감과 동시에 '직이고' 마는 그런 무심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죄 없는 내게 성질을 부린 것이 너무 미안하였던 화초아저씨는 내가 갈 때마다 화초를 싸게 주고, 또 덤으로 주었기 때문에 나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화초를 다량으로 보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싸게 주고 덤으로 주는 화초 아저씨가 고마워서라도 화초를 죽이지 말고 잘 키워야지 하는 맹세를 하였다.

그 맹세의 와중에 '어떻게 하면 화초를 잘 기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던져졌다. 그 물음의 해답으로, 기특하게도 일단은 책을 사보자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서 '원예'를 검색했고 쉽게 화초를 기를 수 있다는 갖가지 책들을 보았고, 내 머리는 '띠잉' 전기를 받았다.

이런 신통방통한 책이 있는 것을 모르고, 화초 가지 수는 얼마 안 되었지만 내 마음대로 기르다 늘 화초 기르기를 실패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웠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 화초를 기르는데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화초를 잘 기르게 해준다는 하나의 책을 골랐는데 그것이 바로 제목은 좀 촌스러운 듯하나 내용은 그만인 <원예와 함께하는 생활>(부민문화사)이었다.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는...

<원예와 함께 하는 생활>은 여타의 다른 책들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흔히들 소설의 경우 한 번 읽고나면 두 번 읽기 어렵고, 다 읽는 그 순간 책장에 꽂히면 그 길로 무덤에 드는 것이라 하였는데. 실로 내 경험도 그러하였다. 마음은 다시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쉬이 다시 손길이 가지 않았다.

그에 비해, <원예와 함께 하는 생활>은 달랐다. 내가 원하는 실용적인 내용이니 만큼 머리에 쏙쏙 들어오기는 했으나 '저장'이 잘 안 되었기에 보고 또 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꽃 이름의 경우 그림과 대조해가며 볼 때는 머리에 쏙쏙 새겨지는데 책을 덮으면 꽃과 이름이 도무지 연결되지 않았다.

읽고 난 후, 내용이나 꽃 이름을 금세 잊어버리는 것은 역으로 매번 다시 읽어도 처음 읽는 듯한 '기이한' 재미를 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반복 또 반복하면서 우선, 내 집 안에 있는 화초 이름을 다 익히고 나니 내 집에 없는 꽃집 화초들의 이름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해서 때론 꽃구경을 하는 양 꽃집에서 서성거리며 내가 목표로 한 화초 몇 개를 눈도장 찍은 다음 집에 와서 그 이름을 확인하곤 하였다. 그렇게 화초의 이름들을 내 머릿속에 하나둘 저장을 하니 그 다음에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새로운 왠지 끌리는 화초의 경우 단 한번 보아도 바로 입력이 되었다.

그리고 꽃 이름을 일단 접수하고 나자, '꽃의 특성'이나 '기르기'에 관심이 갔다. 바이올렛과 산세베리아는 잎을 잘라 흙에 심어 3~4개월 정도 지나면 새잎이 돋아난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당장 실험에 들어갔고, 과연 서너 달 지나니 새잎이 나왔다.

그리고 로즈마리, 라벤다, 타임, 레몬밤 등 허브식물들은 줄기를 뚝 잘라 흙에 꽃아 두면 줄기에서 뿌리가 내린다고 하였던 바. 역시 실험에 들어갔고 그것들은 바이올렛과 산세베리아처럼 나의 인내를 요하지 않고 쉬이 뿌리내림을 보여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뭉뚱그려 서양란이라고만 부르던, 개업집이나 견본주택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아름다운 서양란들은 팔레놉시스(호접란) 아니면 심비디움, 덴파레, 커틀레야 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책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허브 식물들이 줄기를 뚝 잘라 흙에 꽂아 두면 뿌리가 내린다는 것에 힌트를 얻어 벤자민 고무나무와 율마 그리고 쉐플레라 등의 가지를 잘라서 흙에 심어 보았다. 과연 어떻게 될까 초조하게 기다리는 심정은 전대미문의 실험을 하는 어느 과학자의 기분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내 실험은 성공이었다. 심어본 결과 죽지 않고 꼿꼿이 살았으며 시간이 지나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닌가. 물론 실패한 경우도 있었다. 영산홍의 경우 가지를 잘라 흙에 심으니 얼마 안가서 말라 버렸다. 때문에 궁금하다. 영산홍은 어떻게 해서 번식하는지.

아무튼 이 책에는 '원예'에 대한 알파와 오메가가 다 들어있다. 일단 기초가 튼튼해야 고등수학을 잘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을 통달(?)하고 나면 원예에 자신감이 생기고 보다 심도 있는 원예생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꽃 이름? 꽃집에 있는 이름은 물론 거리의 가로를 장식하는 꽃 이름 또한 내 손안에 있소이다.

만약 화초에 벌레가 생기면? 분갈이는? 과일, 채소 기르기는? 꽃꽂이는 어떻게? 까다롭다는 난은 또 어떻게? 이 한 권에 이 모든 답이 들어 있다. 때문에 이 책을 여러 번 숙독하고 나면 훌륭한 이의 전기를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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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
김성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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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젠가 북한의 김정일 지도자가 러시아를 가면서 비행기가 아닌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일주일만엔가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언제 시베리아 횡단 열차 한 번 타보나 하면서 넋두리를 하였다. 그러나, 그 꿈은 쉬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때문에 이 몸이 직접은 못 가더라도 눈으로나마 가보자 싶어 이따금씩 TV같은 데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지나가는 주변 동네가 나오면 흥미 있게 보곤 하였다.

 
▲ <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
ⓒ2005 생각의나무
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서도 시베리아니, 바이칼 호수니, 몽골의 푸른 초원 등의 글자를 읽으면 가슴이 마구 뛰곤 했는데 김성호 전 의원의 <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생각의 나무) 또한 내 심장을 마구 뛰게 한 여행기였다.

지난해 봄, 김성호 전 의원은 의원 생활 하루를 남겨두고 대구 모 대학에 초청되어 강연을 하였는데 마침 그 강연을 고대하며 기다리다 들은 지인이 있어 나는 물었다. ‘싸나이 김성호’의원이 무슨 말을 하였지? 그랬더니 지인은 ‘통일’에 관한 얘기를 하더라며 심드렁하게 말하였다.

뭐, 통일? 당시 지인은 통일이 반드시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공감을 하나 가볍고 재미나면서 젊은이의 의욕을 고취시켜주는 어떤 강연을 기대했던지라 ‘통일’ 얘기는 솔직히 재미없었다고 하였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나 또한 지인의 말에 덩달아 춤을 추며 ‘좀 재미난 얘기나 해주지’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을 읽고나자 그가 통일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통일에 대한 얘기를 따분하다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김성호 전 의원은 의원일 당시 통일의 꿈을 안고 보름 동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한 것을 책으로 엮었다.

"통일의 꿈을 안고 모스크바에서 부산까지’라는 기치 아래 유라시안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 시베리아를 지나 몽골과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그리고 민족 분단의 비극 삼팔선을 넘어 부산까지 가고자 했다. 그러나 우리의 여행은 중국 횡단열차의 끝 단둥에서 멈추어야 했다. 가고자 했으나 역사는 아직 우리의 발걸음을 허용하지 않았다. 허나 이것이 끝은 아니다. 오늘 우리는 가지 못했으나 머지않은 내일 다시 갈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내일을 위해 오늘 우리의 좌절은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김성호 전 의원이 이 여행기를 쓸 때만 해도 모스크바에서 부산까지 열차를 타고 달리는 것은 꿈이었으나 이제는 ‘현실’이 되었다. 때문에 당시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얘기한 저자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새록새록 의미 있게 읽혀졌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단순히 동서양을 잇는 철길만이 아니다. 철길을 따라 우리 민족의 한과 발자취가 어려 있는 곳이다. 특히 구한말 조국의 운명이 암흑기에 접어들 때 굶주림을 피해 대륙으로 진출했던 한민족의 민중들과,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위해 이국땅을 떠돌던 독립 운동가들의 발자취가 묻어있다. 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따라 우리 민족의 피와 눈물, 그리고 희망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흔적을 찾고 싶었다.’

왜 아니랴!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을 읽으면 낯선 구 소련 땅으로 한겨울 창문도 없는 열차에 태워져 몇 날 며칠을 달리다가 생존이 불가능한 황무지에 짐짝처럼 버려지는 조선인들의 눈물겨운 삶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그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땅을 일구며 삶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고, 독립운동을 하였다.

김성호 전 의원은 내가 <아리랑>을 통해서 활자로만 읽었던 그곳들을 두 발로 딛고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사라져간 이름 없는, 혹은, 이름은 있었으되 오늘날 우리들에게서 잊혀진 독립 운동가의 한과 고통을’ 그 특유의 설득력 있고 박력 있는 문체로 이야기 해 준다.

‘만주와 러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가 백추 김규면 장군’과 김규면 장군과 함께 ‘최초의 한인 사회당 활동을 하던 여성혁명가 김 알렉산드리아’ 여사는 우리가 새로이 기억해야 될 이름들이었다.

조선의 한과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만 길게 하여서 역사의식 없는 오늘날 우리들의 죄의식을 낱낱이 드러나게만 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 책에는 조선인의 한과 좌절만 있는 게 아니라 러시아 문학과 역사 그리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의 속삭임 등 광활한 시베리아의 영상이 파노라마가 되어 펼쳐진다. 그는 ‘여행의 숨은 재미 하나는 역사와의 만남이고, 여행의 숨은 재미 둘은 문학과의 밀애’라고 하였다.

<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에는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닥터 지바고>의 험난한 인생과 사랑의 이야기나 푸쉬킨, 고리끼, 솔제니친, 토스토에프스키 등의 삶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도 쉽고도 풍부하게 서술하여 준다.

또, 이 책에는 재미있거나 혹은 슬픈 역사적 일화들이 너무 많아 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줄까하여 줄을 쳐 가며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보니 줄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어디 줄만 쳤다 뿐인가. 특히 중요하거나 감동적인 데는 별표까지 해 가며 읽었는데 그 자체로도 또 다른 재미였다.

너무 슬퍼서 별표를 치게 된 하나의 얘기는 ‘바실리 성당’에 대한 것이다. 이반 4세는 서로 다른 아홉 개의 아름다운 지붕들로 이뤄진 아름다운 바실리 성당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건축가 포스토닉 바르마를 불러 혹시 성당을 다시 지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바르마는 손수 지은 건물이므로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하자 그가 영영 똑같은 성당을 다시 짓지 못하도록 잔인하게 두 눈을 뽑아 버렸다’고 하였다.

아무튼 이 책에는 읽을거리 볼거리가 많은데 마지막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오다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자기 도취(?)에 푹 빠진 김성호 전 의원의 사진을 감상하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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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정문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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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남과 헤어짐, 그 일상적인 행위가 전선을 뛰는 내겐 늘 고역이었다. 정에 약한 나는 '만남이 곧 이별'이라는 이 바닥 생리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냉정함을 배워야 했고, 사람보다는 일을 먼저 생각하는 기계적 습성을 익혀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전선의 '냉랭함'이 내가 살고 남을 살릴 수 있는 길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거친 전선에 익숙해져 갈수록 대신 수많은 도시 친구들이 떠나갔다. 내 몸에 흐르는 찬 기운을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이해를 구할 수도 없었던 나는 떠나는 도시 친구들을 붙들지 못했다. 그로부터 나는, 만남을 곧 이별로 여길 줄 아는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도시에서 외톨이가 되고 만 나는 말없이도 나를 이해해주는 친구들이 있는 전선으로 달려갔고, 그 전선에서 외로움을 달랬다. 177쪽


지난해 책이 나올 때 진즉에 사 두었던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한겨레 신문사)을 만 한 해를 묵혀 뒤늦게 읽게 되었다.

지난 <한겨레 21> 제 579호에 실린 '아시아 네트워크' 이상하게도 너무나 짠한 나머지, 정문태 기자가 그동안 '아시아 네트워크'를 늘 이런 '울림'으로 썼는데 나는 그것을 제대로 읽지 못했었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즉, <한겨레 21> 579호의 '아시아 네트워크'에는 인도네시아로부터 분리 독립을 위해 싸우는 수마트라 북쪽의 작은 지역 '아체'의 게릴라 총 사령관 무자키르 어머니의 인터뷰가 실렸었다. 정문태 기자가 쓴 무자키르 어머니의 인터뷰 기사는 읽는 내내 나로 하여금 눈물을 글썽이게 했고, 묵혀 둔 정 기자의 책을 비로소 들게 해 주었다.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은 서*남아시아 곳곳해서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전쟁의 기록이자 평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우선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값진 책이다. 그리고 미국과 그 우방들이 보도하는 전쟁의 실상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며칠 전 '히스토리 채널'에서 '9.11 그 후'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정문태 기자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 다큐멘터리가 액면 그대로의 진실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정문태 기자의 책을 읽고나서 보았기 때문에 그 다큐멘터리가 철저히 미국의 입장과 생명만을 대변함에 보는 내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정문태 기자의 전쟁기록은 내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엉터리 사실들에 일대 수정을 가해 주었다. 그 하나의 예로, 영화 <킬링필드>로 잘 알려진 캄보디아 양민학살은 '폴 포트 정권'만이 행한 것이 아니었다.

'감동적인(?)' 영화 <킬링필드>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는 캄보디아 양민 학살은, '1975~1979년 폴 포트 정권이 '크메르 루주'를 외치며 죄 없는 캄보디아 양민 200만 명을 학살 했다'이다. 고로, '폴 포트는 세계 최 악질 살인자이다'가 우리 기억속의 결론이다.

그런데 진실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 책에 의하면, 캄보디아에서의 양민 대 학살은 '두 번' 있었다.

즉, 첫 번째는 1969~1973년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주범은 미국이다. 미국은 이 기간 동안 캄보디아 전역을 폭격해서 60~80만의 캄보디아 양민을 학살했다고 하였다.

두 번째는, 1975~1979년 있었던 것으로 주범은 폴 포트 정권이다. 캄보디아를 연구한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때 약 80~100만 명이 학살 된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캄보디아 양민학살은 10년 동안 각각 미국과 폴 포트 정권에 의해 두 번에 걸쳐서 150~160만 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알면 알수록 더 나쁜 미국

오래전 이 땅의 대학생들이 미 문화원을 점거하는 등 미국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이야기해도 무지한 당시의 나에겐 그것이 너무 추상적이었다. 세월이 흘러 미국이 우리의 오랜 우방이란 미망에서 뒤늦게 깨어나고 보니 미국은 어째 알면 알수록 더 '나쁜 놈'들이었다.

위에도 언급한 며칠 전 히스토리 채널에서 보았던 '9.11 그 후'라는 다큐멘터리에서 헨리 키신저는 전쟁의 산 증인으로 도도하게 테러니 전쟁이니 하는 것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그는 첫 번째 킬링 필드, 즉, 미국에 의한 캄보디아 양민학살 당시 안보고문으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아직껏 뻔뻔하게 행세하고 사는 것처럼 학살의 주범인 헨리 키신저 또한 '세계적 석학'이니 '국제전략 전문가'로 추앙받고 있는데 정문태 기자 아니었으면 헨리 키신저의 진실을 상당한 기간 모를 뻔했다.

나는 지난 십 수 년 동안 크고 작은 40여개 전쟁판을 돌아다녔지만,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누구에게도 내가 겪은 전쟁 이야기를 풀어놓은 적이 없었다...무용담이 필연적으로 지니게 되는 그 '과장'이 싫었고, 그 '거짓말'이 싫었다. '총알이 머리 위를 날고' 같은 과장류도 '포화 속으로 떨어지는 낙조'운운하는 감상류도 나는 모조리 쓸데없이 전쟁을 '환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삿된 짓이라 여겼다. 114~115쪽

아무튼 이 책은 전선의 실상을 왜곡 없이, 가감 없이 기록한 책이다. 미국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한 많은 전쟁과 학살, 군부독재와의 힘겨운 투쟁을 하는 나라, 그리고 분리 독립을 원하는 소수 민족들의 투쟁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무엇보다 진실만을 얘기하고자 하는 정문태 기자의 입 무거운, 발로 뛴 전쟁기록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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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3-0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려고 했는데, 기회가 닿지 않은 책입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비연 2006-03-06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고 갑니다^^

폭설 2006-03-08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비연님.........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멋진 봄날을 맞이하셔요.

비로그인 2006-09-12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읽었는데 이번에 동남아 갈때 미얀마를 갈까 말까 고민중입니다. 김재명의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도 재미있죠. 정문태,김재명,강인선 나름대로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요.
 
유식의 즐거움 4 - 지식의 갤러리
윤현주 지음 / 휘닉스드림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언제부터인가 ‘바비인형’ 한채영이라든가, ‘살인미소’ 김재원 따위의 표현을 읽으면 가슴이 갑갑했다. 누군가 처음에 그들의 출현을 두고 ‘바비인형’과 ‘살인미소’를 떠올린 것은 아주 신선한 표현이었지만, 세월이 흐를 만큼 흘렀는데 여전히 그들을 칭할 때마다 그 표현이 따라다니는 상투성은 감동은커녕 지겨웠다.

사정이 좀 다르긴 하나, 유명화가들의 작품을 얘기할 때 ‘레오나르도 다빈치’하면 ‘모나리자’를, ‘피카소’하면 ‘아비뇽의 처녀들’, ‘모네’하면 ‘해돋이 인상’ 등이 상투적으로 인용되는 것 또한 별로 반갑지 않았다.

아무튼,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얘길 할 때마다 상투적으로 ‘모나리자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만 하지 말고. 때로는, ‘정교한 인체 해부도로도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따위로 변화를 좀 주면 어떨까.

사실 나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의 다빈치보다 시체 해부가 금지된 당시, 사람의 시체를 해부해 보고 사실적으로 인체 해부도를 그린 다빈치가 더 멋있었다. 그리고 ‘인체 내에 혈액이 흐른다는 사실을 유럽에서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다빈치라니 너무너무 신기하고 신선했다.

유명 서양화가 60명의 삶과 사랑 그리고 작품들

<유식의 즐거움 4-지식의 갤러리>(휘닉스)는 미술사적으로 이름을 날린 서양화가 60명의 삶과 사랑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을 간결하면서도 한눈에 쏙 들어오게 엮은 책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이나 세계사 시간에 별 성의 없이 지나쳤던 그림들이었는데. 지금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익히며 보고 읽으니, 예전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어떤 희열이 내 마음 속에서 피어 올랐다.

지금 삼십대 중후반인 사람들은 다들 알 것이다. ‘완전 정복’이라는 참고서 이름을. 내 경우는 중학교 때 ‘완전 정복’을 만났다. 세계사를 배우면서 나폴레옹을 알았고 나폴레옹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이 ‘불가능은 없다’와 ‘완전정복’ 참고서다.

당시 ‘완전정복’이라는 참고서엔 말을 타고 뛰는 나폴레옹의 초상이 있었다. 불가능이 없는 나폴레옹과 완전정복은 환상의 콤비였다. 그런데 나는 당시고 지금이고 그 ‘완전정복’에 있던 나폴레옹 그림이 서양 유명화가의 그림인 줄 몰랐다.

그것이 유명화가의 그림인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완전정복’ 회사가 나폴레옹의 이미지를 차용하면서 기발하게 그린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즉, 학생들에게 ‘완전정복’을 사서 공부하면 나폴레옹처럼 불가능 없이 이루고자 하는 공부 목표를 달성 할 수 있다는 상징을 심어주고자 그렇게 표지로 장식하였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푸하하~~ 우째 이런 일이? <유식의 즐거움4 - 지식의 갤러리>를 읽기에 앞서 주욱 한 번 넘겨보다가 그때의 나폴레옹 그림을 본 것이다. ‘아니 이것이 그냥 그림이 아니고 유명화가의 그림이었단 말인가?’ 그림의 제목은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었다.

반갑기도, 나의 무지가 기가 차기도 한 가운데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름을 보니 ‘자크 루이스 다비드’라는 분이었다. 학창시절 내내 미술시간을 ‘뻘줌하게’ 보낸 나인지라 ‘자크 루이스 다비드’라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가 살펴보니,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즈음에 활동한 프랑스 고전주의 화단의 영웅’이라고 소개 하였다. ‘어머, 그런 분이었군’ 하면서 뒤쪽으로 넘기니 낯익은 그림이 나왔다. 다름 아닌, ‘소크라테스의 죽음’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슬프고도 정교하게 묘사된 그림이었다.

<유식의 즐거움4-지식의 갤러리>는 이렇듯 12년 교육과정 속에서 한 번쯤 본 적 있는 그림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그리고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어쩌면 교과서에 실린 것보다 더 멋진 그림들 또한 푸짐하게 실려 있다.

뿐인가. 화가들의 사랑과 생애 또한 눈물겨웠다. 가난은 왜 그리도 그들의 목을 죄었는지. 평생을 그려도 인정 못 받다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요즘 같은 가을날. 모네의 ‘건초더미’와 ‘수련’, 밀레의 ‘만종’과 ‘양치기 소녀와 양떼’등을 오래도록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마음이 차분해져서 마치 나 자신이 르느와르의 ‘테라스에서, 책 읽는 소녀’가 된(?) 듯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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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 -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
한비야 지음 / 금토 / 1996년 6월
평점 :
절판


 

어떤 사람의 글을 읽으면 그 사람과 일면식이 없음에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때문에 비록 활자를 통해서 이긴 하지만 공감하는 책이나 글을 만나게 되면 글쓴이와 충분히 마음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내게 있어 책을 읽는 순간 내 마음을 가장 따뜻하게 해주고 또 감동을 주는 저자중의 한사람 꼽으라면 단연 한비야씨다.


내가 한비야씨의 책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푸른숲)를 통해서였다. 그 첫 느낌은 ‘음, 참 밝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사람이구나.’였다. 그 후 <한비야의 중국 견문록>을 읽었는데, 중국어 공부를 어쩜 그렇게 재미있고도 효율적으로 하는지. 나중에 중국어 공부 할일이 있으면 한비야씨의 공부 방법을 참고해야지 다짐하기까지 했다.


아무튼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에서의 한비야씨는 ‘밝고 유쾌하다’였는데 <중국 견문록>을 읽으면서는 시종  ‘참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을 추가로 받았다. 그 느낌은 앞으로 한비야 씨가 책을 내면 무조건 사봐야지 하는 신뢰감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책은 쉬이 나오지 않았고 그는 긴급구호요원으로 가난한 나라들을 누비고 다녔다. 언젠가 TV에서 보니 너무 바빠서 그의 일주일 잠 분량이 나의 하루 잠도 안 되는 것을 보고 세상에나, 너무 충격이었다. 아니 그러고서 어떻게 산대유?


하루 스물 네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 그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하느님이 그에게만은 특별히 시간을 하루 24시간이 아닌 한 30시간쯤 주어서 스물 네 시간은 일하고 나머지 6시간은 잠 좀 자게 할 수는 없는지... 


바람의 딸,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다. 


아무튼 이번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 책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푸른숲)가 나와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지구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나서야 나와는 영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여 남들에게 사보라는 선전만 열심히 하고 정작 본인은 읽지 않았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1,2,3,4>(도서출판 금토)를 사게 되었다.


이 책을 살 때 까지만 해도 나는 책에 대한 기대보다 한비야씨의 책이니까 공감하는 부분이 적더라도 ‘그냥 읽어두자’는 정도의 기분으로 샀다. 아니,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공감하는 부분이 적어도라니?


사실 나는, 여행에 대한 꿈은 늘 갖고 있지만 ‘오지 여행’은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세계여행 속에서의 ‘오지’하면  먼저 ‘도전 지구 탐험대’ 라는 프로가 떠올랐다. ‘도전 지구 탐험대’에서 본 오지는 애벌레 같은 것을 먹어야 되고 맨발로 밀림을 걸어야 됨은 물론 독이 있는 뱀, 거미, 개미, 모기 등 무서운 것 천지의 세계였다.


지금은 한비야씨 하면 ‘긴급구호팀장’ 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 전엔 ‘오지여행가 한비야’씨였다. 수년전 서점에서 책표지로 본 그는 오지 여행을 끄떡없이 해내게 단단하게 생겼었고 자신 만만했다. 때문에 나는 그 책들에 별(?) 호감을 못 느꼈었다. ‘오지’라니. 내 선입견으로는 호기심은커녕 생각만 해도 무서운 곳이었기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 속물이 가고 싶은 곳에 그가 갔다 왔다면 호기심이 생겨서 책표지를 한번 펼쳐 봤을 테지만 당시의 나는 책표지만으로 충분했다. 때문에 나는 이 좋은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하여간 ‘뒷북’은 알아 줘야 된다고나 할까.


9.11테러 이전의 내 동경은 유럽에 국한 되었었다. 세계지도를 펴면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럽, 오세아니아등 지구본 골고루 나라들이 분포되어 있지만 유럽 사대주의자는 다른 지역들이 안 보였다.


그러나 9.11이후, 이슬람 세계에 관심을 가지면서 ‘오호!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구나.’ 하는 친근함이 일었고 그 연장선상의 아프리카도 넘보게 되었다.


어, 그런데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1>의 첫 장을 넘기니 한비야씨는 그의 첫 저작을 다른 누구도 아닌 ‘아프리카와 중동에 흩어져있는 난민 어린이들,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 왼다리와 오른팔이 잘려나간 채 꼬질꼬질한 손으로 내게 빵을 건네주었던 꼬마친구에게 바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한비야씨가 가난한 이들을 돕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이 이토록 오래 되었다니. 나는 한비야씨의 긴급구호 일이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고, 영어도 모자라 중국어 까지 ‘솰라솰라’ 하고나니 보다 더 자극적이면서도 보람도 있는 일이 필요하여 긴급구호에 뛰어든 줄로 생각했다.


감상으로 시작했더라도 그는 정열과 능력이 있으니 긴급구호일도 잘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얼마나 부끄러운 선입견이었는지. 나는 왜 그런 생사람 잡는 선입견을 가졌는지 생각할수록 부끄럽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네 권은 오지여행의 무용담도 무용담이지만 그보다 세계구석구석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나 웃음을 잃지 않는 이들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곳곳에 배어있는 책이다.


알고 보니 중국어를 배운 것도 여행 편하게 하고자 배운 것이 아니었다. 영어에다 스페인어 그리고, 일어가 되다보니 거기다 중국어만 보태면 긴급구호 일을 하는데 여러모로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배운 것이었다.


풍경만이 아닌 사람들과 정을 통하는 여행


잠들기 전 큰애는 늘 옛날 얘기를 해 달라고 하는데 소재의 고갈로 언제부터인가 늘 핑계대기 바빴었다.

‘오늘은 엄마가 피곤하니 그냥 자자’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그냥자자’ ‘오늘은 그동안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더 이상 이야기 꺼리가 없다. 얘기 꺼리가 좀 모이면 그때 다시 해줄게...’등등 하루걸러 한번씩은 꼭 핑계를 대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나마 하루걸러 한번씩 하던 옛날 얘기도 막상 시작하려면 떠오르는 게 없어서 늘 ‘옛날 옛날에..... 음, 아주 옛날 옛날에.......’하며 뜸을 몇 번 들이다가 겨우 들려주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리고 시작하는 말도 달라졌다.


즉, 다름 아닌 ‘한비야 아줌마가 말이다....’이다.


“한비야 아줌마가 말이다. 이번엔 터키를 가게 되었어. 우리 저번에 TV에서 같이 본 카파도키아 말야. 그곳을 한비야 아줌마가 직접 가봤다는 것 아니겠니. 가서 보기만 한 게 아니라, 그 돌로 된 방에서 하룻밤 잤대. 재미 있겠제, 아니 무서웠을까......”


“한비야 아줌마가 말이다. 이번엔 아프리카의 케냐를 가게 되었어. 케냐 알지? 마라톤 잘하는 나라 말야. 케냐의 아주 산골 마을에는 마사이족이라는 부족이 살고 있어. 그런데 그 사람들은 밥은 먹지 않고 우유만 먹고 산대. 한비야 아줌마가 가니 밥은 안주고 우유와 차만 주었지. 그래서 한비야 아줌마는 너무 배가 고파서 통역하는 사람에게 왜 밥은 안주냐고 물었더니 마사이족은 점심은 안 먹고 아침저녁으로 우유만 마신다고.......”


이 책에 나오는 실화를 주로 얘기해주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허구도 가미하면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던 옛날 얘기보다 훨씬 재미있고 내용도 알차고 교훈적이다.


‘세상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아이들이 그 얼마며, 비가 너무 와서 큰일인 나라가 있는가 하면 제발 비 좀 왔으면 소원이 없는 나라도 있단다.’  고작 7살인 아이에게 너무 무거운 얘기를 했나 싶을 때는, ‘한비야 아줌마가 모기에 물렸는데 너무 가려워서 말야.....’ 하면서 온몸을 박박 긁는 것을 녀석의 몸에다 직접 시연해주면 깔깔깔 넘어간다.


아무튼 아이들에게 ‘세상의 넓고 다양함’을 얘기해 줌에 있어 이 이상 더 좋은 책이 없을 것이다. 이 책 4 권 분량의 얘기들이 내 아이의 머릿속에 모두 들어가면 녀석의 마음도 자연스럽게 세계화가 될 것이다.


현재 아이는 미국이 힘이 제일 세서 미국이 제일 좋다고 하지만 한비야씨의 여행기를 잠결에 들으며 몇 년 보내면 저도 모르게 세상 모든 나라가 저마다의 향기와 빛깔이 있고 또 소중하고 존중 받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어른들 마음의 세계화에도 꼭 필요한 책이다.


1권만 읽고 만 분들에게 드리는 힌트


이 책이 얼마나 많이 읽혔나 살펴보니 1권은 55쇄, 2권은 33쇄, 3권은 24쇄, 4권은 22쇄 찍은 걸로 되어있다. 즉, 독자들이 1권은 너도나도 사보았는데 4권까지 다 사본 사람은 절반 정도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1권만 읽고 나머지를 안 읽으신 분들 분명 후회합니다. 1권부터 4권까지 다 읽어야 ‘내마음속의 세계화’가 완벽하게 구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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